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지식인들의 스승 ―재발견된 아리스토텔레스―
1. 12세기 스페인은 가히 학자들의 천국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관경은 시리아어, 아람어, 아랍어, 히브리어, 그리고 그리스어로 쓰인 수십 장의 필사본들이 펼쳐져 있는 넓은 탁자와 그것을 비추는 밝은 촛불이다.29p
중학교때 사회시간에 배운 스페인에 대한 배경지식도 이런 묘사와 설명이 나의 머릿속에 잘 그려지도록 한다.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는 언어의 다양성이 넓어지면서 좀 더 많은 것을 이해 할 수 있는 것 같다.
2. 그 탁자 옆에서 그 문헌들을 꼼꼼히 살피고 요약하며 활발하게 담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턱수염을 기른 유대인, 체발을 한 가톨릭 수사, 터번을 두른 무슬림,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그리스인이다.29p
묘사하는 장면을 읽으니 마치 교육방송이나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3. 그곳은 이슬람 권력 하에서 오랫동안 지배되다가 지금은 기독교의 지배 하에 놓인 스페인의 한 도시인 톨레도이다. 그 탁자는 시내에 위치한 성당의 강당 한복판이며, 그 성당의 대주교인 라이문도 1세가 한쪽에 서서 자애로운 시선으로 다양한 언어에 능통한 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29p
역시 아직은 중세시대. 학문의 중심은 성당이다. 이 부분을 읽다보니 이슬람에 대한 궁금증도 커 진다.
4. 그러나 1100년에 이미 톨레도와 리스본과 같은 이슬람 문화의 위대한 중심지들은 기독교인들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다.30p
1100년에 이미? 이슬람문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어서 얼마나 세력을 확장시켰는지 궁금하다. 특히 중세시대에 그 세력이 어떠하였는지 궁금하다.
5. 유럽에서 몇 개의 수도원과 교회 학교에서만 교육이 허용되던 시기에, 알안달루스의 학자들은 공적인 지원을 받던 대학에서 가르쳤으며, 또한 시설이 좋은 도서관에서 연구를 했다.31p
아직까지 학문을 한다는 것이 권위로 사용되는 시기였겠지? 이슬람문화권의 학문적 발전과 기독교문화권의 학문을 비교하는 내용이 흥미롭다.
6. 지난 300여 년 동안 신자들과 함께 깊이 성찰하고 정교하게 만들었던 철학적인 문제와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기독교의 성직자들이 이슬람교나 유대교 학자들과 더불어 논의하는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32p
이러한 상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하기 어렵다. 더불어 논의하기는커녕, 이슬람과 기독교는 늘 대립하고 테러와 전쟁 등 폭력적인 단어들만이 떠오른다.
7. 물론 아랍인들의 철학과 과학을 연구했던 데에는 종교적인 이유가 있었다. 신앙을 옹호하기 위해, 그리고 개종하지 않은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그들의 언어와 생각을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다.32p
나 역시 신의 존재증명을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위의 이유와 같다.
8. 오늘날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반응은 종종 로마가 보여 줬던 자유로운 탐구에 적대적이었던 반응과 입맛에 맞지 않는 진리들을 억누르려 했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36p
나는 가톨릭 하면, 전통과 권위가 생각난다. 교황을 마치 살아있는 하나님과 같이 우러르고 신성시 하면서, 그들의 권위에 반하는 것은 억누르고 적대시 하는 태도. 이것은 나의 선입견 일 수도 있겠지만, 선입견 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9. 그러나 톨레도에 번역의 중심지를 만드는 것과 기독교인이든 유대인이든 무슬림이든 라틴계든 그리스계든 또는 슬라브계든 관계없이 가장 훌륭한 학자들이 그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모집한 것이 그의 발상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한다.36p
그 옛날에 학문에 있어서 이런 관대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10. 그는 유럽인들이 “새로운 논리학”이라고 부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을 번역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에서 수년 동안이나 머물렀다.39p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도 어느 정도 정리된 형태의 논리학이 존재 했었나?
