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휴쌍아(裴休雙兒)
乞人觀相雙童兒 十年前後政丞顔
裴度裵度兩兄弟 觀相不如心相例
<和翁>
거지 관상 걸인 쌍둥이가
십년 전후로 정승의 얼굴로 바뀌었네,
배도 배탁 두 형제는
관상이 심상만 같지 못하다는 한예 일세 그려!
배휴(裴休)는 당(唐)나라 때 정승을 지낸 불심(佛心)이 돈독(敦篤)한 재가(在家) 거사(居士)다. 자료에 의하면 태어날 때 등이 한몸에 붙은 일란성(一卵性) 쌍둥이였다. 부모가 칼로 등을 갈라 둘로 나누어 키웠는데, 살이 많은 쪽이 형(兄) 배도(裵度)라고 하고, 살이 적은 쪽을 배탁(裵度)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한자(漢字)로 도(度)는 법도(法度) 도자(度字)로 쓰기도 하고, 헤아릴 탁자(度字)로 쓰기도 한다. 한날, 한시에 쌍둥이로 태어났으니까, 형은 도(度)로 부르고 아우(弟)는 탁(度)이라 불렀다. 배휴(裴休)는 형(兄)인 배도(裵度)가 장성한 뒤에 부른 이름이다. 배휴(裴休) 형제는 부모를 일찍 잃어서 외삼촌(外三寸) 집에 의탁(依託)해서 자랐다. 불심이 깊은 외삼촌 집에 탁발(托鉢) 나온 고승(高僧)이 외삼촌(外三寸)에게 물었다. 배휴 형제를 보고 저 아이들은 누구입니까? 나의 조카 생질(甥姪)들인데, 조실부모(早失父母)을 해서 제가 데려다가 함께 삽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내가 저 두, 조카들 관상(觀相)을 보니, 둘다 빌어먹을 거지 관상이오, 저 두, 아이들을 빨리 이 집에서 쫓아내시오, 저, 아이들과 함께 살면 이 집부터 망(亡)해 갈 것이니, 집안이 망하기 전에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오, 스님이 돌아간 후 배도(裴度)가 말했다. 외삼촌(外三寸) 저희가 집을 나가겠습니다. 외삼촌이 놀라며 가기는 어디로 간단 말이냐? 조금 전에 스님께서 말씀 하시는 것 다 들었습니다. 저희가 외삼촌 집에 있으면 외삼촌이 망한다는데 저희들이 나가서 빌어먹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나가렵니다. 외삼촌의 극구 만류(挽留)에도 배도(裴度) 형제는 집을 나와서 전국 각지로 돌면서 거지로 빌어 먹었다. 하루는 절 목욕탕 앞에 진귀한 보배(婦人三帶)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보배를 주어서 이 좋은 보물을 누가 잃어버렸을까?, 하고 보물(寶物) 주인(主人)을 찾아주려고 임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보배(婦人三帶) 주인은 이 고을에 사는 자사(刺使)에게 죄를 지어서 보물을 받쳐 3대 독자 외 아들을 살리려고 촉(蜀)나라까지 가서 구해온 보물인데 잃어버렸다.
삼대독자(三代獨子) 모친(母親)이 절 목욕탕(沐浴湯)에서 목욕(沐浴)하고 나오면서 보물을 잃어버려서 집에 갔다가 허겁지겁 찾으려고 목욕탕에 와서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데 왠 거지가 서 있기에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여기 떨어져 있는 보물 주운것 없소? 내가 주어서 챙겨놓고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하고 여인에게 부인삼대(婦人三帶) 보물을 돌려주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삼대독자(三代獨子)를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 배휴 형제는 빌어먹은 거지 생활을 하다가 두 형제가 결심을 했다. 우리가 이렇게 거지로 살다간다면 부모님 혼령도 편안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숯을 구어서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숯을 팔아 책도 사고 무술도 연마하고 숯이 팔다 남은 것은 이 숯은 저희들이 정성들여 구운 숯입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마음 놓고 갔다 쓰십시오,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도 공짜로 숯을 갔더 썼으니, 오는정 가는 정으로 쌀도 먹을 양식도 주고 갔다. 이렇게 거지 생활을 청산하고 숯을 구워서 동네 이웃에게 인심을 얻어 살다보니, 외삼촌(外三寸)도 소문을 듣게 되어 찾아왔다. 그리고 외삼촌 집에 들리라고 했다. 두 형제가 외삼촌 집을 방문했다. 때 마침 몇 년전에 외삼촌 집에 왔던 그 고승 스님도 와계셨다. 스님이 배도(裴度)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얘야! 너는 정승(政丞) 되겠구나! 스님께서 언제는 저희 형제가 빌어먹을 거지 팔자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런데 오늘은 정승팔자(政丞八字)란요, 거짓말 마십시오, 지난날에는 너의 얼굴이 거지 팔자가 가득했는데, 오늘 보니 정승심상(政丞心相)이 보이는구나! 그동안 무슨 일을 하였느냐? 배도(裴度) 배탁(裵度)이 그동안 살았던 일들을 자세히 말씀 드리자, 고승(高僧) 그 스님이 그러면 그렇지! 너희들의 용심(用心) 마음가짐이 거지팔자를 정승팔자(政丞八字)로 바꾸어 놓았구나! 그 뒤로 형(兄) 배도(裴度)는 정승(政丞)이 되고 동생(同生) 배탁(裵度)은 황하(黃河)의 뱃사공이 되어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건네주며 살았다는 일화(逸話)다.
