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희 -그리운 얼굴, 향수의 노래 (노래 및 방송 대담)
차은희 -그리운 얼굴, 향수의 노래 (노래 및 방송 대담)
https://www.youtube.com/watch?v=I0fX5saGZ_I
Sep 15, 2023
스타365는 인기가수들의 공연, 한국가요 100년의 명곡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옛날을 추억하며 노래로서 그시대의 애환과 사랑을 함께 공유합니다.
가수 차은희의 본명은 본명 최은섭(崔恩燮) 이며 1937년 서울 장충동에서 출생 하였으며,막내 고모를 따라..
부산피난으로 피난했을 때 막내고모가 남성여중 교편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하며. 1956년 부산 데레사여고 재학 중 부산 국제신문사가 주최한 노래자랑에서 1등 수상하였습니다.
1956년도 도미도 레코드 미도파 레코드에서 이재오 작곡가, 야인초 작곡가등이 예심을 봤다는데, 작곡가 이재호씨는 " 차은희는 결승에서 떨어져도 내 제자가 된다" 하며 주목을 했다하며. 그 당시 최갑석씨는 남백송, 방태원 나와 계셨다 전합니다.
결승에서 1등을 하게 됬는데. 신문에 나는 바람에 집과 학교에서 발칵 뒤집혀졌고 歌手로 활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관계로 당시 무대에 많이 서지 못한 悲運의 가수입니다.
한 많은 오륙도가 데뷔곡이라고 할수 있으며 여러곡을 취입. 일선의 우리 오빠, 대답 없는 추억, 신세계 전속때 윤일로와 같이 듀엣곡 아베크 토요일을 불렀으며, 명랑한 신혼여행, 1961년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을 불렀습니다.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차은희씨 별세, 향년 86
등록 2023.10.30 13:10:26수정 2023.10.30 14:45:29
부산과 인연 깊어…1950∼60년대 다양한 장르 소화하며 인기
1956년 '한 많은 오륙도'로 데뷔…10년간 100여곡 발표
"맑고 또렷한 발음…맘보·트위스트·민요·가곡 모두 소화"
[서울=뉴시스] 차은희.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3.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등 여러 히트곡으로 1950~60년대 인기를 누린 원로가수 차은희(최은섭)가 별세했다. 향년 86.
30일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등에 따르면, 차은희씨는 전날 오전 5시24분께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숙명여중 재학 중 6·25 동란이 터져 부산으로 피란을 떠났다. 부산 데레사여고 3학년 때 인근에 살던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의 권유로 국제신문사 주최 콩쿠르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으로 1등을 차지했다. 차은희라는 예명은 이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이재호가 지어준 것이다. '리어카에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아이'(車銀姬)라는 뜻이다. 졸업 후 HLKB(현 KBS 부산) 전속가수로 발탁, 부산·경남 지역을 돌며 공연했다.
1956년 '한 많은 오륙도'를 취입하며 정식 데뷔한 차은희는 대구 애호레코드를 거쳐 1958년 신신레코드(이후 신세기), 아세아레코드에드의 전속가수로 활약했다.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외에 '일선의 우리 오빠' '대답 없는 추억' '여배우 일기' '청춘 아베크' 등 약 10년간 100여 곡을 발표했다.
[서울=뉴시스] 차은희.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3.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1960년에 발표한 곡 '꽃 파는 차은희'가 확인해 주는 것처럼, 그녀의 이름이 노래 제목에 삽입될 정도 당시 크게 주목 받았다. 이 곡의 작곡가는 송운선이었는데, 그는 차은희와 함께 공연하던 HLKB의 기타리스트였다. 명랑한 분위기의 곡이었는데 노래 제목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 차은희가 개인적으로도 오랫동안 아끼던 노래로 알려졌다.
차은희는 1962년 공연단체를 이끌던 이춘식 쇼단장과 결혼한 이후 자녀 양육 등에 살림에 집중했고, 1965년 신곡 발표와 활동을 중단했다.
다만 1975년 부산연예협회 가수분과 위원장을 맡았고, 2007년 부산 출신 가수 현인을 기리는 현인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는 등 부산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노래 도시 부산을 지키는 버팀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성서 평론가는 "'사월의 별'(1962)을 통해 4·19 혁명으로 유명을 달리한 넋들을 위로했고 '서울의 전차 차장'(1962)에서는 서울 시내를 달리는 전차 차장의 일과를 유쾌하게 묘사하는 등 노래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그려냈다"고 봤다.
또 차은희가 가수로서 높게 평가 받는 부분 중 하나는 대한 맑고 또렷한 발음이었다.
박 평론가는 "맑고 고우면서도 풍부한 성량으로 여러 음반사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발표했던 고인은 서정적인 트로트에서부터 맘보, 트위스트, 민요, 가곡까지 모두 소화해 낼 정도로 다재다능했던 가수"라고 기억했다.
말년까지 부산 양로원 회장을 맡아 봉사활동을 이어간 그는 최근 투병 중에서도 톱 가수 임영웅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평론가는 "누워 있다가도 TV에서 임영웅의 목소리가 나오면 '벌떡' 일어났다고 전했을 정도였다"면서 "임영웅 에 대해 '지금까지 본 가수 중에 표현력도, 표정도 최고'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팬이었다고 유족은 전했다"고 덧붙였다.
빈소 부산전문장례식장 VIP 5호, 발인 31일 오전 10시30분. 051-312-4444
데뷔곡 '한 많은 오륙도' 배경인 오륙도를 찾은 말년의 가수 차은희
[서울=뉴시스] 1956년 첫 취입한 '한 많은 오륙도'의 장소를 56년 만인 2012년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와 함께 찾은 차은희.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3.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대답없는 추억 - 차은희
1958
고명기 작사, 김교성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WofUl_IXt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