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고대역사를 회복함이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현대를 옳게 정립하고 미래를 장대하게 인도한다. 2003년 8월 7일자로 발간된 주간조선에는 ‘구한말 지도’라는 게 실렸다. 1999년 6월 26일 국정홍보처가 영국과 공동으로 벌인 조사결과 조선의 영역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와 사할린 일대까지 그려진 지도가 대량 발견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로마 교황청 등지에서도 조선의 영역이 만주와 흑룡강성 일대를 포함한 지역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일제가 1909(순종3)년 9월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만주 철도부설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 일대를 중국 영토로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과 청나라 간에 당시 체결한 협약은 국제법상으로 무효라고 한다.
중국은 이 영토문제를 한국이 들고 나올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장차 한국이 통일되어 통일된 한국이 간도 땅을 되찾고자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고 매우 부심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공공연히 억지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사전에 아예 쇄기를 박아놓자는 것이다.
○ 이마니시 류,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왜곡하다
일제의 뜻대로 한국 고대사를 왜곡함에 있어 당시 교토대 교수 이마니시 류(후일 경성제대 교수)는 친일파 이병도 등과 더불어 조선사를 멋대로 왜곡한 장본인이다.
‘조선사편찬위원회 회의록’을 통해, 일본인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가 ‘삼국유사’의 단군고기 중에 ‘昔有桓國’(석유환국)이라고 되어 있던 것을 ‘昔有桓因’(석유환인)이라고 고친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국(國)을 인(因)으로 바꾼 것이다.
환국(桓國)은 만여년 전에 존재했던 한민족의 고대국가였다. 이것부터 없애는 것으로 역사왜곡이 시작된 것이다.
1512년의 삼국유사 정덕본에는, 일연이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다. 그 나라에 높은 서자 벼슬을 하는 환웅이 있었고 마지막 환웅 대에 단군이 나타나 조선을 세웠다”라고 되어 있었다.(현재 일본 천리대 소재, 국내에서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그러나 이마니시 류는 변조된 내용을 경성제대 영인본이라고 하여 발표한다. 그리하여 현재 전해지는 ‘삼국유사’의 판본에는 환국(桓國)이 환인(桓因)으로 변조되었다. 이는 원래의 환국시대가 사실적이고 역사적인 것임에 반해, 이를 없애고 단순히 ‘桓因’으로 바꿈으로써 신화적인 요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엄연한 뿌리 역사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던 것이다.
친일파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이마니시 류의 보좌관이 되어 ‘조선사 편찬’이라는 거대한 역사왜곡 작업에 참여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 문교부 장관까지 지냈다.
그는 ‘조선사’ 편집에 참여하여 일제의 식민사관 수립 사업에 직접 기여하였고, 일제가 유포시킨 식민사관을 해방 후까지 이어주는 매국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한국 사학계에는 직접간접으로 이병도의 제자 아닌 사람이 드물다.
○ 친일파,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회개
일본은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 역사는 주체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에 의해서만 유지되어 왔다는 요지의 이른바 ‘반도사관론’을 철저히 유포시켰다. 또한 우리 역사 자료들을 전부 빼앗아가고 불태우고서는, 증거가 있어야만 인정한다는 식의 소위 ‘실증주의’ 역사방법론을 채택하였던 것이다.
‘조선사편찬위원회’의 날조된 역사 내용을 이어받은 이병도는 나중에 “일본 학자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반성하였다. 이병도는 죽기 직전,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사실의 역사이고 우리의 국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반성문을 발표하였다.
