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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휴일) 일기/사진 스크랩 스릴 넘치는 바윗길에서 즐기는 멋진 조망, 만덕산(‘15.9.1)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147 15.09.14 06:13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만덕산(萬德山, 763.3m)

 

산행일 : ‘15. 9. 1()

소재지 : 전북 완주군 상관면·소양면과 진안군 성수면의 경계

산행코스 : 원신촌마을미륵사입구만덕폭포미륵사2쉼터남봉(삼면봉)만덕산남봉관음봉5쉼터거리정수사(산행시간 : 3시간50)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만덕산 하면 사람들은 먼저 전남 강진에 있는 만덕산을 떠올린다. 특히 요즘에는 야당의 유력 정치인인 손학규씨가 칩거하고 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전북 완주에도 또 하나의 만덕산이 있다. 그것도 강진의 만덕산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은 산세(山勢)를 가졌다. 아니 높이만 놓고 볼 때에는 강진의 만덕산보다도 오히려 더 높다. 거기다 입소문을 덜 탄 덕분에 찾는 사람들도 드물다. 호젓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산이다. 원시림에 가까운 숲길과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암릉을 번갈아 걷는 즐거움에다 툭 터지는 조망(眺望)까지 보너스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원신촌마을(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익산-포항고속도로 소양 I.C에서 내려와 좌회전하여 26번 국도를 타고 화심(소양면)까지 온다. 이곳 화심교차로에서 ‘DSM화심온천연수원방향으로 빠져나와 삼화가든 앞에서 오른편 군도(郡道 : 곰티로)로 접어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원신촌마을에 이르게 된다.

 

 

 

원신천마을 앞에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 도로는 완주군(소양면)과 진안군(부귀면)을 잇는 26번 국도이지만 모래재를 넘나드는 새로운 국도가 뚫리면서 옛()도로로 남았다. 물론 비포장인 채로이다. 이 도로를 따를 경우 곰티재를 넘어 진안군 부귀면에 이르게 되는데, 호남정맥과 만나는 곰티재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하는 방법도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이때는 물론 차량을 이용해서 고갯마루까지 올라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8분쯤 지나면 벧엘국제신학원이 나온다. 그리고 이어서 동원기도원이다. 하지만 두 시설 모두 버려진 지 오래인 듯 인적을 찾아볼 수 없고, 특히 기도원은 완전히 폐허로 변해 있다.

 

 

비포장 신작로를 걷는 일은 낭만(浪漫)에 가깝다.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난 도로는 구불구불한 것이 여간 멋스런 게 아니다. 옛날 가마타고 넘어가던 추억의 고갯길 풍경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거기다 고개만 들면 익산-포항고속도로의 교각(橋脚)이 나타난다. 대칭을 이루며 길게 이어지는 다리가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며 한 폭의 잘 그린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도로를 걷는데 길가에 서있는 이정표 하나가 눈에 띈다. ‘송광사까지의 거리를 표시하고 있는데 아름다운 순례길이라는 반듯한 이름표까지 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잠시 후에 들르게 될 미륵사는 천년고찰이라는 역사 외에도 원불교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상종사가 이곳에서 수행했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요즘도 원불교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전라북도에서 아름다운 순례길이라는 둘레길을 만들면서 이곳까지 연장하지 않았나 싶다. 참고로 '아름다운 순례길'이란 종교 간의 대화와 소통을 주제로 만든 총 길이가 240Km나 되는 순례길, 즉 전라북도 판 둘레길이다. 쉽게 말해 천주교, 개신교, 유교, 불교, 원불교, 민족종교 등 다양한 종교들이 어느 하나의 종교로서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와 문화가 더불어서 새로운 정신으로 나아가자는 모토(motto)인 것이다. 참 순례길 이야기가 나왔으니 짚고 가야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이곳 만덕산에는 소태산 대종사가 수시로 머물며 선()에 들었다는 원불교의 만덕산성지가 있다는 얘기이다. 그가 만덕암에 머물며 제자들을 모아 원불교 창립의 주요 인재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후 원불교 최초의 하선(夏禪)’동선(冬禪)’이 여기서 진행됐다. 이런 연유로 원불교에서는 대종사가 12명의 제자와 1개월 동안 최초의 선()을 했다는 의미로 여기를 성지로 정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남짓 지나면 길이 둘로 나뉜다. 곧장 도로를 따를 경우 곰티재로 이어지고, 미륵사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 포장길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입구에 천년고찰 진묵성지 만덕산 미륵사라고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5분쯤 올라가면 오솔길 하나가 왼편으로 열린다. 만덕산의 명소(名所) 중 하나라는 만덕폭포(萬德瀑布)를 만나려면 왼편 오솔길로 들어서야 한다. 곧장 포장길을 따르면 폭포를 거치지 않고 미륵사에 이르게 되니 만일 폭포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계속해서 포장길을 따라도 될 것이다. 들머리에 위험성 때문에 암벽 및 빙벽 등반을 금한다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솔길로 들어선다. 수풀사이로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도록 난 등산로를 따라가면 돌밭길이 시작된다. 한마디로 거친 산길이다. 너덜로 이루어진 울퉁불퉁한 바닥은 걷기조차 힘들게 만들고, 거기다 웃자란 잡초와 잡목(雜木)들에 포위된 산길은 길손의 발걸음을 자꾸만 붙잡는다.

