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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댄 브라운 - 영화보다 궁금한 스타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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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다빈치코드는 무명작가 '댄 브라운'을 스타로 만든 소설. 일종의 기독교 음모론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 미스터리물이다.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장이 살해되면서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도저히 하루 동안의 일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전개된다. 관장의 손녀와 하버드대 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술작품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해독하면서 예수의 결혼설 등 거대한 역사적, 종교적 비밀을 들춰낸다. 반장 브쥐 파슈는 고집세고 신앙심이 두터워 랭던 교수와 충돌하는 인물이다. 이 책은 해외에서 총 2천만부가 팔렸고 한국에서도 출간 5개월 만에 100만 부 판매를 돌파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빈치코드> 의 영화화 소식에 팬들은 이미 프리프로덕션 단계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톰행크스가 로버트 랭던의 이미지와 맞는지 안맞는지, 오드리토투가 섹시하고 영리해보이는 소피 느뵈역으로서 적당한지 아닌지 벌써부터 공방이다. '소설계의 빅뱅'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다빈치코드>의 작가는 댄 브라운이다. '로버트 랭던 3부작'으로 그가 선보인 작품은 <천사와 악마> <다빈치코드>, 그리고 앞으로 선보일 <솔로몬의 열쇠 The Solomon Key>가 그 것이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구성을 보이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실존하는 교파, 고대역사와 비밀단체, 암호등 논쟁적인 소재를 무척 영리하게 엮어내고 있다.
한때 평범한 교사였던 댄 브라운이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이같은 소설을 쓸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이 모든 것이 예술가이자 화가인 아내 블라이스가 있엇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부인과 함께 <천사와 악마><다빈치코드>의 주요무대가 되는 파리와 영국을 방문하며 자료조사를 하고 충분한 연구조사를 한 것이다. 예수를 유대인(인간)으로 보는 이 소설의 시각 때문에 댄 브라운을 유대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앵글로 색슨 혈통이다. 저명한 수학자인 아버지와 종교음악가이자 교육자인 어머니 덕문에 댄브라운은 어린 시절부터 과학과 종교에 대한 다양한 학설들을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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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첫소설 <디지털포트리스>를 발간하지 전까지 그는 영어교사로 활동했으며, 한때 지능지수 148이상의 수재들의 모임인 멘사 회원이기도 했다. 대학졸업후 캘리포니아에서 작사가와 피아니스트 등으로도 활동했으며 유럽으로 건너가 미술사를 공부하며 음악활동을 꾸준히 했다. 사실 댄브라운의 종교적인 입장은 하버드의 예술사, 종교 기호학자인 로버트 랭던의 태도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기독교나 유대교 어느 한쪽의 편에 서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상식과 역사적인 이해가 깊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다빈치코드>는 현재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서점의 가장 좋은 위치에 진열된 <다빈치코드>의 옆에 <다빈치코드깨기><다빈치코드의 진실>등과 같은 아류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책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무비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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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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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이태리 밀라노의 도미니카 수도원에 그려져있는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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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과 군인들에게 연행되기전, 마지막으로 12명의 제자들과 만찬을 가진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최후의 만찬'은 르네상스시대의 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1491년부터 1498년까지 무려 7년간의 기간동안 단 한사람에 의해 그려진 최후의 만찬은 현재 이태리의 밀라노지방에 있는 작은 수도원에 위치를 하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세계 제일의 걸작품 최후의 만찬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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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19세 젊은이가 모델로 쓰여진 그림속의 예수모습) |
1491년, 새로 지어진 수도원의 벽화를 그릴 유명한 화가를 찾던 로마 교황청은 당시 이태리에서 명성이 높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불러 '성서속에 있는 예수의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광경을 벽화로 그려줄 것을'는 부탁을 하게 됩니다. 부탁을 받은 다 빈치는 그때부터 실제로 그림의 모델로 쓰일 사람들을 찾아다녔다고 하며, 오랜 엄선끝에 1492년 예수의 모습을 상징할수있는 깨끗하고 선하게 생긴 19세의 젊은이를 찾은 뒤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6년동안 예수의 11명 제자그림을 모두 다 완성한 다빈치는 마지막으로 예수를 밀고한 배반자인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아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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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가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된 로마의 시장은 "로마의 지하감옥속에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수백명의 죄수들이 있으니, 그곳에서 한번 모델을 찾아보라"는 제안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그의 제안을 승락한 다빈치는 로마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 감옥을 방문한뒤, 그곳 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던 한 죄수를 선택하게 되었 다고 합니다. 1500년전 유대 대제사장과 바리세인들에게 은화 몇개를 받고 예수를 팔아넘긴 못된 사람의 얼굴을 묘사한 다빈치는 몇달에 걸친 작업을 통해 유다의 모습을 완성한뒤 "모델은 이제 감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통고를 하였다고 합니다. 