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의 종
유다서 1-2절
유다서는 당시 소아시아를 휩쓸며, 중근동 일대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던 영지주의자들의 이단 사설을 제지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혼은 거룩하지만, 육신 즉 물질은 부정하다는 이원론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였고, 극단적으로 도덕 폐기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 가운데는 부도덕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들을 가리켜 10절에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만 행하고, 그 죄 때문에 멸망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가 없기 때문에, 오직 인간의 본능으로만 생각하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모두 종을 거느리고 싶어하는 곳이기 때문에, 자신을 누구의 종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정말 주인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의 종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한, 누구의 종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종이요, 형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는 믿음이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과,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는, 목숨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절에 사도바울은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베드로후서 1장 1절에 베드로 역시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누구의 종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재산의 일부분이 되는 노예를 말하는 것이므로, 자신이 스스로 노예라고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피를 나눈 형제이지만, 예수님께서 성자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야고보의 형제라고 밝히면서, 자신이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7장 2-5절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오자 예수님의 친형제들은, 유대에 가서 기적을 행한다면, 단번에 유명해 질 수 있다고 하면서, 예수님에게 유대에 가서 기적을 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부추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기적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왕 기적을 행할 바에는, 사람들이 많은 유대에 가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든지, 아니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일으킨다면, 단번에 유명해 질 수 있다고 말해 준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이 비록 예수님의 형제이지만, 메시아로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이 형제들의 말을 듣고, 유대에서 기적을 행하기만 한다면, 자기들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예수님을 이용해서라도, 유명해지기를 원하고, 많은 재산을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육신을 치료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세상에서 유명해지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표적이었습니다.
이것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려고 할 것이며,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데마처럼 세상으로 나갈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유다는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모친인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과 더불어 약 120명이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의 삶을 보면서, 점차 마음을 열었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그 믿음위에 성령께서 임하셨으므로, 유다는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처음에,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육신의 형제를 메시아로 믿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죄 된 인간을 구원하러 온 하나님이라고 형이 말을 했을 때, 유다가 황당해 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고 드러나는 신성을 보면서, 유다는 점차 친형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구세주라는 것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42절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을 때, 여인은 유대 남자가 자기에게 말을 거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를 하면서, 자기가 진짜 메시아를 만났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즉시, 사람들에게 뛰어나가 자기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 즉 그리스도를 만나러 오라고 전했습니다.
여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인 때문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은 이틀 동안 들은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구세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직접 듣고, 메시야를 영접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처음에는 전도하는 성도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지만, 제자들처럼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님의 희생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위에 성령께서 은혜를 주시므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들이 마음을 열고 영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나 형제들이 쉽게 믿어주지 않는 것을 보면서,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오직 믿음의 삶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지 않는 가족이나 이웃에게, 나처럼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까?
하지만,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에게 믿음으로 사는 선한 삶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러분은 물론 그리스도까지 조롱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귀한 분인지, 그 분의 종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삶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날마다 교회에 가자고 간청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는 편리에 의해서 마음대로 주일에 빠지고, 십일조를 사용하고, 혈기를 내고, 세상에서 쾌락을 즐기고 살면서, 입으로만 복음을 전한다면, 그 누구의 영혼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지만, 성도들은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과 하나님을 저울질하면서 고민하는 것이 바로 죄이며, 바벨탑이며, 선악과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들리지 않거나 의심을 한번도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러분만큼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내기 바랍니다.
저는 결정하기 힘든 문제가 생겼을 때, 제 마음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욕심이 원하는 마음과, 선한 양심이 가르쳐주는 답을 모두 기록합니다.
본성이 악한 인간이기 때문에, 욕심대로 행하고 싶을 때가 있으므로, 거짓없이 다 기록해 놓은 그 가운데, 말씀을 세워 놓고, 하나씩 지워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제가 하기 싫고, 선택하기 싫은, 그리고 조금은 억울한, 하지만, 선한 양심으로 기록해 놓은 것만 남습니다.
