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의 공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5월달의 더운 날씨가 순식간에 영하 40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현우는 재빨리 주위에 스펠을 영창했다.
"레지스트 콜드 오브 와이드(Resist Cold of Wide),
와이드 크리션 - 인케파시테이션 오브 테러(Wide Creation - Incapacitation of Terror)
자신이야 지금은 마기와 융합한 상태라서 추위에 내성이 생겼지만
평범한 사람인 자신의 친구들과 부상자인 교관은 냉기에 노출될 것이 뻔했다.
게다가 지금 이 마기는 너무 농도가 짙었다.
마기는 대체적으로 난폭한 성질을 띄고 있다.
현우의 마기는 이상할 정도로 성질이 죽어있지만, 이 마기는 순도 그대로다.
마기와 융합한 자신도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평범한 인간이라면 어떨까?
지금 당장 전신이 마비되어 숨도 못쉴지도 모른다.
추위를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레지스트 콜드 오브 와이드 스펠은 원래 광역 스펠이라 상관이 없지만,
인케파시테이션 오브 테러는 원래 개인용 스펠이다.
하지만 많은 인원 때문에 부득이하게 범위를 광역으로 설정해서 사용했다.
광역 마법을 지정하면 통상 소모 기력의 수 배를 소모하게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투를 할 수 있게 된 이상, 희생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것이 현우의 계획이다.
하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씨발"
대기가 벌써 영하 70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스펠이 닿지 않은 지역에는 벌써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기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끼기기기기긱 끼기긱 끼긱 끄그그그그극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주변의 소리를 없애는 사일런스(Silence) 스펠로도 무력화되지 않았다.
잠시 후 땅에 거대한 펜타그램(Pentagram)이 생겨났다.
그리고 펜타그램 중심부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이 걷히자 볼썽사납게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나동그라진 네크로맨서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현우는 몸에서 뿜어지는 검은 연기가 몸에 붙는 흙먼지를 소멸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폭발의 중심지였던 오망성의 중심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크하하하하, 드디어 중간계에 도달했도다!"
신이 난 듯, 외치고 있는 그림자 앞에 네크로맨서 로드가 조용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소환이 성공하신걸 축하드립니다. 고통과 절망의 군주, 위르하프시여."
거대한 그림자는 웃는 것을 멈추고 그에게 말했다.
"네놈이 나를 소환했는가?"
"그렇습니다. 위대하신 군주시여,"
먼지가 모두 걷히자 거대한 그림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상체는 사마귀, 하체는 지네의 모습을 했으며 대략 아파트 한채와 비슷한 크기를 한 거대한 형상이었다.
그의 머리에는 위로 솟은 두 개의 뿔이 있었으며, 등에는 거대한 가시가 돗아나 있었다.
특히 양 팔의 낫은 접혀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장의 반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네크로맨서 로드에게 물었다.
"저놈은 누구냐? 흠...마기를 사용하는 인간이라, 재미있군"
"저도 자세한 사항은 모릅니다, 다만 갑자기 살아나더니 가공할 무력을 보였습니다.
뱀파이어 로드인 벨제뷔트가 저놈의 손에 죽었습니다."
"뱀파이어 따위의 저급 언데드는 마기를 이길 수 없지,
그나저나 갑자기 살아나서 마기를 내뿜었다고?"
"예"
"흥미롭군, 재밌는 장난감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현우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른다.
능력자 수준으로 최소한 별 이십개 이상은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별 이십개 인간은 존재가 불가능하다.
현우는 승률을 점쳐보고 있었다.
승률이 소수점 단위다. 그것도 자신은 전력을 다하고 상대가 봐준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물론 대화가 오고가는것을 들어보니 적당히 가지고 놀다 끝내버릴 느낌이다.
현우가 머릿속을 정리하는 동안 위르하프는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자, 그럼 준비운동을 시작해 볼까?"
현우는 순간 입을 질끈 깨물었다.
위르하프의 팔의 길이는 상상을 초월했다.
반만 접었다고 생각한 팔이 네 번 접혀졌던 팔인 것이다.
그러면 사정거리가 최소 아파트 20층의 높이와 맞먹는다는 뜻이다.
저런 사정거리라면 휘두르기만 해도 다른 사람들이 공격에 노출된다.
게다가 사정거리의 가장 바깥쪽엔 최소 3m는 되보이는 커다란 가시가 박혀있었다.
'회피하면서 공격을 할 수가 없게 되다니...'
순간 위르하프가 공격을 시도해왔다.
다행히 휘두르기가 아닌 내려찍기라서 피할 수 있었다.
위르하프가 내려찍은 장소는 움푹 패여있었다.