 

 

만덕폭포로 올라가는 이 계곡은 이끼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막상 대하고보니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계곡에 물이 흐르지 않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끼라는 게 원래 습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식물인데 계곡이 말랐으니 이끼 또한 왕성하지 못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거친 계곡길을 15분쯤 올라가면 드디어 만덕폭포가 길손을 맞는다. 높이가 50m도 더될 것 같은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폭포이다. 그러나 오늘은 폭포가 아니라 그냥 수직(垂直)의 바위벼랑일 따름이다. 물이 떨어지지 않는 민낯으로 길손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폭포 옆에 아까 입구에서 보았던 경고판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이 폭포는 얼음으로 뒤덮인다고 한다. 빙폭(氷瀑)이 되는 셈이다. 때문에 이 지역 젊은 산악인들로부터 빙벽타기 훈련장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 빙벽(氷壁)을 타다가 떨어져 목숨을 잃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한 발짝 내딛기도 힘든 너덜길을 겨우겨우 오르다보면 산길이 둘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만덕폭포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만덕산 정상으로 가려면 계속해서 너덜겅을 따라 위로 올라야한다. 그러나 우린 오른편 바위벼랑의 허리를 뚫으며 난 길을 따른다. 진묵(震默)대사 일옥(一玉: 15621633)이 주석했었다는 천년고찰 미륵사(彌勒寺)에 들러보기 위해서이다. 물론 미륵사를 둘러보고 난 뒤에는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계단을 오르면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웅크리고 있는 미륵사(彌勒寺)이다. 미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백제 위덕왕 때(재위: 554598) 지명법사(知命法師)가 자신의 수도처로 삼으려고 세운 암자(庵子)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절의 중창비(重創碑)나 문헌(文獻)이 없어서 미륵사가 창건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법당 안에 봉안된 신중탱화에서 미륵사 이전의 옛 사찰의 이름을 찾을 수는 있다. 광서 18년 임진(1892)년에 조성된 이 탱화에는 만덕산 금강암(金剛庵) 봉안(奉安)’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 사찰의 이름이 옛날에는 금강암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다만 누가 언제 무슨 이유로 사찰의 이름을 바꾸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인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산신각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빼먹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인법당 뒤편 바위벼랑 위에 위치한 돌탑이다. 모전석탑(模塼石塔)의 형식을 보이고 있는 높이 2m의 이 돌탑은 자연암석 위에 탑신과 옥개를 2층으로 조성하고 상층부는 자연석으로 보주를 삼았다. 진묵대사가 탑을 조성할 때 동자에게 도술을 써서 탑에 쓸 돌을 날라 오도록 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탑이다.

 

 

 

절에 들면 약수(藥水)를 찾는 버릇이 있다. 대부분의 절들이 명당에 자리 잡고 있는 탓에 절에서 나는 물들 또한 뛰어난 맛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샘이 보이지 않아 낭패다. 별수 없이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요사(寮舍)에 들어가 물 한 바가지를 떠다주신다. 거기다 물통에까지 물을 채워 주시겠단다. 번거롭게 해드리는 것 같아 사양했지만 그 자비로운 마음이 더해진 물맛이 어찌 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걸 일러 감로수(甘露水)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영향일까? 미륵사에서 바라보는 조망(眺望)은 물맛만큼이나 뛰어나다. 발아래에는 익산-포항고속도로가 만들어내는 곡선이 한없이 부드럽고, 그 뒤에 있는 운장산과 원등산, 구봉산 등 전라북도 내륙의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이 줄줄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미륵사에서 되돌아 나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너덜의 경사(傾斜)는 아까보다 더 가팔라진다. 그리고 너덜의 돌들도 아까보다 훨씬 더 잘아졌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이유이다. 거기다 가끔은 발길에 걸린 돌이 아래로 구르기도 해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다. 너덜구간이 길다보니 시야(視野)가 트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까 미륵사에서 보았던 풍경이 다시 한 번 펼쳐지는데, 양 옆의 산자락 안에 갇힌 풍경이 마치 액자 속의 산수화를 연상시키고 있다.