그것은, 무조건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선한 양심이 시키는 선한 결정이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제가 성도이기 때문에, 비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라도, 제가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과 행함은 절대로 후회를 남기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선을 택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간구하는 자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과 일치 된 삶을 사셨기 때문에, 부모와 형제도 구원하였고 하나님의 인정도 받았습니다. 이런 인정을 받는 성도가 될 때, 하나님은 무엇이든 맡기실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글을 써 놓았는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약 칠 천 가지의 언약의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이 언약은, 쇼핑몰에서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입하는 것처럼, 행함이 있는 믿음은 바로 하늘나라의 지폐와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 돈으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약 칠천가지의 축복을, 상품이라고 생각한다면,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축복을 구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하늘나라의 축복을 살 수 있는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어려움에서 건져달라고 기도만 할 뿐, 하늘나라의 축복을 살 돈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것이, 바로 지폐를 마련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축복은 물론, 믿음의 형제들의 축복도 함께 살 수 있는 많은 상급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유다가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믿음의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그 분은 이 땅의 주인이면서, 하늘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는 날까지 동일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죽음의 자리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언약을 붙들었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의 보좌앞에서 면류관을 쓰고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죽음으로 지켰던 그 구원을, 여러분도 동일하게 받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으로 지켜야만 받는 구원을,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므로, 주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조상들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 시대는 다를 것입니다. 삶의 모습도,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겠지만, 동일한 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며, 구원을 위해서 믿음을 행위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든 언약이 동일하며, 믿음이 동일하고, 구원이 동일하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기 쉬운 시대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과,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성취를 여러분이 충만한 믿음으로 지켜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37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을 부흥시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도 드리도록 간청하는 마음을 주실 것이며, 그들이 기도했을 때, 그들을 양떼처럼 불어나게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 드리고 싶은 마음과, 기도 드렸을 때 응답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기도를 드리고, 응답을 받는 것은, 성도들이 행함으로 보여야만 되기 때문에, 순종과 사역의 동참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유다처럼, 담대하게 세상을 향해 심판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세상을 풍요롭게 살려고 하지 말고, 자신을 희생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과 겸손한 마음을 갖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서 부흥의 역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말씀대로, 행하고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제자들과 사도바울은 가르쳐주신 말씀만을 전하며, 자신의 육신의 안목과 정욕을 모두 버렸습니다.
주인이 전하라는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않고, 그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섞는다면, 그 종은 주인에게 크게 꾸지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의 생각을 담아서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절에 유다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믿음으로 살고 있는 성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고 계신 성도인 것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말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을 가리키던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이된 호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더욱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한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1장 7절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축복하였습니다.
성도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죄인인 우리들을 불러주셨기 때문에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공로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은, 그들의 왕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하셨기 때문인 것처럼, 성도들을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왕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지 못하고, 세상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은 알고 깨달은 만큼, 그의 삶에서 믿음의 행위로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도의 믿음을 보호하시고, 험한 세상에서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게 하시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한다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재림 때 거룩한 삶을 살아온 성도를 모두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히 부르시고, 보호하시며,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한 일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간의 의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흙탕물과 같은 세상에 동참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해서든 그 흙탕물에 뛰어들기 위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거룩하게 보존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흙탕물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 하심속에서 성도가 거룩하게 사는 것만이, 영과 혼과 몸을 온전히 보존하는 방법입니다.
유다는 거짓교사들에게 속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이 편지를 읽은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믿음을 지키라고 엄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확신이 없거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중심에 세우지 못하면, 거짓교사들이 거짓복음을 전하는데도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성도들의 삶은 분명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성도에게 긍휼과 평강과 사랑을 주신다면, 여러분은 그 사랑을 믿고, 믿음으로 결단해야 하며,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새 언약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부활한 자로 기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유다가 쓴 편지에는 진리 위에 굳게 서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성도들이 안타까워, 화가 내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는 유다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갖는 동일한 마음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성도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받은 성도들이, 믿음을 보여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특별한 잔치에 초대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있는 성도이므로, 죽도록 충성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조춘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