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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제전 7
지은이:김원일
출판사:문학과 지성사
9월: 죽은 자를 넘고 넘어
9월 19일
낮에는 산속에 숨어 잠을 자거나 쉬고 어둠이 내린 뒤부터 새벽녘까지 서쪽으로 산을 타며 이동한 끝에 배종
두, 김장쇠, 변삼개가 작대산 아지트에 도착하기는 17일 낮참이었다. 아지트를 지키던 잔류 유격대원 일곱은 살
아 돌아온 배종두를 반갑게 맞았다. 그 중에는 여성대원도 둘 있었으니 전쟁 전 조민세 휘하의 경남 7블록 시
절 김은지와 학맹 출신으로 전쟁 후 서울에서 입대한 이자옥이다. 작대산에 남은 대원의 보고에 따르면 경남도
당 지령에 따라 유격대 본류와 해방 지구 입산자들은 사흘 전 남강전선을 돌파, 의령 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다. "도당이 각 군당과 지역 유격대를 의령군 대의면 마쌍리에 일차 집결시켜 재편성할 모양입니더. 우리는 여
태껏 대장님 돌아오시기를 기다렸심더. 지금이라도 퍼뜩 출발해야 할 거 같심더. 양키 해병대가 배편으로 고성
해안에 상륙해서 진주를 목표로 공격중이라는 소문도 들립니더." 지판수의 보고를 듣고 배종두는 일단 마쌍리
로 출발을 결정내렸다. 작대산에 남은 대원은 미제와 국방군이 후방 인천을 해상에서 들이쳐 서울을 공격중이
란 좋지 않은 소식까지 단파 무전기를 통해 알고 있었다. 낙동강 전선까지 별 저항 없이 쓸고 내려온 인민해방
군이 마지막 전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개전 3개월 만에 사면초가를 맞고 있는 셈이다. 17일, 해가 서산으로 떨어
지자 대원 열은 해 떨어진 방향으로 길을 잡아 떠났다. 인원은 겨우 열이었지만 소총과 수류탄, 충분한 실탄으
로 완전 무장한 유격대원들이었다. 기관총 1정에 비상 식량도 넉넉했다. 유격대는 척후조 둘을 앞세워 뜸마을조
차 우회하며 산줄기만 탔다. 인원도 적고 배종두가 제대로 걸음을 걸을 수 없기 때문에 지역민과의 조우와 총
질을 가급적 피했다. 그들은 인적 드문 산을 넘고 골짜기를 건넜다. 다리쉼을 할 때 척후조가 마을로 내려가 염
탐해온 말에 따르면, 미제군과 국방군을 이미 남강을 넘어 의령군으로 진격중이라 했다. 유격대는 이제 쫓기는
본대를 찾아 진격하는 적 꽁무니를 뒤쫓는 격이다. 그들은 어둠 속에 전조등을 밝히고 신작로를 따라 질주하는
야포와 탱크를 앞세운 적 후방부대의 전선 이동을 산등성이에서 참담한 마음으로 목격하기도 했다. 남조선 면
적의 90프로, 남조선 인구의 92프로를 장악했다는 '8,15 기념 축전'의 김일성 수상 동지 호언이 한 달 사이 물거
품으로 잦아들고 있었다. 그들은 남반부군이 실지를 회복하자 산으로 피해 들어와 우와좌왕하는 지역 피란민과
도 조우했다. 그들은 인공 치하에서 공화국에 협조했던 자들로 마을에 그대로 남았다간 우익의 보복이 두려웠
던 것이다.
어둠이 내린 뒤 떼를 만들어 백산 어름의 한갓진 남강을 건너, 배종두 일행이 전선에 이르기는 19일 아침이
다. 그들은 산등성이에서 아침을 맞았다. 눈 아래로 대숲에 싸인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남쪽과 북쪽에서 들려오
는 포소리와 총소리로 보아 쌍방 공방 지역이 분명한데, 이십여 호 마을은 전선이랄 수 없게 평온하다. 마을로
들어갔다 온 여성대원 보고에 따르면, 의령 읍내엔 이미 국방군이 들어왔다 했다. 대실 마을은 동남으로 의령읍
과 10킬로 상거이다. 마을 청년동맹과 여맹에 가담했던 붉은 물 든 사람은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 서쪽으로
떠났고, 국방군 소대병력이 어제 낮에 스치듯 지나간 뒤론 아무런 다른 조짐이 없다고 했다. 미제군과 국방군이
간선 도로를 따라 쓸고 들어가다보니 두메 마을은 행정의 공백 지대가 된 셈이다.
"마을에는 곡성이 자자합디다. 우리 쪽이 반동 분자 몇을 처형하고 떠나 닷새 장례를 지낸데요." 여성대원 보
고이다.
"우리가 비록 열 명의 적은 인원이지만 이 마을쯤은 쓸어붙이겠소. 비상미도 확보할 겸 치고 들어갑시더. 다
섯씩 이 개 조로 나누어 동북 방향으로." 배종두가 말한다.
작대산을 떠난 뒤 첫 작전 명령이다. 그것도 야간 기습이 아닌 백주에 정면 돌진인 셈이다. 대원들은 모두 전
쟁 전부터 유격대 생활을 거쳤고, 창원지서와 진영지서 공격에 동원되었던 백전노장 유격대원이라 2개 조로 나
누어 마을을 내려다보며 날쌔게 정면으로 진격한다. 처음 몇 차례 위협 사격을 했으나 마을 쪽은 전혀 응전이
없다. 싱거운 무혈 입성이다. 마을 회관 앞 공터에는 꽃상여 다섯 채가 놓였고 마을 사람이 죄 나와 노제를 지
내고 있다. 유격대는 그들을 독 안에 든 쥐처럼 에워싼다. 상복 입은 유족과 공터에 모인 주민은 한덩이가 되어
떨기만 할 뿐이다. 유격대는 회관 앞에 내걸린 태극기를 불태우고, 바뀐 세상을 맞아 우익 자치대 조직에 앞장
선 장년 사내 셋을 가려낸다. 이장 집 창고에는 인공 시절 인민위원회에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마을 청장년과
아녀자 여덟 명이 갇혀 있었다. 유격대는 그들을 석방시킨다.
배종두는 오라를 지운 자치대원 셋을 앞에 세우고 마을 주민에게 연설한다.
"...지주와 소작인, 부자와 가난한 자가 따로 없는 평등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 북조선인민공화국의 당면 목표
임은 농민 동무들도 그 동안 교육을 통해 잘 알고 있을 겁니더. 고리채와 춘궁기 주림에서 벗어나 누구나 똑같
은 교육 혜택을 받고, 누구나 똑같은 의료 혜택을 받는 세상을 농민 동무들은 희망하지 않았습니껴. 인간을 계
급적 차별로 나누는 이 파쇼 반동 남조선 노예제도를 타파하려 북조선인민공화국은 성스러운 해방 전쟁을 수행
하고 있습니더. 여기에 장애가 되는 기회주의적 반동 분자가 바로 여기 세 인민임더. 이들은 공화국의 인민 해
방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악질 반동이오." 배동두가 주민을 둘러보며 말을 끊는다. 모여선 주민은 모두 겁먹은
눈만 껌벅이며 말이 없다. "나로선 마땅히 즉결 처형해야 한다고 보는데 동무들 의견은 어떻습니껴?"
주민들은 대답이 없다. 총 쥔 유격대원들이 울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치대원 셋은 주민이 보는 앞에서 즉
결 처형당한다. 이장 집 창고에 갇혔다 목숨을 구한 장년 넷은 유격대와 행동을 함께하겠다고 나선다. 남조선
치하에서 그들은 살아남기 힘든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인공 시절에 활동이 가볍거나 마을을 떠난 면책, 인민위
원회 가족으로 타작 매질에 운신이 힘든 늙은이와 아녀자들이다. 주민들로부터 보복을 않겠다는 동의를 얻고
그들은 마을에 남겨두기로 한다.
"마치 지나날 왜놈들이 조선을 점령했듯, 미 제국주의 양키놈들이 우리 민족의 해방 전쟁에 끼여들었습니더.
