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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의 가을
핑계일 수도 있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 몇 해 전부터 차례 대신 성묘로 간소화했다. 평생을 속리산 자락에서 살아오신 분이,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신 후로 이렇게 긴 명절 연휴가 되면 여행계획을 세운다.
지난 설엔, 단칸방에서 신혼을 보내고 첫아이를 낳았다는 울산 장생포 바닷가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 후로 더 넓은 세상을 보여 주리라 생각하며 올 추석 긴 연휴도 남편과 막내 시누이와 모의를 했다. 부산 용두산 타워에 올라 밤바다와 휘황찬란한 야경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 이번에는 간이 휠체어까지 단단히 준비하기로 했다. 명절 준비로 바빠야 할 시간에 한집의 외며느리가 여행계획을 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어머니를 앞세워 얄팍한 효도로 과장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이왕이면 후회하기 전에 좋은 곳을 많이 보여 드리고 싶은 생각이 앞선다. 그동안 맛 집을 찾아다닌다거나 여행은 우리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했었다.
우리의 계획과는 달리 어머니는 큰딸이 사는 일산으로 가자고 하신다. 차 뒤에 실은 휠체어 때문인지 이번 여행길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해진다. 차가 밀리어 시간은 많이 지체되었지만 오랜만에 딸집에 도착하니 안도의 숨을 내쉰다. 멀미 때문에 차를 못 탄다 하며 한사코 청주 아들 집 오는 것도 마다하는데, 며느리인 나에게 부담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인 것을 왜 모르랴. 명절날 시누이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이는 나밖에 없다며 술도 한잔하니 어머니의 표정은 추석 보름달보다 더 환해진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꽃은 사그라들 줄 모르고 각자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행복의 꽃은 영원할 것만 같다. 어쩌면 당신이 만들어주는 시간의 선물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 이방 저 방에 나누어져 잠든다. 며느리와 큰딸 사이에서 아이처럼 곤히 잠든 어머니의 콧소리가 평온하게 들린다.
아침이 되어 자유로를 시원스레 달려 임진각에 도착했다. 횔체어에는 앉지 않으시고 당신이 손잡이를 잡고 밀고 다니시기로 했다. 임진강을 바라보며 그 너머가 북녘땅이라 하니 걸음을 멈춘다. 같은 산야인데 듣기만 했던 저 땅을 지척에서 바라보니 믿기지가 않으신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저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를 한다. 어느새 하늘도 강물 빛도 가을로 물들어가고 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연을 따라 평화누리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나지막한 언덕 아래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땅 위에 나무처럼 박혀있는 수 백 개 색색의 바람개비가, 남북을 오가는 바람 따라 쉬지 않고 돌아가 장관을 이룬다. 그 사이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니, 어머니는 소녀처럼 분홍색 바람개비 사이로 들어가 나와 시누이를 이끌고 서시더니 사진을 찍으라 하신다.까맣고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이 분홍 꽃물 들은 것처럼 발갛게 보인다. 곳곳에서 하늘 저 멀리 날리는 연에, 당신의 고단한 삶에서 갖지 못했던 즐거움이 깃들길 바라는 나의 마음을 얹어 본다.
다채로운 조형물은 누구의 솜씨인지 시선을 빼앗고 가끔은 앉아 쉴 수 있는 자리도 내준다. 앞서간 큰시누이네가 자리를 차지하고 싸간 간식을 펼치고 있다. 그제서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는
“이제 가을이구나. 궁핍한 살림에 고단했지만, 너희 때문에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복닥대던 한여름 같은 삶이었는데 어느새 내 인생에도 평온한 가을이 왔구나. 아니 이제 겨울로 드는 늦가을이구나. 그동안 너희와 추억의 열매를 많이 만들었으니 이제 여한이 없다. 여기도 두 번 다시는 올 수 없겠구나.”
하며 철새가 날아가는 먼 허공을 바라보신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핑계로 길을 나섰던 여행은, 가족이 함께했던 시간을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따듯하고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도록 하려던 어머니의 마음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아니에요. 이제 시작이에요. 아직 보여 드리고 싶은 것도, 같이 하고 싶은 것도 많이 남았어요.”
