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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화가 신윤복이 21세기 거대한 매혹으로 주목 받는 이유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비밀!
책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신윤복 이야기가 빠르게 복제, 전이되고 있다. 폭풍으로 치자면 A급 규모고 파워다. 단 두 줄의 기록밖에 남지 않은 비밀의 화가.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스토리 메이커가 주목하는 그의 비밀의 핵심은 무엇일까?
신윤복 열풍은 아이러니하게도 후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는 데서 기인한다. 그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단 두 줄이 전부다. “신윤복(申潤福). 자 입보(笠父), 호 혜원(蕙園), 부친은 첨사 신한평(申漢枰). 벼슬은 첨사다. 풍속화를 잘 그렸다. 부친 신한평은 화원이었다.” 1928년 오세창(吳世昌, 1864~1953년)이 쓴 <근역서화징>에 신윤복은 그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일개 화원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단 두 줄의 일반적 기술로 그치기에는 더없이 매력적이고 훌륭하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그의 저서 <화인열전 2>에서 “단군 갑자 이래 최고의 화가”라 극찬한 김홍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만으로도 그 걸출한 재능은 확인된다.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풍속화가로 이름을 떨친 최고의 화가인 것이다.
천금상련 양반 세 명이 기녀를 데리고 나와 질펀하게 노는 풍경을 묘사했다. 갓까지 벗어 던진 채 못 참겠다는 듯 여인을 품에 안고, 이 풍경을 관조하듯 바라보고, 차분하게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양반의 모습이 극히 사실적이다. 간송미술관 소장.
나쁜 남자가 21세기의 매력남으로 변신하다 그런 그가 역사 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은 이 시대 이야기꾼들에게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만큼 역사적 기록이 촘촘한 이와 달리 수천, 수만 가지의 상상력을 덧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가미할 구석이 많다는 것은 인물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매혹적이고 극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다. <대장금>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본 장금은 실제 역사적 기록이 신윤복만큼이나 부실하다. <중종실록>에 단 열 번 언급될 뿐인데 그나마도 임금의 주치의로서 활동한 장금을 지칭하는 것인지가 정확치 않다. 게다가 당시 장금이란 이름은 철수나 영희처럼 매우 흔했다고 전해진다. 드라마 <대장금>의 대본을 쓴 김영현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궁녀나 의녀에 관한 자료가 너무 적어 장금이란 인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그 상상력이 홈런을 기록했다는 데 있다. 대장금의 브랜드 가치는 연간 50억을 넘는다. 소설가 이외수가 말한 것처럼 “자본보다 위대한 것은 상상력이다”라는 생각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대장금만큼이나 많은 여백을 지닌 신윤복은 작가와 소설가, 영화감독이 찾아낸 또 하나의 역사 속 보석이다. 상상력을 마음껏 보탤 수 있을 만큼 역사적 기록이 미비한 데다 불세출의 재능을 가졌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더불어 신윤복의 화풍이 전형적이지 않고 파격적이라는 점이 강력한 힘을 보탰다. 실제 신윤복의 그림은 처음으로 컬러 TV로 영상을 보는 것만큼이나 신선하다. 김홍도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그 신선함이 더욱 강렬하게 와 닿는다. 김홍도가 서민의 푸근한 일상을 먹의 농담으로 힘 있게 표현했다면 신윤복은 기녀들의0 사랑과 놀음(물론 산수화나 서민의 풍경을 그린 작품도 있다)을 주요 소재로 파랑, 빨강, 노랑이 화사하게 가미된 색(色)다른 풍속화를 선보였다. 더욱이 그의 그림은 약 50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세련되고 섹시해 보인다. 그림 속 여성 대부분은 얼굴이 갸름하고 눈매가 찢어져 오늘날 혜박이나 한혜진을 보는 듯하고, 한껏 부풀어 오른 치마와 가슴에 착 달라붙은 형형색색의 색동저고리는 언제 봐도 관능적이고 멋스럽다. 더욱이 인물에 집중하지 않고, 인물을 둘러싼 풍경과 분위기 전체를 아우르는 그림 탓에 화가가 그림을 그릴 당시의 분위기와 정황이 화폭 밖으로 번져 나올 듯한 신비함마저 느껴진다.
(위) 처네 쓴 여인 야심한 밤에 어디론가 가는 한 여인의 뒷모습을 그렸다. 푹 뒤짚어쓴 처네에서 여성의 바깥출입을 금했던 당시의 생활상이 전해진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같은 화풍은 인간 신윤복을 훨씬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김홍도가 주막과 씨름장 등 서민의 삶이 오롯이 펼쳐지는 공간을 찾아 담담하고 묵묵하게 그림을 그린 A형 타입의 천재 화가라면 신윤복은 기방 출입을 안방 드나들듯 하고 때로 남녀의 정사 장면이나 밀애 장면을 재밌다 생각하며 쓱쓱 그림으로 그린 나쁜 남자 필 가득한 B형 타입의 천재 화가로 인식되는 것이다. 실제 신윤복이 활동했던 조선 후기는 하늘 아래 남녀가 유별하다고 강조하는 내외법을 국가의 주요 통치 철학으로 받아들이던 시대였다. 외간 남자는 아녀자와 직접 대화할 수 없었고, 여자 아이는 열 살이 되는 순간부터 바깥출입을 금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인 도덕적 시대에 남녀가 거침없이 정을 나누고, 술에 취한 양반이 기녀의 품에 푹 빠져 색에 취해 있는 그림을 상당수 그린 신윤복은 21세기의 스토리 메이커에게 시대를 앞서간 로맨티스트 혹은 그야말로 세속의 기준과 상관없는 삶을 살다 간 바람의 화원으로 비치는 것이다.