우리가 작전상 후퇴를 하지만 조만간 농민 동무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 우리의 궁극적 목표가 남조선 자주
해방에 있기에 반드시 농민 동무를 노예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려 이곳에 올 낍니더. 만약 그때 동무들이 풀어놓
은 네인민을 보복했을 땐 그 죄가를 따질 것이오. 마을을 불사르고 주모자 가족을 모두 처형시킬 테니 그리 아
시오. 우리는 약속을 지키고, 했던 말은 반드시 실행합니더!"
배종두가 그렇게 협박할 사이, 다른 대원 몇은 이장과 마을 장로를 따로 불러 유격대원의 양식 조달에 협조
해줄 것을 간청한다. 빌려준 양식은 전쟁이 끝난 뒤 반드시 곱으로 쳐 갑겠다고 보관증을 써 주겠다는 것이다.
그 역시 총부리를 앞세운 협박이다. 추수기를 앞두고 있어 수수, 강냉이, 감자 따위의 잡곡은 집집마다 형편이
넉넉하다. 이장이 앞장서서 집집마다 곡식과 찬에 필요한 먹거리를 거뒤들인다.
마을을 들이친 뒤 시간 반 만에 유격대는 동조자 넷과 함께 마을을 떠난다. 그들은 이제 산으로 들어가거나
길 없는 산을 타지 않는다. 전선의 사각 지대, 어느 쪽 군대도 상주하지 않고 행정력조차 공백 상태인 마을들을
아무런 저항 없이 통과한다. 마을을 거쳐갈 때마다 지역민에게 당당하게 인민유격대임을 밝히고 인공 협조자에
게 보복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조만간 다시 인민해방군이 진격해올 것임을 약속한다.
한우산 아랫녘을 거쳐갈 저녁 무렵에야 유격대원은 아직도 인공기가 나부끼는 해방구로 들어선다. 남조선 우
익 치하가 되면 당할 보복이 두려워 유격대 행보에 끼어든 장정들이 그 동안 열여섯으로 불어났다. 그들은 밤
을 도와 대의면 면사무소가 있는 삼거리목 마쌍리로 들어선다. 마쌍리는 동으로 위령, 북으로 협천, 서쪽이 산
청에 이르는 내륙 지방 교통 요충지이다.
마쌍리는 한밤임에도 난장판을 이루고 있다. 음력 팔월 초여드레 배를 불려가는 반달의 푸른빛이 은은하게
대지를 비추는 데, 마을 전체가 마치 대갓집 상중이듯 붐빈다. 인민군과 민간인, 각종 차량과 포대, 군마가 뒤섞
여 면소재지 작은 마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마쌍 장터마당이야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여기저기 모닥불이
타오르고 차량의 전조등과 전짓불빛이 불줄기를 옮겨가며 번쩍인다. 늘어져 쉬거나 말뚝잠으로 눈을 붙이는 인
민군 부대도 있고, 어둠 속에서 부상병은 통증을 호소하며 고함을 내지른다. 쫓겨온 피란민 무리는 쉴 터를 못
잡아 우왕좌왕한다. 아이들의 울음과 사람을 찾는 소리가 시끄럽다. 피란민은 가재도구를 지겟짐지거나 보통이
꾸려 메고, 소까지 끌고 나선 농민도 있다.
"협천 쪽으로 빠지자. 그쪽이 안전하대." "산청으로 들어갔다 지리산으로 가야 한대. 그 험한 산채는 국방군이
나 미제 항공도 넘볼 수 없다 카더라." "이 난리통에 안전한 데가 어딨노. 그래도 갯가가 안 났을까?" 이런 말
을 나누며 북으로, 서로, 더러는 남으로 제가끔 길을 잡아 밤길을 나서는 민간인 패도 있다. 인공 치하에서 직
책을 맡았거나 인민위원회에 적극 협조했던 가족들이다. 어느 누구도 질서를 잡거나 통제하지 못한다. 날이 새
기전에 마쌍리도 적 수중에 떨어질 거란 말이 나돈다. 그 말이 사실이듯, 동남쪽에서는 회청색 하늘에 섬광이
번쩍이고 포소리와 총소리가 들려온다. 10킬로 남짓한 거리이다.
배종두는 그 동안 달고 온 피란민에게, 이제부터 자유로이 갈 곳을 선택하라고 일러 그 무리를 떼어낸다. 청
장년은 초모병으로 쓸 수 있으나 지금 상황으로선 유격대가 그들을 계속 달고 다닐 수 없고, 안전 지대에 도착
하면 그들은 어느 부대든 의용군으로 동원될 터이다. 배종두 휘하의 유격 소조는 그들과 헤어진 뒤 면사무소부
터 찾기로 한다. 경남도당 본부가 그곳을 쓰고 있겠거니 여겨졌기 때문이다.
"저치들, 남조선 유격대 앙이가. 개놈으 새끼들, 뭐라구? 삼팔선만 무너지며는 이십만 지하 맹원이 봉기해서
금방 남조선 해방을 시킨다구? 웃기구 자빠졌음메. 오합지졸 종자가 바로 저 간나이새끼들입메."
유격대원이 지나가자 토맘 아래 쉬고 있던 인민군 부대원 하나가 큰 소리로 빈정거린다. 밤과 더불어 대기가
차가워지고 소슬바람이 불자 모닥불을 피워 주위에 둘러앉아 담배질하는 패다. 그러잖아도 심기가 꼬여 있던
대원들이 도끼눈을 뜨고 그쪽을 돌아분다. 변삼개와 김장쇠가 당장 총질이라고 할 듯 메고 있던 따발총을 벗어
내린다.
"쏴보더라구. 당장 골통을 박살내버리겠음머이. 간나이새끼들때메 우리가 생고생하잖슴메!" 다른 인민군이 소
리친다. 목과 한 팔에 붕대를 감았다.
"가자고. 끌데없는 데 신경쓰지 마."
배종두는 대원들을 타이르며 절뚝걸음을 걷는다. 허탈한 그는 목이 메인다.
한 달 전만 해도 사기가 충천했던 인민해방군이었다.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과 남반부에서 차출된 의용군의
차별이 없었다. 한마음으로 뭉쳐 적 최후의 저지선 낙동강 전선을 밀어붙였다. 중부전선 왜관 쪽 전투는 코앞의
대구 점령을 목표로, 동부전선 안강 쪽 전투는 고도 경주 함락을 목표로, 서부전선 칠원전투는 마산 점령을 목
표로 인민해방군을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미제 군대가 속속 전선에 투입되고 항공이 극악을 떨면서부터 쌍방
은 사상자만 속출할 뿐 일진일퇴였다. 특히 미제 항공은 하늘을 까맣게 덮을 정도로 날마다 수백 대의 폭격기
와 전투기가 출격했다. 마치 철맞아 이동하는 갈가마귀떼 같았다. 그 항공이 능선에 달라붙는 아군을 무차별 폭
격했다. 온 산야에 살점과 뼈가 찢어지고 조각나 튀었다. 중부전선과 서부전선의 낙동강은 피로 물들고, 날마다
수백 구의 시체가 강 하류로 흘러갔다. 그즈음부터 북에서 온 인민군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해
방 전쟁 완수가 마지막 고비에서 지지부진함을 모두 남로당의 허위 선전으로 돌렸다. 남로당은 거짓말쟁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남로당의 남반부 지하 공작이 그 동안 얼마나 부실했는가를 현지에 도착해보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남로당 조직이야말로 사상누각이므로 박헌영 부수상은 물론 남조선 현지 지도총책 이승엽은 당 사업에
역량 부족과 태만으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는 비판서가 전방 부대장 연명으로 끊임없이 상소되었다. "남반부에
내려와보니 도시 노동자, 실업자, 소작인, 고용 머슴조차 부르주아 반동 사상에 물든 자가 의외로 많다. 남조선
각 도당과 군당에도 미제 스파이가 암약하고 있다." 이런 악선전이 걷잡을 수 없게 퍼져나갔다. 지휘관 회의에
서도 그런 힐난이 공공연하게 언급되었다. 배종두는 자신을 빗대는 듯한 그런 질책을 들을 때마다 치솟는 분기
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전쟁 전 유격대로 투신해 풍찬노숙하며 혁명 전선에서 투쟁했고, 전쟁 직후에는 평양으
로 소환당해 남조선 지하당 간부들과 함께 강동정치 학원에서 사상 무장과 유격 전술 재교육을 충실히 이행했
다. 자신만이 아니라 남조선 지하당원 모두가 조선인민민주주의 건설에 초석이 되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가족과
처자식을 버려두고 감시망에 쫓기며 혼신을 다 바쳤다. 그런데 전선이 낙동강에서 고착 상태에 빠지고 후방 지
원마저 여의치 않자, 북로당 출신의 전쟁 수행 주체 세력은 남반부 남로당 잔류측에 모든 책임을 덮씌웠다. 그
런 냉대는 전선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으니, 제대로 훈련도 못 받고 전선에 주입된 남조선 청장년을 전선 최일선
총알받아로 앞세운 것이 그런 예이다. 실탄 지급은 물론 보급 지원이 여의치 않다보니 그들은 한증막 속에 주
린 배로 허우적대며 육탄전으로 싸웠다. 북에서 내려온 인민군은 남조선 의용군, 그 벽을 방패 삼았다. 열댓 살
부터 마흔에 이르는 장년까지 남반부에서 모집한 의용군 수가 사십만 명은 될 거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들이야
말로 초개(지푸라기)같은 목숨이었다. 8월 중순, 서부 경남 지방 출신자를 중심으로 차출된 유격소조 대장으로
배종두가 지명되었을 때, 후방 침투 유격대원을 고대하던 그는 이를 행운으로 받아들였다. 유격소조 대원은 스
물일곱이었고 독립 부대로서의 구실을 수행할 수 있었다.
