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학 2011.6월호] 나의 외로운 정부 外/ 송경동

[박정원]

나의 외로운 정부 외 1편

              송경동

어려선 자주적 민주정부에 빠져보기도 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일국 혁명을 넘는

영구 혁명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오늘부터 나는 내 안에서

작고 새로운 하나의 정부가 되기로 한다

하나의 새로운 민족

이성도 동성도 아닌 다성애자

전혀 다른 빛깔의 인종

또 다른 질감의 대지와

산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헛된 기대에 빠지지도

낙담하지도 쓸쓸해지지도 말자는 다짐

이 무수한 정부들이

제각기 자유롭고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이 올 때까지

타협하지 말자는 나의 외로운 정부

그 노래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노래 한 곡 값으로

이빨 네 대를 바친 적이 있다

서산군 대산면 돗곳리 60만 평 간척지 위에

정유 공장을 지으며 폐자재처럼 살 때였다

비가 추적추적내리던 늦오후

철근들도 젖고 공구함도 젖고 도면도 젖고

작업복도 젖고 용접봉도 젖고

마음마저 축축이 젖었지만

하늘 아래 비 피할 곳 하나 없던

건설일용공 시절

갈 곳 없어 근처 자재창고로 가 간청해 비를  피하며

쓸쓸한 노래 몇 곡을 부르는데

또래쯤 되는 창고장이 시끄럽다고 나가라 했다

이 빗속에서 어디로 가라는 것이냐고

너무하지 않냐고 돌아서는데 뒷골이 멍했다

쓰러졌다 일어나려는데 다시 풀 스윙

코 옆에서 입술까지가 너덜너덜 찢어지고

이빨 4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피범벅의 입을 간신히 열어 말했다

노래 한 곡 부른 게 그렇게 죄냐고

지금도 그 노래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광주교도소 소년수 사동 6하 1방에서

카스테라 빵 다섯 개와

백도 깡통 두 개를 경품으로 걸고 하던 노래자랑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그대에겐 그렇게도 구속이었소"

전주소년원 새벽 6시

기상나팔로 불어주던 구창모의 휘나리

장현이거나 배호거나

철야작업 때면 멀리 바닷가 바람에 실려 들려오던

동료 작업자들의 구슬픈 노랫소리

탕탕탕 깊은 밤을 울리던 망치소리

퍽퍽 허공에서 불꽃놀이를 하며 떨어지던 용접불똥들

아는 노래를 다 부르고 나도 오지 않던 퇴근 시간

세월이 흘러

나는 아직도 내 노래를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맨다

새벽 6시 25미터 철탑 위를

'비정규직 철폐연대가'를 부르며 오르던 기륭전자의 은미

멀리 바다가 보이는 거제도 대우조선

35미터 송전탑 위에서 둥지도 없이 사는 동지를 보며

'가버린 세월을 탓하지 마라

지나간 세월일랑 묻지 말아라

아직도 우리는 한 배의 운명이니까'라는 투쟁가요에 맞춰

팔뚝질을 하던 조선소 노동자들을 보며

벗이 목을 매단 85호 크레인 위에 다시 오른 김진숙을 위해

고공농성 99일 되는 밤 12시

불 꺼진 크레인 아래에서 하트 모양 촛불을 켜두고

100일 노래자랑을 해주던 늙은 노동자들을 보며

아무래도 우리에겐

다른 사랑 노래들이 있을 거라고

아직도 그 노래들을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 『현대시학』2011년 6월호

* 송경동 : 1967년 전남 벌교 출생.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