연행되다 갑자기 결박을 풀고 다빈치앞에 무릎을 꿇은 살인범은 다빈치에게 계속 자신을 모르겠냐는 질문을 하였다고 하며, 다빈치는 "난 당신같은 사람을 내 인생에서 만난적이 없소"라는 답변을 하였다고 합니다. 순간 젊은이는 다빈치가 완성한 최후의 만찬을 가리 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저기 저 그림속에 그려진.. 6년전 예수의 모델이 바로 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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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태리의 르네상스 미술역사에 등장하는 위의 일화는 실화였을까요? 그렇게 얼굴이 성스럽고 깨끗했던 젊은이가 로마 최악의 살인마로 돌변하였다는 사실을 알게된 다빈치는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었다고 하며, 이 그림 이후로는 예수에 관한 그림을 더이상 그리지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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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Born 1452 Italy, Died 1519) - The Mona Lisa (1479 - d. before 1550) also known as [La Gioconda] 1503-1506, Oil on Wood panel, Musee du Louvre, Par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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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左:루부르) The Virgin of the Rocks, 1483-86, Musee du Louvre, Paris (version rejected by the nuns). |
(그림右:런던) The Virgin of the Rocks, 1503-1506, National Gallery, London (version accepted by the nuns). | |
다 빈치코드를 읽어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에서도 막달레나 마리아를 그림속에 포함시켜 놓은 것으로 묘사한다.
예수의 바로 오른쪽에 앉아있는 인물을 보면 흐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과 섬세하게 모아진 손, 그리고 살짝 솟은 가슴으로 보아 여자를 묘사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것은 바로 막달레나 마리아를 그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예수와 막달레나의 옷색깔을 보면 서로 바뀌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예수는 붉은 겉옷에 푸른색 망토를 두르고, 막달레나는 푸른색 겉옷에 붉은 색 망토를 두르고 있다.
또한 다 빈치는 베드로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교회가 막달레나의 존재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이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암굴의 마돈나>에서 보는 것과 같이 위협적으로 몸을 기대며, 칼날 같은 손을 그녀의 목에 들이대고 있는 듯한 그림을 그려서 막달레나의 존재가 숨겨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묘사한다.
결국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있었던 니케아 종교회를 통하여 예수의 인성이 철저하게 배제되고 신성만이 강조되면서 예수의 결혼과 여인에 대한 것은 철저히 금기시 될 수밖에 없었으나, 중세까지 전해 내려오는 다양한 전설을 통하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림 속에 이를 담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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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빈치 코드' 속 최후의 만찬을 둘러싼 논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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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열두 제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다빈치 코드’는 왼쪽에서 여섯 번째 인물, 즉 예수의 바로 바른쪽 인물이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마리아 막달레나이며 예수와 막달레나의 겉옷과 망토색이 교차하는 것은 두 사람의 합일을 음양의 조화로 바라본 것이라고 주장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소설 ‘다빈치 코드’는 이 그림에 예수의 결혼이라는, 금기시됐던 소재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여주인공 소피 느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깜짝 놀란다. 예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인물이 ‘흐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과 섬세하게 모아 쥔 손, 살짝 솟은 가슴’을 가진 영락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제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예언한 직후의 미묘한 분위기를 그린 작품이다. 분명 예수와 12명의 제자만 등장해야 할 장면에 웬 여자인가.
지난해 미국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소설 ‘다빈치 코드’는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이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 자식을 뒀다’는 파격적인 가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국내에서도 6월 번역 출간된 뒤 지금껏 대부분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로 인기다.
소설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의 숨겨진 비밀을 지켜 온 시온 수도회의 멤버였고 자신의 그림을 통해 후세에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그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는 그림이 바로 ‘최후의 만찬’이다.
○ ‘최후의 만찬’의 미스터리
‘최후의 만찬’에서는 몇 가지 논란이 될 만한 모습이 눈에 띈다.
우선 예수의 오른쪽 옆에 앉아 있는 제자가 여성으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점. 다빈치 코드에 따르면 이 인물은 (예수와 결혼한) 마리아 막달레나다. 수염이 없는 갸름한 얼굴, 흰 피부와 긴 머리가 여성으로 착각할 만하다. 더욱이 예수는 붉은 겉옷에 푸른 망토를 걸쳤고 마리아 막달레나는 푸른 겉옷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그려 놓음으로써 기독교가 예수의 결혼을 숨기기 위해 여성성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려 했다는 것이다.