면사무소는 인민군 6사단 3연대 본부가 작전 회의실로 쓰고 있다. 램프등과 관솔 횃불을 밝혀놓고 그들도 철
수 채비를 서두르는 참이다. 서류를 묶고 장비를 챙겨 신작로에 대기시킨 트럭에 옮겨 싣는다. 이삿짐 옮기는
집안이 그렇듯 면소 안이 온통 난장판으로 어수선하다. 누구 하나 유격대를 유심히 보며 말을 붙이는 자가 없
다.
"군관 동무, 경남도당은 어디로 갔나요? 육사단 일연대는?" 배종두가 전사들에게 바쁘게 지시를 내리는 영성
군관에게 묻는다.
"도당은 아마 산청으루 떴지. 일연대? 어제 협천으루 올라갔시요. 오늘쯤 가야산으로 빠졌을 것이라요. 뒤쪽
창고로 가보시오. 저녁때까지만두 군당 철수반 동무들이 얼쩡거립데다."
배종두는 유격대원을 면사무소 마당에 남겨두고 창고 쪽으로 절뚝걸음을 걸으며 돌아간다. 그는 거기서 의령
군당 철수반장을 만난다. 납작모자를 쓴 마흔 줄의 장년이다. 그는 대원들 지겟짐에 탄약 상자를 얹다 배종두를
맞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경남도당은 위원장 남경우의 인솔로 산청군 산청읍으로 오늘 아침에 출발했다는 것
이다. 군당을 합쳐 전투 가능 병력만 1천 8백여 명이라 했다. 전황이 급격히 나빠져 산청읍에서 재집결하여 새
로운 편제로 편성될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인민군 전선사령부에서 긴급 하달된 명령 내용을 친절하게 일
러준다.
"전세가 불리하여 후퇴를 단행하기로 갤정했답니더. 적에게 군사 시설로 이용될 수 있는 건 몽지리 파괴하랍
니더. 보급이 일체 불가능하이 산간 지대 마을을 접수해서 식량을 비축하라 카이 이제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심
더. 총기와 탄약도 적을 쳐서 노획해야 할 행핀이라예."
"유격대라면 또 몰라도 대부대가 쫓기며 이동한다면 자급자족도 정도 문제지... 어쨌든 사생결단이군요."
"동무 소속은 무슨 부대요?"
"삼칠 유격소조 지대장이오. 작대산에서 빠져나오는 길입니더."
"입산 경험자와 입산 활동이 가능한 동무는 유격 투쟁 근거지를 확보해서 입산시키랍니더. 모든 부대의 간부
와 정규군 전투부대는 소백산맥을 따라 남강원도까지 후퇴하랍니더. 전선사령부의 이 명령은 사흘 전에 하달됐
심더."
"남강원도까지요? 그럼 경남도당은 빠지겠군요?" 배종두가 알기로는 경남도당은 정규군 전투 부대가 아니다.
"남반부 각 도당은 제이전선을 구축하겠지예."
"그렇다면 입산인데, 거점이 어딥니까?"
"남반부 해방구 총사령부는 지리산에 설치될 거라예. 경남도당은 산천군과 함안군의 산간 지대를 해방구로
삼아 투쟁하자는 겁니더. 우리도 그리로 갈 낍니더. 동무도 유격대를 인솔해서 곧장 산청읍으로 출발하이소. 마
쌍리도 내일 아침이면 실함될 끼라예."
"이현상 부대도 지리산으로 들어갔습니껴?"
"아이라예. 지금 남강원도로 진출하고 있는 줄 압니더."
남조선 전역의 각 도당과 군당이 자체적으로 인민유격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어느 도당의 통제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군사작전을 전개하는 유일한 인민유격대로선 이현상이 이끄는 '지리산 인민유격대'이다. 전쟁이 발
발되기 전 지리산 깊숙이 해방구를 설정하여 잠복하다 인민군이 밀물지듯 남조선을 쓸고 내려오자 지역 입산자
를 끌어들여, 이현상 부대는 그 세력이 무장 병력만도 5백이 넘었다. 이현상 부대는 8월 10일 대구 주변 달성군
가창면 적진으로 침투하여 미제 통신 부대를 기습, 미군 20여 명을 살상하고 통신 시설을 파괴했다. 25일에는
경남 창녕에 출몰, 5백여 미군 병력과 탱크 40여 대, 트럭 150대가 있는 미제 사령부를 정면으로 습격하며 1백
여 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 9월 6일에는 경북 청도 지구 인민군과 협동 작전으로 전투에 참가했다는 소
식을 배종두도 접한 바 있었다.
"정보를 줘서 고맙습니더. 유격대를 인솔하여 곧 산청읍으로 출발하지요."
배종두가 창고에서 나와 앞마당으로 돌아나갈 때, 갑자기 비행기의 굉음이 암청빛 하늘을 찢으며 들려온다.
동쪽이다. 미제 항공의 야간 기습이 틀림없다.
"미제 항공이다!" "적 공습이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쪽 창고로, 어서 피하시오!"
배종두가 느티나무 아래 모여 있는 대원들에게 손짓한다. 대원들이 청처짐한 몸을 일으켜 목조 건물 벽을 따
라 뛴다. 전투중이든 소강 상태든 무엇보다 무서운 것이 항공 기습이다. 비행기는 하늘에 떠 있기에 까부술 수
없는 상대이고, 당하기는 늘 이족이다. 사상자는 지상 전투보다 항공 폭탄 투하와 기총 소사에서 더 많이 발생
하게 마련이다.
마을 위, 하늘의 나지막한 지점에서 여러 발의 조명탄이 터진다. 사방이 대낮처럼 환해지고 흰 불꽃이 꼬리를
끌며 떨어져내린다. 신작로에는 전사들과 흰옷 무리의 피란민이 숨을 곳을 찾느라 이리저리 뛴다. 메뚜기가 튀
는 꼴이다. 유격대원도 창고 뒤쪽 도랑에 몸을 던져 납작 엎드린다. 전투기의 굉음이 머리 위를 질러간다. 뒤이
어 주위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작열한다. 화염과 불기둥이 어둠을 밝히며 치솟는다. 장터마당이 대낮 같게 환
하다. 전투기의 기총 소사가 한차례 머리 위를 쓸고 지나간다.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찢어진다. 아버지, 엄마,
자식 이름을 부르며 찾는 소리가 자지라진다. 공습은 군인, 민간인 가리지 않는 무차별 살상이다. 아홉 대가 출
격한 미제 전투기의 폭격은 세 차례에 걸쳐 이어진다. 면사무소 건물도 직격탄을 맞아 성냥갑 밟은 듯 폭파되
고 불기둥이 치솟는다. 쓸어붙이는 가을 밤바람에 불길이 거세게 타오른다. 신음 소리가 무너진 건물 안에서도
들린다. 삽시간에 마쌍 마을은 온통 화염에 휩싸인다. 아비규환의 생지옥이다.
