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생활할 때부터 오래 친목을 다져 오며 여행도 많이 함께 했던 일곱 부부가 오랜만에 다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행선지는 ‘꽃보다 누나’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발칸 반도의 나라들로 정했다. 사실 봄이나 가을이 여행하기는 좋지만, 아직 현직에 있는 이들이 시간을 낼 수 있는 여름 방학 기간, 2015년 7월 29일부터 8월 5일까지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둘러 보기로 했다.
29일 이스탄불에서 환승하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에 도착,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1차 대전의 시발점이 된 사라예보 사건이 벌어진 라틴 다리가 있는 곳, 그리고 1973년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박미라, 정현숙, 이에리사 선수로 구성된 우리 여자 탁구 선수단이 세계대회 단체전 우승의 신화를 이루어낸 곳이다.
사라예보 사건은 1914년 6.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와 부인 조피가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으로 '젊은 보스니아'라는 민족주의 조직에 속한 18세 청년 가브릴로 프란치프에게 암살된 사건이다. 그는 보스니아가 제국으로부터 독립해 세르비아와 합칠 것을 원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남슬라브 운동이라 한다. 세르비아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남슬라브 운동을 부추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오스트리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세르비아와 전쟁할 것을 결심하고 동맹국인 독일에게 협조를 구한다.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프랑스의 지원을 요청하게 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게 된다.
여기서 승리한 세르비아 왕국은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당시 보스니아에는 주로 무슬림인 보스니아인(44%), 정교회인 세르비아인(31%), 천주교인 크로아티아인(17%) 등이 살고 있었다. 민족 간, 종교 간 반목이 있기도 했으나, 유고 연방 시절 티토는 이들을 잘 융화시켰다. 그러나 티토 사후 보스니아가 독립을 요구하자 세르비아인들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중심으로 유고 연방의 지원 아래 보스니아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렇듯 발칸 반도는 인종, 종교,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수많은 전쟁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어 오랫동안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려 왔다.
이어서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을 간직한 모스타르 다리를 찾아 간다. 불과 26 년 전인 1992년 4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유고 전쟁 중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일어난 국제적 무력 충돌을 말한다. 10 내지 11만 명이 사망하고 220여 만 명이 난민이 되었으며, 참혹한 전투와 무차별적 도시 폭격, 인종 청소, 집단 강간과 대학살 등 2차 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때 무슬림인 보스니아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했다.
모스타르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으로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네레트바강 연안에 있다. 1993년 보스니아 내전 중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헝가리 잠수부들이 건져내고 터키의 건축가들이 2004년 재건하여,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의미있는 다리이다.
길은 보스니아의 국경을 넘어 크로아티아로 이어진다. 29일 오후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달마티아 남부의 역사적 항구 도시 두브로부닉에 도착한다. 보스니아의 네움이 바다에 접함으로써 이곳은 크로아티아 본토와는 단절되어 있는데, 여행자들은 간단한 여권 검사를 거쳐 오갈 수 있다. 우리는 구시가에서 가장 가까운 힐튼 임페리얼 호텔에서 2박을 하며 수시로 구시가와 성곽 투어도 하고, 스르지산의 전망대를 오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성곽을 한 바퀴 천천히 돌면 대략 2시간이 걸린다. 버나드 쇼는 이곳을 보지 않고는 천국을 논하지 말라고 했었다. 붉은 지붕의 구시가와 아드리아해와 하늘의 푸르름이 어우러져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화가 된다. 유람선을 타고 바다 위에서 도시를 구경하는 것도 좋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오랜 우정을 나눈 친숙한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니 웃음과 이야기꽃이 그치지 않으며 즐거움이 배가된다.
이 도시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로 13 세기부터 지중해의 중심 도시였다. 이들이 쌓은 구시가의 성벽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557년 지진으로 심하게 파손되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교회, 수도원, 궁전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내전 중 1991년 세르비아의 침공으로 이 아름다운 도시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 상흔들이 많이 남아 있다. 당시 많은 유럽 지식인들이 이곳으로 달려와 '두브로브닉의 친구들'이란 인간 방패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거의 폐허만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31일 두브로브닉을 출발해 스플리트에 들러 시내 관광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한다.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로 달마티아 해안의 경제, 문화 중심지이다. 야자수 가로수가 늘어선 해변과 중세풍의 고풍스런 거리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풍광과 아픔의 역사가 공존한다. 옛날부터 해상 교통로를 차지하기 위해 그리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영토 분쟁이 잦았고, 주변국 정세에 따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차지하기도 했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노년을 보내며 완성한 디오클레티안 궁전이 유명한데, 북문 입구의 주교 그레고리우스의 청동상의 엄지 발가락을 문지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아담하고 예쁜 항구 도시 비오그라드에 와서 묵는다.