11. 스콧의 언어적 능력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탁월했다. 톨레도에서 그는 유대인 학자의 도움을 받아 아리스토텔레스의『형이상학』을 포함한 만은 번역서들을 아랍어에서 번역했지만, 그는 그리스어, 히브리어, 시리아어, 칼데아어, 그리고 다른 몇 가지의 언어에도 정통했다.40p
나 또한 mutilingual 가 되고 싶다. 한참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중학교 시절 내가 만들어낸 말이다. bilingual은 어감이 무언가 약한 것 같아서…
12.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플라톤은 그 도시를 떠나 있었다. 그 10대 소년은 그 유명한 아카데메이아의 창시자 플라톤 대신에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가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플라톤이 긴급한 정치적 임무를 띠고 시라쿠스로 갔다는 사실에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43p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한 사실에 놀라지 않았을지 몰라도 나는 놀랍다. 플라톤이 정치적인 임무를 맡은적이 있다니. 너무나 유명한 고대 철학자도 정치와 연결이 되어 있다니 놀랍다.
13. 철학자들이란 권력의 중심부와 멀리 떨어져 모호한 개념의 거미줄을 치고 있는 비현실적이고 비세속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된 것은 최근의 일에 불과하다. 수세기 동안 철학자들의 임무에는 통자들에게 현명하게 통치하는 방법과 신하들에게 언제 복종해야 하는지를 조언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43p
나는 철학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철학에 대한 선입견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타파하는데 나름의 신경을 쓰고 있고, 얼마간 그 신경씀의 결과를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14. 아카데메이아의 학자들이 다루지 않은 지성적인 문제는 없을 정도였다. 그들이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형이상학뿐만 아니라 점성술, 그리고 윤리학뿐만 아니라 수학을 포함했으며, 모든 학자들이 각자 선호하는 관심사들을 갖고 있긴 했지만 자신들이 어떤 한 분야를 “전공”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44p
아, 철학이 원래 모든 학문의 총칭 이었으니까?
15.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의 아들이었으며, 그것도 평범한 의사가 아니라 질병의 원인들은 자연적이고 병든 사람들은 자연적 수단에 의해 치료될 수 있다는 새로운 종류의 믿음을 지닌 의사의 아들이었다.46p
그 옛날 고대 그리스 시절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병을 치료 했을까?
16. 질병이 신들의 노여움이나 무관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에 의사의 역할은 숭배되던 존재에게 도움을 호소함으로써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하는 성직자나 주술사의 역할과 다르지 않았다.46p
이런 장면은 ‘인류와 문명의 이해’ 수업시간에 보았던 디스커버리체널 동영상에서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주술사의 역할.
17. 니코마코스의 동시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인 히포크라테스는 주술사적인 의사들의 엉터리 치료를 비난하는 충격적인 독설을 내뱉은 적이 있다.46p
아~ 니코마코스와 히포크라테스가 동시대 사람이었구나!
18. 만약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 시대에 살았더라면, 아케데메이아에서 그의 사고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그리고 어느 시점에 그가 자신과 위대한 정신적 지주인 플라톤과 분리되는 심각한 차이점을 인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해 줄 자서전 또는 최소한 믿을 만한 전기를 아마도 남겼을 것이다.49p
만약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 시대 사람이었다면 당장 찾아갔겠지! 아니 최소한 편지라도 썼을 것이다. 그에게 직접 나의 궁금점들을 해소 받을 수 있었더라면, 지금 수업시간에 하는 질문들이 많이 줄었을 것 이다.
