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玄哲:1891년-1965년) 부산출생. 소설가 현진건의 당숙으로써 1904년인 14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수학 중 아버지가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귀국 후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도쿄 세이소쿠 영어학교와 메이지대학 법과에소 수학하던중 신극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연극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1913년부터 1917년까지 분게이쿄카이 출신인 사무라 호게쓰가 창단한 게이쥬츠자(1913년-1919년) 와 부속학교(1915년-1919년)에서 연극을 공부하였다. 그는 일제치하에 있던 조선에 연극을 구현할뜻을 품고 1917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어우양위첸(중국어 간체자: 欧阳予倩, 정체자: 歐陽予倩, 병음: Ōuyáng Yǔqiàn, 1889년 5월 12일 ~ 1962년 9월 21일)
연극학교를 잠시 운영한 뒤 1919년에 귀국 다방면에서 예술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현철선생은 1919년 귀국하여 1920년 구자옥과 함께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야학으로 3개월 주 3회씩 강습하는 '연예강습소' 개설했다. 그리고 1922년 7월 김영환(피아노), 김동한(러시아 무용)등과 '예술학원'을 설립하였으나 무용과 음악의 학생들이 급격히 많아지게 됨에따라 김동환,김영환과 현철은 결별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현철선생은 재정난으로 문을 닫게 된다. 1924년의 영화감독 이구영과 함께 '조선배우학교'의 설립을 통해 연극,영화 인재들을 길러내고자 했다. 그러나 1925년 단성사와 영화<숙영난자전> 제작을 앞두고 배분문제로 인해 중단되도 이로인해 이구영감독과 결별을 하게 되었다. 1926년 제1회 졸업공연 <인생은 초토>를 연습 도중 연습량이 미흡한것을 지적하고공연을 올리는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자 이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해서 학교가 폐교가 되었다. 그 후에도 1928년 예술문화협회 산하 배우양상소로 설립, 1929년 경성예술학원 야학부, 그리고 해방 후인 1946년-1947 조선배우학교등을 설립, 운영하였다.
조선배우학교(1924년-1926년)-배출한 연기자로는 중퇴한 복혜숙(卜惠淑)·양백명(梁白明) 외에 정화영(鄭華永)·이금룡(李錦龍)·김규환(金奎煥)·이응호(李應浩: 王平)·방평산(方平山)·이한용(李漢鎔)·김점석(金點石)·정감룡(鄭甘龍)·손기찬(孫基燦), 김아부, 박제행(朴齊行), 서월영(徐月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