"잔인무도한 양키놈들. 비전투원 인민이 많음을 보고도 이토록 무자비하게 학살하다니." 동으로 멀어지는 전
투기 편대를 보며 배종두가 중얼거린다. 도랑에서 대원들이 하나둘 총을 메고 기어나온다. "부상당한 동무 없어
요?"
"예, 모두 괜찮은 것 같심더." 김장쇠가 대답한다.
"우리도 지금 마을을 뜹시다. 여기 있으면 또 당해요."
"이자옥 동무가 다리를 삔 것 같심더." 김은지가 말한다.
"전투도 아닌데 다리를 삐다이."
도랑에서 이자옥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조금만 참으라는 남자대원 말소리도 들린다.
"맞췄으니 움직여보이소. 인자 걸을 만할 낍니더."
남자대원의 말에 이자옥이 도랑에서 절뚝거리며 나선다. 걸을만한 모양이다.
"우린 어디로 가예?" 김은자가 울가망한 목소리로 배종두에게 묻는다. 본대를 놓쳐 목적지를 잃어버린 패잔
병의 비애가 목소리에 배어 있다.
"산청읍이오. 오늘 아침 도당 본대가 각 군당을 거느리고 그쪽으로 출발했소. 경남도당이 산청군이나 함양군
산채 깊숙이 터를 잡을 것 같아요. 남반부 각 도당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산간지역 군 단위를 해방구로 접수해
서 유격전을 전개할 의도로 보여집니더."
유격대원 열 명은 곧 마쌍리를 떠난다. 아니, 아홉 명이다. 어느 사이 지판수가 그 열에서 빠져버렸다. 유격대
생활에 진저리치던 그는 기어코 대열에서 빠져 총도 버리고 남행길을 택했다. 그는 여태까지 신분을 숨겨온 만
큼 앞으로도 전력을 감추고 갯가로 떠돌며 들쥐처럼 도생해보기로 작심한 터였다.
배종두 유격 부대는 불길에 휩싸인 아비규환의 마을을 뒤로하고 서쪽으로 뚫린 높드리 길을 잡는다. 미제 항
공 공습으로 마쌍리는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생겼지만 그 뒤치다꺼리를 대원들이 맡을 수 없다. 죽으면 그뿐,
살아남은 자가 처형이나 포로를 면하려면 우선 위험 지구에서 벗어나야 하고, 움직일 수 없는 부상자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길밖에 없다. 죽은 자는 죽을 자로 하여금 장사지내게 하고
산 자는 살 길을 사지에서 떠날 뿐이다. 전쟁은 피와 눈물에 어떤 보상도 지불하지 않는 냉정한 현장이다. 유격
대원은 저녁밥을 굶은 채 암청빛 하늘에 짙은 음영을 드러낸 높디높은 산맥을 향해 걸음을 도두 뗀다.
"지판수가 없어."
"폭사했나?"
"아냐. 도랑에서 기어나오는 걸 봤는데?"
유격대원들이 속달거리는 말이다.
산청 쪽으로 난 신작로에는 긴 대열이 이어지고 있다. 진로도 퇴로도 차단된 채 후퇴하는 인민군 부대와 피
란민 무리이다. 가을은 이미 문턱을 넘어섰는데 쓸려가는 낙엽 같은 한 떼거리이다. 길 양쪽으로 보병과 피란민
이 긴 띠를 이루어 걷는다. 82밀리 박격포를 꽁무니에 매단 뜨랙또르와 땅끄, 부상자를 운반하는 들것 대열이
길 가운데를 빠져나간다. 추석을 앞둔 반달이 하늘에 높다랗게 걸렸다. 서늘한 밤바람에 산등성이의 억새가 쓸
린다. 패잔병이 그렇듯 전사들은 사기가 떨어져 모두 말이 없다. 강물을 시체와 피로 적시며 육탄전으로 낙동강
을 넘는 진격에 신명을 바쳤고 마산 함락을 목전에 두다, 그 전선을 뒤로 하고 후퇴하는 그들의 발걸음이 무거
울 수밖에 없다.
어느 전사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른다. 김일성 부대의 항일 혁명 유격 시절에 보급된 혁명 가요이다. 그 가요
는 해방 전쟁 와중에 평안도 출신 전사들이 즐겨 불렀다. 그 노래는 곧 전염병처럼 전사들의 입을 타고 번진다.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 수 없네/ 가슴 태우며 총 잡은 마음/ 아 돌아가리라...
지금으로선 노래 가사가 승전의 귀향이 아닌 패전의 귀향을 암시한다. 그러나 배종두가 거느린 삼칠 유격대
원은 그 노래나마 따라 부를 수 없다. 그들은 북에서 내려온 정규군이 아니요 고향 역시 그쪽이 아니기 때문이
다.
9월 23일
"갑해야, 국방군이 서대문서 자취를 감췄다는 말 정말 맞대? 도대체 사람들마다 하는 말이 틀리니 어느 말이
참말인지 알 수 있어야지."
평상에 나앉은 봉주댁이 건짜증을 낸다. 며칠 사이 그네의 얼굴이 두려움에 찌들어 죽을 상이다. 화장은 커녕
머리 빗질도 하지 않아 모색이 처연하다. 그네는 저고리의 걷은 소매에서 담배와 성냥을 꺼내어 불을 붙여 문
다. 스산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연기를 내뿜는다.
"틀림없습니다. 서대문까지 국방군 선발대가 들어왔는데 인민군이 쎄게 몰아붙인께 쫓겨 도망쳐뿌린 모양이
라예. 서대문 뒤쪽 안산 너머 연희대학 있잖습니껴. 양키 부대가 거기까지 들어왔는데, 어제 전투가 굉장했다
캅디더. 인민군, 국방군 수천 명이 죽어 시체가 산을 이뤘다 카대예." 애써 서울말을 배운 갑해의 말버릇이 학
교에 나가지 않자 다시 사투리로 돌아갔다.
갑해는 을지로 4가까지 내려가 큰길에 나와 쑥덕대는 어른들로부터 전황을 귀동냥하고 온 참이다. 을지로 4
가 네거리에는 차한대가 지그재그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만 남기고 모래 푸대로 어른 어깨 높이의 방책(바
리케이드)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 방책에는 경기관총 여러 대를 걸쳐놓고 인민군이 수비를 하고 있었다. 의용군
을 가득 태운 화물차가 거리를 질주했고, 의용군이 인공기와 따발총을 흔들며 군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덕수궁
쪽으로 이동하는 인민군 중대 병력도 볼 수 있었다. 화물차가 꽁무니에 야포를 끌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길거
리에 피란을 나선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주린 배를 접고 앉은 서울 시민은 연합군이 빨리 서울 시내를 탈
환해주기를 졸갑증나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흰 제복 입은 여성 교통안전원이 여전희 거리 길서를 맡고
있었다. 인천 쪽에서 반동 연합군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진 며칠 사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확성기를 앞뒤에
단 지프나 드리쿼터의 선전 방송이 끊겨버렸다는 정도이다. 갑해가 보건대 서울 시내는 아직도 위급한 상황이
아니다.
갑자기 한동안 멈추었던 총소리가 남산 너머와 덕수궁 쪽에서 들려온다. 남산 마루에서 박격포를 쏘아대는
포소리도 들린다.
"이 소리가 어딘가? 노량진이나, 서대문 맞지? 놈들이 벌써 거기까지 들어왔나?" 벌떡 일어선 봉주댁이 멍한
표정으로 서울역 쪽 하늘을 넘겨다본다.
"한강 철교 있는 데까지 들어왔는지 몰라도 서대문은 아인 거 같은데예. 연희대학 있는 데, 거기 같심더." 갑
해는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오르는 그쪽 하늘을 바라본다.
"갑해야, 다시 한번 소공동에 갔다 와. 아버지가 복무처를 다른 부처루 옮겼다면 그곳이 어딘지 꼭 알아와야
해. 유해 어딨는지 찾아 데리구 가거라. 묶어놓든지 해야지. 등신 자식은 어디루 싸돌아나다니는지. 폭격에 뒈져
버리면 차라리 걱정이나 안 허지."