 

 

 

가파른 너덜길과의 사투는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나면 드디어 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지도(地圖)에는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2쉼터를 만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벤치 등의 시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주변에 앉아 쉴만한 반반한 바위가 몇 개 보이는 것이 아마 이곳을 일러 쉼터라고 했나 보다. 능선에 일단 올라섰다면 이제부터는 호남정맥(湖南正脈)을 따르게 된다. 진안군 부귀면과 완주군 소양면의 경계에 있는 주화산(565m)에서 시작하여 광양의 백운산까지 이어지는 총길이 398.7의 산줄기가 바로 호남정맥이다. 이곳에서 주화산으로 연결되는 왼편 능선 상에 곰티재가 있다.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당시 전주성을 공략하기 위하여 침입해온 왜군(倭軍)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니 만덕산 산행을 곰티재에서 출발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으니 말이다.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오른편 능선을 탄다. 잠시 후 멋진 바위지대에 올라서게 된다.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트이는 멋진 전망대이다.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가장 조망(眺望)이 뛰어난 곳이 아닐까 싶다. 만덕산의 정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 펼쳐지니 구태여 서두르지 말고 조망을 즐겨보라는 얘기이다.

 

 

우선 맞은편에는 가야할 만덕산 정상이 보인다. 오른편 사면(斜面)이 서슬 시퍼런 절벽으로 이루어졌다. 그 오른편에는 산행을 시작했던 신촌리와 미륵사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고개라도 들라치면 수많은 알짜배기 산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운장산과 구봉산, 복두봉은 물론이고 진안의 덕태산과 선각산 등등 나타나는 봉우리들마다 내로라하는 명산들이다.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잠시 더 걸으면 이정표(정수사2.5Km/ 헬기장, 미륵사)해발 745m'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남봉(삼거리봉)에 올라선다. 안부삼거리(2쉼터 추정)로부터 10분 정도의 거리이다. 통신시설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이 봉우리는 호남정맥상에 위치한 덕에 만덕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흔히들 정상으로 혼동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만덕산 정상은 이곳이 아니다. 만덕산 정상은 호남정맥길에서 북쪽으로 살짝 비켜나 있다. 북쪽으로 200m쯤 더 나아가야 만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이곳 남봉(삼거리봉)은 삼면봉(三面峰)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 완주군 상관면과 소양면 그리고 진안군 성수면 등 세 개의 면(三面)이 만나는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삼면봉에서 다시 한 번 멋진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아까 전망바위에서 보았던 풍경과 거의 같지만 주변의 나무들로 인해 아랫도리가 약간 잘려나가는 게 흠()이라면 흠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점을 찾는다면 이번에는 만덕산이 아까와는 반대편 사면(斜面)을 보여주고, 그 왼편으로 전주시가지가 넓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삼면봉에서 아래로 살짝 내려섰다가 작은 오르내림을 두어 번 하고 나면 드디어 만덕산 정상이다. 3~4평 넓이의 정상에는 삼각점 외에도 스테인리스 재질의 정상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막대 끝에 매달린 쇠판이 엉성하지만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정상판 아래에는 엉성하게 쌓아올린 돌탑도 보인다. 안전산행을 바라는 마음들을 보는 것 같아 친근하게 느껴진다. 참고로 만덕산은 한자로 일만 만()’큰 덕()’을 써서, ‘만 명(萬人)’에게 덕을 베푸는 산이란 뜻이다. 지역주민들에 의하면 임진왜란과 6.25를 비롯한 수많은 전란(戰亂)을 겪으면서도 지역주민들이 전화(戰禍)를 입지 않았던 이유란다. 만덕산이 덕을 베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인근 주민들은 만덕산을 일러 부처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만 가지에 달하는 덕을 가진 이는 부처뿐이라면서 말이다.