하며 미는 휠체어는 가볍기만 하다. 세월이 드리운 하얀 머리와 야윈 어깨를 보니 그동안 며느리로서 좀 더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던 후회가 밀려온다. 인생의 마무리를 하려는 듯,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나서던 당신이 주는 사랑의 깊이를 어찌 가늠 할 수 있으랴! 어머니의 가을 속에서 맺은 추억의 열매를 더 크고 단단하게 키우리라 다짐하며 까슬한 뒷목을 살그머니 안아 본다. 내 손위로 겹쳐지는 당신의 앙상한 손이 한낮 가을 햇살처럼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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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머니의 가을
핑계일 수도 있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 몇 해 전부터 차례 대신 성묘로 간소화했다. 평생을 속리산 자락에서 살아오신 분이,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신 후로 이렇게 긴 명절 연휴가 되면 여행계획을 세운다.
작년 설엔, 단칸방에서 잠깐의 신혼생활을 보내며, 첫아이를 낳았다는 울산 장생포 바닷가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올 추석에도 어머니께 더 넓은 세상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 남편과 막내 시누이와 모의(謀議)하여, 휘황찬란한 야경에 밤바다가 어우러지는 부산 용두산 타워에 오르기로 했다. 이번에는 아픈 허리를 위해 간이 휠체어까지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명절 준비로 바빠야 할 시간에 한 집안의 외며느리가 이렇게 여행계획을 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어머니를 앞세워 얄팍한 효도로 과장 되는 것은 아닌가 싶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좋은 곳으로 자주 모셔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이사하고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일산 큰딸 집으로 가자고 한다. 비록, 부산으로 향하지는 않아도 차 뒤 칸에 실은 휠체어 때문에 이번 여행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길이 복잡하여 시간은 지체되었지만, 오랜만에 딸 집에 도착하니 안도의 숨을 내쉰다. 멀미 때문에 차를 못 탄다 하며 한사코 청주 아들 집 오는 것도 마다하는데, 직장 다니는 며느리에게 부담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인 것을 왜 모르랴. 명절날 시누이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이는 나밖에 없다며 술도 한잔하니, 옆에서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표정은 추석 보름달보다 더 환해진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꽃은 사그라들 줄 모르고 각자의 마음속에 피어나는 행복의 꽃은 영원할 것만 같다. 어쩌면 당신이 만들어주는 시간의 선물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모여 이방 저 방에 나누어져 잠든다. 며느리와 큰딸 사이에서 아이처럼 곤히 잠든 어머니의 나지막한 콧소리가 평온하게 들린다.
아침이 되어 시원스레 쭉 뻗은 자유로(路)를 달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파주 임진각에 도착했다. 휠체어에는 앉지 않고 당신이 손잡이를 잡고 밀고 다니신다. 눈 앞에 펼쳐진 임진강을 바라보며 그 너머가 북녘이라 하니 걸음을 멈춘다. 한 달음이면 갈 것 같은 저 땅을 지척에 두고도 오고 가지 못하는 현실이 믿기지 않은 듯, 연신 허리를 굽히며 저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를 한다. 어느새, 이쪽저쪽 가리지 않는 산과 강은 무심히 가을로 물들어가고 있다. 저 멀리 새처럼 유유히 날아오르는 꼬리 긴 연을 보면서 평화누리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나지막한 언덕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초원 위에 나무처럼 박혀있는 수백 개 색색의 바람개비가, 남북을 오가는 바람 따라 쉬지 않고 돌아가 장관을 이룬다. 그 사이 산책로를 천천히 걸으니, 어머니는 소풍 나온 소녀처럼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갑자기 분홍색 바람개비 사이로, 나와 시누이를 이끌고 들어가 자리를 잡더니 사진을 찍으라 하신다. 까맣고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이 분홍 꽃물 들은 것처럼 발갛게 보인다. 여기저기서 하늘에 닿을 듯 날리는 고운 연에, 그동안 고단한 삶에서 갖지 못했던 즐거움이 깃들길 바라는 나의 마음을 얹어 본다.
다채로운 조형물은 누구의 솜씨인지 시선을 빼앗고 가끔은 앉아 쉴 수 있는 자리도 내어준다. 앞서간 큰 시누이네가 널찍한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간식을 풀고 있다. 그제야 휠체어에 앉으신 어머니는
“이제 가을이구나. 궁핍한 살림에 모진 세월이었지만, 너희 때문에 열심히 살았단다. 그렇게 복닥대던 한여름 같은 삶이었는데 어느새 내 인생에도 평온한 가을이 왔구나. 아니, 이제 겨울로 드는 늦가을이구나. 그동안 너희와 추억의 열매를 많이 만들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 여기도 두 번 다시는 올 수 없겠구나... .”
