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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의 여자⊙
카바레의 밤은 날마다 새롭다. 항상 같은 불빛 아래 같은
음악이 흐르고 있지만 그 아래에서 돌고 도는 사람들은 매
일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철은 카바레를 들어설 때마
다 가벼운 흥분마저 느끼곤 했다.
오늘도 동철은 어김없이 카바레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
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동철은 문득 구의동에 새
로 카바레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 오늘은 그
곳 물이 어떤가 답사를 해보자, 하며 동철은 차를 돌렸다.
플로어에는 벌써부터 발 디딜 틈도 없이 쌍쌍의 남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평일 중 손님이 가장 붐비는 날이
바로 화요일일 것이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은 괜히 일
에 지쳐 여유를 갖기 어렵다. 하지만 화요일은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된다. 따라서 춤바람난 불나비뿐 아니라 샐러
리맨들도 퇴근 후에 직장동료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카
바레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늘은 초장부터 일이 잘 풀리려는 것일까? 카바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웨이터 하나가 쏟살같이 달려왔다.
「선생님 아니십니까? 저 모르시겠습니까? 신설동 카바
레….」
그 웨이터는 동철이 교습소 조교로 있을 때 교습생들을 데
리고 다니던 신설동 카바레에서 보조 웨이터를 하던 친구였
는데 이곳 웨이터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미 동철의
춤실력을 알고 있는 웨이터는 서비스로 양주와 과일안주를
제공하는 등 VIP 모시듯 동철을 극진히 대접했다.
웨이터는 이곳이 실내장식은 물론 물도 좋은 곳이라며 자랑
했다. 더구나 자기의 여자 단골고객도 제법 많다며 동철에
게 자주 찾아줄 것을 권유했다.
「선생님, 오늘은 꼭 제 손님하고만 손을 잡아주셔야 합니
다.」
웨이터는 곧 춤상대를 데려오겠다며 뛰어갔다.
잠시 후 웨이터가 동철을 불렀다. 동철은 플로어로 나갔다.
한 여자가 동철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검정색 주름치마
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동철 역시 곤색 양복을 입
고 있어 마치 댄스대회에 나온 한쌍의 커플 같아 보였다.
동철은 그녀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탱고 음악에 맞춰 춤
을 추기 시작했다. 다른 음악보다도 탱고와 왈츠는 춤이 서
로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기에도 흉할 뿐더러 춤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잘 추는 사람끼리 추면 추는 당사자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환상적인 춤이 된다.
그런데 이 여인의 춤은 수준급이었다. 동철은 이미 그녀의
옷차림에서부터 감을 잡고 있었지만 몸매, 의상은 물론 태
도와 춤솜씨까지 모두 갖추었다.
동철은 경쾌한 스텝을 밟다가는 스텝을 딱 끊기도 하고, 전
진을 하다가 허리를 꺾어 안기도 했다. 그러면 그녀의 가는
허리는 보기 좋게 휘었다가 탄력 있는 대나무처럼 일어섰
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느린가 하면 빠르게 하고, 빠르다
하면 정지하고, 정지되는가 싶으면 두세 바퀴 돌리는 등 고
난도의 기술을 펼쳐도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동철의 리드를
잘도 따라왔다.
동철이 그녀를 돌릴 땐 치마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위로 올
라가 그녀의 잘 빠진 하체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속옷까지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것이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키
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춤은 마치 한쌍의 호랑나비가 짝짓기를 하며 사랑놀
음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도 동철의 순발력과 춤솜씨에 넋을 잃
을 정도였다. 그녀는 동철에게 몸을 맡긴 채 구름 위를 나
는 선녀처럼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때 음악이 끝나려는 듯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이
때 동철은 그녀를 연속으로 다섯 바퀴 정도 돌리다 그녀의
목을 왼팔로 감으며, 그녀의 회전동작이 동철의 앞에 왔을
때 그녀의 입술에 ‘쪽’ 하고 키스를 했다. 키스와 함께
음악이 끝나자 그들의 황홀한 춤을 넋을 빼고 바라보던 사
람들에게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졸지에 입술을 도둑맞은 셈이었
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곱게 흘기며 미소 지은 채 뒤이어
흐르는 블루스 음악에 몸을 맡겼다.
