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0(월) 충주온지 한달이 되엇다 어느새 -- 참 세월이 바르구나1 아내가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다 허긴 나도 가금 경솔하엿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되돌리기엔 때가 늦엇고 - 앞으로 가야만 한다 얼마나 염원하엿던 일인가? 서울생활 노예생활이나 다름이 없엇지 후회는 없다 이미 지나간 세월 탓할수는 없다 그동안 시골오기위해 공부도 많이 하지 않앗던가? 가나안농군학교 두 번이나 갓엇고- 두 번다 자의에 의한 행동이엇고 그리고 원효로 농촌진흥공사에서 시행하는 귀농프로그램 교육을 두달이나 받앗엇다 무의식과 의식중에 씨앗이 살아있어서 결국은 이곳으로 온것이다 이제 한달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엇다 처음 이곳을 왔을때의 어수선함은 사라지고 이제는 초보 농부로서 하나둘 - 걸음마를 걷기시작하엿고 - 이장및 부녀회장도 알게 되어 차차 시골생활에 동화되어 가는중이다 형제자매들이 대부분 와서 보고 - 축하해주엇다 적당한 크기의 집과 땅 - 저렴한 가격에 잘 구입하엿다고 한다 특별히 여동생이 이곳에 없엇으면 이곳에 이사오지 않앗을 것이다 막상 구입과정에서도 그렇게 큰금액을 무리하며--은행차입을 시도하면서 까지 - 서두르고 - 한달안에 이사가 가능햇던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엿다 계약금 도 무리하게 많은 금액을 요구하였고- 다행히 집에 이것저것 합하여 5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낼수가 있엇다 물론 거기엔 딸래미가 도와준 3천만원 상당의금액이 포함되어있음으로 가능햇다 잔금도 주인아주머니의 도움과 마침 2층 살던 분이 우리가 이사간다니까 자기네가 살겟노라고 하여 보증금 인상분 2천만원을 한달안에 내고 - 우리도 보증금 7천5백만원을 받을수가 있엇고 -- 부족한 금액 2천만원은 우리은행에 가서 푸르지오 아파트 담보로 대출을 신청하엿고 - 일사천리로 진행되엇다 이삿짐 센터에 알아본결과 대한통운이 가격은 비사지만 가장 안전하고 신용이 가는것이엇다 보통 이삿짐 용달보다 1.5배는 비쌌지만 무사히 짐을 옮길수가 있엇다 이사오는날 소낙비는 내리고 - 아내와 아들 한창열권사 정배경권사 조카며느리 유순애 모두가 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특히나 담임목사님 이사짐이 3층에서 사다리차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것을 보시고 - 약 한시간정도 서서 보며 - 어떤 생각을 하엿을까? 출발하기전 기도해주시고 -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목회자란 참 힘든직업이구나- 조경란사모님도 암으로 투병중이고 - 그동안 교회건축으로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격엇던가? 아직도 교회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무리한 건축으로 인하여 많은 신도들이 떠나가고 - 은행이자는 끝없이 지속이 된다 교회건축한지 3년이 지났어도 원금은 한푼도 못갚고 이자만 꼬박꼬박 내는 현실이다 이자마저 내기가 불투명해지고 -- 교회사랑헌금이란 새로운 명목으로 이자를 충당하고자 노력중이나 - 사람의 생각으로는 한계가 잇다 경비생활로는 도저히 서울생활이 힘들고 - 장로라는 갑옷도 정말로 견디기 힘들엇다 오히려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엇다 서울에서의 최근 생활은 매월 50만원정도의 적자생활이엇다 경비수입과 국민연금 합하여도 200만원남짓이고 - 방세20만원 교회헌금22만원 (십일조, 교회사랑헌금, 선교비) 절기헌금 및 감사헌금 , 교인들 경조사 비용등- 동창생들 친지들 회사친구들 경조사도 만만치가 않아서 -피할수도 없엇고- 도저히 견딜수가 없엇다. 미칠것 같았다 견디다 못해 쓰러질때 날 구원해줄이 오직 주예수님 뿐이엇다 쳐녀귀신이 되려나? 