이 인물의 오른쪽 옆에 앉아 말을 걸고 있는 인물은 베드로다. 그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몸을 기대며 손을 마치 칼날처럼 펴서 그녀의 목에 들이대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이를 예수가 자신의 후계자로 마리아를 지명한 데 대해 베드로가 반발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림 1과 2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3은 바사노 자코포, 4는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최후의 만찬’. 그림 2에서 베드로의 손(푸른색 테두리)은 어찌 보면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그림 왼쪽 아래에 칼을 쥐고 있는 손(검은색 테두리)이 논란이 일고 있는 ‘익명의 손’이다. 그림 왼편 제자들 사이에 불쑥 나온 단검을 들고 있는 손이 누구 것이냐 하는 점도 논란거리. 다빈치 코드는 이에 대해 ‘익명의 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해부학적 지식이 풍부했고 누구보다 인체 묘사가 정확하기로 이름났는데 이 손은 너무나 어색한 위치에 그려져 있다.
이 밖에도 테이블 어느 곳에도 ‘성배(聖杯)’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빈치 코드에 따르면 성배는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임신한 여성’을 나타내는 은유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그림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반론들
레오나르도 다빈치 외에도 ‘최후의 만찬’을 다룬 그림을 그린 화가는 많다. 예수가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는 장면은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극적인 순간의 하나로 성화(聖畵)의 단골 소재였다.
논쟁의 핵심은 역시 예수 옆자리의 인물이 누구인가 하는 점.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여성처럼 보이는 이 인물은 사도 요한이다. 사도 요한은 12명의 제자 가운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미소년이었다. 예수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은 제자로 알려져 있어서 최후의 만찬을 그린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도 언제나 예수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것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예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슬퍼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벽화 상당 부분이 훼손돼 성별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이 남성복이다 △만약 그가 마리아라면 제자가 11명밖에 안 남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여러 장의 사전 스케치에도 여성의 얼굴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소설적 상상력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모습은 어떻게 해석될까. 대체적으론 성질 급한 베드로가 예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배신자가 누구냐”라고 예수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요한에게 묻는 모습이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손을 목에 댄 것이 아니라 귓속말을 하기 위해 어깨를 잡은 것이다.
‘익명의 손’은 베드로의 손이라는 게 전통적인 견해다. 물론 구도가 어색하긴 하지만 이 칼은 단검이 아니라 식사에 쓰였던 나이프였다. 예수가 체포되기 직전 베드로가 대사제의 종인 말코스의 오른 쪽 귀를 칼로 자르는데 그림이 이를 암시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50여년 후 바사노 자코포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도 베드로는 칼을 쥐고 있다.
성배가 없다는 점도 별 문제가 안 된다. ‘최후의 만찬’은 제자의 배신과 예수의 희생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이 생략되는 경향이 많았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최후의 만찬’에는 빵을 써는 칼도, 포도주 잔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빵과 접시뿐이다.
○ 해석의 문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이탈리아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에 그려진 가로 880cm, 세로 460cm의 대형 벽화다. 제작된 지 500여년이 됐고 장소가 수도원 식당이다 보니 습기에 의해 심하게 훼손됐다. 그림을 둘러싼 논란은 수백년에 걸쳐 이뤄진 훼손과 수많은 덧칠과도 연관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에서 후세를 위한 코드를 숨겼는지, 후세가 이를 제대로 해석했는지 여부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오히려 성서 초기 역사의 해석이 논란거리다. 다빈치 코드가 800만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영화화가 결정되면서 미국 내에선 책이 담고 있는 종교관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다빈치 코드 뒤집기’, ‘다빈치 코드의 사기극’ 등 현직 종교인들이 낸 책도 10여권 출판됐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의 저자인 마거릿 스타버드는 “예수가 결혼했다거나 마리아가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증명할 길은 없다. 하지만 이 이설이 중세에 폭넓게 신봉됐던 이교의 교의이고 수많은 예술작품과 문학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로마 교회에 의해 심하게 공격당했고, 냉혹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댈러스 신학대의 대럴 보크 교수는 뉴욕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논쟁이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초기역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재해석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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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창녀와 결혼생활 예수니까 가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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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빈치 코드'’로 인해 논쟁이 되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 요즈음 ‘다빈치 코드’라는 책이 제법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서 예수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이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라는 가설을 증명해나가는 내용이 소설에 담겨 있다. 