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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27. 목 토라집회 3일째 오후 [3-4]
주제 :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강사 : 요엘 버코비치
날자 : 2011년 1월 25일(화) - 28일(금)
시간 :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
장소 : 서울 대조동 순복음 교회
싸이트 : http://torahresourcesinternational.info/ 강의 하신분이 알림
창세기 3장
제가 하는 이 스타디를 오늘 할 수 있게 끝나게 되기를 바라는대요.
못하면 내일 더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언약에 대한 이 진리를 붙잡게 되기를 새롭게 알게 되기를 원해요 !
우리가 토라를 굉장히 중요하다 긍정적으로 게속 이야기 하는데요.
시내산에서의 토라 그거 오래된 거 아니예요 그거 끝난거 아니예요?
그 토라는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가는 거 아니예요 !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해왔죠!
토라에 대한 너무나 부정적인 가르침들이 많이 있었어요.
시내산에서의 그거는 율법을 준행하는 것을 말하죠 !
저는 그런 어떤 것과 대적해서 이게 맞아라고 주장하고 싸우려고 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이 마지막 시간에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컨셉은
이 모든 갈등속에서 여러분에게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토라 안에 얼마나 놀라운 새언약이 담겨져 있는 가 라를
여러분이 발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세기와 야곱의 삶과 그리고 새 언약에 대해서 우리가 한시간 동안 살펴볼려고 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가 나눈 대화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시죠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원수가 되게 할 것이다. 여자와
너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또한 원수가 될 것이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이것이 사람의 후손을 말하죠 여자의 후손은
이 여자의 후손과 이 뱀의 후손이 어떤한 갈등 상태에 놓일 것이지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죠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발꿈치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에케브라는 단어인데요.
네 이 말은 야곱이라는 단어에와 같은 뿌리입니다.
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이라는 것에 대한 예언을 우리가 발견 하는데요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야곱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알수 있습니다.
야곱에서 예수까지
여기서 발꿈치라는 것이 야곱을 말하고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네 그리고 이여인의 후손이 이스라엘의 가족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것이죠.
네 에케브라는 단어가 야곱이라는 단어와 같은 뿌리가 있습니다.
네 기억나세요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아들이라고 해서 야곱이라고 지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관계를 갖게 되는지
그 날에 여자의 후손이 이 뱀의 후손을 발로 밟게 된다라는 것이죠.
네 여러분이 만약 뱀의 머리를 밟으면 뱀이 죽겠죠.
근데 이상하게 그 뱀이 그 발꿈치를 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뱀을 이긴다라고 뱀의 머리를 밟는다고 생각하는데
그 머리의 숨통이 끊어질때까지 머리를 밟아버린다고 생각하는데요
네 상하게 한다라는 말이 똑같이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네 우리가 발꿈치를 죽기까지 죽인다라는 그러니까
머리를 밟는데도 죽기까지 상하게 한다라는 말이고
발꿈치도 죽기까지 상하게 한다라는 말
네 이 여자의 후손이 연약함에 대해서 상징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에 대한 야곱 그 이야기를 보기 전에
여러분을 위해서 읽기 원하는데요
네 이말씀을 고대 다른 버전으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이전의 시대에 이 말씀을 해석했던 말씀인데요
이러한 전통적인 유대적인 가르침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아주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계셨죠 예수님이 사시던 당시에는 이런 가르침이 많이 있었을테니까요
예 이 히브리어의 성경 말씀을 아랍어로 그 당시에 대중적으로 사용된 아람어로 해석한
제가 이것을 읽어 드린 이유는 너무나 놀랍기 때문입니다.
네 사실 이렇게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통역하거나 번역하는 것은 언제나 그 번역자의 눈에 맞추어져서 이렇게 하게 되죠!
바로 예수님께서 살아계시던 시간에 그 번역자의 관점 그 시대의 관점으로 이 말씀을
번역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과 뱀사이에 나오는 이 예언에 대해서 그 시대의 관점으로
어떻게 이것을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도와줍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도움을 주지요
네 제가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오리지널로 읽을께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아람어로 이성경을 번역한 그 번역본인데요
너와 여자 사이에 원수를 삼을것 놓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아들들과 여자의 아들들 사이에도 원수를 놓을 것이다.
그녀의 아들들이 토라를 보존하면 그리고 그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면
여러분 그 주님의 도를 따라 걸어가는거 기억하세요.