 

 

 

정상에서 북쪽의 은내봉(452m) 방향으로 50m쯤 더 나아가면 또 다른 전망대가 나온다고 하지만 들러보는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아까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과 거의 같을 것 같아서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조망(眺望) 정도야 이곳 정상에서도 즐길 수 있다고 생각되어서이다. 북동쪽으로 원등산 너머로 연석산과 운장산이 바라다 보인다. 발아래로는 거대한 분지(盆地)를 이룬 신촌리 들판지대가, 그리고 남동쪽으로는 덕유산과 백운봉 등이 시야(視野)에 들어온다.

 

 

삼면봉(남봉)으로 되돌아와 서릉을 타고 하산을 시작한다. 산길은 맞은편 산봉우리를 왼편으로 우회(迂廻)하여 아래로 향한다. 봉우리 위로 올라가는 길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굵은 나무로 막아 놓았다.

 

 

무턱대고 앞선 이들을 따라내려 가다 문득 그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반대편 바윗길을 다시 치고 오른다. 선답자의 글에서 저 봉우리를 실제 정상이라고 적어 놓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되돌아 올라가는 바윗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위험스럽기는 했지만 못 오를 정도는 아니다. 어렵게 오른 정상은 그저 전주 방향으로 시야(視野)가 열릴 따름이다. 이곳이 정상이라는 그 어떤 표시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다만 왜 그들이 이곳을 실제 정상이라고 표현했는지에 공감은 간다. 지나온 봉우리들이나 가야할 능선이 지금 서있는 곳보다 낮게 보였기 때문이다.

 

 

 

관음봉을 바라보면서 위태로운 바윗길을 다시 내려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발 725m지점에서 정수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이정표 : 정상 0.2Km/ 정수사 2.3Km)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해발 699m지점에서 또 다른 정수사 갈림길(이정표 : 정상 0.4Km/ 정수사 2.3Km/ 상관)을 만난다. 이정표에 적힌 거리 표시로 보아 지자체에서는 만덕산의 정상을 삼면봉(삼거리봉 또는 남봉)으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관음봉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본 풍경, 조금 전에 만덕산 최고봉으로 알고 올랐던 봉우리이다.

 

 

관음봉으로 가는 길은 오른편이 수십 길의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서슬 시퍼런 바윗길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윗길의 넓이가 의외로 넓기 때문에 일부러 벼랑 쪽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상 그렇게 높은 벼랑 위를 걷고 있다는 것조차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벼랑은 관음봉에 가까워질수록 높아지다가 끝내는 천길 단애(斷崖)로 변해버린다. 벼랑 위를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슬아슬하게 보일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가슴 졸임은 바라보는 사람들만의 몫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실제 걷는 사람들은 벼랑 위를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일부러 절벽 끝으로 나아가지만 않는 다면 말이다.

 

 

쇠줄에 의지해서 마지막 구간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관음봉 정상이다. 정상에 오르면 다시 한 번 시야(視野)가 툭 트인다. ‘만덕산 제일의 전망대라는 사람들의 칭찬에 고개가 끄떡여지는 순간이다. 남서쪽 아래로 정수사 골짜기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고 경각산과 고덕산이 멀리 모악산과 함께 하늘금을 이룬다. 그 왼편도 역시 산들 천지이다. 오봉산과 순창 쪽 산들인 회문산, 백련산 등이 아닐까 싶다. 북동쪽에 있는 진안의 고산준령들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다. 덕태산과 선각산도 저 속에 있을 게 틀림없다.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도 역시 바윗길이다. 그것도 경사까지 가파르기 때문에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바위 면이 접지력(接地力)이 좋은 덕분에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관음봉을 내려서고 나면 길은 고와진다. 보드랍기 짝이 없는 황톳길에다 경사까지 거의 없는 길이 계속된다. 한껏 여유를 부려도 좋을 구간이라는 얘기이다.

 

 

저절로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보면 10분 후 의자 몇 개가 놓인 작은 쉼터(이정표 : 정수사 2.1Km, 상과면, 죽림온천)에 올라선다. ‘5쉼터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625m봉이다. 이곳에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쉼터를 지나서도 산길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경사가 심해진 것이 달라졌을 따름이다. 그렇게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사거리(이정표 : 정수사2.0Km/ 상관면/ 성수면/ 정상1Km)에 이른다. 정수사로 내려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계속해서 능선을 탈 경우 상관면으로 내려가게 되니 참조할 일이다.

