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안도 대동강변 평양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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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1. 22:44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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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변 평양시내
평양에서 이름난 물산은 평안남도 일대에서 생산되는 누에고치, 즉 평양견(平壤繭)이고, 평안남도와 황해도 북부 일대에서 사육되는 평양의 소[우(牛)]다.
대동강
하류로 흐를수록 강폭이 넓어지면서 평양 시가지가 펼쳐진다. 강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사람이 흘러가는 것만 같다.
『여지도서』에는 평양시 강동군에 대하여 “동쪽과 북쪽은 뒤로 산을 등지고 있고, 서쪽과 남쪽은 앞으로 강을 바라보고 있다. 학문과 배움을 숭상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힘쓰며 농업과 잠업에 부지런하다”라고 실려 있다. 이곳 대박산 기슭에는 단군의 무덤이라는 단군릉이 있고, 용산리에는 고구려의 시조인 고주몽의 묘가 있는데, 427년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때 함께 옮긴 것이라고 한다. 또한 평양에 와서 메밀국수를 못 먹었다면 평양 구경을 다했다고 말하기 부끄럽다는데, 조선 8도에 소문난 옥류관의 평양냉면, 청류관의 전골과 신선로, 평양약밥이 이름 높다. 또 하나 이름났던 것은 대동강에서 물을 길어다 파는 물지게꾼이었다.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국과 이웃 나라들』이란 책에서 평양의 물지게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단군릉
평양은 단군성전을 품고 있다. 북한이 단군과 단군 부인의 무덤이라고 밝힌 유적으로, 1994년에 문흥리 대박산 기슭에 조성하였다.
나는 붐비는 나룻배 위에서 말을 탄 채 맑게 반짝이는 대동강을 건넜다. 강 건너 어두운 수문 안은 온통 물바다였고 하루 종일 물지게꾼으로 붐비고 있었다. 도시 안에는 우물이 전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놀랍게도 성벽이 배 모양을 둘러싸고 있어서 그곳에 우물을 파면 배가 침몰한다는 미신 탓이었다. 물은 거의 대부분 미국제 등유 양철통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택리지』에서는 평양의 지세를 이렇게 기록한다.
땅이 비록 오곡과 목화 가꾸기에 알맞으나, 제방과 개울이 적기 때문에 밭농사만 일삼는다. 그러나 하류에 있는 벽지도는 강 복판에 위치하여 강물이 줄면 진흙이 나타나는데, 지방 사람들이 그 안에다 논을 만들어 1묘(畝, 사방 600척)에 수확이 1종(鍾, 6섬 4말)이나 된다.
강은 백두산 서남쪽에서 흘러나와 300리를 내려오다가 영원군에 와서는 커져 강이 되고, 강동현에 이르러 양덕ㆍ맹산 물과 합쳐지며, 부벽루 앞에 와서 대동강이 된다.
강 남쪽 언덕은 10리나 뻗어 있는 긴 숲이다. 관에서 나무하는 것과 짐승 먹이는 것을 금지하여 기자 때부터 지금까지 숲이 무성하며, 매년 봄여름이면 그늘이 우거져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평양특별시의 낙랑벌과 미림벌ㆍ순안벌을 비롯한 여러 평야와 양각도ㆍ능라도ㆍ두루섬 등에서 관광자원과 온갖 나무 및 채소가 재배되고 있는데, 양각도(羊角島)에는 양각도국제호텔과 1989년 5월 평양 축전을 위해 건립된 평양국제영화관 및 양각도축구경기장이 있다.
평양의 순안 공항
땅이 평평하다는 뜻을 지닌 순안 공항 건물 위에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의 사진이 세워져 있다.
지난 2003년 가을에 북한을 방문하였다. 4박 5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황해도 구월산, 묘향산, 백두산 일대와 평양 일대를 두루 돌아다녔는데, 그때 차에 동승한 안내원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각도는 평양역과 대동강역 사이에 있는 대동강의 하중도다.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양각도 호텔에서 전 일정을 머물며 아침을 먹었다. 닭알무침(달걀찜), 향 채순, 물김치(개인 별도)에 콩나물국이 차려진 성찬이었다. 아침밥을 먹으며 “북측에서도 김치를 좋아합니까?” 하고 묻자 “그렇습네다. 우리 북측 사람들은 김치 아니면 밥을 못 먹습네다.” 우문우답이다. 한민족인데 다를 것이 뭐 있겠는가. 날은 어둡고 어둠이 가시지 않은 호텔 앞 광장이 밤사이 내린 비로 촉촉하였다.
평양시내
단정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 평양시민은 북한에서 상류층으로 통한다.
백두산 오르는 날, 삼지연 공항에서 병사봉으로 오르는 길이 만만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차는 7시 20분에 떠난다고 해놓고 40분이 다 되도록 그냥 머물러 있었다. 그 틈에 안내원에게 평양의 인구가 얼마인가 물었더니, “평양은 250만 명 정도 되고 원산, 청진, 사리원, 남포, 신의주, 해주, 혜산, 강계, 함흥이 북측의 큰 도시입네다”라고 하였다.
남측에서는 서울로만 인구가 몰려든다고 하자 “여기도 역시 평양으로만 올려고 합네다. 그래서 도시에서 농촌으로 나가 살려는 사람은 국가에서 집도 지어주고 그곳에서 환영도 해주고 사회적으로 내세워주고 하니까 당 간부들은 농촌으로 많이 내려갑니다. 특히 자발적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네다”라고 하였다. 평양에서 신의주까지는 열차로 4시간이 걸리고 청진까지는 10시간이 걸린단다. 안내원이 내게 물었다. “남측에선 지금도 북측 사람들이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정색을 하고 아니라고 답하였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대동강을 건너 평양시내를 거쳐 비 내린 순안 공항에 도착하였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고려항공 버스를 타고 비행기에 올랐다. 땅이 평평하다는 뜻을 지닌 순안 공항, 그 비 내리는 공항을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이 사진 속에서 젊은 시절의 얼굴로 무심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김일성 동상
김일성이 사망한 뒤 평양에서는 대규모 추모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중앙추모대회는 5년 주기로 열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동강변 평양시내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 북한, 2012. 10. 5.,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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