너를 타겟으로 해서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고 너를 죽일 것이다.
그들이 토라를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네가 그 사람들을 밟게 될 것이다.
그 발꿈치를 깨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죽기까지 아프게 할 것이다.
그의 아들을 향한 치유가 그러나 거기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를 향한 치유는 없을 것이다.
메시야이신 왕이 오시는 그날에 그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죠 우리가 너무 길게 설명하고 있죠!
이거는 번역이 아니라 주석이죠.
예수님의 시대에 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 시대에
이 언약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우리에게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이 이해하고 그들이 본것을 그렇게 번역해 놓은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대인들이 자신이 야곱의 후손으로써
이말씀을 자신들의 언약으로 받아들인 것이예요.
예 야곱의 자손으로써 그들은 토라를 보존하고
토라의 길을 따라 걸어갈 때 그들은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뱀을 이길 수 있었죠.
그리고 뱀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그 언약을 보호받을 수 없는것이죠
그러고 나면 뱀이 우리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거죠
그때 죽기까지 아프게 된다라는 거죠
예수님이 살아계시던 당시에 로마와 그리스
이방의 다른나라에 얼마나 공격들을 받고 있었던 시점이었습니까?
예 예수님만 십자가에 처형당하셨다고 생각하세요 그 당시에 로마사람들에게서
그당시에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이고 또 십자가에 죽이고 죽였습니다. 수천의 사람들이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고 나서 수백만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뱀이 그여인의 후손을 죽기까지 죽도록 아프게 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치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것을 우리들이 이해하였죠.
그러나 뱀에게는 치유가 없습니다.
거기에 회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화해하게 될 것이다.
메시아가 오시는 그날에
우리의 왕이신
그때 메시아가 오셔서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것이다.
이것이 그 뱀의 마지막 날이 될것이다라고 이해한 것이죠.
이 한 구절을 그당시의 사람들은 이렇게 읽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들을 너무도 자주 신약에서 읽고 있지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서 이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를 화해케 하기 위해서
왜냐하면 우리가 언약을 깨트렸기 때문이죠.
우리가 이 시간동안에 이것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발꿈치에 대해서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32장 야곱의 이야기로 가보겠습니다.
25절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아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
어떤 모델인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네 저희가 어제 옷에 대해서 잠깐 설명했었죠!
야곱의 옷을 대신 에서가 입고 나타난 거 아시죠 !
야곱은 축복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죠.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를 원했죠.
형으로부터의 그 장자권의 축복을 훔치고 싶어했습니다.
축복을 훔쳐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롭죠.
그가 자기의 축복이 아닌 형의 축복을 훔치면서 자기 자신의 베스트를 잃어버리고
거기에 사로잡혔던 것에 대해서 어제 얘기했죠!
그런데 야곱의 이름이 발꿈치를 밟는자 라는 의미입니다.
형의 발꿈치를 잡아서 어머니의 자궁을 빠져 나옵니다.
계속 그 형을 형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인생을 살죠!
형을 끌어내리고 자기가 그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는 자기 인생이 묘사된 것입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인생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수 있죠.
아버지가 에서의 옷을 입고 나타난 야곱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데
그런 상황속에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들여다 본다면 어떻게 내 비치겠습니까?
나는 형을 끌어내리고 발꿈치를 잡아 내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야곱이라는 이름을 말할 때 자기 정체성을 이렇게 말하기 쉬우시겠어요.
나는 당신의 아들 이삭입니다 라고 야곱이 이야기하죠!
그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남의 옷, 형의 옷을 입고 형의 이름을 말하며
자기의 정체성을 속이는 순간부터
자기 인생의 포로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그가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 순간부터 가족을 다 책임져야 하는 장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가 떠나면서 알았던 것은 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
그가 형에게 한 짓을 인하여서
내가 너를 다시 만나기만 하면 너를 죽이겠다라고 형이 말합니다.
그것이 에서의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네 그래서 야곱이 20년 동안 포로로 사로 잡혀 있는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죠.
만약에 20년이나 되었다면 벗 아웃되면서 살고 있었어요 20년 동안
그가 도망가면서 장인어른에게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 장인어른에게서 경험했던 고난은 형을 끌어 당길 때 형이 있어야 될 자리에서
자신이 형을 속인 것처럼 똑같이 장인 어른에게 속임을 당함니다.