19. 참된 정의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지 않는 다면 정부가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51p
맞다. 우리는 우리 각자 모두가 저마다의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저마다가 너무 제각각으로 충돌한다면 문제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모두 자신만의 행동기준과 신념이 있어야 외부의 상황도 판단하며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고 감사하는 역할을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 플라톤이 현실 세계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에게 훨씬 더 좋은 장소를 떠올리게 했다. 그에게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 것은 현혹적인 감각 인상들과 격렬한 감정들의 배후에서 지성성과 가치를 지닌 세속적인 경험을 제시해 주는 순수한 사고 영역이 있다는 신념이었다.51p
우리가 어떠한 이론을 받아들일 때 그 기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가 하는 것이 있다. 그 기준에 따라 우리는 여러 이론들을 평가하고 선택한다. 플라톤의 그 유명한 이데아 이론도 그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그러한 평가 말고 정말로 플라톤이 이데아 이론을 주장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21. 철두철미한 이성주의자였던 그들은 경험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이성에 알려질 수 있는 근본적인 질서 원리들을 드러낼 수 있다거나, 또는 이러한 구조를 가진 실재들이 단지 사람들의 정신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52p
여기서 근본적인 질서 원리들을 꼭 보편자로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형이상학 시간에 배운 보편자를 주장한 부분과 연결 지어 생각이 난다.
22.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적 독창성과 독립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그가 어느 한순간에 스승과 결별했으리라고 기대하게 된다.53p
어찌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양립할수 없는, 철저하게 대립되는 것이다. 실제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이는 어떠했을까?
23. 아리스토텔렛는 플라톤이 “자신의 삶과 자신의 말을 이용함으로써, 행복한 것이 어떻게 좋은 것일 수 있는가”를 입증한 최초의 인물이었다고 적고 있다.53p
‘행복한 것이 어떻게 좋은 것일 수 있는 가?’ 가져볼 만 한 물음이다.
24.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급하게 아카데메이아를 떠났던 이유를 알지 못한다.54p
아~ 아리스토텔레스하면 플라톤의 제자,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의 창시자니까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당연히 그를 이어 아카데메이아의 교장선생님(?)격이 됐을 것 같았는데 아니였군!
25. 수사법이 화려하든 그렇지 않든 관계 없이, 그 저술들의 양은 놀라울 정도다. 우리는 근대 시기 이전의 철학 분야에는 사회과학, 인문과학, 그리고 철학의 모든 영역의 주제들은 물론이고 오늘날 우리가 “엄격한”과학 이라고 부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모든 주제들에 관해 글을 썼다.61p
대단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분야, 아니 전 범위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 철학사를 공부함에 있어 나는 복잡한 마음에 그냥 근․현대 철학자들만 공부하면 않될까 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다. 그러나 현대에서 막히면 근대로, 근대에서 막히면 중세로, 중세에서 막히면 결국에는 고대에서부터, 그 뿌리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 이다.
제2장 ‘철학의 여신’의 살해 ―잃어버린 고대의 지혜가 어떻게 다시 발견되었는가―
1. 고적한 휘장으로 가린 대주교의 침실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전쟁의 소음을 들을 수 없었다. 성당의 광장에 있는 사람들의 소리조차 아주 조금밖에 들을 수 없었다.77p
아우구스티누스도 권력의 그늘 아래 있던 사람이었구나!
2.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새로운 다문화적 인종의 토대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백성들이 페르시아 여성들과 결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한 충성의 증거로서 그 백성들이 자기를 신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등의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77p
단일민족을 전통으로 여기는 우리나라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정책이군.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도 그러한 생각을 버릴 수밖에 없는 때가 되었지만
3. 그 이후 700년 동안 성경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전적인 『고백록』을 제외하고는 그처럼 강력하게 서구 사고에 영향을 미쳤던 글은 없었다.79p
하긴……. 정말 생각해 보니 그러내…….
