아침, 뽀얗게 서리 내린 강둑길을 걷는다. 햇살이 반사되어 반짝인다. 잎을 떨어뜨린 나목들의 긴 그림자가 엷다. 욕심을 비워 낸 맑은 그림자이다. 드러난 빈 가지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의 그림자도 보이는 듯하다. 강물 속에 비친 산 그림자는 깊다. 높은 산의 뿌리는 저 깊은 강 속에서 시작되었나 보다.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조금씩 흩어지면서 산 그림자를 지우고 있다.
해가 진 후 가로등 불이 일정하게 켜진 곳을 걷노라면, 나를 앞서가던 내 그림자가 옆으로 다가와 함께 걷다가 뒤로 가고, 다시 내 앞에 있던 그림자가 가까이 와서는 뒤쪽으로 가면서 나를 지켜주던 여름밤의 기억이 친구처럼 든든하다. 어릴 적 달 밝은 밤이면 또래 친구들과 그림자 밟기 놀이도 했었지. 그림자를 밟히지 않으려고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서 나오라고 소리치던 생각도 아름다운 기억이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에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어떤 파티에 참석해 그림자를 팔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 대가로 무엇이든 마음대로 꺼낼 수 있는 ‘행운의 자루’를 얻는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그림자를 팔아 엄청난 부를 얻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곧 그림자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마자 사람들이 그를 경원시한 것이다. 그림자가 무엇이기에…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그 무엇’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이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 주어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 그림자는 성원권이라는 것이다.
여자 대학생이 귀했던 60년대 시절, 남녀 공학인 학교에서 친구들은 참 당당하고 도도한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나에게는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 미진함이 있었다. 무언가가 부끄러웠고 조심스러웠으며 한 발 뒤로 물러서 있었다. 엄마의 그림자였다. 엄마의 그림자가 없었다.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까지 동생 4명이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이었다. 아침밥을 해 먹이고 도시락을 싸주어야 했고, 이것저것 엄마 역할을 해주어야 했지만, 처음 맞는 도시에서의 대학 생활에 나 한 몸 챙기기도 벅찼다. 빠듯한 교육공무원 월급으로 동생들 등록금도 힘겨운 아버지에게 손 내밀 수 없어 저녁에 과외를 하고 늦게 돌아오면 중3 짜리 여동생이 나 대신 동생들을 챙겼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테고 할 말도 많은 십 대 청소년인 그들에게 온통 부족한 것뿐이었지만, 우리는 내색하지 않고 꾹꾹 가슴에 묻으며 철이 들어갔다. 마음 한구석 텅 빈 곳을 조심스럽게 싸매고 봉합하여 살아오느라 동생들은 지금까지도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는다. 힘들었을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하지 않는다. 시댁 식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자랄 때의 이야기들을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흉을 보다가 다시 싸움도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그러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재혼해 두 분이 사는 아버지를 탓하지도 않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아주 가끔 꿈에 나타나는 엄마는 모습이 뚜렷하지 않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그냥 키 크고 마른 체격에 긴 치마를 입은 스웨터 차림의 모습뿐이다. 아무런 그림자도 없다. 잠에서 깨면 엄마였구나, 엄마가 다녀갔네 하고 반갑지만 마치 지나간 흑백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아무런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자가 없어서일까.
지난겨울 무채색의 암울함을 탈피하고자 늦은 나이에 수채화를 배워보기로 했다. 처음 데생 시간부터 그 물체가 화폭에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림자였다. 그림자가 없으면 그냥 둥둥 떠 있는 실체가 없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만다. 자연의 색은 한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나뭇잎 색깔 하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도 몇 가지 색을 섞어야 하고 특히 햇빛이 비치는 양에 따라서 색깔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예쁜 색에도 항상 그림자는 따라 다녔다. 특히 물체가 지면과 닿는 곳의 그림자는 아주 진하게 물을 거의 섞지 않고 눌러주라고 가르쳐 주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아주 진하게 선생님이 그림자를 그려 넣어주면 그림은 사실인 양 살아있게 된다. 그림 속 얕은 물웅덩이 속에 먼 산의 그림자가, 분홍빛 꽃 그림자가 손에 잡힐 듯하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 내가 그림자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최초로 얻은 온전한 내 것이었다. 그렇게 40년을 나의 그림자와 남편의 그림자와 아이들의 그림자로, 지난 세월을 잊고 살다가 다시 그림자 없이 살아온 세월이 9년이다. 옛날로 돌아갔다. 모든 것이 그대로 되돌아 왔다. 세상이 부끄러워지고 조심스러워졌으며 또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이다. 악마가 다시 나타나 그림자를 돌려줄 테니 죽은 뒤의 영혼을 팔라고 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갈등 끝에 이 제안을 거절하고 행운의 주머니도 버리고 헌 장화를 사 신고 세상을 떠돌며 살아간다. 사람들 사이의 성원권을 포기해 버리고서….
숙제하듯 책을 읽고 성경 필사에 매달렸다. 음악회를 다니고 영화를 보고,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다 했다. 세상이 궁금해지면 신문을 읽었다. 신문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주는 참 반가운 방문자이자 다른 사람의 생각과 소통하게 해주는 가교역할을 해주었다. 일찍부터 비대면 시대를 경험한 셈이다. 매년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같이 할 사람이 없어 혼자에서부터 시작한 일들이 이젠 혼자가 가장 편하다. 나에게만 남겨진 시간. 남편은 결코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참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것 같다. 주저앉을 것만 같은 날들을 항상 바쁜 척, 할 일이 많은 척 살았다.
모처럼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몸과 마음이 아주 편하다. 자연의 큰 그림자 속에 파묻혀 내 몸이 드러나지 않고 내 생각을 나타내지 않아도 되는, 내가 없어도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보호받고 있는 느낌이다. 부모의 그늘 속에 있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 초조하고 허망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이대로 그냥 쭉 지내고 싶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햇빛이 그리워졌다.
아침이다. 다시 강둑으로 나선다. 태양을 마주 보고 팔을 크게 흔들면서 걸어가면 뒤따라오는 그림자가 나를 밀어준다. 되돌아올 땐 그림자가 앞에서 나를 끌고 간다. 나는 내 그림자를 지니고 살아야 한다. 사람들 사이의 성원권을 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