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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소 건설사 700여 곳이 지난 1년 간 퇴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진 폐업 신고한 기업은 200위권 내 중견 업체를 포함, 약 3200곳에 달한다. 자금난 등에 사무실도 운영하기 힘든 ‘불량 기업’이 많았다는 뜻이다.
2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 중 전날 오후까지 1년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등록 말소’ 처분을 받은 기업은 700곳이 넘는다. 지난달(72곳)만 놓고 보면 전월(36건)에 비해 2배 급증했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공사 현장에 타워크레인이 놓여 있다. 사진=이혜진 기자
등록 말소된 건설사를 유형별로 보면 종합건설사만도 200곳이 넘는다. 보통 각 분야 전문건설사는 하도급 형태로 종합건설사의 일감을 수주하는데 이들 전문건설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비교적 규모가 큰 건설사 중에도 퇴출된 곳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상 등록 말소 처분은 가장 강력한 제재다. 이 같은 처분이 내려지면 기존 일감이 다 떨어진 뒤 사실상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 다른 계열사를 통해 사업을 이어간다 해도 그동안 쌓은 실적이 없어져 타격을 입게 된다. 국내외 공사 수주 시 과거 실적은 가장 중요한 평가 지표로 활용된다.
올해 말소 처분을 받은 곳 가운데 국내 건설사 순위 지표인 시공 능력 평가액(기업이 수행할 수 있는 공사 1건의 규모를 금액으로 환산한 수치)을 기준으로 랭크된 3000여개사 중 가장 순위가 높은 업체는 지난해 900위권 내에 랭크된 부산 소재 A사(시평액 200억원 후반)다.
아파트 브랜드 우림필유의 우림건설도 최근 등록말소가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국토부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브랜드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다른 중견사보다 높지만 3000여개사 내에 랭크돼 있지 못하기도 하다.
종합건설사 400여곳 폐업 신고
건설사들이 말소 처분을 받는 이유는 자본금‧인력 미달, 보증가능금액확인서 미제출, 사무실 미보유 등 다양하다. 앞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건설업계 구조조정 수준이 낙제점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부실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게 검증 기준을 강화한데 따른 것이다. 다만 건산법에 ‘부실시공으로 위험을 발생시키면 건설업 등록을 말소하거나 영업 정지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음에도 아직 이런 이유로 퇴출된 기업은 없다.
지난 1년간 폐업(말소와 같은 행정조치가 아닌 자진해서 문을 닫는 것)을 신고한 건설사는 3200곳이 넘는다. 이 가운데 종합건설사는 400곳 이상이다. 지난 5월(276곳)만 놓고 봤을 때는 전월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
종합건설사 중 폐업을 철회한 기업(시그마종합건설, 장용종합건설, 대동산업개발 등)과 중복 처리된 업체(대창건설 자회사인 지디케이건설 등)를 제외해도 모두 400곳이 넘는다.
이 중 지난해를 기준으로 20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부천 소재 B사(시평액 1400억원대)는 지난 5일 폐업을 신고했다. 시평액을 기준으로 랭크된 종합건설사가 3055곳인 점을 감안할 때 상위 6% 내 기업이 최근 폐업을 신고한 것이다.
지난해 11월엔 광주 기반 종합건설그룹 중 한 계열사인 C사가 폐업을 신고했다. 3055개사 중 상위 약 3%에 해당하는 중견 건설사다.
전월 말에 폐업을 신고한 울산 소재 D사(400위권 내, 500억원대)를 포함해 우석건설(202위, 610억원)과 E사(300위권 내, 1100억원대), F사(400위권 내, 600억원대), 동원건설산업(388위, 602억원), G사(500위권 내, 500억원대) 등도 업계에서 중견사로 분류하는 시평액 500억원 이상인 업체다. 이들 업체 중 C사와 E사 등은 전 사업을 폐업 신고했는지 일부만 했는지에 대해 확인되지 않았다.
올해 부도로 처리된 건설사(금융결제원이 공시하는 당좌거래 정지 건설사로, 정지 당시 폐업하거나 등록이 말소된 곳은 제외)는 6개사다. 면허별로 ▲종합건설사 4개사 ▲전문건설사 2개사다. 지역별로 부산이 2개사이며 인천과 경기, 충남, 전남은 각각 1개사다.
벼랑 끝으로 몰리는 건설사, 왜
이처럼 다수 건설업체들이 벼랑 끌으로 몰린 이유는 건설 업계가 삼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에 자금 경색과 원자잿값 상승 등이 겹쳐 ‘탈출구 없는 터널’로 진입했다는 진단이 확산되고 있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고금리다. 작년부터 기준금리가 본격 인상된 영향에 부동산 경기가 한 풀 꺾여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 물량이 쌓였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월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1365채로 정부가 위험 수위라고 판단하는 6만 2000채를 크게 웃돈다. 전체의 84%가 지방 물량이다. 다만 정부는 연내 미분양 물량이 10만 채가 넘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업계에서 분양을 최대한 미뤄 증가세는 다소 둔화됐다.
미분양은 건설사에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하는 ‘돈맥경화’를 겪게 했다. 부동산 개발 사업은 보통 프로젝트파이낸싱(PF‧아파트 등을 개발할 때 향후 들어올 분양수익을 담보로 금융사에서 대출받는 것)으로 자금을 마련하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것이 사실상 중단됐다.
상승하는 공사비도 건설사를 옥죈다. 이미 시공 중인 곳에선 공사비 인상분이 미반영돼 ‘적자 공사’를 한 사례도 있다.
미래 먹거리인 신규 수주를 포기하는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이 이달 20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건설 수주액은 전년 동기 대비 44% 줄었다. 이 같은 감소 폭은 앞서 2017년 10월 이래 가장 크다. 특히 민간 주거용 건축 수주의 감소 폭이 같은 기간 63.2% 감소했다. 최근 경기도 과천주공10단지 재건축의 시공사 입찰에 DL이앤씨가 참여를 포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파트 분양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 지난 15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민간아파트 분양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월 전국 신규 분양 민간아파트 물량은 7213채로, 전년 동기(1만5497채)보다 53.5%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는 “분양 경기가 나쁘고 공사비 인상 등 사업 위험이 커져 분양을 미루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수주 공백이 길어지고 PF가 중단돼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가 늘 수 있어서다. 한투증권은 “이대로 가면 건설사의 주택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연말까진 이미 분양된 성과를 바탕으로 매출 성장이 이어지겠지만 내년엔 대부분 건설사의 매출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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