하며 철새가 날아가는 먼 허공을 바라보신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핑계로 길을 나섰던 여행은, 가족이 함께했던 시간을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따듯하고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도록 하려던 어머니의 마음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아니에요. 이제 시작이에요. 아직 보여 드리고 싶은 곳도, 같이 하고 싶은 것도 많이 남았어요. 조금만 더, 지금처럼 그 자리에 계세요”
하며 길 따라 천천히 미는 휠체어는 가볍기만 하다. 세월이 드리운 하얀 머리와 야윈 어깨를 보니, 그동안 며느리로서 좀 더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했던 후회가 밀려온다. 인생의 갈무리하려는 듯,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나서던 당신이 주는 온화한 사랑의 깊이를 어찌 가늠할 수 있으랴! 어머니의 가을 속에서 맺은 추억의 열매를 더 크고 단단하게 키우리라 다짐하며 까슬한 뒷목을 슬그머니 안아 본다. 내 손등위로 겹쳐지는 어머니의 앙상한 손이 한낮 가을 햇살처럼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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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의 계절
가을이 어느새 많이도 내려앉았다.
거리 구석구석에도 지붕에도 마당에도 낙엽들이 수북~하게 내려앉았다. 누렇게 익은 황금벌판이 반은 금빛으로 반짝이고 반은 추수를 마쳤다. 주렁주렁 빨갛게 매달려 있던 사과도 대추도 한창 수확 중이다. 태양 빛깔만큼이나 빨갛고 강렬했던 고추는 많이 수확해서 지금은 끝물만 남았다고 한다.
숲속에 잔뜩 떨어진 밤과 도토리들, 친구는 동네 산을 산책할 때마다 도토리 줍기에 여념이 없다.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면 산과 들이 온통 울긋불긋하고, 풍성한 억새들은 가을을 알리느라 앞다투어 피어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높고 파란 하늘은 가을의 깊이를 더해준다,
아파트 안에서도 가을은 한창이다. 현관 입구 양옆에 수북이 심어놓은 국화꽃도 하루가 다르게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국화에게는 가장 행복한 계절이 가을이겠지? 그리고 화단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심겨 있는 맥문동들. 그 뜨거운 여름 강렬한 태양 아래서 신비스러운 보랏빛을 더했던 꽃! 겨울에는 추위를 이겨내느라 납작하게 누워있다가 봄이 되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여름이 되면 잎들이 춤을 추고 꽃들은 보랏빛 물결을 이룬다. 이제 가을이 되니 꽃도 지고 그 자리에는 까만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벼 이삭 마냥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가을은 그야말로 결실의 계절이다.
아파트 주변 거리는 가로수가 거의 벚나무이다.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잎들은, 마치 봄비 맞으며 새순이 돋아나는 봄만큼이나 나를 설레게 한다. 여는 때는 이 단풍잎들이 꽃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을의 꽃, 단풍!
어느 날인가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리던 날이었다. 낙엽이 비를 맞고 길가에 소복이 내려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노랗게 빨갛게 물이 드는 줄도 모르는 사이 몇몇 나뭇잎은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나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나보다, 가을비가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 없이 함께 내려앉았다. 자연은 신비롭다. 경이롭다.
아파트를 조금 벗어나면 은행나무 거리가 있다. 올해는 단풍잎들이 물이 들기 전 시들어 말라 떨어져 버리는 것들도 많다던데 은행나무만큼은 그 찬란함이 대단하다. 노랗게 물든 모습은 눈이 부시기까지 하다. 쳐다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온통 노랗게 물이 드는 느낌이다. 동심으로 돌아가 마냥 아이가 되기도 한다.
풍성한 결실로, 아름다운 단풍으로 온갖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한편으론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가을...