"아침에 갔다 왔는데..." 갑해가 발 앞 돌멩이를 차며 시무룩이 말한다. 그는 오전 열시쯤 아버지가 복무하는
소공동 사무실을 한차례 다녀왔다. 통제소를 지키는 전사로부터 아버지가 안에 계시지 않다는 소식만 들었고,
혹시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한 시간 정도 한길에서 서성거리다 헛걸음만 하고 돌아온 참이다.
"가보라면 가봐. 우리 세 식구 어찌할 참인지 알아야 피란을 나서두 나설 게 아냐. 미친 사내 같으니라구. 이
토록 다급한 판에 엿새째 코빼기두 안 비치다니. 이렇게 망조가 들 걸 뭣 땜에 식솔을 불러올려. 한치 코앞두
내다보지 못허면서. 제가 바쁘면 얼마나 바쁘구, 높은 자리에 앉았으면 그 자리가 하늘만 허냐. 그렇게 뛰는데
두 공화국이 왜 이 지경이야. 양키놈들을 왜 못 막아. 차라리 서울 바닥에 있지 않다면 우리라두 피란 너서지.
이젠 남반부서두 살 수 없게 됐는데, 날씨는 자꾸 서늘해지구, 길나선담 어디루 향을 잡아 나설구..."
봉주댁이 서방 욕질과 넋두리를 한참 늘어놓곤, 오라버니네 집에 가봐야겠다며, 휑하니 마당을 질러간다. 갑
해도 엄마를 뒤따라 고물상 마당을 거쳐 공터로 나선다. 연합군이 항공과 해상 폭격으로 인천 시내를 숙대밭으
로 만든다는 소식이 들리던 날, 홍기중네 가족은 서둘러 짐을 꾸려 고향 태안으로 내려가버려 빈집으로 남았다.
갑해는 마른내길로 나서서 형을 찾는다. 형이 보이지 않는다. 화원시장으로 내려가는 길가에 내부가 불에 타
버리고 한쪽 체인바퀴가 부서진 공화국 티-34형 탱크가 있다. 미제 항공 네이팜탄을 맞고 전차병 둘을 죽사시
킨 탱크다. 동내 아이들이 그 안을 드나들며 전쟁놀이를 하곤 했다. 갑해가 소공동에서 돌아올 때 형이 그 탱크
포신 앞에 올라앉아 뭐라고 소리지르며 두 팔을 흔들고 있어 함께 집으로 돌아와 점심밥을 먹었다. 탱크 주위
에도 형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형이 시장통을 배회하고 있나 둘러본다. 화원시장은 장사치도 없이 썰렁하고,
형은 찾을 수 없다. 갑해는 형과 함께 소공동에 가기를 포기하고 충무로 4가 내무서 분주소 쪽으로 털레털레
걷는다. 남산 너머에서 비행기의 굉음이 들려온다. 그는 이제 비행음 소리만 듣고도 비행기 종류와 몇 대쯤 떴
나를 얼추 맞출 수 있다. 비행기떼가 남산을 넘어온다. 폭격에 나선 미제 세이버 전투기가 사, 오십 대는 될 것
같다. 8월 중순부터 연합군측 항공은 서울 중심부를 무차별 강타했고, 9월에 들어서곤 밤낮으로 흰 별판을 단
폭격기, 전투기, 정찰기가 서울 하늘을 정거장 삼아 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서울 시내는 공습 대비용 사
이렌 소리조차 사라져버렸다. 항공 공습으로 사대문 안은 변변한 건물조차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폐허가 되버
리고 말았다. 무너진 건물은 치울 엄두를 낼 수 없게 산더미처럼 쌓였으나 사대문 안 큰길은 차와 우마차가 다
녀야 했기에 거리 정비를 하기 위한 노력 봉사에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동원되었다. 봉주댁은 그 인원 차출을
독려한다고 집집마다 방문했고, 갑해도 어제는 낮 동안 세종로 청소에 동원되었다. 세종로에는 거대한 참호를
파는 데 어른들이 동원되고 있었다. 윤극이의 말도 있었지만 신기한 점은 경복궁, 덕수궁, 비원, 남대문, 동대문
과 같은 엣 건축물과 고적지는 심한 폭격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앙청과 서대문형무소도 멀쩡했다.
남반부측에선 그런 곳을 폭격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은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인민군 부대는 고궁에 땅굴을 파고
주둔해 있었다.
용산을 넘어온 연합군측 비행기는 역시 날쌘 전투기 편대이다. 먼저 넘어온 서른여 대의 전투기는 북한산 너
머로 사라지고, 잠시 간격을 두고 날아온 예닐곱 대의 전투기가 서대문 어름과 사직동 쪽에 폭탄을 떨구기 시
작한다. 갑해의 눈에도 염소똥 같은 폭탄이 줄지어 떨어져내리는 게 보인다. 전투기에서 기총 소사가 작렬한다.
그쪽에서 귀를 찢는 폭발음이 들리고 검은 연기가 치솟는다. 갑해는 엄마가 외삼촌 댁에서 얻어온 호주머니 많
은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허물어지다 만 건물 벽을 따라 걷는다. 길에는 시멘트 조각, 벽돌,불에 탄 판자
와 흙더미가 널려 있어 그는 아래만 내려다보고 걷는다. 날마다 당하는 항공 기습이라 그는 놀라지 않고 어디
고 하늘 가릴 데를 찾아 숨지 않는다. 사람 목숨이 파리처럼 쉽게 죽다보니 그는 파리와 구더기 끓는 시체와
피를 흘리는 부상자를 보아도 아무렇지 않다.
"내일 아니면 글피에 서울을 내줘야 할 거야." 갑해는 며칠째 생각하는 말을 입 속으로 굴린다.
갑해는 나흘 전 윤극이로부터 미제 해병 부대와 국방군 해병 부대의 연합군이 수륙용 장갑차로 행주나루 쪽
을 우회하여 한강을 넘어왔다는 말을 들었다. 윤극이는 아버지로부터 그런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장갑차라면
바퀴 달린 쇳덩이인데 어떻게 다리가 끊긴 한강을 넘어왔을까란 의문이 들어 갑해가 윤극이에게 거짓말이 아니
냐고 물었다. 윤극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을 결딴낸 서방 연합군 부대의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도 수륙
겸용 장갑차가 동원되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인민해방군은 그런 전차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
민해방군이 서울을 지키기 어렵겠거니, 갑해는 그날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엄마에게 우리도 피란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으나, 당신은 피란짐을 꾸리지 않았다. 부녀동맹을 다녀온 엄마 말로는, 인민군이 서울
을 끝까지 지킨다고 했다. 조선노동당 산하 서울시 각 구역당이 우리 힘으로 서울을 지킨다며 모두 총을 들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무슨 소식을 가져올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6월 25
일 전쟁이 터졌을 때, 남조선 이승만 대통령도 그런 말을 했지만 서울이 사흘 만에 인민해방군 수중에 넘어갔
듯, 갑해는 공화국의 서울 사수를 믿을 수 없었다. 엄마 역시 다음날부터 그 말을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허
둥댔고, 그제서야 피란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합군 부대가 영등포까지 들어왔다는 말이 나돈 지 나흘째
됐는데도 인민해방군은 용케 서울 사대문 안을 지키고 있었다. 그 엄청난 항공 폭격에도 불구하고 화급할 땐
두더쥐처럼 참호 속으로, 폭격이 없을 땐 땅 위를 활보하며 나다녔다.