그간 최태영 박사, 송지영 KBS 이사장, 국문학자 이희승 박사의 설득으로 과거 자신의 역사관을 크게 수정하고,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조선일보 1986년 10월 9일자에 단군은 실존의 역사라는 논설을 게재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를 바라보는 이병도 제자들의 시선은 싸늘하였다. 어떤 제자는 ‘노망 드셨네’하며 비웃기까지 하였다. 이에 대해 상고사 연구가 최태영 박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이지만 이병도 박사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박사는 말년에 건강이 나빴는데, 어느 날 병실에 찾아갔더니 죽기 전에 옳은 소리를 하겠다며 단군을 실존인물로 인정했어요. 그 사실을 후학들이 모르고 이박사의 기존학설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민족이면 누구나 어린아이 때부터 배웠던 동몽선습이나 세종실록 등 각 고전에도 단군기록이 나옵니다. 수백년전 기록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역사기록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판소리할 때도 그 긴 내용을 한글자도 바꾸지 않고 노래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역사기록은 더욱 정확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일제 때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한 민족사학자들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존경하여야 한다. 일제는 단군을 말살하려 들었으나, 결국 말살하지 못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인의 뇌리에서 단군을 지워버리려 했었는데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국인이 단군을 잊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인이 결코 일본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 때 자칫하면 일본인으로 동화될 뻔하였다. 만일 그랬더라면 우리는 필리핀이나 인도처럼 자국어를 쓰지 못하고, 일본 말, 일본 글 그리고 일본사를 우리 역사로 알 뻔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문화침략에 정면으로 맞선 분들이 바로 민족사학자였으니, 그들은 외로운 항일 역사전쟁을 했던 것이다.
○ 단군신화의 올바른 해석
단군신화가 실려있는 대표적인 문헌인 삼국유사를 보면,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창건하여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요임금과 같은 시대이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 환국(桓國)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나라를 가져 볼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지망하더니 그의 아버지가 그의 뜻을 알고(父知子意), 아래로 삼위태백(三危太伯) 땅을 보고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보내어 다스리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이 기록을 살펴보면 ‘환국의 서자 환웅’이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나오는 환국(桓國)은 환인(桓因)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일제가 왜곡시킨 것은 환인으로 나오고 그러하지 않은 것은 환국으로 나온다. ‘환국과 환인’의 다른데서 오는 단군신화의 해석 차이는 엄청나다.
우선 환국이라고 써있었을 경우 환웅은 나라를 뜻하는 환국에서 이동해 온 지도자가 된다. 하지만 환인일 경우 그것은 하나의 신격 인물로 환웅 역시 하느님의 아들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격 존재가 된다. 그 두 가지의 차이는 뒤의 서자(庶子)의 해석에도 영향을 준다.
환국일 경우 서자는 나라의 관직명으로 해석된다. 환인일 경우 서자는 환인이란 인물의 아들로 해석된다. 하지만 아들이라면 굳이 서자(庶子)보다는 그냥 자(子)로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서자는 나라의 관직명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중국의 사서에도 서자란 관직명이 등장한다.)
환국이 적당하다는 또 다른 근거는 기록 중의 부지자의(父知子意)에 있다. 만약 환인이 맞는다면 하느님을 뜻하는 환인을 불경스러운 표현인 부(父)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환인지자의(桓因知子意)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환국일 경우에는 그 부(父)는 서자 환웅(庶子桓雄)의 친아버지를 지칭한 말로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 된다.
환국이란 국명은 고기(古記)를 쓴 후손들이 모국(母國)을 위대하게 보이려고 한 것으로 해석된다. 환국은 우리 한민족의 위대한 고대국가였다.
'환단고기' 삼성기 하편에 의하면 환국은 일만여년전,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 되는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대제국이었던 것이다.
○ 만여년전 한민족 고대국가, 환국(桓國)
환단고기(桓檀古記)는 현재 최고의 민족사서로 평가되는 역사책이다. 1985년도에 최초로 환단고기(강수원 엮음, 온누리 출판사)가 출간되었고 그 후에 임승국 교수의 환단고기를 포함하여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다. 환단고기는 우리민족의 역사를 온전히 알려주는 정사이다. 우리민족의 지보(至寶)이다. 외세들의 지독한 역사왜곡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은 불사신의 책이다.