신은 우리에게 왜 ‘가을’이라는 계절을 선사하셨을까?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니 이를 위해 봄, 여름을 부지런히 살라고 주셨을까? 아니면 찬란한 끝에 조용히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겸손함을 주려고 하신 걸까. 아마도 가을은 결실의 기쁨을 맛보고 한 해를 차분히 정리해 나가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가을 – 사그락 사그락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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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집가의 가을 초대
하늘 맑고 바람 시원한 만추에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받아 국립청주박물관으로 갔다. 명암지의 윤슬 위로 오리배들이 유유자적 떠가며 물속에 내려앉은 가을 경치를 즐기고 있다. 수집가의 커다란 정원에는 가을이 가득했다. 나무에 매달린 노랑 빨강 단풍잎들은 갈바람에 일렁일렁 그네를 타고 진입로의 검은 돌바닥에는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 느티나무 잎들이 바스락바스락 손님을 맞았다. 울긋불긋 단풍에 풍덩 빠진 박물관 건물은 우암산의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보였다.
나뭇잎이 융단처럼 깔린 나무 밑과 아직 파릇파릇 젊음을 말하는 잔디밭을 지나 수집가의 정원에 들어서니 곳곳을 차지한 크고 작은 석인상들이 먼저 반겼다. 키 작은 석인상과 동자석의 군상들은 가을을 노래하는 합창단처럼 보였다. 입구에 키가 큰 벅수(돌장승)는 수집가의 정원을 지키고 있는 듯 위엄있게 서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특별전시실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상설전시실에서 금속 문화재 수집품을 소개하며 야외정원에는 석조 전시물이 자리하고 있어 안팎으로 다니면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었다.
아주 특별한 전시회, 고 이건희 회장의 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이 국립중앙박물관을 출발하여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셋째 번으로 열리는 전시회다. 사전 인터넷 예약을 통하여 한 시간에 최대 100명이 입장할 수 있었다. 리플릿 속에서 만났던 작은 석인상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전시실로 들어섰다.
어디선가 졸졸졸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리는 듯 눈앞에는 <구담봉도>가 들어왔다. <구담봉도>는 단양팔경 중 하나인 구담봉의 우람하고 빼어난 경관을 유람한 유제홍이 가슴에 남은 경치를 그림으로 그리고 느낌을 시로 써서 표현한 것이었다. 원래 구담봉의 봉우리는 하나이지만 작가는 다섯 개의 봉우리로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지두화법指頭畵法으로 표현된 그림은 그 선의 느낌이 투박하면서도 부드럽고 강하여 웅장하게 솟은 구담봉의 모습을 잘 나타냈으며 푸근한 가을의 솔바람 소리가 바위 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천천히 국보급과 보물급의 크고 작은 청자와 백자의 도자기, 달항아리까지 보고 처음 공개되는 꾸미개 소품들을 감상하다가 발걸음이 멈춘 곳은 수집가 고 이건희 회장이 가장 사랑했던 단원 김홍도가 그린 <추성부도秋聲賦圖> 앞이었다.
<추성부도秋聲賦圖>는 김홍도가 중국 송대 구양수가 쓴 <추성부秋聲賦>라는 글을 읽고 그 내용에 공감하여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고 말미에는 <추성부秋聲賦>의 원문을 정갈하게 쓴 그림이었다. 구양수는 글에서 가을의 소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처음에는 바스락바스락 거리고 휘휘 거리더니 갑자기 물결이 거세게 일어 치닫고 물결이 부딪쳐 올랐다. 마치 파도가 밤에 놀라 비바람이 갑자기 몰아치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물건에 부딪힘에 쨍그렁 쨍그렁하여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것 같고 마치 적진으로 나가는 군대가 입에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 듯 호령 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만 들리는 듯하기도 했다.” 이렇듯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를 읽지 않고는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조용한 느낌의 그림을 가만가만 들여다보았다. 이미 깊을 대로 깊은 가을의 쓸쓸함이 산에서 내려오는 듯했고 내 가슴엔 슬픔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을의 풍요를 나타내는 나무의 열매는 온데간데없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스치는 바람은 시린 내 가슴을 건드렸다. 이미 나뭇잎이 다 떨어진 메마른 산은 조용하다 못해 휑하여 작은 바람에도 버스럭거렸다. 바람이 지나가는 듯 빈 가지끼리 부딪히며 깊어 가는 가을, 떨어지는 잎을 잡아두려 했을까 꺾여진 가지가 애처로웠다. 점점 길어지는 가을밤, 항아리 창문으로 보이는 선비는 글을 읽다가 동자를 불러 귀에 들리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물었다. 밖으로 나간 동자가 이르기를 “달과 별이 밝게 빛나며 하늘엔 은하수가 걸려 있고 사방에는 인적이 없으니 그 소리는 나무에서 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글을 읽던 선비는 추성秋聲(가을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듯했다.