도심부 중에도 명동은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다. 멀쩡한 건물은 한 채도 없다. 무너지다 벽만 남은 건물은 엉
성한 조각품 같기도 하고, 촛농이 흘러내린 촛대같이 뾰족탑으로 남은 건물 잔해를 밤에 보면 유령의 집같이
을씨년스럽다. 아이들과 늙은이들이 갈퀴나 괭이를 들고 폐허가 된 잡동사니 사이를 들쑤시고 다닌다. 쓸 만한
물건이나 혹시 먹을 만한 게 남아 있지 않나를 열심히 찾고 다닌다. 문짝틀같이 땔감에 쓸 나무토막을 모으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아이들은 벽돌과 흙더미에 묻힌 시체라도 발견하면 질겁하여 코를 싸쥐며 자리를 뜬다. 늙
은이들은 침착하게 시체 입성의 주머니를 뒤져, 뜻밖에도 지폐를 챙기는 횡재를 잡기도 한다. 갑해 역시 청계천
이나 남산 중턱에 널린 구더기 끓는 시체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8월 중순을 넘기며 서울의 식량난은 절정에 달했다. 하루 두끼를 멀건 죽으로나마 해결하는 집이 드물다. 공
화국 치하 이후 일가 친척을 찾아 서울을 빠져나간 사람이 절반을 넘고, 청장년은 의용군으로, 전선 노무자로,
노력 동원에 징집되어 집을 떠났으므로 남아 있는 사람은 아이들과 늙은이가 태반이다. 그들이 걸신 들려 먹거
리를 찾아 거리로 나서다보니 산 목숨 명줄 잇기에 피눈이 된 형편이다. 서울 시민의 그런 참상에 비긴다면 갑
해네 집이야말로 삼시 세 끼를 뽀얀 쌀밥 먹는 극소수의 부유함을 누리는 계층이다. 삼 년 재리 흉년에도 곳간
넉넉한 부잣집과 다를 바 없다.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는 날은 양식 가마니 얹은 지겟짐꾼이 따랐고, 정보처
요원이란 인민군 전사들이 때때로 먹거리와 옷가지를 날라다주었다. 한정화 중좌는 여러 차례 양식감과 옷가지
를 여성 전사와 함께 날라왔다. 특히 엄마의 입이 벌어질 정도로 가죽옷, 짐승털로 만든 고급 털옷을 가져다주
었다. 엄마도 부녀동맹 지도위원이 된 뒤부터 참기름, 설탕, 채소, 고춧가루 따위를 부지런히 얻어왔다. 부탁할
일건을 가지고 엄마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빈손으로 엄마를 찾아오지 않았다. 패물 따위를 내놓
고 자식의 입영 문제, 구금된 집안 식구의 석방 문제를 의논하거나 통사정하고 돌아갔다. 동네의 또래 아이들도
이제 갑해를 두고 경상도 보리문둥이라 놀리지 않았고, 특히 유해는 동네 아이들로부터 흠모까지 받았다. 떡,
사탕, 캐러멜 따위의 주전부리를 먹으며 마른내길 일대를 한가롭게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유해형, 하나만 줘."
"형, 구슬 줄 테니 사탕하구 바꿔." 하며 아이들이 유해 뒤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소공동 거리의 이, 삼층집들도 항공 폭격으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폐허에 땅굴을 하고 생할하는 인민도 있
었다. 정치보위국 정보처로 사용했던 삼층 건물은 이층과 삼층이 폭격에 주저앉아, 정보처 요원은 일층과 지하
실에서 사무를 보았다. 다행히 정문 통제소는 온전했다. 갑해가 정치보위부에 도착하니, 오전까지만도 통제소를
지키던 인민군이 보이지 않는다. 변소에 갔겠거니 하며 갑해는 통제소 앞에서 안쪽을 들여다본다. 츨입문 앞에
는 책걸상을 죄 내다놓았고, 그 위에 상자와 서류 묶음이 어지럽게 쌓였다. 그는 이곳도 피란짐을 꾸리고 있다
고 판단한다. 그는 어쩜 아버지를 영영 만날 수 없을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민군 전사가 판종이 상자 두
개를 포개어 들고 출입문을 나선다.
"동무, 그 서류는 중요하웨다. 따루 챙겨두시라오." 뒤따라나선 군관이 말한다. 그 역시 서류철을 양손에 들었
다.
갑해가 마당 안으로 들어선다. 그는 판종이 상자를 책상 뒤쪽에 부려놓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전사를 부른
다.
"전사 동무님, 아부지 찾으로 왔심더."
"너네 아버지가 누군디?"
"여기 제일과 심판관이라 카던데예."
"조, 학자, 구짭니더."
"그 남반부 동무는 메칠 전 여기서 떠났디 아마. 소년 동무, 잠시만 기다리라구. 내 날래 알아올 테니."
"꼭 좀 알아봐주이소. 엿새째 소식 없심더. 엄마가 기다리예."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전사의 등에 대고 갑해
가 소리친다.
여러 전사들이 계속해서 상자와 서류철, 전화기, 현황판 따위를 바깥으로 나른다. 통제소를 지키던 인민군이
건물 뒤쪽에서 나오더니, 바깥에 부려놓은 짐덩이 숫자를 센다. 그는 뒤쪽에 선 갑해를 알아보곤, 또 아버지 만
나러 왔냐고 묻는다. 갑해는 머리를 끄덕인다. 잠시 뒤, 아버지 소식을 알아보겠다고 말한 전사가 서류 뭉치를
들고 밖으로 나온다.
"조동무는 일신인민학교루 파견됐어. 거기루 가믄 될 거구먼. 그러나 면회는 힘들갔어. 아주 바쁠 테니깐. 철
수하게 되믄 반다시 소식 전할 테이 집에서 기다리구 있어라. 가족 낭겨두구 가진 않을 것이웨다." 전사가 작업
모를 벗고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한다.
갑해는 소식을 알려줘서 고맙다며 인사하곤 그 자리를 떠난다. 엄마에게 당당하게 대답할 만한 소득을 얻은
셈이다. 일신인민학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다. 그는 그곳으로 곧장 가볼까 하다, 면회가 되지 않을 것
이란 전사의 말을 떠올리곤 서울시 인민위원회(시청) 앞 광장으로 걷는다. 위원회 건물 정면에는 스탈린 대원수
와 김일성 장군 대형 초상화가 걸렸고, 인공기가 펄럭인다. 광장에는 열 대가 넘는 화물차가 대기하고 있다. 인
민위원회 건물에서 노력 봉사에 동원된 노무자와 인민군들이 지겟짐으로 물건을 나른다. 역시 판종이 상자와
서류 묶음 덩이다. 인민군 전사들이 그것을 차 위에서 받아 싣는다. 광장은 일주일 전까지만도 날마다 애국인민
궐기 대회가 열리던 장소이다. '미 제국주의 파시스트들은 조국 해방 전쟁에서 손을 떼라!' '미 제국주의 꼭두각
시 리승만 정권은 조국 해방 제단에 항복 문서로써 굴복하라!' 는 성토의 함성이 드높던 광장인데 이제 철수 준
비가 한창이다. 어제 국방군 선발대가 진출했다는 서대문은 바로 덕수궁 뒤쪽 고개 너머이고, 거기에서 달려온
다면 십 분 남짓한 거리인데, 공화국은 늑장을 부리며 후퇴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여기까지 들어오기엔 어림
없다는 배짱이다. 을지로통을 거쳐 인민군 병력이 서대문 쪽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안산 쪽이 급하므로 터지려
는 그쪽 구멍부터 막고 보자는 속셈이다. 안산마루 쪽에선 사격전이 계속되고 서대문 어름에는 연방 폭탄 터지
는 소리가 들린다. 그쪽은 맑은 하늘을 덮으며 검은 연기가 자욱이 피어오른다.
갑해는 서울시 인민위원회마저 피란짐을 싸는 것으로 보아 공화국의 사대문 안 사수가 오늘밤을 무사히 넘기
기 어렵겠다고 생각하며 을지로 쪽으로 걸음을 돌린다. 광장을 질러 인민군 대대 병력이 열지어 뜀박질로 달려
온다. 남쪽 낙동강 전선에서 올라온 부대인 듯 땀과 흙을 뒤발한 군복 입성이 추레하고 모색도 까맣게 그을려
거칫하다. 마치 피에 굶주린 산도둑 무리 같다. 갑해는 오늘밤으로 서울 중심부를 내주게 된다면 지금쯤 아버지
가 집에 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일신학교와 묵정동 집과는 거리가 불과 1킬로 정도이다. 사흘째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박귀란누님도 와 있을는지 모른다. 누님 방에는 짐을 꾸리지 않은 사물이 아직 그대로 있다. 누
님은 창덕여자중학교에 본부가 있는 특수공작대 여성부에서 일을 보고 있다. 여성부 부부장인 한정화 중좌 비
서일을 본다고 했다. 엄마는 이틀에 걸쳐 덩이덩이 피란짐을 꾸려두었기에 아버지 말만 떨어지면 곧장 피란길
에 나설 수 있다. 사촌 윤극이네 가족도 아직 떠나지 않았으므로 함께 피란길에 오를 게 분명하다. 외삼촌도 공
산주의 길라잡이이므로 그 피란길 역시 남쪽이 아닌 북쪽을 선택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고향 진영과는
더욱 멀어지게 되고, 진영에 떨구고 온 시해와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별이 될 게 뻔하다. 조선 반도가 통일
되어야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갑해는 누이를 떠올리자 목구멍이 겨자라도 삼킨 듯 아려온다.
