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회] 독립운동가 김창숙의 탄압과 저항
독재자 이승만 평전/[12장] 권력말기현상 드러내고 국정파탄 2012/05/02 08:00 김삼웅![](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img.ohmynews.com%2Fattach%2F17866%2F1267108111.jpg)
심산 김창숙 선생.
해방 뒤에는 민주의원의 의원을 지내고 김구 등과 남북협상을 추진했으며, 유도회를 조직. 재단법인 성균관과 성균관대학을 창립하고 초대 학장에 취임한 데 이어 1953년 총장이 되었다. 그러던 중 이승만 정부의 압력으로 1956년 학교에서 쫓겨나기에 이르렀다.
김창숙은 상해 임시정부 시절 이승만의 ‘위임통치론’에 대해 신채호ㆍ박용만 등과 거세게 반대한 것을 비롯하여, 줄곧 반이승만 노선을 걸었다. 이승만이 부산에서 정치파동을 일으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킬 때는 이승만 <하야 경고문>을 발표하는 등 이승만 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하였다.
이승만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57년 유도회 내분을 조장하고, 분란을 빌미삼아 김창숙을 축출하고 유도회를 어용화시켰다.
우리나라 근대문학 개척의 선구자로 불리며 3ㆍ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집필하기도 했으나, 중추원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로 훼절한 최남선이 1957년 사망했다. 이승만은 그를 지극히 칭찬하는 조사(弔辭)를 지었다. 독립운동가들의 사망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승만의 조사를 본 김창숙은 노기를 억제하기 어려워 <경무대에 보낸다>라는 격문과도 같은 글을 지어 이승만에게 보냈다. 그리고 <대구매일신문>에 이를 싣게 했다.
아아, 우남(雩男) 늙은 박사여
그대 원수(元首)로 앉아
무엇을 하려는가
고금 선현의 일
그대는 보았으니
응당 분별하리
충역(忠逆) 선악 갈림길을
진실로 올바른 세상
만들려거든
우선 역적들
주살하라
생각하면 일찍이
삼일독립선언 때
남선(南善) 이름 떠들썩
많은 사람 기렸지.
이윽고 반역아
큰소리로 외쳐
일선융화 욿다고
슬프다 그의 대역
하늘까지 닿은 죄
천하와 나라 사람
다 함께 아는 바라.
그대 원수(元首)의 대권(大權)으로
차노(此奴) (주석 2)를 비호터니
노제(路祭)에 임해선
애사(哀詞)를 보냈도다
충역 선악의 분별에
그대는 어그러져.
나라 배신 백성 기만
어찌 다 말하랴
이 나라 만세의 부끄러움
박사 위해 곡(哭)하노라. (주석 3)
김창숙은 이에 멈추지 않았다. 이승만이 3선 대통령에 취임할 때는 다시 붓을 들어 <대통령 3선 취임에 일언을 진(進)함>이란 글을 공개했다. 서릿발 치는 경고의 내용이었다. 이승만이 이 때만이라도 김창숙의 진언을 취하여 국정개혁에 나섰다면 그의 비극도, 국가의 불행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김창숙의 ‘고언’이다.
국가원수인 각하로서 국민의 여론을 전혀 모르신다면 이는 각하의 총명이 불급(不及)함이라 하겠으나 만일 알고도 모르신 채 하신다면 이는 각하의 실덕이 크다 않을 수 없습니다. 각하의 행정 전후 8년 동안에 많은 실덕이 있었으나 과거는 모두 덮어두기로 하고 만근(晩近) 선거를 통하여 드러난 각하의 실덕은 천하인의 이목을 엄폐치 못할 사실입니다.(…)
이제 전국의 민심은 이미 각하에게 이탈되었나니 이탈된 민심을 회수하려면 각하께서 반드시 절세의 대용단을 분발하시라. 대통령의 권위로써 자유당 총재의 직권으로써 현재 각료 중 몇몇 조고배(趙高輩)를 즉일 척촉하시고 조작 민의의 주동체인 자유당을 엄금 해산하는 동시에 금반 8ㆍ8과 8ㆍ13 부정선거를 일절 무효로 선언함에 따라서 전국적 재선거를 특명 실행함이 각하의 대통령 3선 취임 초정(初政)의 급선무 중 가장 급무이며, 각하의 대정치가적 재완이 여기에 비로소 발휘되는 것이며, 민심 회수의 유일무이한 방법임을 주저치 않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주석 4)
주석
2> ‘이 종놈’ 이란 뜻.
3> <김창숙 문존>, 여기서는 김삼웅, <심산 김창숙 평전>, 436~437쪽, 시대의 창, 2006.
4> <벽옹일대기>, 여기서는 김삼웅, <심산 김창숙 평전>, 439~441쪽,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