그에 선비는 가을을 또 이렇게 표현하였다. “아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구나. 어찌하여 온 것인가? 저 가을의 모습이란 그 빛깔은 암담하여 안개는 흩날리고 구름은 걷힌다. 그 모습은 청명하며 하늘은 드높고 태양은 빛난다. 그 기운은 차가워 피부의 뼛속까지 파고들고 그 뜻은 쓸쓸하여 산천이 고요하다. 그러므로 가을의 소리는 처량하고 애절하며 울부짖고 외치는 듯하다.”고 했다.
아침마다 안개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가을 풍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림 속에 빠져 가을을 맞은 내 마음을 생각했다. 지난날 가을만 되면 눈물을 흘리던 때가 생각났다. 구양수도 말했듯이 가을은 정말 슬펐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도 슬펐고 찬바람이 내 옷소매를 잡으며 매달리는 것도 싫었다. 빨간 사과가 탐스럽게 달린 사과나무를 보고도 슬퍼서 울었다. 가을이 되면 이유 없이 몇 달은 울면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렇게 슬퍼했던 마음은 첫눈이 내려야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갔다. 해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 산에 나무들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면 또 가을이 찾아와 나를 슬프게 했었다. <추성부秋聲賦>를 읽어보니 본래 가을이란 계절은 슬픈 계절이었나보다.
어느덧 전시관의 맨 마지막 방에 도착했다. 그곳엔 ‘수집가의 하루’란 명패와 함께 한쪽 벽면을 꽉 채운 장식장에는 문방사우를 비롯한 작은 장식품 같은 소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고 이건희 회장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아끼는 미술품을 감상하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아마도 수집가의 손때묻은 작품들인 것 같았다. 대를 이은 수집가의 높은 안목과 관심이 오늘 가을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디선가 웅장한 듯 낭랑한 범종 소리와 함께 <백자 청화 산수무늬병>의 우아한 배웅을 받으며 전시실을 나왔다. 상설전시장의 사랑채 앞 계단 끝에서 만난 <꽃을 품에 든 소녀상>의 미소에 행복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파란 가을 하늘에 새하얀 뭉게구름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
4. 가을의 끝자락에서
지난여름 푸른 들판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처럼 거센 바람이 몰려온다.
정성을 다해 키워온 벼가 미처 성숙하기도 전, 논바닥에 처참하게 쓰러트려 농심(農心)에 큰 상처를 남긴 심술궂은 바람이다.
가을을 떠나보냄이 못내 아쉬워서 일까. 바람은 가을걷이를 마친 황량한 들판을 지나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며 산모롱이를 휘감아 지나간다. 마지막 남은 단풍잎을 떨어트리고 말겠다는 듯 맹렬한 기세다.
가느다란 잎자루에 의지한 채 힘겹게 매달려 있는 단풍잎이 위태롭다.
누군가 붙잡아 주길 기다리는 듯 바동거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울긋불긋 환상적인 가을 잔치를 끝낸 나뭇가지에는 추운겨울을 대비하여 단풍잎을 모두 떨어트리고 숨죽이듯 서있다. 새로운 봄을 기다리며 고통을 이겨나기 위하여 화려했던 옷을 모두 벗고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찬바람 을 버티고 있나보다. 가지마다 시련을 앞둔 긴장감으로 썰렁함 마저 감돈다. 가을의 막바지에 불어오는 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간다.
나뭇가지 사이로 찬바람이 스쳐 지나가면 나뭇결에는 나이테로 흔적이 남겨 질 테다. 나이테는 시련을 인내로 담아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인고의 결과다. 시련이 클수록 인내의 결과인 나이테는 더욱 선명할 것이다. 선명한 나이테를 남기기 위해선 아픈 시련을 견디고 극복해야만 한다.
모든 성숙하는 과정에 고통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조물주의 어떤 숨은 의도 일까.