하긴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은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이고 예수가 죽은 뒤 무덤에 맨 처음 찾아간 여인도 막달라 마리아이고 보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얼마나 서로 친밀했는가 짐작할 만하다. 누가복음 8장 1-3절을 보면 예수와 제자들의 공동체에 여러 여자들이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을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 때 열두 제자가 함께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호기심 강한 인간들 끊임없는 상상력 발휘 일곱 귀신이 들렀다는 것은 정신 이상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고통을 예수가 치유해주었으니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일생을 예수와 그 사역을 섬기는 데 헌신할 만하다. 그런데 호기심이 강한 인간들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친밀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해왔다. 199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의 제2복음’이라는 소설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정식 아내도 아닌 정부(情婦)로 나온다. 그 부분을 잠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마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숨을 쉬며 그대로 자리에 누워 그를 두 팔로 안아 이마와 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럴 때면 예수는 그녀의 가슴에서 풍기는 달콤하고 따스한 체취를 맡을 수 있었다. 때로는 예수가 다시 잠자리에 드는 날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그렇게 질문하는 것을 잊고 마치 무언가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고치 안에 들어가듯이 막달라 마리아의 육체 안에서 안식처를 찾기도 했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작품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삶을 환상 중에 꿈꾸듯이 그려본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그 작품을 토대로 충격적인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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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다룬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프랑스 작가 장 클로드 바로의 ‘예수의 일기’라는 작품에서는 예수가 스물일곱 살 때 벤 이삭의 장녀 사라와 혼인식을 올리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내가 쾌히 장가를 가겠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내가 메시아의 신발을 신게 된다는 언약과 희망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계시면서도 막상 그날이 올까봐 두려워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상적인 생활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켜주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가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일찍부터 혼인 약속이 되어 있는 집안의 여인과 결혼을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의 아내 사라는 때마침 유행한 페스트에 감염돼 얼마 후 죽고 만다. 우리나라에서는 1958년 5월 ‘현대문학’에 실린 송기동의 단편소설 ‘회귀선’(추천작품)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성적 접촉을 다루었다 하여 당시 한국 교회로부터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았다. 결국 조연현 주간과 추천자인 계용묵씨는 해명서를 게재할 수밖에 없었다. 조연현 주간은 해명서를 통해 ‘총체적으로 말해서 이 작품은 기독을 모독하기 위하여 조작된 비루한 탈선적 작품으로서 이러한 작가적 탈선은 용서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계용묵씨도 ‘기독에게 욕을 돌린다는 것은 본의도 아니었거니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했다. ‘회귀선’의 주요 줄거리는 예수의 부활이 사기극이라는 내용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예수를 닮은 자였고 진짜 예수는 제자들의 도움으로 산속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 동굴 속으로 막달라 마리아가 찾아가 잠들어 있는 예수의 몸을 애무하면서 예수의 은밀한 부분을 만지는데, 그 부분은 영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소설에서는 예수가 남자이면서도 남자 구실을 못하는 자인 것처럼 암시하고 있다. 인간의 육신 입고 신성 유지 … 폄하될 이유 없어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 51년에 나온 소설이긴 하지만 아직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을 때인데도 신진 작가인 송기동은 카잔자키스보다 한 단계 나아간 파격적인 예수 소설을 쓴 셈이다. 성경 어디를 봐도 예수가 결혼하지 않은 독신자라는 기록은 없다. 또한 예수가 성적인 경험이 없다고 언급돼 있는 대목도 없다. 다만 예수가 결혼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독신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예수는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여성과 성적인 경험을 가졌을 리가 만무하다고 여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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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피에타’. 하긴 예수가 독신자라는 것을 암시하는 구절이 한 군데 있기는 하다. 마태복음 19장 12절을 보면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라는 구절이 있다. 세례 요한이나 바울 같은 인물 역시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였다. 지금 가톨릭의 신부들도 바로 그러한 고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의 많은 제자들이 고자로 살지 않고 아내를 맞아 가정을 꾸리고 살았으면서도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해냈다. 문제는 남녀의 성적 결합을 신성을 훼손하는 일로 여기는 고정관념에 있다. 마리아의 처녀성이 마리아의 신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마리아의 처녀성을 논증하기 위해 억지 이론을 펼치는 것도 이런 고정관념에서 연유한 도로(徒勞)일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가 결혼하였든 하지 않았든 예수의 신성에는 아무 영향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예수가 결혼하여 성적 경험을 가졌다고 하면 예수의 신성이 훼손되고 파괴되는 것으로 단정하게 마련이다. 