4. 신앙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구분은 로마인들과 이방인들 간의 구분이 아니라 “신과 더불어 영원히 지배하도록 예정된 사람들과 악마와 더불어 영원한 형벌로 고통 받도록 예정된 사람들의 두 집단”간의 구분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장 한다.78p
흠… 이 부분에서 잠깐 심각해 졌다. 사실은 그렇다. 신앙에 눈으로 본다면 세상에는 ‘구원받는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이렇게 두 종류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은 별로 의식하지 못한 체 겉으로 보이는 것 에만 집중한다. 독실한 기독교인 이라 하더라도…….
5. 천상의 영광을 통해 예수가 지배할 때에만 남성과 여성은 자신들이 꿈꾸던 안전, 평화, 사랑, 그리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79p
이러한 맥락에서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이 보이는 듯 하다. 우리는 지상에서 참되고 진정한 안전과 평화와 사랑, 정의를 경험 할 수 없다. 궁극적이고 참된 안전, 평화, 사랑, 정의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계 이외에 따로 존재한다. 그것이 플라톤 에게는 이데아이고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예수님이 계시는 천상세계겠지?
6. 그때까지 그들은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을 연결하는 데 필요한 고리인 교회에 의존함으로써 그 두 가지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79p
나는 개인적으로 정말 마지막 소망을 가지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들에게 나는 연결고리를 잘 매 주고 싶다. 그 연결고리가 어떠한 것 이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확신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감각경험을 넘어서는 위로를 기대할 때가 때때로 있다. 그 위로를 받는 척 이라도 하면서 살고 싶은게 나의 소망이다.
7.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할 일은 세상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세상에서 살아가고, 악마의 유혹을 저항하는 데 필요한 은총을 받기를 기원하며, 교회가 제공하는 고행과 위로를 받아들이고, 또한 불멸하는 성인들의 사회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것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결론을 맺는다.79p
너무나 역설적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행복, 은총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영접하고 교통하는 것 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러나 또 역으로, 사람들은 그 행복을 맛보기 위해 겉으로 보이는 행동을 제제하고 때로는 판단하기 까지 한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8. 그들은 더 좋고 더 참된 자아, 사회, 그리고 우주가 필연적인 변화의 다른 저편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81p
그렇게 스스로 자위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인가? 가혹하다.
9. 그러므로 지상의 삶은 순례의 길이다.81p
그래……. 나도 안다…….
10. 기독교 발생 초기에 신생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던 사고와 감정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분명하지 않다.81p
그래. 시대가 흐르고 세대가 변화하면서 분명 그 사고와 감정을 판단하는 기준도 바뀌었다. 바뀌는 것이 어떻게 절대자 인가. 하나님은 그대로 절대하는데 사람들만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 같다.
11. 개종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가 함께 교회를 가기를 희망했으나, 20대 초반이었던 그는 각각 그 자체의 신성을 대표하는 선과 악의 힘들이 영원히 투쟁한다고 주장하는 페르시아 종교인 마니교를 믿고 있었다.83p
아~ 아우구스티누스가 원래 마니교 신자였구나. 호전적인 마니교 신자가 기독교로 개종을 한 것이 아우구스티누스라니 놀랍다!
12. 그러나 만약 기독교인들이 마하는 것처럼 신이 전능하다면, 신은 악과 죽음으로 파멸하게 될 우주를 왜 창조했는가?84p
신의 속성 중 ‘전능’ 은 원래부터 주장 되어 졌던 것이던가?
13. 밀라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그리스적 사고와 기독교적 사고의 유사점을 발견한다.85p
이때부터 플라톤의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기 시작 했겠군!
