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담은 연못이 있는‘운림산방(雲林山房)’ : 전라남도 기념물 제51호
진도에서 가장 높은 첨철산(해발 485 m)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피어 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는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화가 허유(許維:1807∼1892)가 만년에 기거하던 화실의 당호을 말합니다. 1982년 손자 허건이 복원하였고, 1992년과 1993년에 각각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름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가을 하늘은 파랗고, 입구에서 부터 커다란 낙랑장송이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왜 이곳에서 대대손손 예술가들이 탄생했는지 말해주는 듯 하였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탁 트인 잔디밭이 저의 마음도 푸르게 하네요. 현진이는 날이 더워서인지 약수터에 가서 두 번이나 물을 벌컥벌컥 마셔대내요. 강민이는 잠에 빠져서 버스안에 누워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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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림산방 매표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현진 & Wife
전시관 안에는 허씨 집안 3대의 복제된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기념관에도 복제화·수석·단지·그릇 등 허련의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허련의 3남 미산 허형과 손자 남농 허건이 남종화의 대를 이은 곳이고, 한집안 사람인 의재 허백련이 이곳에서 그림을 익혀 한국 남종화의 성지로 불린다고 합니다. 입구에 있는 연못은 연꽃 잎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어, 몇 년 전 전도연과 배용준이 출연한 ‘스캔들’을 촬영한 곳이라고 하네요. 연못속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들이 시끄럽게 헤엄치고, 그 주변에 아이들이며 어른들이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구석에서는 단체로 여행을 오신 노인분들이 강강술래를 하면서 더운 날씨에 온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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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림산방에 있는 연못의 전경. 영화 ‘스캔들’ 이 촬영된 곳이라고 합니다.
운림산방을 출발해 구불구불한 아리랑 고개를 어렵게 넘어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마치 구름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회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오고 진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는 뿌듯함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구비구비 힘들게 올라가는 아리랑재는 삼별초(三別抄) 에게 왕으로 추대되었던 승화후 온(承化侯 溫)이 원(元)나라 장수 홍다구(洪茶丘)에게 살해되어 묻혀있는 곳이라고 하네요. 지금도 이곳에서는 왕무덤재라고도 부르는데 산마루를 넘으려면 길옆 돌무지에 돌을 던지고 명복을 빌어야 액운을 없앨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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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림산방 입구에 장엄하게 서 있는 소나무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 이룬 슬픈 ‘뽕 할머니 전설’
고개를 넘어 얼마를 가자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바다가 열리는 곳이 나왔습니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이 세계적인 축제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인 '피에르 랑디' 씨가 진도 여행 중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바닷길 현장을 목격하고 귀국 후 "나는 한국의 진도에서 모세의 기적을 보았다" 라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하고, 이를 일본의 NHK 에서 방영하여 더욱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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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바닷가에 서 있는 뽕 할머니 전설동상
뽕 할머니의 전설은 조선시대 마을 뒷산에 호랑이가 자주 마을로 내려와 피해를 주자 마을 주민들은 의논 끝에 마을을 떠나 인근섬인 모도로 달아났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할머니를 잊었다고 합니다. 이에 할머니는 매일 섬으로 떠난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용왕님께 빌어 바다가 갈라지길 빌었다고 합니다. 마을로 내려온 호랑이가 할머니를 헤치려 하자 마을 청년들이 돌아오려고 하였으나 할머니께서 말리시면서 기도를 올렸더니 신비하게도 바다가 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할머니의 마음을 기리고자 매년 음력 3월에 뽕 할머니의 제사와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재를 드린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 영등축제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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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바닷가를 기념으로 현진 & Wife
삼별초 배중손 장군의 한이 서린 ‘남도석성(南桃石城)’ : 사적 제127호
배중손(裵仲孫) 장군이 진도에 와서 용장산성에서 패하고 마지막 까지 몽골에 항쟁할 때 근거지로 삼았던 성이며 최후를 맞이한 성입니다. 용장산성에서 패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져 임금을 모시고 서쪽으로 가던 배중손의 군사들은 추격해 온 몽고군과 일대 접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퇴해 남도석성으로 왔습니다. 이때 임금 승화후와 아들 왕환(王桓)은 몽고군에게 생포됐는데, 목숨만 구해줄 것을 애걸복걸했으나 몽고군은 들은 척도 않고 칼을 빼어 무참히 참살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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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별초의 배중손 장군이 최후까지 항전을 벌였던 남도석성
한편 김통정이 거느린 군사들도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퇴각하였고, 그 뒤를 따르던 부녀자들과 시종들은 도망칠 기력을 잃은데다 살아 남아 오랑캐에게 짓밟힐 바엔 죽음을 택하자며 우향천 깊은 수렁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으니 그곳이 오늘날 '여기급창(女妓及唱)'이라고 불리는 곳이고, 지금도 비 오는 밤만 되면 원한 서린 울음소리가 듣는 이의 애간장을 아리게 한다고 합니다. 문화유산 해설사의 말씀으로는 성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 수군진영의 진지로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특히 남도석성은 동쪽에 있는 금갑보(金甲堡)와 더불어 오른쪽으로 가는 바닷길의 요지이며, 동시에 남해안에서 서해안으로 올라오는 목줄기에 해당되는 요새지 라고 하네요. 특히 바다쪽에서 보면 지형적으로 성의 위치가 전혀 보이지 않아 복숭아 씨를 연상케 한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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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석성 內 상가집에서 음료수를 얻고 즐거워하는 가족
석성을 따라 잠시 걷다 보니 사람이 한 두 명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았고, 바로 민가와 붙어 있어서 성인지 담인지 조차도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집안에 매어져 있는 흰색의 진돗개가 성벽을 위태롭게 걸어가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몽고군이 겹겹이 포위를 하고 상처조차도 간신히 동여맨 배중손 장군은 칼날의 이빨이 모두 빠질 때 까지 항전을 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했을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습니다. 몸에 소름이 돋고 눈에 핏발서린 모습이 떠올라 얼른 고개를 저으며 버스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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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석성 성곽을 걸어가는 현진 & Wife. 성곽과 민가의 담이 공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새벽부터 집에서 나와 정신없이 지나간 토요일이 모두 지나가고 있는 시간입니다. 이제 가을 하늘을 뜨겁게 비추던 태양도 석양의 그림자를 내리면서 지고 있었습니다. 농담으로 들었던 진도에 사는 개는 모두 진돗개라는 것이 사실이라고 합니다. 진도에서는 진돗개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서 종이 다른 개는 기를 수 없다고 하네요. 일전에 TV CF에서 진돗개가 700리를 달려서 주인을 다시 찾아온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하며, 그 개가 살았던 마을은 그 사건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큰 공원을 조성해 주었다고 합니다. 예전 그 개는 지금 죽었고, 무덤도 그 공원 안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지고 황홀함을 주는 세방낙조의 장엄함을 직접 보기 위해서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