그녀는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몸을 착착 감겨왔다. 그러
나 동철은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가는 허리
를 더욱 힘있게 안았다. 그녀는 탄성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
리를 끊임없이 내면서 동철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었다.
‘이 여잔 어떤 여자일까? 겉보기에는 돈이 꽤 있어 보이는
데….’
오늘은 어떤 식으로 이 여자를 구워삶을까 생각하던 동철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때 동철
의 눈에 아주 낯익은 듯한 얼굴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동철의 시선이 입구에 고정되었다. 입구에선 한쌍의 남녀가
웨이
터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동철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그의 얼굴은 반가움과 난처함이 교차하는
야릇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이때 음악이 끝났다. 동철은 잡고 있던 여자의 손을 놓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녀는 동철의 그런 동작에 전혀 예상 밖이란 표정을 지었
다. 그러나 이내 곧 목례를 하고는 쓸쓸히 자리로 돌아갔다.
동철은 자리로 가서 아까 본 얼굴을 찾았다. 그들은 동철과
몇 테이블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자의 뒷모습
과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분명 박미경이었다. 10년이 지났어도 동철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던 그녀의 모습 그대
로였다. 어찌 그녀를 잊을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첫사랑이
며 옥바라지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를.
동철의 시선은 잠시도 그녀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몇 잔의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자가 일어나 손
을 내밀며 그녀에게 플로어로 나갈 것을 권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남자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플로어에 마주선 둘은 행복한 표정으로 다정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솜씨로 보아 꽤 오랫동안 이곳에 출입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능숙하게 그녀를 리드해 나갔
다.
동철은 그녀를 보고 있으니 잊혀졌던,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자꾸만 스쳐 지나갔다. 그해 여름의 기억과
첫 구속 후의 면회, 출소후 그녀와 여관에서 있었던 일, 기
억을 떨쳐 버리려고 고개를 흔들어보았지만 그것은 희망사
항일 뿐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법대에 들어가 고시준비만 하던 동철은 대학 2학년 여름방
학 때 같은 과 친구, 후배들의 간곡한 권유로 동해안으로
함께 여행을 갔었다. 그때 1년 후배인 박미경을 처음 만났
다.
처음엔 그냥 쾌활하고 예쁜 후배라고만 생각했던 동철은 해
수욕장에서 자신있게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나타나는 그녀
를 보고 깜짝 놀랐다.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수영복 위로
드러난 풍만한 가슴과 곡선미, 그리고 박속같이 하얀 피부
가 눈부실 지경이었다. 동철은 태어나서 그렇게 멋있는 여
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수영도 잘했다. 동철도 수영이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바다에서의 수영이라 생각만큼 잘되질 않
았다. 그러나 그녀는 바닷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어느 남자
들보다도 빠르게 헤엄쳐갔다.
그들은 미경의 제안으로 물 속에서 공놀이를 했다. 공이 동
철 쪽으로 날아왔다. 공을 받으러 가던 동철은 미경과 부딪
히게 되었다. 그녀와 맨살이 닿는 순간 동철의 몸은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짜릿했다. 그렇게 미경과의 접촉이 반복
될 때마다 동철은 이상한 감정을 느끼곤 해서 되도록 그녀
와 떨어져 있으려고 피했다.
저녁이 되자 그들은 모닥불을 피웠다. 동해안은 밤도 아름
다웠다. 대학생활의 낭만을 모른 채 공부에만 열중하던 동
철은 생전 처음 캠프파이어라는 것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동철은 미경을 볼 때마다 낮의
그 이상한 감정이 떠오르곤 해서 얼굴을 돌리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다시 시선이 가서 얼굴을 붉히곤 했다.
미경이 다른 학생들과 자리를 비우는 것이 보였다. 화장실
을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잠시 후 비명과 함께 일행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뛰어가
보니 도망치듯 달려오는 여자들 뒤로 검은 그림자들이 보였
다. 그들에게 붙잡힌 두 명이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
버둥치며 울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미경이었다.