14. 플라톤이 단일하고 비물질적이고 완전하고 무시간적인 최고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85p
이게 바로 요즘 배우는 보편자의 개념이겠지? 내 머리가 정말 핑핑 돌게 만드는 보편자!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빗물질적인 사물들의 실재를 수용하게 만들고, 그를 마니교도가 되도록 내몰았던 철학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했다.87p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철학을 하고 새로운 사상을 주장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기존의 사고 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에 걸쳐 보다 더 나은 설명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16. 즉 악은 신에 의해 창조된 어떤 것이 아니라 “존재의 결핍”, 다시 말해서 인간이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써 우주에 야기된 일종의 윤리적 블랙홀이다.87p
‘윤리적 블랙홀’ 이라니 뭔가 근사해 보인다. 맘에 드는 표현이다. 이러한 생각이 스피노자의 주장과도 연관이 있고, 이게 바로 ‘하마르티아’ 이겠지?
17. 신플라톤주의적인 철학이 처음 출현한 것은 3세기에 있었던 군대가 회군하고 시민의 사기가 저하되었던 시기와 일치 한다.85p
아마도 현실세계에 대한 허무함과 박탈감을 위로받기 위해서겠지?
18.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만약 다음에 이어질 영원한 저주를 피할 수 없다면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좋은 점이 무엇이 있겠는가?89p
나에게도 이런 질문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 지라도 나는 열심히 살 것 이다. 왜냐하면 내가 열심히 사는 것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혹은 어떠한 기준에 부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라고. 아니면 다 자살하지 않을까. 열심히 살 의미가 없으니까. 열심히 산 것에 대한 보상이 없더라도 가상의 보상을 상상하면서 스스로 희망으로 자위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이며 이 세계의 삶이다.
19.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켜라.”라는 구절을 실천하는 것은 보기보다 어려운 문제이다.98p
맞아! 그게 그렇게 어려우니까 지금도 이러고 있지…….
20. 이것은 고대의 필사본들을 보존하고 사본을 만드는 수도원 전통의 출발점이었다.104p
하긴, 심지어 만화영화에서 까지 수도사의 모습은 항상 깃 팬을 들고 필사를 하는 모습으로 대부분 그려지곤 한다.
21. 이처럼 철학이 겨직되었던 이유는 독립성을 지닌 상류층의 귀족들을 파멸시켰던 비잔틴 황제들이 과도하게 중앙집권적 행정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116p
개인과 사회에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안목을 제시하는 철학이 중앙집권에 혈안이 된 사람들 눈에는 쥐약보다 독한 독약이었겠지.
22. 이제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형이상학』,『영혼에 관하여』, 자연과학적인 젓ㄹ, 윤리학, 미학, 그리고 정치학에 관한 저술을 처음으로 읽으면서 갖게 되는 혼돈과 놀라움을 상상해 보자.119p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정과 주장이 우리에게 너무 생소해서건 어쨌건 나 또한 카오스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처럼 혼돈과 놀라움의 미로 속을 헤매인다.
23.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영원히 존재한다.119p
과연 그럴까?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물음은 너무나도 고도로 형이상학적이고 근본적인 물음이라 어렵다. 이 개념을 죽기 전에 파악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회의적이다.
24.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의 세계가 고통과 비현실성이 충만한 장소이며, 더 좋고 더 현실적인 세계가 도래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우주는 하나이며, 또한 그는 그 안에서 완전한 안락함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119p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가 처음이자 끝이고 하나로서 완벽한 세계 일지도 모른다.
25.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스로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라고 부르는 신적인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 추상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는 아브라함, 이상, 그리고 야곱의 신, 즉 우주를 창조하고 구세주를 우리에게 보내준 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120p
중세철학을 비롯해서 철학사를 공부하다보면 신의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 데 그 때 마다 신의 개념을 무엇으로 잡고 이해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각 철학자의 주장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도 힘이 드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신은 유일신인지 범신인지 인격신인지 조차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서 답답하다.