가을을 보내며 쓸쓸한 마음으로, 내 인생의 계절은 어디쯤 지나고 있는지 뒤돌아본다. 낙엽이 모두 진 상태일까. 울긋불긋 단풍잎으로 치장한 화려한 가을의 중심을 지나고 있는 중일까. ‘아직 겨울이 오려면 한참 멀었겠지.’ 라고 스스로 위안 해보지만 공허하다. 나의 계절도 알듯 모를 듯 세월을 반복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을로 접어들었다. 어쩌면 마지막 남은 단풍잎을 아등바등 잡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나고 있는 가을은 어떤 색깔로 물들어가고 있는 중일까. 빨간 단풍잎 색깔인가. 노란 은행잎 색이려나. 얼마나 먼 길을 지나왔는지 궁금하여, 지나온 길을 뒤 돌아 보려 고개를 돌려 보지만, 안개만 자욱하여 도무지 보이질 안는다. 하긴 뒤돌아본들 지나온 길이 노란색이든 빨갛든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뒤 돌아 가기에는 너무나 먼 길을 지나왔는걸.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좁은 길만이 내게 남겨진 숙명인 걸 어쩌랴.
나무들은 또 다른 봄날을 기다리는 희망으로 단풍을 모두 벗어 시련을 대비하며 한발자국 성숙하는데, 나는 고통의 겨울을 대비하여 무엇을 준비하였으며, 어떤 봄날을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어떤 시련을 극복하며 연륜을 쌓아가고 있는 것인가. 돌이켜 보면 기억에 남는 큰 시련을 겪어보지 못하여 아름다운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련의 고통이 심할수록 결과물은 달콤하다는데. 나는 인생의 방향이 바뀔 정도의 큰 시련을 겪은 기억이 없이 여기 까지 왔다. 굴곡 없는 평탄한 길을 걸어 왔다.
추운계절이 없는 열대지방에 사는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 시련을 겪은 흔적이 없는 무른 나무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내가 만들고 있는 무른 나이테에도 어떤 연약한 흔적이라도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는 걸까. 나 역시 열대지방에서 자란 나무처럼 무른 나이테를 가진 나약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테가 없는 열대지방의 나무는 재질이 부드러워 또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듯이, 나도 그럴 것이라 스스로 위안을 가져본다.
새로운 봄날을 기대해 본다.
5. 가을인생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집에 가는 날이다. 고성능 보청기를 착용하셔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92세의 아버지와 지팡이에 의지하여야 거동하실 수 있는 88세 엄마를 모시고 비행기를 타는 여행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시고 몇 년 전부터 소일거리로 시작한 밤 농장은 가지치기, 잡초 제거 등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밤 수확 철에는 온 가족이 동원되어야 한다. 밤 수확이 끝나는 가을에는 여행을 모시고 다니는 게 우리 집안의 관례가 되었다. 밤나무 농장도 살뜰하게 살피고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재깍재깍 대령하는 동생들이 있으나 나는 제주살이 핑계로 한 달에 한 번씩 찾아 뵙고 있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거동이 더 어려워지기 전에 정성껏 모시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비행기가 이륙하여 착륙할 때까지 손을 꼭 잡고 계신다. 얼굴에 주름은 자글자글하지만 분홍색 메니큐어를 칠한 손톱이 곱다. 지난번이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또 비행기를 탔다며 창밖을 골똘히 바라보신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그 모습을 보며 상념에 젖는다.
물리치료보다 온천욕을 더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단지 내에 있는 아쿠아 풀에 갔다. 허리를 구부리지 못하여 혼자서는 신발을 신기도 어렵고 더구나 수영복은 입기 어려우시다. 수영복에 한쪽 발씩 끼워 넣어주면서 어린 손주들 바지 입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도 어린 나를 이렇게 입히고 먹이며 키우셨을 거란 생각이 떠올랐다. 얄팍한 월급으로 힘든 내색 없이 오남매를 대학공부 시키느라 얼마나 애쓰셨을까?
풀장 벽에 설치된 바를 붙잡고 한발 한발 옮기던 엄마의 얼굴이 환해진다. 엄마를 지켜보던 아버지의 얼굴은 첫사랑 소녀를 만난 소년의 얼굴이다. 육십 년을 넘게 함께 사시고도 저렇게 좋으실까? 아버지는 이곳저곳 물 안마도 하시고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모습이 냇가에서 물장구치는 개구쟁이 모습이다.