지상 칠층 반도호텔은 윗 두 층이 항공 폭격으로 짜부라졌고 벽은 여기저기 불에 탄 시꺼먼 구멍을 보인 채
뚫렸다. 창문도 박살났고 문틀도 불에 타 떨어져나가고 없다. 호텔 정문에는 인공기가 내걸렸다. 장갑차 한 대
가 길가에 멈추어 포신을 덕수궁 쪽에 겨누고 있다. 갑해는 몸을 옹송그려 그 앞을 지나친다. 을지로 입구 네거
리에는 여전히 내무서원과 보안대원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사태가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전개됨을 알고 반동들
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되는지 장년층 행인들을 마구잡이로 불심 검문한다. 여성 교통안전원이 네거리
가운데서 호루라기를 불며 여전히 차량 통행을 지시한다. 갑해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중늙은이 행인을 호루라
기로 부르는 내무서원 앞을 허리 숙여 지나 네거리를 건넌다. 중학교 이학년생마저 불심 검문에 붙잡히면 소년
전사로 뽑혀나갔기에 그는 늘 국민학생 행세를 했는데, 그나마 키가 작아 다행이었다.
갑해는 을지로 3가 못미처 건너쪽 인도로 줄지어 가는 긴 행렬을 본다. 허리와 손목을 오라에 묶인 채 굴비
두름처럼 엮어가는 대열이다. 젊은이는 없고 대체로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다.
"반동 분자들 맞지?" "이승만 시절 높은 관리나 국회의원은 다 북으로 압송해 간대. 데려가면 이용가치가 있
겠지." "요즘 주로 밤중에 끌어낸다던데, 낮에 이러는 걸 보니 엔간히 다급하군." "그 소문 못 들었나. 서대문,
마포형무소에 갇힌 자들 중에 처형당한 이들도 많대. 며칠 사이 그쪽에서 밤이면 맹렬한 총소리가 들렸다잖아.
그러니 저렇게 끌려가는 게 차라리 다행일는지도 몰라." 길거리로 나선 늙은이들이 듣는 귀를 염려하여 주위를
힐끔거리며 조용조용 속삭인다.
끌려가는 사람 중에 가족 일원이 섞였는지 보퉁이를 이고 지고 대열 뒤를 쫓는 아낙네도 있다. 반동 인사들
의 옷은 넝마이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더부룩하여 떼거지와 다를 바 없다. 고무신이나 찌그러진 구두를 신었으
나 맨발도 더러 섞였다. 절룩이거나 비척거리며 걷는 이도 있다. 따발총을 멘 인민군이 곳곳에 박혀 그 대열을
인솔한다. 2백은 넘을 듯한 긴 행렬이 을지로 4가에서 창경원 쪽으로 굽어 돈다.
"맞잖아, 미아리고개 쪽이라니깐. 철수할 땐 서울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가 미아리고개뿐이야. 그쪽은 인
민군이 겹으로 수비를 하고 있어 가장 안전한 퇴로라잖아." 맥고모자에 카이저 수염의 늙은이가 말한다.
갑해는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돌아선다. 그는 남산을 마주보며 걷는다. 남산 마루턱 인민군 포진지에서 용산
쪽으로 쏘아대는 폭격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영등포까지 들어온 남반부 연합군이 수륙용 장갑차로 한강을
건너 노량진에 이미 들어와 있지 말란 법도 없다. 그래서 용산 쪽으로 포를 쏘아대리라 여겨진다. 만약 남산 마
루의 포소리마저 끊어진다면 인민해방군이 철수했다고 봐야 한다. 갑해는 어서 집으로 가려 걸음을 빨리한다.
집 앞 공터에 모터찌끌 한 대가 멈춰 있다. 여성 전사가 운전석에 앉았고 옆에 달린 보조 자리는 비었다. 동
네 아이들이 구경거리라고 모터찌끌 주위에 몰려 있다.
"코쟁이 양키 군대가 막 쳐들어온담서요?" "인민해방군이 다시 삼팔선 너머로 되돌아가야 한다던데, 정말이에
요?" "영등포 쪽 강나루에 미 제국주의 땅끄 부대를 봤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 말 맞아요?" 군모 쓴 여성 전사
에게 아이들이 고개를 들이밀고 마치 참새새끼처럼 재재거리며 묻는다. 유해는 끼여 있지 않다.
"우리 해방군이 잠시 후퇴하게 되더래두 날래 서울루 올 것이라요. 소년 동무들두 이 강토를 짓밟는 미제 원
쑤놈들과 투쟁해야 합네다. 양키놈들 보믄, 왜 남의 땅에 쳐들어왔냐며 돌멩이 들구 던져야 해요." 여성 전사가
말한다.
갑해는 그들 대화를 듣고 있을 짬이 없다. 모터찌끌이 왔다면 틀림없이 아버지가 왔을 터이다. 아버지는 그걸
타고 집으로 온적이 있었다. 아니면 한정화 중좌가 왔는지도 모른다. 한정화 중좌도 모터찌끌을 타고 온 적이
있다. 갑해가 고물상 마당을 질러 안채로 들어가자 박귀란누님 방 댓돌에 눈에 선 가죽 군화가 보인다. 운동화
와 고무신도 있다. 고무신은 엄마 신이고, 운동화는 누님 신발이다.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 한정화 중좌가 누님
과 함께 왔음을 안다.
"어무이." 갑해는 소공동 정보처에서 들은 아버지 소식을 전하려 방 앞에서 엄마를 부른다. 방문이 열리고,
봉주댁이 얼굴을 내밀더니, "유해나 찾아봐라." 하고 말한다.
"소공동 거게도 피란 준비합디더. 아버진 일신학교에 계실 끼라 카던데예."
"방금 들었다. 여기서 얼쩡거리지 말구 어서 유해나 찾아보라니깐." 봉주댁이 성깔을 부리며 방문을 닫는다.
그네는 한정화를 보고 아들 때문에 멈췄던 말을 따지듯 잇는다. "아니, 연합군이 서울 사방을 다 둘러싼 마당
에, 계속 사수한다니? 훈련두 안 된 노동당 각 지구당 힘으루 벌떼같이 덤비는 양키놈들을 어찌 막겠다구. 오늘
밤이라두 양키놈들이 남산 넘어올 것 같은데요? 한 동무가 뭘 모르구 있는 게 아니우? 내가 오전에 부녀동맹
사무실에서 듣고 온 말과는 아주 다른데?"
"상황이 급해서 언제까지라 장담은 못 하지만 당분간은 버텨냅니다. 적 화력이 강하다곤 하나 우리 공화국도
그에 대적할 방위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철원에서 급파된 이십오 독립여단 병력과 남에서 올라온 칠십팔 연
대가 서울 사수를 목표로 전투에 투입됐어요. 유해어머니, 제 말 믿으세요." 한정화가 사근사근 말한다. 군모를
벗은 그녀는 단발머리에 얼굴이 깜조록히 그슬려 나이보다 앳되어 보인다.
"언니, 너무 염려 마이소. 상황이 아주 나빠지기 전에 조선생님이 다녀가실 끼라예. 피란 준비만 단단히 꾸려
놓고 있으면 됩니더." 박귀란이 말한다. 그네도 헐렁한 군복 차림이다. 목에는 빨간색 쁠라토끄(스카프)를 싸매
고 있다.