8월 1일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탐방한다. 천국의 빛, 신의 정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곳인데, 16 개의 아름다운 물빛의 호수와 수많은 폭포, 숲과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두브로브닉과 더불어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명소인데, 지금은 날씨도 덥고, 수량이 적은 시기라 그리 만족할 만한 경치는 볼 수 없음이 아쉽다.
2일,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기자기한 시냇물과 작은 폭포, 꽃으로 장식된 예쁜 집들이 있는 동화 마을, 라스코테를 찾아간다. 볼수록 정감이 가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부인들이 유독 더 좋아한다.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어서 발걸음을 떼기 싫어진다.
다시 길을 재촉해 '이스트라의 두브로브닉'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의 작은 도시, 로빈(로비니)에 와서 하루를 묵는다. 과거 베네치아 공국에 속해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미로처럼 얽힌 예쁜 골목길이 인상적이다. 작은 언덕 위의 성 유페미아 성당이 대표적 볼거리이며, 바다와 예쁜 구시가지 너머로 지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3일, 길을 떠나 123 미터의 절벽 중간에 동굴을 이용해 지은 난공불락의 요새, 프레드야마에 들른다. 이 성을 지은 Erazem Predjamski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전쟁에서 그의 절친한 친구를 죽인 오스트리아 왕에 대항해 싸웠다. 1484년 오스트리아 대군이 성을 포위했으나 절벽 뒤의 비밀 통로를 통해 외부와 소통하면서 끝내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여 이 지역의 로빈 훗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배신자에 의해 비밀이 누설되어 화장실에 간 사이 적의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성 입구에 있는 수령 500 년 이상의 라임 나무 한 그루는 전설에 의하면 그의 여자 친구가 그의 무덤가에 영원 불멸의 상징으로심은 것이라 한다.
아드리아해를 따라가는 해안 도로를 계속 달려 오늘 묵어야 할 피란에 도착한다. 크로아티아 남쪽과 이탈리아 북쪽에 면한 작은 항구 도시인 피란은 중세풍의 건물이 가득한 구시가의 골목들이 아기자기하게 예쁘고,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하다. 아드리아해의 작은 베네치아로 불리는데, 고딕 양식의 빽빽한 붉은 지붕의 건물들과 파란 바다가 어울려 그림엽서 같은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특히 구시가의 작고 아름다운 교회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4일, 이제 길은 슬로베니아를 향한다. 블레드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보히니 호수에 잠시 들른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큰 호수로 케이블카로 해발 1,500 미터의 보겔산에 올라 조망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는 알프스의 동쪽 끝자락인 줄리앙 알프스(줄리어스 시저의 이름에서 따옴)에 위치해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나라로,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숲이 많다.
마침내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명소 블레드 호수에 도착한다. 호수 건너 블레드성이 내다보이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수 관광에 나선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는 길이 약 2킬로미터, 너비 1.4킬로미터의 빙하 호수와 성과 마을들, 호수 한가운데의 작은 섬과 성모 승천교회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는 15 세기에 지어졌고, 고풍스런 외관과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내부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다. 전통 혼례에서는 입구의 99 계단을 신부가 신랑을 업고 가야만 했다고 한다. 힘들어도 절대 울거나 중간에 포기해선 안된다 하니 고된 시집살이의 전초라고나 할까. 또 교회 안의 종을 울리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교회가 있는 섬을 오가려면 나룻배를 타야 하는데, 뱃사공도 아무나 할 수 없고, 대대로 이어진 가문의 자손들만 할 수 있다고 한다.
블레드성에 올라 내려다 보는 호수의 풍경도 아름답고, 호수 뒤편의 산을 1시간 반쯤 올라가면 호수가 잘 내려다 보이는 전망 포인트도 있다.
5일, 일행들이 아직 곤히 잠들어 있을 새벽에 일출을 보기 위해 교회가 있는 섬 쪽으로 가 보았다. 여명이 시작되면서 불타듯 붉은 아침 노을이 온 하늘과 블레드 호수를 물들이는 황홀한 일출을 만났다. 블레드가 주는 최고의 작별 선물이었다.
호텔에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한 후 여기서 약 55km 떨어진 수도 루블라냐를 향해 달려간다. 알프스 산맥과 지중해 사이에 위치한, 인구 30 만 명의 세계적으로도 아주 작은 수도이다. 고요히 흐르는 류블랴니차 강을 따라 세월을 품은 중세풍 건물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해 '동유럽의 스위스'라고 불린다. 케이블카로 성 위에 오르면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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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라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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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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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브로브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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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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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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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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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코테 물방앗간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