 

 

능선삼거리에서 정수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은 얼마나 가파른지 거의 벼랑 수준이다. 산길은 그 가파름을 배겨내지 못하고 왔다갔다 갈지()자를 그리며 아래로 향한다. 그래도 그 가파름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23분 정도 걸리는 이 길을 내려선 집사람이 정형외과를 찾아야 할 정도가 되어버린 것을 보면 말이다. 하긴 이사를 하느라 2개월 이상을 체육관에 못나갔으니 기초 체력이 떨어질 만도 할 것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욕설이 튀어나올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끝을 맺는다. 그리고 곧이어 기도터에 이른다.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진 기도터에는 여러 개의 제단(祭壇)이 만들어져 있다. 제단의 숫자가 많다는 것은 기도를 드리려는 사람들의 숫자 또한 많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는 이 바위가 그만큼 영험하다는 증거일 것이고 말이다.

 

 

기도터를 지나면 길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감나무를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지역이 감으로 유명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감이라고 하면 이곳보다는 근처에 있는 동상면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동상면의 감은 씨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감나무의 품종(品種)에 관계없이 이 지역에만 오면 씨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씨 없는 이곳의 감나무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심을 경우 다시 씨가 생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전에 전주에 출장 왔다가 이곳에 근무하는 관료들로부터 들은 얘기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감나무밭 속에서 갈림길(이정표 : 정수사1.3Km/ 정상1.2Km/ 정상(마지리)2.0Km)을 만난다. 오른편은 아까 관음봉으로 내려오는 길에 만났던 첫 번째 갈림길에서 곧장 내려오는 길인 모양이다. 삼거리에 만덕산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볼 일이다. 오늘 산행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것이다.

 

 

삼거리부터는 임도(林道)를 따른다. 잠시 후 개울을 건넌다. 물기가 보이지 않는 개울이다. 만덕폭포도 물기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의 가뭄이 제법 심했던가 보다. 널따란 임도를 따라 얼마간 더 내려오면 왼편에 만덕암이 보인다. 절간이라기보다는 일반 여염집에 가까운 외형인지라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길의 오른편에는 움막도 보인다. 주변에 염소들이 노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염소 사육시설이 아닐까 싶다. 이어서 희천 김씨문중 제실(祭室)을 지나면 정수사는 금방이다.

 

 

산행날머리는 정수사 앞 주차장

삼거리를 출발한지 17분쯤 지나면 만복산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천년고찰 정수사(淨水寺)에 이르게 되면서 사실상의 산행이 종료된다(이정표 : 정상 2.5Km). 오늘 산행은 총 4시간1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3시간50분이 걸린 셈이다. 정수사(淨水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신라 진성여왕 2(899)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799(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따르면 처음에는 중암(中庵)이라고 했다가 후일 주변 산수가 청정하고 해서 정수사(淨水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법등이 이어졌다고 하나 문헌상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조선시대에 들어 1581(선조 14)에 진묵대사(震?大師)가 중건하였다. 중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절이 모두 불에 타버렸는데 이후의 구체적인 중건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1652(효종 3)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 보물 제1853)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걸로 보아 난을 거친 후 어느 때인가 다시 중건하여 법등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근대에 들어 1923년 초운선사가 요사 2동을 지어 새롭게 법등을 이었고, 여러 번의 불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건물로는 법당인 극락전과 지장전, 삼성각과 요사(寮舍)인 관음전, 그리고 범종각과 또 다른 요사채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위에서 말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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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9.14 16:08

    첫댓글 잘 봤습니다.
    이쁜
    뒤태를 많이 찍으셨네요.

    ㅎ ㅎ

  • 작성자 15.09.14 18:29

    뒷태 전문이라 그런가 봅니다. ㅎㅎ

  • 15.09.14 19:32

    ㅎㅎㅎ 뒤태?, 뒷태? ~~~~ 처음엔 무슨말인지 몰랐더래요. 이제야~~~~ㅎㅎㅎ
    가을하늘님 산행일기는 어쩌면 그렇게 생생한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나요? 정말 고맙습니다.

  • 작성자 15.09.15 09:57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15.09.15 13:49

    우리 사진도 있네요. 뒷태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제5쉼터에 앉아있는 제 앞태도 보이고 ㅎㅎㅎ...
    감사합니다!

  • 작성자 15.09.15 20:43

    그 귀한 앞태를 찍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담에는 더 좋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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