물론 예수가 결혼하지 않았을 것임이 틀림없지만, 백 보 양보하여 결혼하였다고 하더라도 예수의 인격과 신성이 일반 교인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도 신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예수라면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결혼하고 성적인 경험을 가지고도 능히 신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수는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포도주를 마시고 빵을 먹고 대변과 소변을 배설하였지만, 그 배설행위가 그의 신성을 조금도 다치게 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도 별 문제도 되지 않을 사안을 가지고 호들갑 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밀스러운 문서들을 통하여 예수가 정말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였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한 역사적 사실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예수의 인격과 신성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말이다. 어느 남자도 감당하기를 꺼려하는 창녀였던 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예수의 사랑이 더욱 빛났으면 빛났지 예수가 폄하될 이유는 하등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보려고 했다가 ‘다빈치 코드’를 읽고 예수에 대한 환상이 깨져 신앙을 잃게 된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도 성적인 결합을 신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셈이다. 성(性)과 성적인 결합은 원래 하나님이 인간을 비롯한 생물에게 내려준 축복으로 신성한 것이다. 너무도 신성하기에 더럽혀서는 안 되는 것이지, 그 자체를 더러운 것으로 여겨 꺼려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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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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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 伊 모의법정 설전 |
예수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낳은 딸이 교황으로서 적통을 이었어야 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담아 논란을 불러일으킨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의 역사적 진위를 가리는 모의재판이 이탈리아에서 열리고 있다.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인 빈치시에서 지난 18일(현지시간) 개정된 모의법정에는 많은 예술 전문가들과 보수적인 가톨릭 성직자들이 ‘원고’로 참여했다. 이들은 독자들이 작가 댄 브라운이 꾸며낸 ‘성서의 진실’이라는 픽션과 역사적 진실을 혼동해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최후의 만찬’ 막달라 후계자 인정
꽉 찬 원고석과는 달리 소설을 옹호하는 ‘피고’석에는 수백명의 독자들만이 참석했다. 브라운은 2003년 6월 소설 출간 직후 미국 NBC방송의 ‘투데이쇼’에 출연,“주인공 로버트 랭던 등 등장인물을 제외하고 예술과 건축, 밀교의식, 비밀결사에 관한 모든 내용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소설은 다빈치가 실제로는 여자 교황의 적통성에 찬동하는 비밀결사의 지도자로서 그의 작품들에 여성 교황의 적통성을 주장, 옹호하는 코드들을 교묘히 숨겨왔다는 점을 담고 있다. 예수와 12제자의 만찬을 그린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제자들 가운데 막달라를 가장 믿음직스러운 후계자로 인정했음을 드러내려고 다빈치가 의도한 것이라거나, ‘모나리자’가 사실은 다빈치의 초상화로 여성의 세계 지배를 당연시하는 다빈치의 세계관이 투영된 것이라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지도자들이 막달라를 마녀로 낙인찍어 성배를 둘러싼 진실을 은폐하려 했으며, 교황청의 추적으로부터 예수의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해 1099년부터 시온수도회가 실존해 왔다고 주장했다.
●보수 기독교계 반발… ‘유죄 평결’
이같은 내용은 가톨릭은 물론, 보수적인 기독교단으로부터 전례없는 반발을 불러왔다. 예수를 신성한 존재에서 하루 아침에 보통 인간으로 격하시킨 신성모독이라는 항변이었다.
모의법정을 기획한 알레산드로 베초시 레오나르도 박물관장은 다빈치 초상화와 모나리자를 비교한 결과 귀와 입, 눈동자, 표정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록과 회화작품 사진 120장을 공개, 소설의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겠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에서 성서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암약하는 바티칸의 비밀결사로 묘사된 ‘오푸스 데이’(하느님의 과업) 대표도 법정에 나와 자신들을 둘러싼 오해를 독자들에게 해명한다. 모의법정의 평결은 ‘유죄’가 예정돼 있다. 소설 ‘다빈치 코드’는 세계적으로 750만부가 팔렸고 소설 속 논란만을 정리한 책이 10종이나 쏟아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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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의 수학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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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비트루비우스(The Vitruvian Man)의 인체비례(Proportion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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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빈치 코드>를 펴들며 꽤 오래 전에 유행했던 농담이 떠올랐다. ‘레오나르도’라고 했을 때 ‘다빈치’라고 답하면 구세대이고, ‘디 카프리오’라고 대답하면 신세대라고. 당시 당연히 ‘다 빈치’라고 답해 구세대로 판정받았던 사람으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소재로 한 책이 화제작으로 떠오르게 되니 ‘거 봐. 역시 다 빈치이지’ 하는 생각에 내심 흐믓해졌다.
<다 빈치 코드>는 작년 3월에 출간되어 미국에서만 700만부 이상 팔리면서 <해리포터>에 필적할 만한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 번역본이 나오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끼게 되었다.
이 책은 예수에 얽힌 비밀, 시온 수도회, 오푸스 데이와 같이 민감한 종교적 소재를 다루는 미스테리 스릴러 추리 소설이지만 그 기저에는 수학 신비가 깔려있다. 수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수학을 배경으로 한 책이 큰 관심을 얻게 되니 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이 책에는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비 같은 수학적 장치가 들어있다. 소설의 시작은 루브르 박물관장의 피살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 현장에는 13-3-2-21-1-1-8-5 라는 수수께끼 같은 수의 배열이 남겨져 있다.