자기 자신의 얼굴을 마주봐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자기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 거예요.
자기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말하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볼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포로로 사로 잡혀있는 것 같은 그런 시간속에서
자기 이름을 마주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저희가 이것을 깊이 경험합니다.
그런 속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어떤 성숙함의 여정을 걸아가죠.
20년이 지나서 다시 그 옛날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문제가 하나 있죠.
지금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
강을 건너가기 앞서서 이 강을 건너면
형이 400명의 사람들과 함께 그 앞에 있을 것이란걸 알았어요.
지난번 형과 헤어지면서 형이 나를 다시 만나면 내가 너를 죽인 다고 하였는데
뒤로 갈수도 없고 앞으로 가면 나를 죽인다고 하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창 32장의 상황입니다.
25절에서 32절까지 읽겠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이 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 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네 이 상황은 자기의 가족과 가축을 모두 보낸 상황입니다.
24절에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이 혼자 있었습니다. 여기 홀로 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천사라고 하지 않고 주님이라고 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라고 나오죠 !
지금 야곱은 누구랑 레슬링하고 있는 것일까요 ?
지금 야곱은 뒤로 돌아 갈 수 없습니다.
앞으로 가면 죽인다고 해요. 뒤로도 앞으로도 갈 수 없고 혼자 있습니다.
밤새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
정답이 있는게 아니예요!
어쩌면 자기 자신과 홀로 씨름을 한게 아닐까요!
이름이 무엇입니까?
20년 동안의 거친 고난의 세월을 겪은 후에 집에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죽음이 자기 앞에 있습니다.
밤새도록 씨름을 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
지금 야곱이 누구랑 레슬링을 하고 있을까요?
그렇게 야곱이 자신과 혼자 씨름을 할 수도 있습니다.
네 우리가 자기 자신과 씨름을 할 때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씨름을 하시죠 !
왜 팔이나 다른 곳이 아닌 골반뼈 환도뼈가 나갔을까요 !
이기지 못할 때 환도뼈가 나갔습니다.
이기려고 하는 최후 순간에 환도뼈가 나갔어요 !
골반뼈가 나가면 엄청나게 아프다고 들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여기에 딱 멈춰서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께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 하겠나이다.
나로 가게 하라라고 말하지만 절대 가게 하지 아니 하겠다고 말합니다.
20년 전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은 그모양 그 대로이지요.
야곱에게 너무나 아픈 질문이지요.
27절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가 정말 너의 이름을 말할 수 있겠느냐?
너가 여기까지 걸어온 길에 너의 정체성을 밝힐 수 있겠느냐?
20년 전에는 그는 자기의 정체성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 고난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말합니다.
이제 저의 이름은 야곱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번 진정한 축복이란 무엇인가?
수년동안 축복을 갈망하면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축복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라는 것에 답이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면
너의 이름은 이제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이름이 바뀝니다. 제가 바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꾼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저의 상황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문제를 바꿔주시죠.
너는 더 이상 야곱이라 불리지 말고 너는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처음으로 이스라엘이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어제 봤던 것처럼 축복의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토라에서 축복을 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가 ?
하나님에 의해서 이름이 정체성이 바뀌는 것입니다.
너는 더 이상 야곱이 아니다.
너의 이름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내가 살았던 삶은 야곱의 삶이었지만 이제 이스라엘의 삶이다.
이것은 야곱의 본질이 바뀌는 것이고 정체성이 바뀌는 것이고
트렌스포메이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토라에서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정체성이 트렌스포메이션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정체성이 야곱에게 부어진 것이죠.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두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선 이것은 왕자라는 뜻이구요. 엘은 하나님이죠
하나님의 왕자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서 설명하는 바로는 레슨한다
끝까지 붙잡는다 라는 끝까지 걸어오는 자 끝까지 참는자
고난을 통해서 끝까지 견뎌오는 자
하나님과 사람이 겨루어서 끝까지 견뎌 오는 자를 말하는 것이예요.
이스라엘의 정체성 이스라엘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겨루어서 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길 수 있다라는 뜻이지 이겼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뭘 할 수 있다라는 것이예요?
이 정체성이 바뀐 것을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인가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면서 죽음이 비켜 간 것이죠.
그래서 죽음이 비켜가기 때문에 형을 찾아 나아가서 형과 마주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가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었는데요.