관상이 심상만 같지 못하다는 일화다. <觀相不如心相> 거지팔자를 정승팔자로 바꾼 것은 오로지 선용지심(善用之心)에 달렸다는 가르침이다. 위산대원선사 경책문(潙山 大圓禪師 警策文)에 보면 소리가 부드러우면 메아리도 순하고 형상 모양이 곧으면 그림자도 단정하다. 인연법이 분명하니, 어찌 근심 걱정 하랴? 고로 경에 이르기를 가사 백천만겁에 지나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이 모일 때는 과보(果報)를 받는다고 했다.<聲和響順 形直影端 因果歷然 豈無憂懼 故 經云 假使百千劫 所作業 不無 因緣會遇時 果報 還自受> 한 생각 일념이 모양(相)이라고 했다.<一念相也> 주먹을 쥐려 하면 주먹이 쥐어지고<欲拳成拳> 손바닥을 펴려 하면 손바닥이 된다.<欲掌成掌> 이것이 불교의 인과론(因果論)이다. 배휴 형제는 현세(現世)에 짓고 (現世)에서 받는 인과(因果)다. 마음도 물리법칙(物理法則)과 같아서 무거운 곳으로 떨어 진다.<心如多端 重處便墜>는 이치(理致)다. 배휴는 벼슬길에 올라 지방 자사를 거쳐서 정승이 되었다. 당나라 때 재가거사(在家居士)들도 수행정진(修行精進)을 해서 오도송(悟道頌)을 많이 남겼는데, 배휴(裴休) 거사는 오도송(悟道頌)도 선시(禪詩) 게송(偈頌) 하나가 없다. 화옹(和翁)이 그래서 배휴(裴休)의 쌍둥이 선화(禪話)를 보고 칠언절구(七言絶句) 게송(偈頌)을 작게(作偈)했다. 황벽선사(黃檗禪師) 법문(法門)을 듣고 모아서 전심법요(傳心法要)와 완릉록(宛陵錄)도 편찬(編纂)하였다. 배휴거사가 처음 황벽선사를 만나 인연을 살펴보자. 하루는 배휴가 황벽 선사가 머물고 있는 사찰을 찾아가서 객기(客氣)를 부린 내용이 아래 선문답(禪問答)이다. 황벽희운 선사가 일찍이 대중들을 흩어 보내고 홍주 개원사에 살았는데 배휴 상국이 하루는 절에 들어와서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고 원주에게 물었다. “벽에 그려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 원주가 말하였다. 고승이오. 형상은 볼 수 있으나 고승은 어디를 갔는가? 원주가 아무 말을, 못하였다. 배휴가 말하였다. “여기에 선사는 없는가?”