그들은 동네 불량배인 듯했으며 8명이나 되었다. 동철의 동
기인 태준이 나서서 그들을 만류했다. 그러자 그들은 갑자
기 몽둥이로 태준을 후려쳤다. 태준이 ‘억’하며 나가떨어
졌다.
「이자식들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계집들 끼고 다니면
뵈는 게 없냐?」
「늬들만 재미 보냐? 우리도 재미 좀 보자.」
그들은 몽둥이로 남자들을 위협하며 미경과 다른 여자를 끌
고 가려했다. 그때 동철이 그들 앞을 막았다.
「좋게 말할 때 그만 가시죠.」
「이새끼, 맛 좀 봐야겠군.」
그들은 몽둥이를 동철 일행에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싸움은
순식간에 패싸움으로 번졌다. 그러나 그들과 동철 일행과는
애초부터 싸움이 되지 않았다. 모두 몽둥이에 나가떨어지고
동철만 남았다.
동철은 순간적으로 이럴 땐 우두머리를 공격해서 기선을 제
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동철은 두목으로 보이는 자를 향
해 용수철처럼 뛰어올라 360도 회전 돌려차기를 했다. 순간
적인 반격에 우두머리는 주춤했고 그 순간을 노려 동철은
기합소리와 함께 온 힘을 모아 뒤돌려차기로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우두머리는 ‘윽’ 하는 외마디소리를 내며 앞으로 푹 고꾸
라지더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불량배들은 단숨에 기가 꺾
였다. 한참 후에야 그는 겨우 의식만 차린 채 동철을 노려
보더니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사라졌다. 동철 일행은 그
대로 짐을 꾸려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잠들
지 못하고 아까의 그 악몽과 동철의 태권도 실력에 감탄하
며 밤을 지샜다.
다음날 서울로 돌아온 그들은 기분전환도 할 겸 마지막 아
쉬움을 즐기기 위해 청량리에 있는 어느 백화점 안의 스탠
드바로 들어갔다. 광란하듯 울려퍼지는 밴드 음악과 조명
불빛의 엇갈림으로 동철은 처음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서서히 홀 안의 윤곽이 시야에 들어오며 광란의 몸
짓으로 몸을 흔들어대는 남녀의 육감적인 동작들이 보였다.
모두 스테이지로 나갔고 동철도 끌려나가다시피 했다. 미경
은 고고 솜씨도 일품이었다. 쭈삣쭈삣 서 있는 동철을 붙잡
고 흔들어대던 미경은 음악이 블루스로 바뀌자 어젯밤 은혜
를 갚는다며 동철의 손을 잡았다.
동철은 엉덩이를 뒤로 빼며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그럴수록
미경은 더욱 밀착해 들어왔다. 샴푸 냄새며 여자의 독특한
향기가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미경의 가슴이 동철과 맞닿
자 동철은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발을 잘못 떼어 미경의
허벅지 부분에 닿는 순간엔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온몸이
얼어붙으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 춤을 추었는지 모르게 음악이 바뀌었고 동철은 자리
로 돌아왔다. 아직까지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뛰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미경이 술을 따라주며 미소 짓고 있었
다.
그날 밤 동철의 꿈에 미경이 나타났고 아침이 되자 팬티가
축축히 젖어 있었다. 하루 종일 미경의 모습이 동철의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 경찰이 찾아왔다. 그날 동철에게 맞은 사람
이 죽었다는 것이다. 동철은 구속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나마도 미경이 여기저기 구명운동을 한 덕이었다. 교도소
에 있는 동안 미경은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며 2년
내내 옥바라지를 해주었다. 출소 때도 제일 먼저 기뻐해 주
었다. 그리고 그녀의 순결을 범하진 않았지만 하룻밤을 같
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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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끝나지 않은 동철이의 사업(?)
잘 보고 갑니다.
잘보고갑니다
당케 쉔, ~~~~~
잘보고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