난수표 같아 보이지만 이는 1, 1, 2, 3, 5, 8, 13, 21, 34, 55 …으로 진행되는 피보나치 수열에서 처음 8개 숫자를 섞어놓은 것이다. 12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토끼쌍의 번식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 낸 피보나치 수열은 1+1=2, 1+2=3, 2+3=5, 5+8=13과 같이 앞의 두 수를 더하여 그 다음 수를 만드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피보나치 수열이 자연 현상에서 다수 발견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꽃잎의 수는 치커리 21장, 데이지 34장과 같이 피보나치 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해바라기 꽃의 가운데에는 씨앗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데 이 씨앗의 배열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의 나선을 발견할 수 있다. 해바라기의 나선의 수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1개와 34개, 혹은 34개와 55개 같이 두 개의 연속된 피보나치 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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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나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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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보나치 수열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식물 뿐이 아니다. 한 변의 길이가 1, 1, 2, 3, 5, 8, 13, … 인 정사각형을 그림과 같이 연속하여 그리고 각 정사각형에 사분원(원의 1/4)을 그린다. 이 사분원들을 차례로 연결한 황금나선은 앵무조개를 비롯한 바다 생물의 껍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단서를 제공한 박물관장 자크 소니에르는 죽으면서 자신의 배 위에 별 모양을 그려 놓았다. 별은 오각형, 즉 펜타곤의 꼭지점들을 이은 다섯 개의 대각선을 그리면 얻을 수 있기에 '펜타그램'이라고 한다.
특히 변의 길이가 모두 같은 정오각형에서 얻을 수 있는 펜타그램에는 인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황금비가 들어 있다. 정오각형의 한 변과 그 대각선의 비를 구해보면 황금비인 약 1:1.618이 된다. 또한 펜타그램을 이루는 변은 다른 변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비 역시 황금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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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무조개의 껍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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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비는 좀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짧은 부분과 긴 부분의 길이의 비가 긴 부분과 전체 길이의 비와 같아지는 경우를 말한다.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의 직사각형을 제시하고 가장 선호하는 것을 고르라고 했을 때, 70% 이상이 직사각형의 가로와 세로의 비가 황금비에 가까운 것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처럼 황금비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심미안에 가깝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비율로 인식되었다. 황금비는 신의 비례라 하여 신성시되었으며, 1:1.618이라는 비는 파르테논 신전이나 밀로의 비너스상 같은 예술품에 반영되었다.
그런데 더 신비로운 것은 앞선 언급한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비가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연속된 두 피보나치 수의 비를 계산하 1/1=1 , 2/1=2 , 3/2=1.5 , 5/3=1.666... , 8/5=1.6, 13/8=1.625, 21/13=1.615... 와 같이 황금비에 점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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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펜타그램)에 들어있는 황금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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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크 소니에르가 남긴 또 하나의 수학적 흔적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와 동일한 모양으로 죽어간 것이다. 비트루비우스는 황금비를 예찬한 로마 시대의 건축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소설의 수학적 단서는 황금비로 집약할 수 있다.
<다 빈치 코드>에 대해 많은 미디어들이 쏟아내고 있는 ‘헐리우드적’이라는 평가는 정말 적절하다. 기발한 상상력,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긴장감, 정교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 사람을 흥분시키는 음모와 섬뜩한 서스펜스, 거기에 로맨스까지 흥행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이 책은 독자들을 강한 흡인력으로 끌어들인다.
솔직히 처음에 책을 집어 들 때에는 이 책에 대한 미디어의 평이 다소 호들갑스러운 것이 아닌가도 싶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필자 역시 이 여름 피서를 대신할 블록버스터로 <다 빈치 코드> 만한 책이 없다는 추천사로 글을 맺게 된다.(끝)
[한국일보공동] 수학으로 세상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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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 Vinci Code DAN BROWN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여러가지 분야에 능통한 소위 르네쌍쓰 맨의 가장 좋은 例이지만, “화가로서의 다 빈치” 하면 생각나는 두개의 그림중 하나는 모나 리사 일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위에 보는 최후의 만찬 이겠습니다.
다 빈치는 미란에 있는 수도원 식당 벽화를 그리기로 청탁받고 거의 4년을 걸려서 최후의 만찬을 그렸고, 그 작품이 미술 기술상으로도 놀라운 작품인것은 말할것도 없지만, 역시 그 그림이 그렇게 유명하게 된것은 최후의 만찬의 종교적 상징성 때문이라 할수도 있지요.