“희운 상좌라는 이가 있는데 아마도 선사 같소. 배휴가 드디어 황벽 선사를 불러서 앞에서 원주와 같이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황벽 선사가 말하였다. 다만 묻기만 하라. 배휴가 말하였다. 형상은 볼 수 있는데 고승은 어디에 갔습니까? 황벽 선사가 배상공! 하고 부르니, 배상공이 대답하였다. 황벽 선사가 말하기를, 고승이 여기에 있네. 배상공이 그 말에 크게 깨달았다.< 黃蘗運禪師 曾散衆 在洪州開元寺 裵休相國 一日入寺 見壁間畵相 問院主云 壁間是什 主云高僧 休云 形儀可見 高僧向甚處去 主無語 休云 這裏莫有禪和 主云 有希運上座 頗似禪和 休遂召師 擧前話似之 師曰但請問來 休云 形儀可見 高僧向甚處去 師召相公 公應諾 師曰 高僧在者裏 公於言下 領旨> 절에는 조사전(祖師殿)이 있다. 역대 조사님들의 진영탱화(眞影幁畵)를 모셔둔 곳이다. 배휴(裴休)도 원주(院主)에게 묻는 곳이 조사진영(祖師眞影)을 보고 물었는데, 선승(禪僧)이 아니라 거사(居士) 질문(質問)을 받고도 유구무언(有口無言) 꿀 먹은 벙어리다. 절집 수행은 이렇다. 모르면 거사에게도 당한다. 그래서 배휴는 참선하는 선승이 있느냐고 물었다. 안내한 곳이, 온 지가 얼마 안 된 황벽선사다. 똑같은 질문에 한, 칼에 승부(勝負)는 끝났다. 탱화(幁畵)에서 고승을 찾는 거사의 어리석은 질문(質問)에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배 상공! 예! ”그대가 찾은 고승(高僧)은 그, 예! 속에 있네. 언하대오(言下大悟)란다. 그래서 평생 스승으로 모셨다는 전심법요(傳心法要) 선화(禪話)다. 황벽선사는 황벽희운(黃蘗希運), 시호(諡號)로는 황벽단제(黃蘗斷際)라고도 부른다. 황벽선사 시호는 당나라 선종(宣宗) 황제(皇帝)가 내린 시호(諡號)다.
선종(宣宗)이 염관사에서 머문적이 있었다. 황벽 선사도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는데 하루는 선종이 황벽선사에게 묻기를 왜? 부처를 신봉(信奉)하지 말라고 법문하면서 예불(禮佛)은 왜? 합니까? 황벽선사가 대답(對答)은 하지 않고 뺨을 다짜고짜 몇 차례 후려쳤다. 선종(宣宗)은 그 후로 환궁(還宮)하여 황제(皇帝)가 되었다. 재상(宰相) 배휴(裴休)가 선종에게 항벽선사 시호를 부탁하자. 옛날 염관사에서 뺨을 맞았던 일이 생각나서 거친 사문이라는 뜻으로 추행사문(麤行沙門)이라고 호를 내렸다. 배휴가 황제의 감정이 있음을 알고 아뢰기를 폐하에게 3번 손찌검을 당한 것은 삼제(三際)의 윤회(輪廻)를 끊어주기(斷) 위함입니다.’라고 하자, 선종은 마음을 돌려 단제(斷際)라는 호를 내려 주었다는 선화(禪話)다. 배휴의 간청으로 황벽선사는 완릉(宛陵) 개원사(開元寺)에 홍주(洪州) 대안사(大安寺)에 머물렀다고 한다, 배휴(裴休)가 임종(臨終)할 때 황벽선사는 미리 알고 배휴(裴休)집에 머물면서 그의 임종(臨終)을 지켜보았다. 배휴가 사경(死境)을 헤매다가 혼미(昏迷) 상태에서 잠깐 깨어나서 저승에서 겪었던 일을 말했다. 저승길에 들어가니, 다리가 있으나 걸을 수 없고, 눈은 있으나 볼 수가 없었다, 억지로 힘들게 50리쯤 가다가 지쳐서 쓰러진 곳이 연못가였다. 연못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떤 노승(老僧)이 들어가지 못하게 소리를 쳐서 순간 눈을 뜨고 보니, 황벽 선사님을 뵙게 되었다고 말했다. 만일 그대가 노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배상공(裵相公)은 용(龍)이 될뻔했소! 그려! 했다는 선화(禪話)다. 조사선문(祖師禪門)에서는 안광낙조(眼光落照) 시(時)에 거기처(去其處)가 분명(分明)해야 한다고 했다. 숨 떨어질 때 정신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면 육도(六道) 윤회輪廻)은 뻔한 일이다. 오늘은 황벽선사와 배휴의 인연을 반추(反芻)해 보았다. 불조(佛祖) 오도화(悟道話)는 선화(禪話)는 오늘로써 마칩니다. 여여법당 화옹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