『환단고기』「삼성기」하편에 의하면
“옛날에 환국(桓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 되는 대제국으로써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나라를 이루고 있었고, 12개 나라의 연합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12개 나라는 비리국, 양운국, 우루국, 독로국, 일군국, 선비국, 스메르국, 구모액국, 사납아국, 매구여국, 객현한국, 구막한국 등 12개 나라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환국의 통치자를 환인이라 불렀으며, 초대 환인인 안파견 환인으로부터 7대 지위리 환인까지 7명의 환인이 계셨다. 그 역년이 BC7199년에서 BC3898년까지 총 3301년간 지속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 정덕본의 ‘고조선기’에도 엄연히 “옛적에 환국(桓國)이 있었다”고 명기해 놓았다. 이것을 일제 총독부의 역사왜곡 책임자인 관변학자 이마니시 류가 환인(桓因)으로 슬쩍 고쳐놓았음은 앞에서도 이미 말한 바 있다. 國을 因으로 바꾼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대학 강단에서는 ‘삼국유사’ ‘환단고기’ 등에 나오는 ‘환국’에 관한 엄연한 기록을 비웃으면서, 그 시대를 민족의 고대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편협한 논리를 내세워 부정하고 있다. 아예 연구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친일파 이병도에게서 역사를 배운 이병도의 제자들이 벌이는 이기주의적 추태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스승 이병도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1986년 10월 9일 조선일보를 통해 민족 앞에 용서를 구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그의 제자들도 변해야 한다. 단순히 자존심에 금이 갈까봐 혹은 이기적인 생각으로,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를 거슬릴 수는 없는 것이다.
정부도 역사바로잡기 작업을 단순히 근대사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멀리 크게 보고서 민족의 근원의 역사부터 바로 잡아 나아가야한다. 그리고 일제의 역사왜곡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야한다. 보다 근원의 문제부터 보다 원초적인 문제부터 해결해나갈 때, 독도문제 등 제반현안들도 더욱 힘을 받아 해결이 잘될 수 있는 것이다.
○ 환웅(桓雄)의 배달국 시대
기록에 의하면, 환국 말기에 이르러 마지막 환인인 7대 지위리 환인께서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을 주고, 풍백, 우사, 운사와 3천명을 주어 동방으로 보냈다. 이에 환웅은 태백산(백두산) 아래에서 도시국가인 신시(神市)를 건설하고 나라를 세우니 이로부터 배달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분이 바로 ‘환웅천황’이시다.
그는 백두산의 박달나무 아래에서 제단을 만들고 천제를 올렸으며,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들에게 농사, 생명, 질병, 형벌, 선악을 맡게 하고, 무릇 인간살이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면서 정치와 교화를 베풀었다.
배달국시대는 초대 거발환 환웅으로부터 18대 거불단 환웅까지 18분의 환웅이 계셨다. 역년은 BC3898부터 BC2333까지 1565년 동안 지속되었다. 흔히 우리민족을 ‘배달민족’ ‘배달겨레’라 부르는데, 이 배달의 유래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풍백, 우사, 운사는 바람과, 비, 구름이 농사에 필요한 것이므로, 환웅이 발달된 농사기술을 가지고 이동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혹은 풍백, 우사, 운사는 꼭 농사나 사회구조에 관련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그냥 관직명으로도 볼 수 있다.
국민들이 뿌리 역사와 민족정신을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국민적 단합의 원초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자부심과 긍지심을 심어주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의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갈등요인들을 총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물질적 차원을 떠나서 삶을 풍요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불씨가 될 수 있다. 월드컵 4강에 간 일로도 국민들이 얼마나 즐거워하고 자부심을 느꼈는가. 위대했던 역사,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우리의 역사를 찾아주는 일이야말로 어찌 다른 일에 비할 바 되겠는가. 그렇다고 국수주의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오늘날 글로벌 시대에 민족적 차원에 지나치게 몰입해서는 오히려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다만, 민족의 뿌리 역사를 정확히 알아, 민족과 조상님들의 위대성과 훌륭한 정신을 이어받아, 한민족의 단합된 힘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사상을 세계인들에게 전해주자는 것이다. 내가 삶을 살고 있는 '이 터'에 '새 얼'을 심자는 것이다.
○ 47대를 이어온 단군 조선시대
환웅은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그의 아버지는 그의 뜻을 알고 태백산 주위의 땅이 사람들이 살기 좋은 땅이니 그곳에 가서 나라를 세우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환웅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 삼천 명을 이끌고 태백산에 당도해서, 그곳을 신시라 이름붙이고 배달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그곳에는 곰을 숭배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이 있었는데, 곰부족은 호의적이었으나 호랑이부족은 적의를 보였다. 이에 환웅은 곰부족과는 대대로 족장의 딸들과 혼인하는 혼인정책으로 융화하였고, 호랑이부족과는 융화를 시도하다 실패하여 점차 무력으로 밀어냈다.