위르하프는 마치 주인이 자신의 애완동물에게 말하듯이 말했다.
"안심해라 인간, 소환할 때의 마력이 너무 부족해서 아직은 총 능력의 10%의 밖에 낼 수기 없구나.
그래도 너와 놀기에는 충분하리라 싶군."
'미친, 이게 본 능력의 10%라고?'
단순한 내려찍기를 피하는 데도 전력을 다했었다.
그런데 저게 본 힘의 10%란다.
이러면 장기전으로 갈수록 불리해지는 격이 된다.
'살아나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군...'
이렇게 다짐하니 가슴이 후련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현우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난 너를 전력을 다해 막아보이겠다. 비록 모든 것이 뒤쳐진다고 해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위르하프가 말했다.
"정말 감동적이군, 벌레의 안간힘이 이렇게 감동적일 줄 몰랐어"
"벌레는 너야"
"후훗, 정말 귀엽군, 자 그럼 이것도 받아보거라!"
위르하프의 두번째 공격이 다가왔다.
이번에도 내려찍기였는데 아까보다 더 공격력이 강해진 듯했다.
"크하하하하, 더 재미있게 도망다녀봐라!"
하나의 앞발을 피하면 그쪽으로 다른 앞발이 날아왔다.
쉴 틈없이 밀려오는 공격에 현우는 그저 피하기 바빴다.
하지만 회피는 한계가 있는 법, 현우는 결국 공격범위에 들어오고 말았다.
다급해진 현우는 등의 도끼를 들어올렸다.
콰아아아앙
"응?"
도끼가 위르하프의 내려찍기를 막아냈다.
비록 충격에 의해 무릎까지 땅 속으로 움푹 들어갔지만, 도끼는 멀쩡했다.
위르하프는 공격을 거두면서 말했다.
"재미있는 무기로군, 내 공격에도 파괴되지 않는 무기라니...
내구성을 볼 때에는 마계의 무기 같은데...어디서 본적이 있는 것 같군,"
"......"
"힘든가보군? 아, 넌 인간이었지? 그럼 잠깐 휴식시간을 갖도록 할까?
난 식사를 좀 해야 할 것 같군"
"내가 살아있는 한 그 누구도 죽일 수 없어,"
"아 미안, 내가 한 말에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현재 난 저놈들에겐 볼일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기력이지 피가 아니야,"
"뭐?"
"흠, 저기 누워있는 인간도 기력이 있군, 저 상처는 네녀석이 복구시킨건가?
하지만 저놈의 기력은 나와는 상극이군, 맞지 않아"
"...?"
위르하프가 앞발을 뻗었다.
그리고 근처의 네크로맨서 로드를 제외한 모든 네크로맨서를 앞발로 포획했다.
"...위르하프님 무슨?"
"식사 시간엔 식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답을 마친 위르하프는 스펠을 읊었다.
"에너지 드레인(Energy Drain)
그러자 포획당한 네크로맨서들의 몸에서 기력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기력은 서서히 위르하프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음...양이 너무 적군, 하지만 대충 허기는 면한 것 같은데?"
네크로맨서 로드가 의문을 표시했다.
"무...무슨?"
위르하프는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군, 난 소환자인 네놈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희거리에 불과해,
네놈도 날 소환한 장본인이기에 살려준 것이다."
네크로맨서 로드는 자신의 제자들이 죽었다는 것에 이성을 잃었다.
"뒈져버려라! 블러드 스웜(Blood Swarm)"
피의 안개가 생겨나 위르하프에게 쏘아져갔다.
위르하프는 곧 피의 안개에 덮여버렸다.
"시시하군, 이게 네 최고의 공격스펠인가?"
'어...어떻게"
"네가 창안한 기술인가 보군, 독과 마력을 혼합한 공격은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내게 독과 마력에 의한 공격이 통하리라고 보는가?"
네크로맨서 로드는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넌 나에게 공격을 가했다. 그러므로 난 네놈도 유희거리로 간주하겠다.
센티피드,(Sentipede) 식사 시간이다."
땅 속에서 거대한 지네가 나와 네크로맨서 로드를 조이기 시작했다.
위르하프는 충고하듯이 말했다.
"컨트롤(Control) 스펠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거다. 그놈은 네놈의 마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하지만 이미 네크로맨서 로드는 뼈마디들이 부러져 절명한 상태였다.
위르하프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휴식 끝이다, 이제 나에게 허락된 권능 중 고통의 권능을 보여주마."
말을 마치자 위르하프 주변의 대기가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무서운건 추위에 내성인 현우와 추위 저항 마법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까지 조금씩 얼어붙고 있었다.
"...뭐야?"
