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장대비처럼 주룩주룩 쏟아집니다.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는데 내일도 오늘처럼 많이 내린다니 걱정이 많아 집니다. 이제 수확해야 하는 양파는 비가 하루건너 오기 때문에 수확일자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이러다 밭에서 썩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내와 둘이서 600여키로를 수확하여 이틀동안 건강원에서 양파즙을 내어 오늘 택배를 마쳤습니다. 초보가 운전하는 차라면 타길 주저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초보농군이 지은 농산물을 주저없이 구매해 주시는 지인들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컴앞에 앉아 있는데, "이 양파는 말이야. 참 귀한 것이야. 처음 심을 때에 고자리약이라는 살충제 한번 뿌리고 그 뒤로는 농약, 비료를 하나도 안 넣었어. 그리고, 한 줄은 아예 유기재배 한 것이거든. 그러니, 안심하고 사서 먹어도 돼!" 하며 열심히 양파를 홍보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립니다. 저는 생산자이고 아내는 영업부장입니다. 처음에 참 많이 반대했던 아내가 막상 현실이 되니 열심히 도와주고 또 판매를 책임져 주니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 부부는 하루에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애들얘기, 형제들의 간단한 소식등을 가끔 얘기할 뿐..,
아내도 수다스런 편은 아니고, 저는 짧고 간단한 대화를 좋아하는 그런 편이라 집안이 좀 조용한 편이었지요.
특히, 함께 가게를 할 때에는 잦은 충돌이 있었고, 조금 난감하던 시간도 있었고.., 다들 그렇게 사시나요?
이제 함께 농사를 짓습니다. 집도 비닐하우스로 지었고, 가구도 모두 서울시민이 협찬한 것 들로 채워졌습니다.
동네분들은 이런데서도 사람이 사는 것에 대하여 무척 신기해 하십니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면서 불평하지 않고 청소하고 깨끗하게 관리해 주는 아내가 참 고맙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하고 여타 집안일하고 또 밭일까지 협조해주니 하루하루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짜증을 받아내면서 웃어주는 아내가 참 예쁩니다.
농사를 준비하면서 시작하면서 가장 큰 가치를 행복에 두었습니다. 행복을 얻기 위하여 나를 바꾸고 삶의 방식을 바꿨기에 앞에 놓여진 작고 사소한 불편과 애로사항은 별 무리없이 극복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부부가 한공간에서 24시간 생활합니다. 그리고, 말도 많이 하게 되더군요. 농사에 대하여, 이웃에 대하여, 이곳 카페에 대하여 등등 무슨 중요한 얘길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차마시면서 일하면서 걸으면서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것을 발견하고 저도 가끔 놀랍니다. 이점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귀농하여 얻은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지금도 가끔 다툽니다. 그렇지만 금방 웃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며칠간 말하지 않고 꽁하고 지낸 경우가 가끔 있었지요.
콩밭의 한줄 길이가 95미터입니다. 뙤얕볕 아래에서 긁쟁이로 풀을 긁으면서 한발한발 나아갑니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선그라스를 끼고 밭일을 하니 지나가는 할머니께서 크게 웃으십니다. 서울사람은 참 많이 다르다고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하는 방식이 참 신기하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맨발을 하기도 하고, 흙으로 엉망이 된 옷하며, 고무신을 신고 있고, 머리는 산발이 된 저의 모습을 제가 봐도 참 어이없기만 합니다. 그런데도 부끄러운 생각은 없고 한없이 청량한 기운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은행에서 문자가 옵니다. 통장잔고가 부족하니 입금하라는 내용입니다. 난감한 일이지만 별로 걱정되지 않습니다. 지금 내겐 고추를 갉아먹는 거세미가 제일 걱정거리입니다. 키작은 고추나무도 걱정입니다. 걱정은 오직 작물에 대한 것들이지요. 도시인들은 도무지 이해못할 그런 것들이지요.
농사를 기업형으로 할 것이냐, 아님 자급자족형으로 할 것인가는 각자의 형편과 철학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가장 원초적인 생활밀착형 작물을 재배하고 싶은 생각이 강해집니다. 농촌에 살면서도 텃밭에 채소가 없어 마트에 가서 사다먹는 웃지못할 광경이 참 많이 보이는 것이 요즘의 농촌입니다. 농촌에 살면서 닭한마리 키우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을 많이 봅니다. 참 아쉽습니다. 농사부산물을 닭이나 돼지가 먹고 그 부산물이 다시 밭으로 돌아가고 사람도 마찬가지 이겠지요. 저의 밭 한켠에 원두막처럼 생긴 화장실내부는 아주 간단합니다. 댓돌위에 올라 왕겨위에 대변을 보고 앞의 깡통에 오줌을 누면 통에 모입니다. 모두 밭으로 환원될 사람의 배설물들 입니다. 아마 철원에 몇 안되는 재래식 화장실이라고 말씀들 하십니다. 농촌에 들어와 살면서 작은 실천과 환경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여깁니다. 모든 것들을 돈주고 사쓰던 사람을 고용해서 해결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조금은 불편하고 느린 생활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견딜만 합니다. 특히, 밤에 모여드는 벌레들은 난감하기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하는 농촌식구라고 생각합니다.
