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길 Story ④] 응징(膺懲)이 빠진 역사 (WWW.SURPRISE.OR.KR / 신상철 / 2017-12-18) 1945년 광복이 되자 친일매국노와 민족반역자들은 ‘멘탈붕괴’에 빠졌을 겁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죽었구나… 과연 그들이 처단되었을까요?
해방 다음 해인 1946년 5월 미소공동위원회가 무기한 휴회하자 그해 12월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가 설립되어 미군정하의 입법기관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남조선과도입법의원법, 하곡수집법, 미성년자노동보호법,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범, 간상배에 대한 특별조례법률 등을 제정하는 성과를 이루어냅니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협력하여 반민족적 행위로 민족에게 해를 끼친 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률로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헌법 제101조에 의하여 국회에 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9월 법이 제정되었으며 10월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예비조사를 시작합니다. 그러자 반민특위를 와해시키기 위해 정부요인에 대한 암살을 시도하는 등 친일파들의 조직적인 반발이 시작됩니다. 당시 미군정 역시 친일파 처벌에 미온적이고 부정적이어서 일제하에서 관리로 지낸 조선인들을 다수 군정관리로 기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조례법률 제정 초기부터 ‘선 선거법 후 친일파 처리’라는 논리로 반대하였고 법안이 제정되었음에도 인준을 거부합니다. 이승만 정부와 친일파들은 초기부터 이 법에 반대하여 여러 차례 개정을 요구하였고 세 차례에 걸쳐 개정되는 가운데 공소시효가 단축되고 반민특위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의 업무가 대검찰청과 대법원으로 이관되는 등 사실상 와해의 수순을 밟았으며 결국 1951년 2월 14일 ‘반민족행위처벌법등폐지에관한법률’을 통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은 폐지가 되고 맙니다. (위키백과 인용)
4.19에 의해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친일매국노들은 또 다시 위기를 맞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들은 다시 살아났으며 10.26에 의해 박정희가 피살되고 80년의 봄을 맞았으나 전두환과 노태우의 12.12 쿠데타로 그들은 생명을 이어갑니다.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간 김영삼은 결국 고양이로 전락하여 친일매국노와 동고동락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고 대한민국 수립 후 실질적인 최초의 민주정부인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중범죄자인 전두환을 처단하지 못하고 ‘사면’이라는 면죄부를 주고 맙니다. 그렇게 친일매국노들의 숨통은 끊어지지 않고 위기 때마다 구제되는 ‘천운’을 누리며 이명박.박근혜 시대에 친일의 꽃을 활짝 피우는 꼴을 우리는 지켜보아야 했으나 결국 최순실.박근혜가 저지른 국정농단으로 천만 촛불이 타올라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새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과제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 비운의 역사현장 곳곳마다 우리는 이 문구를 보며 또 뼈에 새긴 듯 떠올립니다. 두 번 다시 불행한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마음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얘기해 줍니다. 이렇게 불행한 시절이 있었노라고. 너희들은 그 역사를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고.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는 명제 속의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박근혜 시절 국정교과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친일매국노들의 입장과 시각을 교과서에 최대한 반영해 넣고자 그들의 무모한 시도는 결국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들이 그러한 행위를 하려고 한 배경의 중심에는 ‘역사’를 ‘조작’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적 저항을 받아야 했던 것이지요. 역사(歷史)란 ‘사실의 기록’입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내려간 것들이 모여서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현재의 기록’이 무수히 이어져 ‘과거의 기록’이 되고 그것이 ‘역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우리가 ‘사실’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은 시간이 흐르면 ‘잘못된 역사’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를 잊은 국민’ 그 이전에 ‘역사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국민’ 수준에 머물러야 한다는 참으로 비참한 지경에 처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2017년을 살아가고 있으며 곧 2018년을 맞게 됩니다. 백 년 전 일제의 침탈로 나라를 잃었던 뼈아픈 시절의 역사에 분개하고 일제에 부역하며 호가호위하던 친일매국노의 행위에 분노하는 것만이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사실을 제대로 규명하고 기록하는 것 또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역사는 역사학자만의 고유영역이 아닙니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역사의 목격자이며 역사의 주인공이며 역사의 기록자인 것이지요. 2010년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사건을 시대역순으로 조명해 보려 합니다. ● 2014년 - 세월호 침몰사건 불과 얼마 전 우리가 겪어야 했던 이 세 개의 사건에 대한 진실을 우리가 현재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거나, 잘 못 알고 있다면 최소한 ‘역사를 잊지 말자’는 말 조차도 하기 쑥스러워질 것입니다. 응징(膺懲)이 빠진 역사는 반드시 동일한 과오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응징을 하려면 사실을 정확하고 면밀하게 파악해야 하고 그에 대한 명확한 합의와 결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우리 정부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다그쳐야 할 일입니다. ‘역사를 잊은 국민’보다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국민’의 죄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 1 ] 2014 세월호 사건 1. 왜 선수를 잡지 않았나 ? - 선수를 잡지 않은 것은 인명구조의 의사와 의지가 없었다는 것 2. 선수갑판 컨테이너 박스 고박(lashing)을 하지 않은 이유 - 선체가 급격히 좌현으로 넘어지게 한
3. 차량화물의 수량과 승객과의 상관관계 - 일반인 승객보다 많은 승용차는 무엇인가?