“제주로 이사하여 물놀이 매일 하면 좋겠다. 아니지, 혼자 옷도 입고 벗지도 못하는데 다 소용없구나” 쓸쓸함이 얼굴에 스친다. 삼십 년 넘게 고전 무용반에 다니시고 수영도 열심히 배우시던 엄마다. 명주 수건 휘감아 너울너울 살풀이 추시던 엄마가 이제는 걷기조차 힘드시니 세월이 야속하다. 가방끈은 짧지만 사리분별력 있으시고 호불호가 명확하신 엄마가 이제는 슬쩍슬쩍 딸인 나의 눈치를 보신다. 억새가 예쁜 새별 오름을 숨이 차서 올라가기 어려워하신 아버지는 점심을 많이 먹어서 힘들다고 핑계를 대신다. 파란 하늘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처럼 내마음도 흔들린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휴지통에는 종합 감기약 병이 수북하였다. 정신줄 놓을까봐 바짝 긴장하고 혹시 병이라도 날까 노심초사 하시지만 결코 내색하지않는 아버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린 내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세종류의 사람이 있다. 있으나마나한 사람. 해를 끼치는 사람 그리고 꼭 필요한 사람. 너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거라“ 아버지 말씀대로 필요한 사람은 못 되어도 민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제주의 가을은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애국가의 가사가 딱 들어맞는날씨다.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연한 비취색부터 점점 쪽빛 그리고 진한 군청색으로 짙어지는 신비로운 빛깔이다. “오래 산다고 누구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내가 사위 잘 둔 덕이지?“ 무얼 먹어도 맛있다 맛있다 하시고 어디를 가도 좋다좋다 감탄하시는 엄마는 센스쟁이다. 언제나 ”너희들 덕에 내가 이렇게 오래 산다. 고맙다“말씀하시는 엄마가 더없이 고맙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하여 도서관에서 책도 몇 권 대출하였다. 엄마를 위해서는 김용태 시인의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생활하시면서 면회 온 며느리와 한글 공부를 하며 엮은 책인 ‘나는 참 늦복 터졌다’를 빌렸다. 서툰 할머니의 글씨와 책 제목만으로도 너무나 좋아하셨다.
저녁마다 풀어놓는 엄마의 인생 보따리, 밥걱정 없는 방앗간 집 막내딸이 가난한 집 맏며느리가 되어 고생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반세기 넘는 일가친척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풀려나온다. 말수 적은 사위와 무얼 하며 지낼지 막막하였는데 시간이 이처럼 빨리 지날 줄 몰랐다며 호호호 웃으신다. 엄마의 기억력이 초롱초롱하다고 남편은 안심하는 눈치다.
칠남매의 장남이신 아버지는 열세 살에 할아버지를 여의셨다. 궁핍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거실 유리창에 훤하게 비치는 보름달을 바라볼 뿐이다. 친척들 사이에서 딸바보로 소문나신 아버지의 어깨가 점점 작아보인다.
맛집과 풍광 좋은 카페에 매일매일 즐겁게 모시고 가는 남편이 너무나 고마워서 혹시 나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이 있어도 십 년은 너끈히 참아 줄 수 있을 거 같다. 제주에 계시는 동안 양말 한 켤레 빨랫감을 내놓지 않는 깔끔한 성격의 엄마가 항공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휠체어를 타고 탑승 게이트로 들어가셨다. 뒷모습을 보며 내년에도 제주 여행을 하실 수 있기를 기도 한다.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데 부모님의 뒷모습에 추수를 마친 가을 들판처럼 마음이 휑하다.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다. 언젠가는 긴 이별을 하는 날이 오겠지.
머리에 염색약을 남편과 마주 보고 발라주다 문득 고개를 드니 거울에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왈칵 눈물이 흐른다. 돈이 많으면 부자이고 추억이 많으면 행복이라고 한다. 인생 초가을에 접어든 우리 부부와 곧 겨울을 맞이할 부모님과 함께 지낸 열흘은 많은 추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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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주댁 심꿍한 인생길 부모와 나 잘 풀어 쓰셨네요.
부모님 계실때는 잘 몰랐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울이 없어진것 처럼 허전했답니다.
살아계시니 복되십니다.
시간을 잘 활애하시는 선생님 부럽, 왜 운전을 포기했을까 후회가 됩니다.
자주 여행하시고 따뜻한글 많이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