그는 할 수 없었어요. 그는 걸어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지금 사실 걸어 가는 것이 불편, 어려운 상태가 되었지만
사실 죽음이 물러났기 때문에 걸어갈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죠.
육체적으로 온전해 져서 살 수 있다 이말을 하는게 아니예요.
살 수 있다, 생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이예요. 두려움이 없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걸어갈 수 있게 된 존재..!
하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고, 사람과 함께 걸어 갈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 축복, 이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하여서 30절에 보면
이 장소를 이름을 붙이는데요. 뭐라고 하죠? 브니엘이라고 말합니다.
브니엘 무슨 뜻일까요?
브니는 얼굴이라는 뜻이예요, 엘은 하나님이죠 !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예요. 그렇게 말하고 있죠!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보았는데 여기서 이런 말이 또 나오죠!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라고 알고 있었죠.
그가 레슬링을 하면서 그가 자기 자신과 씨름하면서 그러나
그가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다라는 것을 그가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가 씨름을 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이예요.
하나님의 얼굴을 본걸 통해서 결과적으로 트랜스포메이션이 되고 트랜스포메이션이 되면서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죽지 않고 내 생명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내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내가 여전히 안죽었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구요.
내 온 존재가 구출되었다 구원되었다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생명이 보존되었다 이런 차원이구요.
그전에 내가 죽음 가운데 구출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제 내가 그 죽음으로부터 구출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예요.
형제가 나를 죽이려고 했었는데
도망을 가서 내가 그 장인에게 붙잡혀서 고통을 당해야 했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사로 잡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결과로
트랜스포메이션을 경험을 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살아 있음을 경험한 것입니다.
죽음이 들어오는 그것을 떨쳐 버린거죠.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내가 이제 구원되었다 구출되었다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보는 것을 통하여서 그 결과로
이것이 이스라엘의 이야기입니다.
아주 신기하게 하나님에 의해서 이름이 바뀌어지는 순간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시며 (창17장 5절)
사위가 살아나기도 하고 계속해서 성경에서 이름이 바뀔 때 마다
이전의 이름으로는 절대 불리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으로 불리웠다가 아브람으로 불리는 일이 절대 없습니다.
그 밖의 이름은 정해진 거에서 또 바뀌는 법이 절대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떻습니까? 이미 바뀌었어요. 뒤에 나올때
야곱이라고 나오기도 하고 이스라엘이라고 나오기도 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오직 야곱만 그래요. 제가 알고 있는한 그래요.
어떨땐 야곱으로 살아가고 어떨땐 이스라엘로 살아갑니다.
이것을 창세기 15장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창 3장 15절은요 ......너는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히위라는 발꿈치라는 이름이 야곱이라고 하지요
어쩔때는 이 야곱이 그 여자의 후손으로서 뱀의 후손을 발로 밟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야곱이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안에서 그 길을 걸어가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 안에서 ..!
우리가 앞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 오겠습니다.
야곱의 후손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죠.
출애굽기 19장으로 가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하신 장면이 있습니다.
야곱의 후손들과 언약하시죠.
이집트 결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다가 시내산 앞에 세우신 장면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사람들과 언약을 하십니다.
3절에서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이 언약은 이 둘의 이름을 다 부르고 있어요.
이 두가지 정체성을 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언약하고 계신 거예요.
삶의 어떤 두가지 정체성을 다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때와 그래서
정말 사단의 머리를 밟아 버릴 수 있는 그런 강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그렇게 살 때와
뱀이 사람들의 삶에서 계속 우리를 노략질하고 계속 연결되어 살아갈텐데
너의 삶속에서는 영적전쟁들은 존재할 것이고 너희들은 싸움을 해야 할텐데
너희들이 그 언약에 신실하지 않을때에
두려움 가운데에 도망가고 죽음을 무서워 할 때가 있는데
그때에 그 뱀이 우리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인데
너희가 하나님과 언약 가운데 있을 때에는 너희가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지만
너희가 나와 언약이 되어 있다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으로 알면 된다
그 순간에 너희 죽음은 물러난다. 너희가 하나님과 걸어가면 너희는 죽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과 언약되어 있는 것을 깨트리면 그분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우리 내면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서 두려움이 내어 쫒기는 것이죠.