월하밀회 달 밝은 밤, 뜨겁게 입맞춤을 하는 남녀와 담벼락 옆에서 이를 몰래 훔쳐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온다. 등장인물의 감정 묘사가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간송미술관 소장.
상상력이 신윤복의 성(性)에 쏟아지다 신윤복 돌풍은 작년 7월 <바람의 화원> 발간과 더불어 시작됐다. 역사에서 사라진 천재 화가 신윤복과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김홍도 간의 그림 대결을 전면에 내세운 이 책은 30만 부가 넘게 팔렸다. 기세를 몰아 박신양과 문근영을 주연으로 내세운 드라마까지 제작했고 지난 9월 24일 첫 방송되었다. <바람의 화원>이 이 같은 인기와 파급력을 갖는 가장 큰 배경은 신윤복이 여자일 수도 있다는 상상력에 기인한다. 이러한 가정은 신윤복이라는 소재에 훨씬 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당시 다른 화가의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남성과 여성처럼, 물과 불처럼, 하늘과 땅처럼 화풍이 전혀 다른 화가가 실은 정말로 성(性)이 다른 것이었다면(하여 붓칠, 색감, 내용 등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면) 이야기는 남장 여자의 천재 화가 이야기가 되어 훨씬 더 많은 비밀과 매혹을 품게 되는 것이다. 또 이는 묘한 긴장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동시대적 소재로까지 발전한다. 영화 <미인도>가 그 대표적 반증이다. 영화는 신윤복은 여자였다는 도발적 상상력을 토대로 신윤복과 김홍도 간의 은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과연 신윤복은 정말로 여자였을까? <바람의 화원> 저자인 이정명은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역사적 정황은 어디에도 없다. 개인적 상상일 뿐이다. 여심을 표현한 신윤복의 그림을 보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워낙 여심을 잘 표현해) 필시 여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실제 신윤복은 놀라우리만치 여성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수양버들 아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님을 기다리는 듯한 기다림, 달 높은 깊은 밤에 야릇한 밀애를 즐기는 듯한 남녀의 모습을 담은 월하정인, 후미진 담 그늘 아래 한 쌍의 남녀가 기습적으로 키스를 나누고, 이를 한 여자가 몰래 훔쳐보는 월하밀회 등 그의 작품에는 연애하는 여성의 숨 막힐 듯한 긴장과 감정이 비치는 그림이 셀 수 없이 많다. 조선 후기 최고의 그림은 산수화와 사군자였고, 당시 대부분의 화가는 인물의 감정이 아닌 사물과 풍경을 그렸으므로 신윤복의 이 같은 행보는 그가 여자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힘을 보탠다.
여성이 아니라면, 동성애자도 아니라면 쉽게 캐치해내지 못할 소재와 내용이라는 것이다. 물론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가설을 그저 상상뿐인 허구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서울역사박물관의 김우림 관장은 이렇게 말한다.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미술사 수업을 듣던 중 한 친구가 신윤복에 관한 내용을 발표한 적이 있다. 골자는 신윤복이 작품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실제 그의 작품을 보면 많은 그림에서 양반들의 놀음을 불만스럽게 쳐다보는 한 청년이 나온다. 그가 여성이었는지, 아니었는지에 관한 역사적 자료는 전무하지만 나는 그 친구의 의견 즉 신윤복이 당시 양반의 생활과 놀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청년 화가였다는 추정에 동감한다.” 한편 신윤복이 기방 출입을 제집 드나들듯 하고, 기생들과 어울리며 소일하던 한량이었다는 설도 많다. 속화를 즐겨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도 하나의 사실처럼 회자된다.