곰족과 호족에 대한 이야기는 흑룡강변 등지의 고아시아족의 시조이야기로 많이 남아있다. 이는 그들이 환웅족이 이동해 오기 전에 만주나 한반도에 살았던 것을 말해준다. 그들이 고아시아족이라 불리우는 이유가, 바이칼 및 시베리아 등지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 우리민족이나 다른 동이족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배달국시대가 1565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환웅천황들은 그 지역의 원주민인 곰을 토템으로 하는 곰부족과는 융화하면서 계속 통혼을 하였으나, 범을 토템으로 하는 범부족과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결국 곰족과 호족을 지칭한 것이다.
일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 곰족과 호족을 곰과 호랑이로 둔갑시킨 것이다. 우리 민족을 짐승의 후손으로 몰고 간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를 모호하게 만들고 민족의 자존심을 없애려 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일제가 얼마나 교활한 술수를 하였는가를 엿볼 수 있다.
배달국의 마지막 18대 거불단(居弗檀) 환웅천황이 웅씨의 왕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출산하니, 그가 바로 단군조선을 개국한 초대단군 왕검이시다. 초대단군 왕검은 38세 때 구환국을 다시 통일하여 도읍을 송화강 부근의 아사달(하얼빈)에 정하고, 개천 1565년 10월 3일에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참역사는 단군설화가 허무맹랑한 설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단군(檀君)’은 소도에서 제천을 주관하던 제사장으로 천군(天君)이라고도 하며, ‘왕검(王儉)’은 통치자(임금)를 뜻한다. 따라서 ‘단군왕검’은 제정일치사회의 최고통치자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강화도 마니산에 가면 참성단(塹城壇)이 있는데, 그 곳이 초대단군 왕검이 제천단을 쌓고 하늘에 천제를 올렸던 곳이다.
지금 우리는 단군조선은 그 실체가 의심스럽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 역사는 기자의 후손이 건국한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긴가민가 하는 애매한 내용으로 단군을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불투명한 교육은 우리 국민들을 동시에 속이는 것이다.
도대체 국민을 동시에 속이는 교육이 어느 나라에 또 있겠는가. 아무튼 그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 역사가 2천여 년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자나 석가 그리고 예수 이전에 우리 민족은 이미 훌륭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고 있었는데도, 그 부분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조선은 BC 2333년~BC 238년까지 2096년 동안 47대의 왕위가 이어졌다. 고고학에서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청동기 문화의 시작을 BC 2400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고조선 왕국의 건국시점인 것이다.
단군왕검은 전국을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아사달(하얼빈)을 수도로 한 진한(辰韓)은 단군왕검이 직접 통치했고, 당산시를 중심으로 한 번한(番韓)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마한(馬韓)은 부단군을 두어 통치하게 했다. 이러한 통치제도를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라 한다.
단군조선시대는 일반적으로 3단계로 구분하여 말하기도 한다. 초대단군 왕검부터 21대 소태 단군까지(BC 2333~BC 1286) 1048년간을 ‘송화강 아사달 시대’ 라고 부르고, 이후 22대 색불루 단군부터 43세 물리 단군까지(BC 1285~BC 426) 860년간을 ‘백악산 아사달 시대’ 라 하고, 44대 구물 단군부터 47대 고열가 단군까지(BC425~BC238)를 ‘장경당 아사달 시대’ 라 한다.
이와 같은 한민족의 역사를, 전 세계 역사에 달통한 세계적인 지성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민족의 역사와 사상을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우리한민족 은 말할것도없고 일본인 중국인. 유태인. 미국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유럽인, 할것없이 전 인류는 한민족 일것입니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일묘연만왕만래가 진리 일찐대 말이죠 ㅎ 다만 그 역사를 그 당위성을 지금 존재하고있는 남북한동포 해외동포들이 압장서서 전인류에게 보여주는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오옴 나마스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