4. 항로 및 AIS 정보에 대한 신뢰성 - 정부발표 항적정보와 실제 상황과 불일치
5. 4월 16일 오전 7시30분 ‘구조요청’ 상황 - 무수히 많은 목격자의 증언과 진술 6. 해군참모총장의 통영함 출동명령을 2회나 저지한 세력은 누구? - 통영함은 즉시 투입 및 작전 가능한 상황
- SSU, UDT, 119수난구조대의 즉각적투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 선미램프(Lamp) 수밀의 문제 - 평소 외부의 불빛이 들어왔다는 증언 - 선체 10도 heeling시 침수 여부
9. 해군 구조잠수정과 PTC 투입하지 않은 이유? 이종인 대표, “사고초기 다이빙벨을 즉각 투입했어야 한다. 대한민국해군은 다이빙벨(PTC)를 보유하고 있었다.” 10. 해경의 구조 저지, 방해, 차단 - 이유는 ? - 초기 헬기에서 촬영한 사진에는 없는 오렌지색 표식 [ 2 ] 2012 총선 및 대선 부정선거 1. 투표지 분류 시간 이전에 이미 방송사에서 발표하였다 2. 전자개표기를 이용한 부정개표 - 혼표와 미분류표 문재인표가 1번 박근혜 라인으로 분류되고 있는 장면 (순천개표소) 3. 개표상황표 도장 위변조 및 공문서 위조 - 광주 북구 광주 북구 총 106장의 개표상황표 가운데 광주 북구 중흥2동 3투표구를 포함 31장의 개표상황표에 찍힌 위원장의 도장이 문흥1동 1투표구를 포함 75장에 찍힌 위원장의 도장과 이름은 같으나 획의 위치가 다르다는 사실이 발견됨. 4. 투표한 곳에서 수작업 개표만이 유일무이한 해법 전국의 투표소 13,500 곳. 유권자 4천만 가운데 3천만 명이 투표를 하면 평균 한 투표소당 2,222명이 투표를 하는 셈입니다. (1) 투표소에서 투표가 종료되는 즉시 위원장은 위원의 동의를 얻어 테이블 중앙의 투표함에 대한 봉인을 한다. (투표함은 어떠한 어떠한 경우에도 외부로 이동하는 것을 불법화 한다.) [ 3 ] 2010 천안함 침몰사건 1. 사고의 원인을 기록한 증거는 도처에 널려 있다. ‘최초좌초’표시와 고조표를 기록한 작전상황도 2010년 9월 합조단에서 발표한 ‘천안함 최종결과보고’는 천안함 침몰과 관련 수많은 의문점들을 해소하기는 커녕 의혹만 더욱 증폭시켜 놓은 결과가 되고 말았으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줄 주요 정보들은 여전히 비밀 혹은 기밀이라는 명목으로 베일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프로펠러가 관성에 의하여 휘어졌다는 그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실시한 시뮬레이션을 검증해 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나고, 어뢰폭발이 있었다면 반드시 존재해야 할 거대한 물기둥을 목격했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고의 원인을 밝혀줄 핵심 증거들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그들은 작전상황도에 진실의 일부를 기록하고 있고 종방향으로 길게 난 선체의 스크래치와 휘어진 프로펠러는 당시 천안함이 어떤 사고를 겪었는지 선체 스스로 외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2.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그렇게 전문적인 일인가? 많은 분들이 천안함 사건은 항해, 운항, 조선, 선박, 폭발, 공학 그리고 역학이 어우러진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며 거리감을 두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흡착물질’과 같은 전문적 논쟁에 들어가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해외 과학자인 서재정 박사, 이승헌 박사, 양판석 박사 세 분께서 흡착물질 관련 합조단의 주장이 거짓임을 과학적 분석결과를 토대로 조목조목 짚어 내 주었고 안동대 정기영 박사의 심층 분석 결과 백색물질은 ‘알루미늄수산화물’임이 밝혀진 것은 참으로 대단한 성과라 할 것입니다. ‘흡착물질’과 관련하여 오랜 논쟁과 실험과 분석 끝에 우리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써놓고 보니 어렵습니다. 비결정질, 바스알루미나이트, 상온, 저온, 수산화물, 1차산물.. 모두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표현하면 단 한 줄로 요약됩니다.
심플하고 명쾌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해하기에 참 쉽습니다. 이렇듯 범상치 않은 결론을 우리 식으로 쉽게 풀어서 펼치는 것, 그것은 우리의 몫이며, 우리의 과제입니다. 3. 일반인들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검증 가능한 증거도 많다 천안함에 폭발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와 정황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면관계상 상세 설명은 생략하고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안함이 좌초를 하였다는 증거는 다음과 같이 입증 가능합니다.
이렇듯 천안함이 어뢰폭발이 아닌 다른 사고를 겪었다는 정황과 증거는 도처에 즐비합니다. 결론은 ‘합조단의 주장은 틀렸다’입니다. 합조단의 결론은 ‘사실이 아니며 거짓이다’라는 것입니다. 4. MB 정권 국방부의 거짓과 날조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여러 가지 정황과 증거 그리고 과학적 분석을 통해 ‘폭발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폭발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어뢰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5월 20일 유리케이스 안에 곱게 박제된 어뢰는 무엇일까요. 허구의 존재입니다. 최소한 천안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존재입니다. 합조단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를 속인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과학적 분석도 거짓이며, 어뢰의 존재 역시 허구입니다. 지엄한 국민들 앞에서 두려움도 모르고 거짓과 왜곡, 조작과 날조 그리고 은폐를 일삼는 저 사람들이 과연 우리의 영토를 지키며 국가의 안위를 수호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물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이 우리를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합니다. 천안함 재판 - 7년 반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정에 나와서 증언을 하였습니다. 일부 진실을 말한 이도 있으나 조작된 거짓을 펼쳐야 했던 대부분의 그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은, 거짓과 조작을 일삼는 모든 세력들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신상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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