(위) 연당여인 뒤뜰 툇마루에 곰방대를 손에 쥔 채 무심하게 어딘가를 바라보는 퇴기를 묘사했다. 신윤복은 많은 그림에서 기생을 모델로 등장시킨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주유청강 양반이 기생과 어울려 뱃놀이하는 모습. 가운데 악기를 연주하는 하인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조선 시대 양반은 이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하인을 따로 두었다고 전해진다.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와 정조가 이야기에 힘을 보태다 신윤복이 21세기의 매혹적인 이야깃거리가 되는 데는 김홍도와 정조의 도움이 크다. 특히 김홍도는 이야기에 힘을 보태는 최고의 조연으로 등장한다. 조선 후기, 김홍도는 그 자체로 신화였으므로 그와 필적할 만한 재능을 갖춘 이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 소재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그 둘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이야기는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기 동안 140여 점의 천재적 그림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진 일본 최고의 화가 샤라쿠가 실제는 조선의 신윤복이었다는 가설로 축을 이룬 소설 <색, 샤라쿠>의 저자 김재희는 “혜원은 단원의 그림을 수없이 모사했다. 선배의 그림을 임모하며 화가 수업을 했던 것이다. 산수 풍속도 8첩 병풍의 일부를 똑같이 모사하는 등 혜원이 단원의 그림을 임모한 자료가 곳곳에 남아 있다. 또 그림에 삽입된 글씨 역시 단원과 혜원의 것이 비슷하다. 실제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단원 김홍도 연구>로 유명한 진준현 박사 역시 그의 책에서 “김홍도의 작품은 신윤복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윤복은 김홍도의 작품을 수차례 임모했다”고 적고 있다. 두 명의 천재 화가가 특정한 관계 속에 있었다는 추정은 그들의 그림을 통해서도 힘을 얻는다. 빨래터(김홍도)와 계변가화(신윤복), 우물가(김홍도)와 정변야화(신윤복)가 대표적이다. 이정명 작가는 “이 네 점의 그림에서 두 화가의 그림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그 풍경과 느낌, 그림 속 인물의 포즈와 위치, 등장인물의 수와 분위기 등 모든 것이 비슷한 것이다. 내 소설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두 천재 화가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산천을 누비는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낭만적이다.
생의 무대가 예인 군주 정조가 집권하던 시대라는 점도 신윤복 열풍의 또 다른 요인이다. 한 인물이 매력적으로 소개되는 데는 그에 걸맞은 시대적 상황 역시 중요한데, 신윤복은 이 역시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이다. 영조에서 정조로 이어지는 76년간의 세월은 세종 이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로 특히 정조는 규장각을 중심으로 조선의 문예 부흥을 이끌었다. 그 자신 역시 보물로 지정된 파초도와 국화도 등 수점의 그림을 남길 만큼 재능 있는 화가이기도 했으며, 특히 김홍도의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그림을 좋아해 차비 대령 화가를 뽑는 시험에 “보는 순간 내가 껄껄 웃을 수 있는 그림을 그려라”라는 문제를 직접 출제했을 만큼 그림에 대한 애정이 두터웠다. 이러한 이가 왕으로 집권하던 시대에 화원의 이야기는 더 많은 사연, 더 많은 이야기를 보물 창고처럼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윤복을 추억하는 작업이 장금이나 공길이(영화 <왕의 남자> 주인공)만큼이나 매혹적이고 거대한 퍼즐이 될지 궁금하다. 단 두 줄의 역사적 기록에서 원고지 수천 매 분량의 책과 시나리오가 탄생하는 것도 흥미롭다. 어쩌면 역사야말로, 그중에서도 심하게 축약되고 생략된 역사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 창고인지도 모른다.
신윤복을 추억하고 상상하는 세 개의 키워드
추정과 가설은 하나의 채널 안에서 묶이고 융화될 때 비로소 더욱 실감 나고 매력적인 이야깃거리가 된다. 신윤복에 관한 추억과 상상을 시작하기 좋은 세 개의 키워드를 소개한다.
간송미술관 서울 성북동에 있는 사립 미술관으로 소설 <바람의 화원>에 소개된 신윤복의 그림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다. 쌍검대무, 기방무사, 단오풍정, 주사거배, 삼추가연, 야금모행, 정변야화, 유곽쟁웅 등이 그것으로 신윤복 화풍의 특징과 매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1년에 단 두 번 5월과 10월에만 오픈한다. 수많은 화분과 정원수 가득한 미술관은 나들이 장소로도 훌륭하다. 문의 762-0442
<바람의 화원> 18세기 조선 화단의 혁신적 화풍을 이끈 두 명의 천재, 김홍도와 신윤복의 삶과 관계를 정조가 주재하는 그림 대결로 속도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주요 작품을 모두 삽입해 글의 내용과 맞춰가며 한 점 한 점 감상하는 재미가 뛰어나다. 소설은 도입부에 사라진 한 천재를 추억함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바로 신윤복이다. 소설을 쓴 이정명은 훈민정음 암살 사건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뿌리 깊은 나무>의 저자다. 전 2권, 밀리언 하우스.
<색, 샤라쿠> 동양의 피카소라 불리는 일본의 화가 샤라쿠가 실은 신윤복일 수도 있다는 가설 아래 출발하는 조선 첩보 스릴러물이다. 일본 정복의 야심을 품은 정조는 김홍도로 하여금 신윤복을 일본 에도에 잠복시키고 신윤복은 그곳에서 일본을 정탐하며 피 마르는 첩보전을 펼친다. 샤라쿠가 그리는 그림, 거기에 담긴 일본의 풍속, 그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긴박감 있게 전개된다. 전 2권, 레드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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