걱정하던 딸이 34세 늦은나이에 결혼을 하고 - 환갑을 넘긴 우리부부 - 이젠 부담이 없어지고 - 아- 가자 시골로 - 꽃이 피고 새우는 그곳으로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곷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 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곳에서 살던때가 그립습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듯이 - 나의 염원이 드디어 나를 탈서울 하게 만들고 - 250평 저택 서울의 전세값도 안되는 1억4천만원에 구입하엿다 마치 소알이라는 섬처럼 -- 구원의 방주로 착각이 되엇고-- 서울생활에 인이박힌 아내는 못내 가기싫어서 몇 번이나 망설이고 시골가서 뭐하냐고 - 수없이 묻고- 정말 괴로웠던 나날들이엇는데-- 이집을 보던 순간 에덴의 동산을 발견한듯이 마음에 들어하고 -- 참 신기합니다 지금껏 숨막히는 고모라와 (무슨 ? 기억이 안난다) 이별의 수순을 받고 - 감사하게도 아브라함 처럼 정든땅을 벗어나 새로운 땅 노은면으로 영광의 탈출을 하엿다 흐르는 세월은 도도히 흐르고 흘러 - 풀밭이던 정원이 텃밭으로 변해가고-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 배추모종과 족파가 자라고 있고- 개나리울타리 가지치기 한 나뭇가지가 엄청나고 -호미와 곡괭이 삽 톱 --눈만 뜨면 마당으로 달려나가 풀과의 전쟁? 강아지 밥을 주고 -즐겁기도 하지만 때로는 힘들고 외롭기도 하다 아내가 더하다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일이라 그런가 ? 별로 피곤하지도 않다 어김없이 주일은 찿아오고 -근처 들꽃 교회 한번 다녀오고 - 수산순복음교회 두 번 다녀왓다 말슴은 순복음교회 목사님 말슴이 더 마음에 들어온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다 나를 지켜주신다 금년말까지만 삼선교회 다니고 이곳으로 옮겨야 하겟다는 생각이 든다 오고가는 차비와 시간낭비 그리고 잠자리등- 떠나온곳에 미련을 두면안된다 차차 잊어진다 무덤에 갈때는 혼자가는것이다 어느새 하늘이 밝아온다 푸르스럼한 어둠이 물러가는 신호 - 나무가 보이기 시작하고 -- 귀드라미 우는소리가 요란하다 아내는 잠을자고 잇다 나는 경비시절 새벽4시30분이면 일어나는 습관이 아직도 진행형이다 어젯밤 아내가 힘들어 하며 푸념을 하던것이 생각이 난다 아직 시골 몸만 와있지 마음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와 눈물을 보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상의도 없이 예초기 산것에 불만이 대단하다 다칠까 염려되어서 그런것이다 예초기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산소잔듸도 일주일후 깍아야하고 - 온형제들이 멀리서 와서 왼종일 깍는 불편함도 예초기 하나만 있으면 금방 해결이 되고 -남은 시간을 활용 -좀더 유익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귀촌선배 양평에 사는 김도중이 부인과 함게 며칠전 방문하여 시골생활 세세히 교육하고 전지가위(대) 면장갑 한타 -선물하고 가고난후 보니 김치냉장고 위에 봉투하나 두고 갓다 무언가 열어보니 20만원 거금이 들어있엇다 그래서 이돈으로 예초기 산것이다 물론 아내에게 이야기 하엿지만 - 위험하다고 사지말라 하엿지만 - 내가 사고 말앗다. 그로 인하여 아내가 이제 시골사람이 진짜 되나보다 하고 - 서러워서 울음을 보였다. 모세가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땅으로 가듯이 나도 모른다. 소돔과 고모라성과 같은서울 성을 벗어나 에벤에셀-- 하나님이 이곳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 아내가 잠을 깨어나서 우리 밖에나갈까?한다 오늘은 충주시장에 나가야 한다 내일 성신여대 경비원 5명이 몰려온다 반갑게 맞이하리라- 낮고 천한 백성들 -- 주님 제가 최선을 다해서 맞이하겟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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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초기 벌초는 빠르기해도 위험하기에 조심해야지요.
우리집안 벌초날에는 예초기6~7대가돌아가요 ...
조카.당질들이 20여명있어도 예초기작업은 우리학렬인 삼촌.당숙인 우리들이 하지요.
그리고 형제분중에 귀촌하신분이 계신가보죠. 축하합니다.(저도 귀농을 생각하고있지요.)
귀촌한다는 것이 쉽지않은 결정인데, 잘하고 계시니 좋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