희생적인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예수님이 12 제자를 데리고 마지막 식사를 하는 도중 “너희들 중에 한사람이 나를 배반 할것이다” 라는 폭탄적인 선언을 할때, 열두 제자는 경악, 회의, 실망, 궁금, 비탄, 반발 등의 각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
그런 장면을 요즘 스냅 사진처럼 생생하게 포착하면서도 예수님의 神性을 잘 보여 준 작품이 바로 이것인데, 특별한 새 방법으로 그렸다지만, 역시 벽화인 최후의 만찬은 다 빈치 생전에 이미 부스러저 떨어저 나가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여러번에 걸처서 복구 사업을 하였지요.
아래 그림은 이름 모르는 16세기의 어느 화가가 복사판으로 그린것인데 지금 네델랜드 다빈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한번 더 자세히 보시고 제 이야기를 계속 읽어 보십시요.
- In an ominous gesture, a hand wielding a dagger emerges from the crowd; it seems to belong to no one.
- The figure to Jesus' right is said to be Mary Magdalene dressed as a man, not St. John the Evangelist.
- Peter, who was to lead the church, gestures in front of "Mary Magdalene" in a menacing way that could denote jealousy.
- "Mary Magdalene" and Jesus lean away from each other, forming either a V, an ancient female symbol for a chalice or grail, or the letter M representing matrimony or Magdalene.
- Jesus and "Mary Magdalene" are dressed as mirror images, supposedly representing yin and yang.
- There is no object on the table that could be a grail or chalice; clear drinking glasses hold the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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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his murder mystery "The Da Vinci Code," Dan Brown uses Leonardo's mural "The Last Supper" to illustrate a colorful, if dubious, theory of the origins of Christianity. The book's protagonist, a scholar of "symbology," claims that the Holy Grail was not a physical object but a powerful female presence later suppressed by the church. Mary Magdalene, he says, was not a prostitute but a royal who married Jesus and bore him a child; that is, she was the Holy Grail for his blood. Jesus intended for her to succeed him in leading the church. Herewith, some of the details of the symbologist's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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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바로 우편에 앉아 있으며, 그림 左로부터 다섯번째인 베드로에게 기대일 듯이, 눈을 내려 감고, 슬픔에 젖은 저 사람이 여자 입니까? 남자입니까? 그림을 자세히 보십시요.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다른 남자 제자들처럼 수염도 없을 뿐 아니라, 머리도 길고, 특히 얼굴이 女性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著者, 댄 부라운은 최후의 만찬속에 예수님의 우측, 즉 그림에서 좌측으로 부터 6 번째의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도 요한이 아니라 바로 막달라 마리아 라고 주장하고 이것은 꾸며낸 소설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인이었고, 그 여자는 예수의 아기를 몸에 임신하였었고, 전설처럼 알려진 Holy Grail 이란것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던 銀잔이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 자체라는것이지요.
예수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性生活을 論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에게 여자가 있었다, 더구나 결혼했었다 하는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벌거벗고 살며, 섹스를 했다, 그러고도 임신도 안 했다 하고 생각 하는 것 이상으로 충격적인 異敎徒적인 heresy 이지요.
갈릴리에 있는 작은 마을 Magdala에서 온 여자라는 의미에서 막달라 마리아 라고 알려진 이 여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다시 생기더군요. 사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이 여자의 실체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확실히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고 가장 가까운 여자이었습니다. 귀신 들려? 고생하는 그를 예수님이 귀신을 몰아 내 주었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사형 당할 때, 열두 제자는 다 도망가고 없어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같이 그 자리에 있었으며,
더구나, 제일 중요 한것은 예수의 무덤을 새벽에 찾아가서, 그 무덤이 비어 있는것을 처음으로 보았으며, 부활하신 예수가 제일 처음으로 만나 준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 막달라 마리아가 최후의 만찬이 벌어젔던 그 다락방에 모여서 어쩔 줄 모르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노라고 증거 했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이 없지요.
과연, 막달라 마리아는 음탕한 창녀, 죄 많이 지어 돌 맞아 죽을 뻔 했지만, 예수님이 누가 저여자에게 돌을 던지랴? 질책하여 살아난 그여자 이었었나?
정말, 다 빈치는 막달라 마리아를 그리면서도, 후세 사람들이 자기의 속셈을 모르고, 예수 우측의 남자는 당연히 사도 요한이라고 착각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깔깔거리고 웃었을까?
요한복음21장 20절에 나오는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Beloved one)는 열두제자 중의 한사람이 아니고, 최후의 만찬이 있던 그 날밤, 예수의 품에 안기어 “주를 파는자가 누구이니이까?” 묻던,그 막달라 마리아,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한 줄 아노라” 하는 말로 요한복음을 끝맺음한 요한복음의 진짜 저자, 그 사람이었나?