처남이 농장을 방문하였습니다. 무쏘의 트렁크는 참 큽니다. 양파를 좋은 것으로 250여키로 차에 싣고 조금 작은 것들을 50여키로 덤으로 주고, 배추, 얼갈이, 열무등을 뽑아와서 실으니 한가득입니다. 그리고서 값을 계산합니다. 양파 250여키로를 키로당 500원으로 환산하니 125,000원입니다. 한차 가득 실어주고 받은 돈이 125,000원이라니 갑자기 허탈함이 밀려 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자고 스스로 약속했지만 이번 일은 조금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도 극복해내야할 대상이라 여겨집니다. 태풍이 오고, 돌풍이 불고, 병충해가 오고, 가뭄등..앞으로 닥쳐 올 수많은 위기가 있을 것인데...어찌 극복해낼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농장의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을 비닐을 쓰지않고, 비료를 쓰지않고, 농약을 쓰지않고, 제초제는 전체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니 이웃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합니다. "그래, 잘 해 봐라!" 하고 말합니다. 넓은 밭이 풀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과연, 저 풀들을 이겨내면서 작물을 성공적으로 키워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눈뜨면 밭에 나가 풀들을 관찰합니다. 너무 늦게 풀관리를 시작하면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에.., 그 시기를 놓치지않고 풀을 베어 눕히려 하는 것 입니다.
처음 겪는 큰 일 입니다. 혼자서 감내해야하는 몫입니다. 모르는 것은 선생님과 이웃과 인터넷등을 통하여 해결하지만 몸으로 뛰어야 하는 일들은 모두 제 몫입니다. 제대로 못해 낼 경우는 품을 사야 합니다. 농사비용이 추가되는 순간이지요.
올해 매출 목표가 천만원입니다. 이 금액은 순수입을 말합니다.
콩 2-300백, 고추 1-200백, 양파 1-200백, 절임배추 3-400백,기타 100-200백만원으로 어림잡는데 가능할까요?
지출을 최대한 줄입니다. 거의 모든 노동은 부부가 해결합니다. 농자재구입비용은 시설재 외에는 지출을 제로베이스로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돈을 말하니 생각이 많아 집니다. 농장에 테레비는 한채널만 흑백화면처럼 나옵니다. 아직 인터넷도 설치하지 안했습니다. 농사로 돈벌어 컴퓨터도 장만하자는 아내의 말에 동의버린 것이 불찰입니다. 가끔 라디오만이 세상소식을 즉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제 익숙해지니 견딜만합니다.
종일 일하다보면 몸이 지칩니다. 배도 몹시 고픕니다. 그때에 바람 한줄기 불어오면 그 청량함이란 참으로 대단합니다. 하늘에 하얀구름이 온갖 모양을 만들며 넘실넘실 어디론가 흘러 갑니다. 내마음도 미지의 세계로 따라 나서려 합니다.
그리고, 10시도 안되어 눈꺼풀이 내려앉습니다. 곧, 아침이 밝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농촌으로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잘 적응하여 제대로 된 농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농사짓는 철학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욕심하나는 세상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에 빚을 많이 졋거든요.
첫댓글 시언님의 글을 읽으니 이미 농사짓는 철학자이신듯 합니다~ 처음하시는 일이라 알게 모르게 맘의 상처도 크실텐데 잘 이겨내시리라 믿습니다~ 멀리서 응원할께요 ^^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철학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시는 모습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시언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삶이기도 하네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어제 이웃집 할머니가 양파 한망을 조용히 대문 앞에 가져다 주고 가셨습니다. 1년 내내 노부부가 큰 농사를 짓으시는데 작년말 할아버지가 다치셔서 겨울내 병원에 계셨습니다. 양파 모종값 20만원, 심을 때 일꾼들 일당 30만원... 올해 양파값이 너무 없어 그 많은 양파를 캘 땐 할머니 혼자서 하시느라 병이 나셨답니다. 할아버진 고추밭에 농약을 하고오신 뒤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하십니다. 두 분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시언님 부부께서도 건강 생각하시고 일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대단하네요 .. 저도 곧 농촌으로 가서 농사짓는 철학자가 되고 싶네요 ^^ 갈길이 멀지만서도 ...;ㅎ;
혹시 일손 안필요하신가요? 저 가서 일손 돋고 싶어여.... 민폐안끼치고 일만 열심히 할 자신 있습니다..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언선생님의 일상 스케치는, 두분과 농장의 모습이 선연히 제 눈앞에 그려지는 듯 합니다..농업이란 것이 아름다워 보이면서도 어려움이 많은 것이랍니다. 시골에서 자라고 농사일을 도와 보신분은 어느 정도 저와같은 느낌이라생각합니다. 유기농업을 실천하려는 모습에 많은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우리나라도 많은 부분은 아니겠지만 일정부분은 유기농산물이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되겠지요..현재도 많은 분들이 저농약 무농약 유기농을 어려운 환경에서 실천하고 있는 모습들을 볼수가 있씁니다. 시언선생님의 실천적인 모습들이 유기농업을 실천하려는 많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언제 한번 가보고 싶어집니다...감사합니
열심히 거의 일년을 밭에 있은 작물이 킬로당 500원이라니
참 그렇습니다
현실이 정말 밉네요
전 자급자족이 목표인지라
수확했지만 내 먹을것도 부족한 정도이네요
지금도 양파있다면 사고 싶네요
킬로에 1000원이라도 삽니다
돈의 가치라는게 참 그렇네요
너무평가절하되어있네요
이런 세상이 싫지만 살아야 하니..
시언님 양파 있으시면 제게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30킬로만요
온라인 쪽지로 보내주시면 입금하겠습니다
택배비도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장마비때문 시언님의 실상을 듣게됩니다.
두분 건강도 함께 챙기셔서 힘든 삶을 잘 감당하셨으면 해요.
"고진감래" 더 행복하고 웃을 수 있는 그날이 꼭 오기를 빌어봅니다.
6.25일 참석 못한 일이 후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