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로 길어진 봄·여름
조증 등 계절성 기분장애에 악영향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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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봄 시작 시기가 앞당겨지면 일조량의 영향을 받는 계절증 조증 재발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제기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정신건강의학과 질환 극복기를 나누는 네이버 카페 ‘코리안매니아’에서 활동하는 김모씨. 그는 봄에 경조증이 자주 재발하는 편이다. 작년엔 평소보다 이른 시기에 경조증 재발 조짐이 보여 병원을 찾았다. 김모씨는 “친구와 통화하다가 갑자기 기분이 굉장히 들뜨고,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말이 많아지는 걸 느꼈다”며 “담당 전문의를 찾아가 봄이 빠르게 오면 경조증 재발 시기도 빨라질 수 있냐고 하니 그럴 수 있다더라”고 말했다.
그때 의사의 권유로 약을 바꾸고 아직은 경조증이 재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카페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그는 “확실히 봄이 올 때쯤 되면 경조증 환자들이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라며 “재발 조짐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봄이 이르게 오는 만큼, 봄에 조증 재발이 잦았던 분들은 경조증 대비 시기를 앞당기는 게 좋겠다”는 게시글도 올렸다.
길어진 봄·여름이 ‘계절성 기분장애’에 악영향 미칠 가능성
조증은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격양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신체·정신적으로 활발해진다는 건 장점이지만, 과도하게 활발해진 탓에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허황된 사업을 기획하거나, 잠을 자지 않아도 활력이 넘쳐 밤새도록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이 그 예다. 조울증은 기분이 최고조로 치솟는 ‘조증’과 최저점으로 꺼지는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다.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는 환자 일부는 계절을 탄다. 더 정확히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일조량’의 영향을 받는다. 동국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교수는 “일조량이 줄어들면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어 우울증이 잘 생긴다”며 “조증은 이와 반대로 일조량이 늘어나면 잘 생긴다”고 말했다.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는 일조량이 줄어드는 늦가을~겨울에 세로토닌 분비량이 떨어지며 울증을, 일조량이 비교적 늘어나는 봄~장마 이전의 여름에 조증을 경험하곤 한다. 기상청 종합 기후변화감시정보에 따르면 1,2월 평균 174시간이었던 일조시간은 3, 4, 5월에 각각 203, 214, 231시간으로 뛴다.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6~7월에 일조시간이 감소했다가 8월 들어 다시 느는 경향이 있다. 사공 교수는 “실제로 봄이 되면 진료실에서 조증 환자들을 자주 만난다”고 덧붙였다.
아직은 실증 연구 미비하나… ‘이론적 가능성’은 존재
문제는 지구 온난화로 기후가 변하며 봄·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기상청이 1991~2020년의 기후 관련 데이터와 1991~2010년까지의 데이터를 분석·비교한 결과, 전자에서 봄과 여름이 4일씩 길어지는 동시에 2~6일 빨리 시작되고, 겨울은 7일 짧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과 열대야 현상은 각각 1.7일과 1.9일 증가했지만, 한파일수는 0.9일 줄었다.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가 조증 재발이나 악화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실증적 연구는 미비하다. 그러나 가능성은 제기된 상태다. 작년 영국 옥스포드대와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세계경제포럼(WEF) 아젠다 글에 따르면, 습도와 온도 등 기후 인자는 조울증 환자의 조증 발현과 인과관계를 갖는데, 두 요인 모두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사공정규 교수는 “엄밀히 말하면 ‘계절’이라기보단 ‘일조량’ ’온도’같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요소가 조증과 울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나, 이론적으로는 지구 온난화로 봄·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면 계절성 조증이 더 일찍 발현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증상 없어도 치료해야… 재발 신호는 ‘과도한 고양’
물론 모든 조증 환자들이 봄에만 재발하는 건 아니다. 조증이 발현되는 게 꼭 일조량이나 온도같이 계절적 요인의 탓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조증은 유전적 원인과 심리사회적 원인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해서다. 다만, 계절에 민감한 일부 환자들은 봄에 조증 재발이 잦곤 하다. 재발이 흔한 질환이니만큼 꾸준하게 치료해야 한다. 노원 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의중 교수는 “우울증이든 조증이든 증상이 나아졌다고 바로 치료를 중단하면 안 된다”며 “당장 괜찮은 것 같다고 치료를 중단한 환자의 90%는 재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증상이 사라진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까지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
조증 재발 조짐은 환자 대부분이 쉽게 알아차린다. 자신도 체감할 정도의 변화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의중 교수는 “기분이 이상하게 들뜨고, 갑자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목표 지향성 행동을 계속해서 추구하게 된다면 조증 발현 조짐일 수 있다”며 “재발했다는 건 기존에 먹던 약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뜻이므로 약의 종류를 바꾸거나 원래 먹던 약의 복용량을 늘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증상 완화엔 주로 기분 안정제(Mood stablizer)가 쓰이며, 간혹 항정신병약물도 처방된다.
이해림 기자 lh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