결혼을 일찍하던 유태인 그 사회 그 시절에 예수님이 나이 30이 되도록 결혼 안 했다고 생각하는것은 예수님의 神性을 높이는 일인가 예수님의 人間됨을 간과하는 사고방식인가?
예수님 살아 생전에, 죽음 전후에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 막달라 마리아는 어찌해서 후세 기독교 역사에서는 거의 무의미한 존재가 되었는가?
미술 평론가들은 다 빈치가 예수의 좌우에 공간을 남겨놓은것은 예수님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었다하고, 종교론자들은 예수의 좌우 공간은 삼각형으로서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하였지만… 왜 예수 옆의 저 여자?는 머리를 가누지 못하고 배반당할 예수를 위해 슬픔을 못 참으며, 속으로 울음 울고 있는가?
예수님과 그 옆의 막달라 마리아? 인 사람과 옷의 색갈이 속옷과 겉옷이 바뀌었을 뿐 똑같은 색인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다 빈치가, 두 사람은 "하나"이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가?
p/s: 제가 최후의 만찬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것은 Dan Brown 이라는 사람이 쓴 The Da Vinci Code 라는 소설때문입니다. 이 책은 2003 년 여름에 출판되어 거의 4 개월을 베스트셀러로서 5 백여만 부가 팔린 책이지요. (한국어로 번역됬는지는 아직 안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의 실체, 활동, 전기 등에 대해서는 꽤 많은 책이 이미 나왔더군요. 하두 오래전의 이야기를 지금 누가 결론을 지을 수는 없는듯. (글: 중앙일보 미술포럼,문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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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요즘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이유가 몇가지겠지만요, 1945년 에짚트의 Nag Hammadi 에서 중요한 고대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The Gospel of Mary Magdalene(막달라 마리아 복음서)이지요.
콘스탄틴 황제가 4 세기에 數도 없이 여럿인 복음서들을 추려서 현재의 신약성경을 27 권으로 한것은 역사적 사실이구요, 그때, 신약성서에서 빠진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막달라마리아의 복음이라는것이지요.
그 마리아복음서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이야기를 전하니까, 성질 급하고 질투심 있는 베드로가 “어찌, 이 여자의 말을 믿겠는가? 주님이 우리에게 안 하신 말씀을 이여자에게 했겠는가?” 하고 대 들었다는거지요. (이것은 현재 성경에도 있음). 그러나, 한참 논란 끝에, 역시 “주님이 이 여자를 제일 사랑하신것을 우리가 다 아니, 더 논 할것 없다” 하고 제자들이 마음을 합첬다는거지요.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신앙이 제일 깊고 예수님이 총애한 열두 제자보다도 더 위에 있는 제자라는 것이지요.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잘 보시면, 좌로부터 다섯번째가 베드로인데, 그 베드로의 손이 칼 모양으로 쫙 펴서 막달라 마리아?의 목을 가로막고 있는것은 다 빈치가 그런 적대 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렸다는 거지요. 다시 보면, 아주 흉칙한 손짓인데, 무심히 다 빈치가 그렸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말을 누가 알겠습니까?
예수를 배반한 유다는 왼쪽에서 네번째 그늘에 가려진 사람인데, 많은 사람들이 잘 보지도 않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우선 생김새도 흉칙하지요?
저도 예수와 가롯 유다의 모델이 동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는데요, 몇곳에 찾아보니 그것은 누가 지어낸 이야기이고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군요.
어떤 사람은 다 빈치가 예수의 모델을 찾다가 성가대에 있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모델로 썼다는군요., 그 다음에 유다의 모델을 찾아서 한 십년(어떤 글에는 20년)후에 감옥에있는 음침한 얼굴의 죄수를 보고 아 저사람이다 하고 불러다가 유다의 모델로 서 있게 했는데… 그 모델이 통곡을 하기에 왜그러냐 물었더니 다 빈치에게, “자기가 바로 저 예수의 모델을 했던 그 사람이다” 라고 고백을 했다는 이야기.
다 빈치가 실제 모델을 쓴 사실은 확실하지만, 그 모델들의 이름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구요, 질질 끌기로 유명한 다 빈치지만, 불과 3 , 4 년에 걸처서 끝낸 최후의 만찬에 동일인이 두 모델을 섰을때 화가인 다 빈치가 몰랐을 수는 없다는거지요. 3,4 년 사이에 사람의 외양이 그렇게 변하지도 않았을거구요.
하지만, 또 누가 압니까? 다 빈치가 음과 양, 선과 악, 흑과 백, 예수와 사탄은 하나라는 수수께끼를 후세에게 말하려 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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