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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올림>
합천 묘산면의 소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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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289호 1982.11.04 지정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835외 1필 | |
인목대비의 혼이 깃든 묘산면의 소나무
관광객으로 붐비는 경남 합천 해인사를 둘러보고 돌아 나오는 길, 조용한 곳이 아쉽다면 묘산면의 소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를 권한다. 88고속도로 해인사 IC입구를 지나쳐 거창 쪽으로 잠시 달려 ‘화양리 입구’란 간판을 보고 우회전한다. 나곡마을을 찾아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가파른 산길로 접어든다. 거의 산꼭대 기에 다다랐다고 느껴질 즈음 제법 널찍한 들판의 위쪽에 허름한 시골집 몇 채가 보인다. 마을 입구에 다소 곳이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와 마주할 수 있다. 일상을 털어 버리고 천천히 나무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는 한가한 곳이다. 멀리서 줌으로 당기듯이 감상해도 좋고, 한 바퀴를 돌면서 어느 방향에서 쳐다보아 도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미목(美木)이다.
이 나무는 연안 김씨가 이 마을에 살게 된 사연과 이야기가 얽혀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겨우 나라를 추 슬러 조금씩 안정이 되어 갈 즈음, 광해군 5년(1613) 비극적인 역모사건이 일어난다.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이 외손자인 영창대군을 임금 자리에 앉히려 했다는 무고사건이다.
결국 김제남은 그해 6월 초하루 사약을 받고 쉰한 살의 삶을 억울하게 마감한다. 이날 조선왕조실록에는 비극의 장면이 이렇게 실려 있다. 아내 노씨는 맨발로 대비전의 담장 밑으로 쫒아가 울부짖었다. 인목대비 의 어릴 때 이름을 부르며 ‘아무개야, 아무개야 어찌하여 너의 아비가 죽어 가는데 구해주지 않는단 말이 냐.’고 통곡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목대비가 할 수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3년 뒤에 김제남이 다시 부관참 시를 당하였어도 계축일기를 쓰게 하여 후세에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삼족을 멸하는 당시의 풍습대로 김제남의 일가가 풍비박산이 되자 가까운 친인척은 살아남을 궁리를 하여야 했다. |
김제남의 6촌 동생으로 알려진 사람은 이름도 숨긴 채 멀리 이곳으로 도망을 오게 된다. 먹고 살 수 있는 적당한 땅이 있고 아랫마을에서는 한참을 올라와야 하는 곳, 숨어 지내기에는 그만인 곳이다. 어떻게 이곳 을 찾아낼 수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는 우선 이 나무 밑에 초가를 짓고 살기 시작하였다 한다. 당시에도 제법 크게 자란 나무가 있었다고 보아 지금 나무의 나이는 5백년 정도로 짐작한다.
나무의 모양은 땅위를 조금 올라와서 3개의 큰 가지로 갈라지고 올라가면서 다시 작은 가지가 갈라져있 다. 얼핏 보면 반송과 비슷하게 생겼다. 나무높이는 18m, 둘레는 6m에 이르는 거목이다. 이 나무는 구룡목 (龜龍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껍질의 갈라짐이 다른 소나무보다 더 보기 좋게 규칙적으로 거북이의 등처럼 생겼고, 나뭇가지 뻗음은 승천하려는 용모양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옆에는 지름이 한 뼘도 넘는 또 다른 소나무 한 그루가 구룡목의 가지들과 뒤섞여 자라고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찾아낼 수 조차 없다. 자식이 다 자라 자신의 키를 넘나보도록 분가를 시키지 못하고 품 속에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 이 숙연해 보이기조차 한다. 가만히 눈을 감아보면 영창대군을 아끼는 인목대비의 혼이 이 소나무에 깃들 어 있는 것 같다.
마을에서 부르는 이 나무의 또 다른 이름은 ‘할매나무’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하여도 뒷산 중턱에는 더 크고 웅장한 ‘할배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송충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버티지 못하고 먼저 가버렸 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 할매나무에 제사를 올릴 때는 잊지 않고 할배나무의 옛터에 먼저 가서 혼백을 불 러온다고 한다. 마을에는 이상하게 할아버지가 거의 보이지 않고 온통 할머니들뿐이다. 할배나무가 죽어버 린 다음부터는 할아버지 들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일이 잦다고, 이야기를 풀어놓던 할머니는 쓸쓸 하게 웃는다. | | | |
첫댓글 마침, 궁중문학 계축일기를 대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 소나무를 보고 있습니다.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소나무입니다
오백년 세월을 타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것들을 나무는 기억하고 있을까.? 나무의 속 마음이, 생각이 궁금하다. 그냥 無心 ??
실제로 나무는 사물을 보는 눈은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당시의 인목대비의 모습을 위의 소나무는 알지못합니다. 허나, 생명을 유지하기위한 본능적인 감각은 있다고 하니 그걸 발판으로 당시의 시대와 교류를 해봤으면...하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그 해 몹시 가뭄이 들었다면 나이테는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나무를 또 하나의 역사책이라고 하게ㅆ지요
바쁘다는 핑계. 어느지역에 천연 기념기념물이 있는지 조차도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박사님 덕분에 아름다운 미목을 감상도 해보고 다음에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