그때 하나님의 사랑을 에덴동산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알지 못하면
그러면 우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묶여서 살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뱀이 우리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 이스라엘인 이든지
야곱인 이든지 동일하게 언약하셨던 것이예요.
야곱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러라
이 둘다 저희 삶속에서 존재할 것인데
네 저희가 이 번역을 읽을때에
이것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예요.
머리를 상하게 하면 뱀이 죽어 있기 까지 아직 죽지 않았죠
악한 것이 여러분을 공격하는 그런 꿈을 꾸신 적이 있으세요.
아무리 해도 대적, 때려도 적이 죽지 않는 그런 지경의 꿈 꿔보셨어요.
스스로 계속 때리는, 아주 흉측한 꿈이죠.
여러분 죽음을 어떻게 죽일 수 있겠어요. 이미 죽어 있는 존재인데
이미 죽어 있는 존재를 어떻게 또 계속 죽일 수 있겠어요.
여러분의 그 생명력이 그 대적을 죽일 수 없습니다.
이 언약의 어떤 성격이예요.
우리는 이 갈등 가운데 있는 것이죠.
여러분이 내일 무엇을 맞닦 뜨리시겠어요.
때때로 우리는 막 승리하는 군사와 같죠 승리하는.
어 내가 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한거야 라고 느끼실때가 있으실 꺼예요.
내가 계속 황소에게 쫓겨 다니는 것같다.
마치 뱀이 계속 우리를 죽일 려고 하는 순간들이 있죠.
이런 딜레마 속에서 우리가 늘 걸어갑니다.
여러분이 뱀과 싸우는 것, 죽음과 싸우겠다는 것이 딜레마입니다.
여러분이 여인의 후손과 싸운다고 하였는데 그 원수가 된다라고 하였어요.
우리가 아무리 어떻게잘 살아 보려해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데
메시아 왕이 오시는 그 날에 이 전쟁이 끝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예요.
여러분이 이 뱀과 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언약 가운데 있는 것이예요.
여러분이 이 언약 안에서 걸어가면 여러분이 승리를 경험 하실 것입니다.
또 문제가 있어요. 우리에게 있는 문제인데요.
우리가 언약에 언제나 신실할 수 없다는 것이예요.
우리는 정말 언약을 잘 깨트리는 자들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사단에게 계속 뚜들겨 맞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갱신하시기로 합니다.
예레미야 31장에 가 보겠습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갱신해 주시는지 31장을 보지요
야곱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두가지의 정체성을 다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31장에서 어떻게 언약을 하시는지 보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깨트린 언약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갱신하시는데요.
31장 31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다시 세우리라 이렇게 돼어 있습니다.
언약이 깨어졌고 다시 세워져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을 누구와 함께 다시 하고 계시는지 한번 보세요.
여러분 대답해 주세요.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맺으신답니다.
야곱은 어디 갔습니까?
야곱의 이름은 나오지 않네요.
이 두 개의 언약 사이에 있는
오직 한가지 차이는 야곱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이 언약을 누구와 맺으셨냐 하면 이스라엘집과 유다집과 맺으셨습니다.
더 이상 야곱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이지요. 야곱의 정체성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 계속 읽어 보겠습니다.
이 차이가 너무나 중요한 차이입니다.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그리고 새로운 언약을 세우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서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야기가 기억나시죠.
촛불을 밝히고 트랜스포메이션이 되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유다는 무슨 뜻일까요?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유다는 찬양이라는 뜻이예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서 하나님께
트렌스포메이션을 받은 사람들과 그 결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신 것 이 언약은 그들의 아버지들 열조들과 손을 잡고
애굽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하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것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언약과 다를 까요?
그들의 언약을 깨트렸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고 그들이 나의 아내인 이 결혼서약을 그들이 깨트렸다.
그날 후에 그분이 세우신 언약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유다는 이스라엘 안에 속하여진 아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집만 언급하십니다.
33절을 보면 내가 그날 후에 이스라엘 집과 세운 언약은 이러하다.
33절 읽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나의 법 나의 토라를 그들의 마음에 기록한다.
여러분 이게 새로우십니까? 아니요.
이것은 앞에서 말한 액션들하고 똑같아요.
신명기에 똑같은 문장이 나와요 이것은 옛 언약과 새언약의 차이가 아니예요.
마음에 기록한다는 표현이 이미 나와 있어요.
34절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것을 약속 하십니다.
이것은 새로운 언약입니까? 아니요.
