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25. 사람책 독서회 (16.5매)
아싸 코로나
(남명모)
(1)대구 신천지 사태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던 때였다.
퇴근해서 주차장까지 들어온 사위가 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직장 동료가 폐렴 증세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다음날 확진 여부가 가려진다는 거였다. 사위는 그 친구와 함께 점심도 먹고, 차도 마셨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모양이었다.
(2)전화를 엿들은 집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일단 자동차 안에 있어 보라 했다. 맞벌이하는 딸네와 어린 손녀들과 함께 사는 우리는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아내는 엘리베이터 버튼도 나무젓가락으로 누르는가 하면, 문밖에 한 발짝만 나갔다 들어와도 무조건 손부터 씻으라는 사람이니 이런 상황에 가만있을 턱이 없었다. 일단 딸네 방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거실 바닥에 깔았던 스펀지를 세워 통로를 따로 만들었다. 누구든 거실로 나올 때는 무조건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선언했다.
(3)두 손녀를 할아비가 쓰는 안방으로 불러들여 오늘 밤은 여기서 자라고 했다. 초등 3학년 큰 손녀가‘아싸!”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발목이 삐어서 깁스할 때도‘아싸’를 외치더니 코로나로 휴학을 할 때도‘아싸’를 부르짖던 아이였다. 녀석은 작은 변화도 즐거운 모양이다.
손녀들은 자기들의 이불과 베개를 신바람 나게 할아비 방으로 옮겼다. 동화책과 장난감, 인형도 무더기로 날랐다. 색종이 접기도 해야 한다며 가위, 풀, 스카치테이프도 챙겼다. 손녀들의 대이동이 끝나고서야 사위가 올라와 죄지은 사람처럼 바리케이드를 들치고 들어갔다.
(4)각각의 방에 저녁밥이 제공되었다. 우리 방에도 턱없이 소박한 밥상을 들고 온 아내가 손녀들이 밥 투정을 못 하게 미리 엄포를 놓았다.
“주는 대로 먹는다! 알았지!”
손녀들은 오늘 밤 이벤트를 생각해서인지 순순히 밥을 잘 먹었다. 밥을 먹던 유치원생 작은 손녀가 할머니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할머니, 엄마하곤 싸우지 마! 내가 너무 불편해!”
요것 봐라 싶었던지 아내가 짐짓 정색하며 되물었다.
“그래? 너 보기엔, 내가 잘못하는 것 같니? 니네 엄마가 잘못하는 것 같니?”
“나는 할머니도 좋아하고 엄마도 좋아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우린 가족이잖아!
아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어쩜 너는 하는 말마다 내 맘에 쏙 드냐!”
(5)병설 유치원에 다니는 작은손녀는 학교에서도 똑 부러진다. 아침에 등교할 때 정문에서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환영하는데, 모든 학생들은 절만 꾸뻑하고 들어가지만, 손녀는 멀리서부터 “교장 선생니임!”하고 소리를 지른다.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오, 김ㅇㅇ 왔구나!” 하는 대답을 듣고서야 들어가는 아이다.
(6)오늘 낮에만 해도 그랬다. 내가 외출에서 들어오다가 자전거 타는 꼬마들의 무리를 만났다. 같이 섞여 있던 작은손녀가 모든 자전거를 세우고 친구들을 불러 할아비를 소개했다.
“얘들아, 우리 할아버지야! 우리 할아버지는 수필가인데, 얼마나 똑똑하다고.”
낯 뜨거운 소개에도 바보 할아비는 엔도르핀이 솟구쳤다.
(7)할머니의 지지를 받은 손녀들이 할아비의 방을 완전 점령하고, 방바닥을 장난감으로 도배했다. 사이좋게 잘 놀던 자매도 장난감 앞에서는 양보가 없다. 뜻이 안 맞으면 철천지원수를 만난 듯 이글거린다. 큰손녀는 세 살 더 먹은 값을 하려 들고, 작은손녀는 할머니 할아버지 배경을 믿고 양양 거린다. 큰손녀가 인형 하나를 들고 소리쳤다.
“이건 너가 태어나기 전, 미국에 있을 때부터 내 것이었다. 그때 찍어둔 사진을 보여줄까?”
그렇게 당당하던 작은손녀도 증거가 있다는 데는 기를 못 쓰고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할머니가 큰 손녀보고 동생에게 양보하라고 중재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요. 제가 아무리 잘해줘도 소용없어요.”
속담 책을 사줬더니 자기가 써먹을 말부터 먼저 배웠는지 척척 잘도 갖다 붙인다. 이럴 때 누구 한쪽 편을 들었다간 싸움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8) 자매싸움이야말로 칼로 물 베기다.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새 다정하게 붙어있다. 이번에는 둘이서 ‘흥부 놀부’ 연극공연을 하겠다고 한다. 둘은 구석에서 소곤소곤 배역 분담을 했다. 처음에는 큰애가 해설 겸 놀부 역을 맡고 작은애가 흥부 역을 맡았다. 큰 손녀는 대본도 없는 해설로 맛깔나게 줄거리를 잡아갔다. 등장인물이 바뀔 때는 서로 눈짓만으로 얼른 배역을 바꾸었다. 대본을 보고 외운들 이렇게 유창하게 할 수는 없을 터이다. 박을 탈 때는 작은 애가 얼른 베개를 박으로, 빗자루를 톱으로 소품을 준비하는 재치도 보였다.
에너지가 넘치는 손녀들은 연달아‘백설공주’와 ‘아기돼지 삼형제’ 연극도 해치웠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다. 일인다역으로 지친 큰 손녀는 곧바로 인형을 안고 잠이 들었다.
(9) 작은손녀는 할아비의 침대 밑에서 할머니와 같이 누웠는데 아직도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그제야 옆 방에 혼자 격리된 아빠 생각이 난 모양이다.
“할머니, 우리 아빠 어쩜 좋지?”
할머니가 괜찮을 거라며 내가 기도해 줄 테니 어서 자라고 하자 손녀는 오늘은 자기가 기도할 거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도 눈 감으라고 했다.
“하나님, 우리 아빠 코로나 안 걸리게 해주세요. 은혜를 갚겠습니다. 못 갚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은혜를 갚겠다는 말의 의미가 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그 마음을 먼저 아신다고 한다. 손녀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이튿날 그 직원은 음성 판정을 받았고, 거실의 바리케이드도 걷어치울 수 있게 되었다. 혹여 같이 사는 가족 사이에도 눈에 안 보이는 바리케이드가 있다면 차제에 말끔히 허물어 버려야 할 것이다.
(10) 다 늙은 이제서야 어린 손녀들한테서 가족의 고마움을 배워가고 있다.
다른 제목 :집안의 바리케이드 (위의 지운 부분을 살리고 (10)번을 지우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