"너까지 떠나버리면 우린 어떡헌단 말이냐. 너라두 있어줘야 힘이 되구 길잡이가 되지. 내가 어디 동서남북인
들 제대루 아냐? 등신 유해와 갑해 데리구, 시해는 진영에 떨궈놓구... 누구한테 길을 물어 어디루 가야 한단 말
이냐?" 봉주댁은 서방이 영영 오지 않기라도 하듯 목멘 소리로 엉절거린다. 그네는 콧물을 들이켜곤 소매로 눈
가장자리를 훔친다.
"그저께 조선생님 잠시 뵈었을 때, 그러잖아두 가족을 후방으로 옮겨놓는 얘기가 나왔어요. 조선생님께선 내
가 알아 처리할테니 신경쓰지 말라더군요. 조선생님두, 저두 공작에 워낙 바빠 몇 마디 말을 못 나눴지만..." 한
정화가 떠나야겠다는 듯 매만지던 군모를 쓴다.
"군관 동무 만날 시간은 있구, 집에 들를 시간은 없다니... 도대체 애 아비가 정신 바로 박힌 사람이우? 말이
났으니 그렇지, 한중좌가 왜 우리 식구한테 신경을 써야 허우? 우리 식구 건사해줄 입장두 아니면서... 말이 어
떻게 돌아가는지, 무슨 꿍꿍이속인지 난 도무지 알 수가 없구려. 그래, 애들 아비가 새로이 중요 직책을 맡았다
면, 가족은 이렇게 버려둬두 된단 말이우? 서울 비우고 철수해야 헌다구 장안이 온통 난리났는데, 쫓겨가는 처
지에 중요 직책이라니, 그게 대관절 뭐요? 서울 사수 부대 총대장이라두 됐단 말이우?" 봉주댁이 불퉁거린다.
확정이 없으니 대놓고 막말은 못 하지만 그네는 한정화란 군관이 서방과 놀아나는 사이가 아닐까 다시 의심한
다. 이를 두고 박귀란에게 서방과 한이란 여성과의 관계가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으나 그녀는, 당 사업으로 더
러 만나는데 언니가 공연히 투기한다며 펄쩍뛰었다. 봉주댁은 내가 의부증이 심했나 하면서도 한정화만 보면
심화가 끓는다.
"언니, 당분간 못 뵙게 될는지도 모르겠어예. 좋은 세월 오면 서울에서든, 평양에서든, 진영에서든 다시 만나
겠지예. 그분도, 우리 배달이도 그때를 기약해야지 어짜겠어예. 애들 데리고 몸 건사 잘하시이소." 박귀란이 불
룩한 륙색을 메더니 보퉁이를 들고 이러선다. 그네의 눈에 눈믈이 글썽하다.
"진영 사람들 모두가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는구나. 안골댁 식구두 그렇게 떠나구, 성호는 의용군에 나가구,
심도령두 떠나구, 이문달 선생은 코빼기두 안 뵈구, 넝마주이패두 죄 떠났구, 너마저 이제 우리 곁을 떠나니..."
보주댁이 갑자기 서러워져 물코를 훌쩍이며 한정화와 박귀란을 따라 일어선다. 그네는 손으로 입을 막고 서러
운 울음을 목 안으로 삼킨다.
한정화가 방문을 연다. 방안의 대화를 귀기울여 듣던 갑해가 몇 발 뒤로 물러선다. 그는 언제 보아도 한정화
중좌의 복장이 멋있다. 견장 달린 윗도리를 가로지르며 내려온 가죽끈이 권총지갑에 연결되어 있다. 지갑 속에
비쭉이 내민 권총 자루는 잉크색으로 반들거리고 굵은 가죽 허리띠에는 탄창이 여러 개 꽂혔다. 펑퍼짐한 누런
군복 바지 바깥쪽으론 붉은 선이 달렸다. 목이 긴 가죽 군화도 윤이 난다.
"유해어머님, 안녕히 계세요. 조선생 말씀 있을 때까진 당분간 움직이지 마시고 계세요. 유해아버지가 곧 들
리실 겁니다." 말을 마치고 한정화가 봉주댁에게 거수 경계를 한다.
"애 아비 만나면 꼭 집에 들러달라구 말해줘요. 애간장이 다 녹는다구." 마당으로 나선 봉주댁이 눈물 글썽한
얼굴로 한정화에게 말하곤, 박귀란에게 묻는다. "평양이 아니구 평강으루 간다니, 거기가 어딘가?"
"강원도 북단 추가령 아래쪽이라예. 원산 가는 철길이 그리로 지나갑니더."
"쯔쯔, 남쪽으루 내려간 서방과 자식 소식두 모른 채 그렇게 홀홀이 북으루 떠나다니. 날씨는 추워지는데 북
쪽으루 떠나는 네 신세나 우리 식구 신세나 마찬가지긴 허다만..."
"거기서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시 내려오게 될 거라예. 우리 여성 대원들도 남성 전사들 못지않게 해방 전쟁
에 역성을 다합니더. 문화공작대원들도 최전선에서 혈기 당차게 잘 싸웁니더." 박귀란이 활짝 웃는다. 그네가
갑해를 본다. "갑해야, 너도 얼렁 커서 선진 혁명 전사가 돼야제. 파쇼 양키놈들 이 땅에서 죄 쫓아낼 때까지
투쟁해야제. 형 잘 돌보고 어머님 잘 모셔. 아버님은 당에서 인정해 주는 훌륭한 혁명가셔. 아버님을 보더라도
네가 영용한 해방 일꾼으로 자라야 한데이." 박귀란이 갑해의 어깨를 다독거린다.
"예. 그라께예. 누님 잘 가이소. 우리 식구도 뒤따라갈 낍니더." 갑해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한다. 엄마 말처럼
이제 모든 고향 사람과 헤어지게 된 셈이다. 그저께는 허정우 선생 약혼자 김신혜선생이 와서, 평양으로 소환되
어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김신혜 선생은 고향으로 내려간 찬수아저씨 소식을 알고 싶어 들렀으나, 그들이
떠난 뒤 그 뒷소식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봉주댁과 갑해는 한정화와 박귀란을 뒤따라 고물상 마당을 거쳐 공터로 나간다.운전 전사가 모터찌끌에 시동
을 건다. 한정화가 다시 한 번 봉주댁에게 거수 경례를 하곤 모터찌끌 옆자리에 오른다. 운전석 뒷자리에 박귀
란이 보퉁이를 안고 탄다. 모터찌끌이 꽁무니에 푸른 연기를 뿜으며 떠난다.
"누님, 아니, 박선생님, 잘 가이소!" 갑해가 손을 흔들며 외친다.
"또 만나. 언니, 다시 만날 날이 올 겁니더. 그 동안 건간하이소." 박귀란이 명랑하게 소리친다. 언제나 구김살
없는 그네라. 그렇게 떠나면서도 방긋 웃는다.
모터찌끌이 을지로 쪽으로 멀어진다. 흙먼지가 자욱이 인다. 모여 섰던 아이들 중에 한 아이가 여성 군관이
멋쟁이라고 말한다.
어두워지고 난 뒤에는 일체 지상의 불빛이 보이지 않아야 했기에 봉주댁이 서둘러 저녁밥을 짓는다. 밤에도
늘 비행기가 서울 하늘에서 놀다시피 했고, 불빛만 보이면 항공에서 반드시 폭탄이나 네이팜탄을 쏟아부었다.
그때쯤에 유해가 돌아온다. 유해는 어디로 싸돌든 밥 먹을 시간은 용케 알고 있다.
"가, 가배야, 캉캉 소더라, 저 사, 산에서." 유해가 남산을 손가락질한다. 남산에 올라갔다 온 모양이다. 유해는
가슴에 커다란 명찰을 달고 있다. '조유해, 16세. 주소, 서울시 남산 밑 묵정동...' 갑해가 만들어준 명찰이다.
그날 밤도 조민세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남쪽과 서쪽에서 포소리와 총소리가 계속 들리고, 봉주댁과 갑
해도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봉주댁은 바깥에 무슨 기척만 나도 벌떡 일어나 문고리를 벗기고 바깥을 살핀다.
밤중에라도 양키 군대가 남산을 넘어와 묵정동을 곧장 덮칠 것만 같은 불안에, 모자는 풋잠을 잘 수 밖에 없다.
유해만이 코를 골아가며 단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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