여러분 이 언약은 토라에서 이 내용이 똑같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거예요.
여러분 어제 읽으셨잖아요.
나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너희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라고 그분이 직접 말씀하셨어요.
수천의 수만 세대들을 다 용서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것이 시내산에서 첫 번째 언약의 그 내용이예요.
왜 주님께서 여기서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뭐가 새롭다고 하는 걸까요. 왜 새롭게 갱신 한다라고 하실까요.
이것은 대상에 관한 것이예요. 똑같은 후손이지요.
이스라엘집과 유다집과 맺은 언약이지요.
이스라엘집과 맺은 언약이다 라고 하신 것이 오직 차이 일뿐이예요.
그런데 34절에서 그 사람들에 대해서 묘사를 다르게 하십니다.
이제는 그들이 다시는 이웃과 형제들에게
너는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 것이예요.
서로 서로에게 하나님 아세요 하나님을 알아요 하고 말할 필요가 없다라는 거예요.
더 이상 어떤 선교사업이 필요 없는 날이 온다라는 거죠.
왜요?
그들이 나를 다 알 것이다.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를 알라 여호와를 알라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가 오늘 아침에 너를 안다라는 뜻을 이해했죠.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는 것을 보고 서로 알았다라고 말했어요.
같은 히브리어 단어예요.
이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를 안다라는 것은
너무나 친밀하게 한몸이 되기까지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예요.
내가 너의 남편이다 라고 말씀하시죠 이 언약 안에서
그때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여기 새롭게 갱신된 새 언약에서는
내가 지금 언약을 맺는 대상이 나를 다 알고 있다라는 전제에서 이 언약을 하신 것이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영영히 설 것에 대해서
그분 앞에서 영영히 이스라엘이 설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8장에 가보겠습니다.
이 언약이 인용되어 있는 장면입니다.
6절에서부터 보겠습니다.
이 새 언약이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 하신때에 이것이 새 언약의 피다라고 말씀하셨죠..!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죽으심과 이 언약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예요.
그리고 그분이 부활 하셔서 새로운 생명을 가지신 것 이것이 연결되어진 것이예요.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여 연결되어 진 것이예요.
여러분 죽음에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죽음을 밟고 이기셨다라는 말씀이지요.
죽음을 죽이신 것이예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이 분께서 죽음을 밟아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을 영원토록 밟아 버리신 것이예요.
그 결과로 8장 6절에서 말합니다.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셧다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다.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셨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
더 좋은 약속이 무엇일까요 !
6절부터 13절까지 제가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리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라
예 새 언약에 대해서 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31장에 있는 말씀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 말,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인용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언약을 중재 하셨다라고 말하고 있죠.
이것이 여러분의 언약이고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보통 새 언약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누구와 함께 맺어진 것입니까?
누구와 함께 언약하신 것일까요?
독일집과 언약을 맺으셨나요 !
일본집과 맺으셨나요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집과 이 언약을 맺으신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같은 사람들과 맺고 계신 것이예요.
7절을 보겠습니다. 7절에 그런데 첫 언약에 무흠하였더면 그러니까 흠이 있었다면
원래의 것이 볼품이 없었다면 새로운 언약이 필요 없었겠지요.
그런데 언약자체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언약의 대상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었습니까?
저희들에게 허물이 있었다는 거죠!
사람들이 허물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좀 문제가 있었다.
언약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언약을 보존해야 할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었다라는 거죠.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른 남자에게 그렇게 경배하고 우상 숭배했던 것이죠.
그날이 오면 내가 이스라엘하고 다시 언약을 맺겠다라고
결혼을 다시 너에게 하겠다고 하신 것이예요. 두 언약 사이에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다시 제시하신 그런
언약의 내용들은 앞에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겠다
이것은 신명기, 성서에 나오는 말씀 그대로 쓴 것이예요.
시내산에서도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너무나 놀랍게 등장하지요.
그것은 대상에 대한 문제인 것이죠
일단 달라진 것은 우리는 더 이상 야곱의 집이라고 불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집이라고 불리고
여호와를 찬양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립니다.
오직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아만이 언약의 중재가 되실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인의 후손, 마지막 여인의 후손이 사단의 머리를 밟으셔서 완전히 너희의 후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여인의 후손으로서 사단의 머리를 밟으셔서 완전히 그 사단을 멸하신 것입니다.
