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독서감상문 10권
1. 책명 : 금파(조선의 마지막 소리)
2. 지은이 : 김해숙
3. 출판사 : 다산책방(초판발행일 2022년 2월 24일)
4. 쪽수 : 262쪽
5. 읽는 기간 : (2023.1.29.~1.31.)
6. 독서 감상
제목 :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소질과 끈기가 필요하다.
0. 작가에 의하면 허금파는 여성으로서는 조선의 마지막 소리꾼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에서는 여성들의 제약이 매우 많았다.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자신의 재능을 숨겨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비근한 예로 허난설헌이다. 그녀는 천부적인 시에 관련된 재능을 타고 태어났음에도 그 재능을 살릴 수 없어 결국 그것 때문에 요절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은 비록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여성들은 소리를 할 수 없었던 조선 후기. 금기를 깬 최초의 명창이 진채선이라고 했다. 그 이후에 두 번째로 명창 반열에 오른 여성 소리꾼이 바로 허금파이다. 고 했다. 소리를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 특히 목소리가 득음을 해야만 진정한 소리꾼이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허금파는 난 처음으로 접하는 인물이다. 물론 허금파보다 먼저 여성 소리꾼으로 유명한 전채선도 마찬가지이다. 이토록 우리에게 미지의 인물이 작가를 통하여 알게 된 게 아주 의미가 깊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려고 하지만 무대가 없는 그런 시대에 또한 소리꾼이라 하면 양반들에게는 한낮 노리개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난 허금파. 그런데 왜 그 명창의 출생과 사망 연대를 알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데 작가는 물론 물음표를 달긴 했지만 1866?~1949?라고 했다. 그런데 왜 한 명의 인물을 두고 출생지는 백과사전마다 다를까? 검색해 보니 다음 백과사전에서는 허금파는 조선 철종 시대에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고 했으나 네이버 두산백과에서는 경상북도 김천이라고 했다. 물론 두 백과사전에서도 출생과 사망은 미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디지털고창문화대전에서는 출생과 사망 연도가 명확하게 나타나있다. 작가는 아마 그것을 보고 기록했는지 모르겠다. 허금파(許錦波)[1866~1949][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단 지역은 전라북도 고창군이라고 했지만 출생지 임은 명백히 밝히지 않았다. 더구나 개설 부분에서는 고창 출신이 아닐 것이라는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무튼 허금파는 대단한 명창이었다는 사실은 각 사전에서 이구동성으로 밝히고 있다. 명창을 사전에 찾아보면 명창(名唱)이란 ‘노래를 뛰어나게 잘 부르는 사람’, ‘노래를 잘 불러 이름이 난 사람’이란 뜻이다. 판소리명창이란 ‘판소리를 뛰어나게 잘 부르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심금을 울려주는 판소리의 대가를 명창이라 부른 것이다. 허금파는 대단한 명창이었나보다. 특히 조선의 최초의 국립연희극장 협률사 무대에 올라 창극 <춘향전>의 월매 역을 맡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늘 자신을 누르려는 양반들이 있었다. 더구나 양반 출신 소리꾼 이승윤을 만나 그를 사모하기도 했지만, 작가는 허금파의 자녀가 누구의 자녀인 줄 밝히지 않았지만 이미 아이가 있었다는 죄책감으로 이승윤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 했다. 그러다가 친구인 계향이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계기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승윤이 한창 인기 절정이었을 때 워낙 많은 여자들로 시달림을 받았기에 그걸 잠재우기 위하여 가짜 혼인을 시키려고 했을 때 상대역을 금파로 김세종 스승이 이끌었지만 그녀는 강력하게 반대하여 친구인 계향이가 결혼식을 올렸다. 그로 인하여 계향이는 이승윤과 지내는 것이 매우 행복했지만 이승윤이는 금파바라기였음을 알고 계향이는 아편에 손을 대었으며 결국 아편 부작용으로 숨을 거둔 것이다. 이로 인하여 금파의 충격은 컸다. 그렇다고 이승윤이와 결혼한 것은 아니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이승윤이는 소리 계를 완전히 떠난다. 남성 중심의 소리판에서 주역을 맡아 권력에 승복하지 않으면서 하층의 삶을 대변하는 월매 역을 맡으면서 인기 절정에 오른 허금파는 홀연이 소리 계를 떠나 그녀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화전을 일구었던 아버지가 소리를 배워와 금파에게 가르쳤던 계기가 오히려 금파의 잠재적 능력을 깨워서 결국 명창의 반열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태어나서 소리를 했더라면 많은 찬사를 받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환경이었겠지만 그 당시는 어찌 그럴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허금파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어떠한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로지 소리만 생각했던 명창 허금파. 그녀의 소리 인생이 70여 년 만에 한 작가의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이 글에서 여름 목멱산에서 즉석 야외 공연을 한 대목이 눈에 띄인다. 예인들은 어디서건 그 곳이 무대이고 공연장인 것이다. 청중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건 그곳이 무대이다.
# 책을 읽고 나서 참고할 사항
0. 허금파 [許錦波]대한제국기 김세종의 소리제를 이어받은 판소리의 명창.
내용 : 철종 때 전라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김세종(金世宗) 문하에서 판소리를 공부하여 진채선(陳彩仙)에 이어 여자 판소리 명창의 선구자가 되었다. 뒤에는 신재효(申在孝)로부터 판소리의 지도를 받아 대명창이 되어 고종 때 크게 이름을 떨쳤다. 1900년 광무대(光武臺)협률사(協律社)공연에 참가하였고, 1903년 원각사(圓覺社) 창극공연에 참가하여 「춘향전」에서 월매역을 하였다 한다. 원각사 공연 이후에는 가정에 묻혀 살았다. 「춘향전」를 잘 불렀고, 특히 「춘향전」가운데 ‘옥중상봉’ 대목이 더늠(장기)이라 한다. 김세종의 소리제를 이어받았고 신재효로부터 이론적 지도를 받은만큼 매우 품위 있는 소리를 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출처 : 다음백과사전)
0. 신재효는 자신의 집을 ‘동리정사(桐里精舍)’라고 이름 붙이고 소리청을 만들었다. ‘동리’는 그의 아호이다. 그는 이 소리청에 소리꾼들을 불러들였다. 당시 소리꾼들은 대개 무식해 판소리 가사의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한자의 음도 제멋대로 부르고 있었다. 그는 소리꾼들에게 문자를 가르치고 판소리의 정확한 발음과 뜻을 일러주었다. 물론 소리꾼들이 먹고 자는 일, 때로는 그들 가정의 생활비까지도 대주었다. 천석꾼이라 불렸으니 별로 모자람이 없었을 것이다. (출처 : 다음백과사전)
# 사전에서 찾은 낱말은 붙임으로 올려놓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