제 3장 그의 책들은 날개를 가졌다 ―아벨라르두스와 이성의 부활―
1. 프랑스 성당 하교에는 과거에도 인기 있는 강사들이 있었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태양이 떠올라 차가운 가을 안개를 비추기도 전에, 학생들은 몽생트준비에브 수도원 밖의 거리에 몰려들어 그들의 영웅이 아침 강의를 위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131p
요즘으로 따지면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인기를 넘어 스타강사가 된 학원 강사 중 한명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2.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삼위일체와 원죄 등의 교의들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단으로 빠지지 않고 그것들에 대해 새롭거나 흥미로운 어떤 것을 말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133p
맞아. 나도 이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이단을 정하고 정결함을 요구 하는 것이 과연 누구의 눈에 맞추는 것 인가 싶다.
3. 그들이 고리대금업을 하는 것은 허용했다. 이것은 팽창하는 경제를 필요하긴 하지만 불명예스러운 역할이었다.136p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던 내용! 짤막하게 배우긴 했지만 세계사의 전반을 훑어보는 시간이었다. 중학교2학년 때였는데 그때 배웠던 내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4. 아벨라르두스는 『예와 아니오』라는 지신의 유명한 저서에서 설명되어 있는 추론 방법을 언급한다.136p
확실히 전에 책 보다 이 책이 묘사가 뛰어나서 아벨라르두스를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로 묘사했다. 그래서 인지 그의 책 제목도 무언가 재미가 숨어있을 듯 하다.
5. “침수 세계가 없이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다는 주장과 그 반대의 주장”……136p
참… 찬반논쟁의 대부분을 보면 항상 외적으로 보이는 행동에 관한 것! 그럼 우리나라에서 진짜로 세례 받은 사람이 얼마나 돼? 세례도 안받은 목사님들이 강대상에서 설교하는 꼴로 보이겠군!
6. 그는 성경이 신의 말씀이고, 기독교의 근본적인 원리들이 타당하며, 또한 교부들의 명백하게 모순적인 진술들의 대부분이 조화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138p
과연 그런 일이 정말로 가능할까?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교부들이 콧대를 꺾을 수 있을까?
7. 세습적인 죄라는 생각은 불합리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아담과 이브의 의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범죄로 인해 재산이 몰수된 사람의 후손들의 재산이 없게 되듯이, 우리는 그들의 형벌을 물려받을 수는 있습니다.141p
원죄는 없지만 조상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물려받을 수는 있다?
8. 그들이 구세주에 대해 무지하더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서 신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악마나 신에게 진 어떤 빚을 갚기 위해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가슴에 사랑을 넘쳐 흐르게 하기 위해 죽었습니다. 신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방법이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은 그들이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구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141p
정말 그런가? 예수 혹은 하나님이란 이름을 모른다 하더라도 인간은 모두 자연을 통해 신의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갖으며 상상하고 확신할 수 있다고 들은 적은 있다. 천국에는 과연 누가 가는 것 인가.
9. 아벨라르두스는 나중에 “그녀의 외모가 아주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학문은 최고 수준에 있었다.”고 상기했다.143p
이것이 바로 재색(才色)을 겸비 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
10.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 정도로 잔인한 복수를 했다. 그들은 내가 저질렀다고 그들이 불평했던 잘못의 대가로 내 몸의 일부를 절단했다.”144p
그 절단된 몸의 일부가……. 그런데 아벨라르두스와 엘로이즈의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11. 아벨라르두스는 이미 일종의 성직자였다.145p
자의든지 타의든지……. ㅋㅋㅋ
12. 이 즈음에 가정의 수호신 가운데서 특히 성녀 마리아에 대한 의식(儀式)이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되고, 예수는 “영혼의 신랑”으로서 찬양되었으며, 또한 동저심이 기독교의 근본적인 미덕들 중 하나가 되고 있었다.147p
과연 ‘성스럽다’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단지 인간일 뿐이고 우리가 제한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우리 각자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꼭 성스러워야 하나?