네 예수아의 후손인 우리 모두는 그분이 사단을 밟아 죽이셨다면 우리는 왜맨날 이렇게 대적과 싸워야 할까요 ?
네 그것은 끝난 것이예요.
그분이 모든 객관성은 끝내셨어요.
아니요 나는 대적할 때 공격당하고 맨날 나 때리고 막 그럽니다.
어떻게 된 일이예요. 예수님이 다 죽으셨는데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13절에 새 언약이라고 갱신된 언약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 것은 낡아지게 하셨다
낡아진다라고 하는 것은 낡아지고 쇠하여져서 없어지게 한다는 말이다.
네 낡아져서 없어진다. 무슨 뜻일까요!
여전히 있긴 있다라는 거죠!
2천년 전에 이것을 읽었어요. 선교사이신 분 손들어 주시겠어요.
네 몇분계시군요
우리 가운데 선교사님들이 계시는데요
우리가 여전히 여호와를 알라라고 외쳐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네 그것이 사실 우리가 하는 일로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라고 전하죠.
우리는 여전히 우리 앞에 있는 창녀와 같은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되도록
트랜스포메이션 시켜야하는 역할, 다스리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언약이 있다는데요 그날이 오면 너희가
더 이상 그 형제에게 여호와를 알라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날이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제안하는 것은 우리가 이것을 결정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옛 언약 가운데 사시면서
그것은 야곱집과 이스라엘집과 함께 맺어진 언약이지요 !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씨름하고 있는 상태
여러분이 영적 전쟁가운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그 대적 뱀이 일하는 것에 대해서 계속 싸우고 있다는 것이예요.
공격에 대해서 아니면 여러분이 만약에 이렇게 선포하실 수 있습니다.
사단을 영원히 밟아버리신 예수아를 선포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나라에서 부활한 존재로서
새 언약위에 서서 그분의 이름을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으로 맺어진 그 언약위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서 그 분의 사랑을 경험하여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상태로 여러분이 그 언약위에 서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언약 위에서는 사단은 밟아 버려졌고 죽임 당한 것입니다.
지금 여전히 이 두 가지가 계속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고 또 여전히 대적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싸움으로 버틸지도 모릅니다.
새 언약의 그 멤버로서 그 가족으로서
우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미 부활하셔서 하늘의 그 보좌위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의 죽음은 대적이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끝났어요.
우리를 누가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아래 있는데
토라에서 말하는 두가지 언약
옛언약과 새언약의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10절에 보면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토라를 저희 생각에 저희 마음에 기록하겠다 그분의 의로움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분의 가르침과 지침은 우리에게 두가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 모든 존재 모든 생명을 다하여서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리고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형제를 사랑하여라
이 모든 언약을 두 말로 요약한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번 반복하겠습니다.
예수아는 우리, 새 언약의 중보 새 언약을 이루시는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이 새언약은 오직 이스라엘의 집, 정치성이 담긴 이스라엘의 집과만 맺어지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있는 그 대적과의 싸움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싸움 그것은
예수아 안에서 이미 끝났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승리하셨고 그분이 새언약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방인 가운데 예수아를 믿는 의로운 자들은
이스라엘과 연합하여서 이 언약 안에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인 우리들과 유대인이 함께 연합하였을 때
하나님의 성소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머물게 되고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함께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말을 걸기도 전에 에덴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그런 상황으로
더 이상 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미 밟아 죽였기 때문에
우리가 역사적으로 지금 옛언약이 쇠하여지고 있고 새 언약이 세워져 있는
이 시점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예요.
우리가 이 두 개의 언약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시대에서
트랜지션 옯겨가고 있는 이 시대 안에서 우리가
어떤 언약에 우리가 살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예요
나머지는 다 똑같습니다. 두 언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창세적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계신 것이예요.
그 생명을 가지고 있고 그 영생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바뀌게될 것입니다.
여러분 새언약을 가지고 살아갈 때 모든 것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 하시기 원합니다.
네 여러분 또 질문이 더 있으신 분은 적어서 주시면
내일 꼭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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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오빠~ 감사해요@!!!! 대단한걸요? 이렇게 정리해주시다니.
언약에 대해서 말씀 하시길래 정리해봤어..^^ !
오빠 고마워요///듣는것이 힘들었는데,,,이렇게 정리해주다니...역쉬......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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