"네놈이 걸어놓은 마법인가? 냉기의 힘을 차단하는 마법,
하지만 이건 냉기 속성이 아닌 권능이기 때문에 차단을 할 수 없다."
"그럼..."
"걱정은 하지 말도록, 둔화될 정도만 얼어붙으니까.
하지만 꽤 고통스러울 것이다. 네놈은 어떨지는 몰라도,"
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현우는 도끼를 앞세우고 돌진했다.
"응?"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기에 위르하프는 아랫배를 가격당하고 말았다.
위르하프의 아랫배에 조금 상처가 났다.
'디스트로이어(Destroyer)의 파괴력인데 멀쩡하잖아?'
디스트로이어, 현재 현우의 최고의 파괴력을 지닌 기술이었다.
온 몸의 마기를 도끼에 모아 한번에 내리치는 공격, 그런데도 고작 조금 상처맨 냈을 뿐이다.
"크흐...인간 따위가 나를 공격해?"
위르하프는 열이 받았는지 마구잡이로 내려찍기 시작했다.
'미친...공격방위가 없잖아?'
위르하프는 말 그대로 아무렇게나 내려찍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회피동작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
게다가 위르하프는 팔을 모두 뻗어낸 상태
엄청난 사정거리로 공격해대니 피할 도리밖에는 없었다.
위르하프는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런데 그가 휘두르는 공격범위에 현진,동수,수연이 포함되어 있었다.
불행히도 현진,동수,수연은 위르하프의 공격을 보지 못했다.
"이런 씨발!"
현우는 왼쪽, 그러니까 위르하프의 오른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친구들을 향해 영창을 했다.
"텀블!(Tumble)"
그러자 현진,동수,수연이가 넘어졌다.
주문의 강도를 높였기에 아예 나동그라졌다.
"현우 이자식아 뭐하는 짓..."
고개를 들은 현진은 순간 보았다.
위르하프의 오른팔에 등을 가격당한 현우를,
게다가 사정거리 바깥쪽으로 가격당해 3m의 톱날 세개가 현우의 가슴을 뚫고 삐져나와 있었다.
"크헉"
현우는 자신이 이번엔 정말로 생명이 다해가는 것을 느꼈다.
'시발...해준것도 없는데, 너희들을 지켜주지도 못했는데...'
현우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급속히 소멸하고 있었다.
"이 미친놈아 죽으면 내손에 죽는다!"
"장난치지말고 일어나란말이다!"
자신에게 소리치는 현진,동수의 모습이, 울고있는 수연의 모습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현우는 눈을 감았다.
'미안하다...친구로서 해준것도 없고...'
그렇게 의식의 끈을 놓기 전...
또다시 검은 연기가 형체를 이룬다.
그때보다 윤곽이 뚜렷하다.
그 형체가 입을 열었다.
"내 말이 들리는가?"
"그럼 들리지...그나저나 누구야?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그 형체는 잠시 주춤하더니 말을 꺼냈다.
"난 이제까지 너에게 계속 말을 했다. 하지만 넌 듣지 못했다...
이제야 들리는가 보군..."
"뭘 말해...제길 죽어가는 사람 잡고 뭔 장난질을...?"
그렇게 현우는 의식의 끈을 놓았다.
검은 형체가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
..
.
"이 망할 새끼! 숨을 쉬란 말이다!"
고함을 지르는 현진의 말을 위르하프가 잘랐다.
"그놈의 친구들인가 보군,
그놈은 본의 아니게 고통 없이 보냈지만, 네놈들은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위르하프가 스펠을 영창했다.
"그리고 네놈들은 나의 가장 잔혹한 스펠로 살을 천천히 벗겨내주마!
크루얼 토쳐!(Cruel Torture)"
크루얼 토쳐가 현진,동수,수연에게 명중하기 직전,
쓰러진 현우의 몸에서 검은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빛기둥은 크루얼 토쳐를 소멸시키고 뻗쳐올랐다.
"뭐야...마기?
죽은 다음에도 소환할수 있는 스펠따위가 존재할리가!"
그때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뜻밖에 대어를 건졌군, 마계에서 가장 난폭한 군주가 중간계에서 놀고 있을 줄이야..."
"누...누구냐?"
"곧 알게 될거다."
그리곤 빛기둥이 사라졌을 때
쓰러진 임현우에게서 한 그림자가 허공에 살짝 떠올랐다.
그림자를 본 위르하프는 경악했다.
"너...너는!"
그림자는 위르하프를 노려보며 말했다.
"후훗, 마계에서 널 찾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네놈이 마계에서 저지른 일만 해도 대단한데, 중간계까지 분탕질을 치려 하다니 베짱 한번 좋군,"
위르하프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마계의 군주...프람베르크가 어째서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