13. 새로운 종교적 열망은 예수와 마리아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 교회를 정화하려는 즉각적인 움직임, 그리고 비기독교인들에 대한 호전적인 십자군 전쟁으로 표출되었다.149p
십자군전쟁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입장에서만 살짝 알고 있다. 그런데 종교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십자군전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14. 앎에 대한 새로운 욕구, 즉 종교적 진리들에 대한 믿음은 물론이고 그것들을 “알고자”하는 욕구를 지닌 모든 학생들이 파리, 볼로냐, 옥스퍼드 등과 같은 라틴 세계의 모든 도시로부터 몰려들고 있었다.149p
나도 어서 앎에 대한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키고, 새로움에 대한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곳! 유학을 떠나고 싶다.
15.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것 들을 상상할 수 있고, 따라서 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는 단지 우리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151p
우리의 상상은 무한한 것 같지만 그 무한하다는 상상 또한 제한된 세계를 바탕으로 그 세계 속에서 이루어 질 뿐이다.
16. 안셀무스의 논변에는 물론 결함이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렇게 생각했고, 또한 다른 후기 철학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153p
안셀무스의 논변은 종교사적으로나 철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많은 비난을 받는다. 비난받을 만한 이유로. 그래서 우리 수업시간에도 비난을 받는다.
17. 그것은 최고 존재가 정의상 유일한 존재라면 “이성적인” 용어들, 즉 신 이외의 존재들에 대해 말할 때 의미를 갖는 용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신에 관해 말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에 대한 문제였다.153p
이 문제점은 나도 늘 제기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우리 세계의 언어 속에 갇혀있다는 것.
18. 사고는 모순에 직면하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진보하게 된다.153p
나도 공부를 하다가 이러한 순간에 직면하게 되면 너무나 기쁘고 막혀있던 혈관이 뚤리면서 혈액이 힘차게 방류되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낀다.
19. 안셀무스는 새로운 신학의 선구자였지만, 아벨라르두스 시대의 그 누구도 감히 그처럼 민감한 주제들을 끌어내려는 시도를 꿈꾸지 못했었다.154p
이러한 점에서 안셀무스가 더 의미를 갖는 것이겠지?
20. 물론 중요한 질문은 만약 이성의 적절한 범위 외부에 있는 것으로 오랫동안 여겨졌던 질문들을 포함할 정도로 탐구 영역이 넓어진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157p
이 질문은 나 역시 하고 싶고 또 계속해서 해 오고 있는 질문이다.
21. 『범주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모든 실체(예를 들어 빵)는 실체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형태, 맛, 그리고 색깔과 같은 특징들 또는 “속성들”을 갖는다고 주장했었다.158p
아리스토텔레스가 여기서 말한 “속성들”이라는 것을 “보편자”로 보아도 되겠지?
22. 이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성명하려는 전형적인 스콜라주의의 시도로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가장 어리석은 논변의 일종으로 간주한다.158p
우리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에 관한 학문보다는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믿고 기대하며 학문을 하지 않는가?
23. 우선적으로 이 사과는 우리의 정신에 인상을 각인시킨다. 그런 뒤에 우리가 이와 같은 다른 대상들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또한 생각할 때 우리는 그것들의 유사성을 표현하는 개념과 단어를 개발하게 된다.163p
이것이 바로 보편자들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들을 부르는 이름이 전부라는 유명론이겠지?
24. 로슬랭의 “유명론”은 기욤의 “초현실주의”와 반대 입장에 놓여 있다.163p
유명론이 보편자에 대한 유명론 일 텐데 유명론이 초현실주의와 반대 된다고? 여기서 초현실주의 는 뭐지?
25. 기독교적 전통에서는 오랫동안 보편자를 찬양해 왔으며, 개별자를 사소한 것으로 여겨 왔다. 아벨라르두스는 이런 불균형을 조장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165p
보편자와 개별자의 개념은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을 이해하고 그 근본성을 탐구하기위한 개념일 뿐 이다. 그런데 그것들에 어떠한 종교적 의미를 두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 아닐까.
첫댓글 와우!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기특하지 않습니까 선생님?히히~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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