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기 전에 공원을 한바퀴 둘러보았는데 어제 떠들썩 하던 야시장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공원은 조그마하지만 공원의 나무와 건물 바다 등이 어우러져서 지금까지 본 공원중에 가장 인상적인 공원이다.
잔지바르 스톤타운...이곳이 잔지바르 섬의 중심가인 셈이다.
포로다니 공원쪽에서 본 올드 포트 성문
해변...벌써 사람들이 나와 있다.
어린이 놀이터
공원 안에 있는 우리나라의 정자 같은 곳
공원주변의 건물...교회
지도에서는 미징가니 도뢀고 되어 있다....어제 우리가 걸어온 길...옛 건물들도 보인다.
적은 공원이지만 꽃이 아름답다.
러브하와이와 어우러진 노란 꽃
이름이 궁금한 노란 꽃이 아름다운 나무
봉황목도...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이 대부분 레스토랑과 숙소들이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아래 글도 꼭 읽어보시길...
잔지바르 섬은 은구자 섬(Unguja Island)으로 불리우던 섬으로 넓이는 2,461㎢. 서울특별시 면적(605.25 ㎢)의 약 4배 크기로 인
구는 약 80만 명 수준(2015년 기준)이라고 한다.잔지바르(Zanzibar)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잔지(Zanzi:흑인)와 바르(Bar:사주
해안)의 복합어로 '검은 해안'을 의미하는데 이 이름이 붙여진 것은 계절풍을 따라 교역을 하러 온 페르시아 상인들에 의해서라
고 한다. 그들은 다우라 불리는 범선을 타고 12월쯤 잔지바르로 왔다가 6월쯤 역풍을 이용해 돌아가곤 했다. 이 섬에 처음 도착
한 그들은 백옥같이 하얀 백사장에 흑인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잔지바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섬에는 2만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페르시아인과 인도인 그리고 아랍인들이 노예무역과 향료무역을 하는데 이곳이
적합한 교역지로 선정되면서 아랍인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6세기 초 포르투갈의 해양 전성기에 포르투갈이 동아프리카 해안을 장악하면서 이곳도 점령하여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으나 포르투갈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1698년 오만은 이곳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았다고 한다.
이곳이 오만제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부터 동아프리카에서 생포한 흑인들과 이 섬에서 생산되는 정향(丁香)이라는 향료를 유럽
의 상인들에게 팔아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에 오만제국에 왕위계승문제로 내분이 일어나자 잔지바르는 오만제국으로부터 1861년 독립을 하게 되었
는데, 그러나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면서 무역의 중계지로의 중요성이 약해지고 곧바로 독일과 영국이 잔지바르가 지배하던 동
아프리카의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1890년 잔지바르도 탕가니카에 복속시켜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버렸고 노예무역도 금지시켜
버렸다.
1961년 탕가니카가 영국으로 독립을 하면서 1963년 잔지바르도 독립을 하면서 술탄국을 부활시켰으나 1964년 1월에 공산주의
자들의 혁명에 의해서 정부가 전복되고 양쪽의 대통령이 합의하여 탕가니카와 통합을 하게 되었다.
이 섬에 있는 스톤타운이나 궁전들의 유적지들은 대부분 오만제국 때 만들어진 유적이라고 한다.
이 섬의 역사는 아프리카 동해안의 역사보다 더 복잡한데 그만큼 지리적 여건이나 이곳에서 생산되는 정향 등이 아랍인들이나
유럽인들이 탐을 낼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일찍이 페르시아인들과 인도인들이 아랍인들이 들어와서 터를 잡았으나 아랍인들이 장악을 하면서 이슬람 국가를 세웠
기 때문에 오만이 지배했던 곳의 사람들 대부분은 이슬람 교인들이며 이곳 사람들의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다르에스살람이나 이곳에는 이슬람 사원들이 많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 독일과 영국이 지배를 받으면서 기독교도 전파가 되어 성당이나 교회도 눈에 보이고 인도인들이 믿고 있는 힌두
교 사원도 이곳에 있다고 하니 여러 종교들이 혼재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참고로 아프리카는 기독교보다 이슬람교가 더 큰 세력을 떨치는 곳인데 아프리카에 이슬람이 전해지게 된 배경은 두 개의 경로
이다.
660년에 아라비아에서 출발된 이슬람은 이집트를 건너 그 당 세기인 7세기부터 아프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
의 지중해 해안을 따라 빠르게 전파되어 711년에는 서쪽 끝 모로코까지 퍼져 갔고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스페인 땅으로 전해지
게 되어서 북아프리카는 이슬람교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편 사하라 남쪽의 이슬람은 주로 아랍 상인들에 의해 동부 아프리
카 해안을 따라 세력을 넓혀 갔고, 서쪽에서는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는 베르베르족이나 투아레그족들에 의해 이슬람이 소개되
었다고 한다. 동부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소말리아, 우간다, 모잠비크, 그리고 서부 아프리카의 가나, 감비아, 말리, 가봉, 카메룬,
세네갈,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의 나라에 이슬람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이슬람은 대부분 수니파이며 아프
리카의 이슬람은 토착종교와 전통을 잘 결합하여 다른 지역과는 다른 이슬람 문화가 발전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선교사들이 이런 곳에 전도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도 전도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
데 개인적으로는 아프리카나 중동 같은 이슬람이 뿌리를 내린 곳이나 이슬람이 국교인 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다.무슬림(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개종을 하게 되면 그들의 교리는 사형을 하도록 되어 있고 개종을 시킨 사람들도 사
형을 하도록 되어 있다.
중동에서 선교하다가 발각이 되면 선교사는 사형을 시키게 되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추방을 하고 개종을 한 사
람은 사형을 시켜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선교사들이나 선교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서 일부는 참수를 당하고 결국
국가에서 몸값을 물어주고 풀려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무슬림을 기독교로 개종을 시키는 것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게 하는 것이니 사실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그러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곳이라고 하더라도 이슬람을 기독교로 개종을 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들이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되면 그들의 생활이 윤택해 지는가?
아니면 이슬람보다는 기독교가 더 확실하게 천국에 보내주게 되는가?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선교사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들의 열정은 높이 사지만 맹목적인 신앙의 자세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위험한 곳에 선교활동을 보내지 않는다.
첫댓글 감사 즐거운하루
잔지바르는
스파이스 투어 따로 있을 정도로 스파이스 주산지란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떤 향을 지녔는지 모릅니다.
뿅망치님 덕분에
스파이스나무 처음 보았어요.
여행기.
신기하게 읽었습니다.
향신료가 호기심이갑니다.
고산지대에서 나는 향신료가
지금저희들이 흔히쓰는
향신료가많군요.종류가 틀릴까요?
후추.히비스커스.
어머.두자매분.건강해보이시고.너무좋을거같습니다.
글.사진.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