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려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되는데 조건에서 모두 탈락 이였습니다 ! 수원화성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때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서 지금의 수원화성은 근대에 와서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옛모습이 거의 남지않은 수원화성을 유네스코에서 결코 승인해줄리가 없었습니다 조선 역대왕들중 최고의 천재라 불리우는 정조옆에는 최고의 천재가 또 한명 있었습니다 정약용...정조는 수원화성 건축을 정약용에게 일임했고 최고의 천재 정약용은 동서양의 기술을 접목해서 한국최초의 신도시를 완성했고 그 기술은 놀라웠습니다 하지만...옛모습을 거의 잃어버리고 현대에 와서 재건축된 수원화성을 1997년 수원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를 신청하면서 유네스코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을때 수원시는 비장의 무기를 꺼냈고... 유네스코는 군소리 없이 승인하게 되는데 그 비장의 무기는 바로 '화성성역의궤' 였던것 입니다 수원성벽의 벽돌갯수와 자세한 공사공법 조감도 들어간 인력까지 '화성성역의궤' 에는 너무나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고 재복구 되었다 하지만 200년전 설계도대로 정확히 벽돌갯수까지 그대로 똑같이 지은 수원화성은 너무나 완벽했던것 이였고... '화성성역의궤' 를 검토한 유네스코는 흠집조차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수원화성은 당시 인력이 거의 백만명가량이 참여했고 공사비는 80만냥 지금으로하면 약 600억이 들어간 초대형 공사였습니다 '화성성역의궤' 가 없었다면 수원화성은 결코 유네스코에 등재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조선왕조실록 외에도 이러한 가치를 똑같이 지닌 보물은 전국에 산지해 있습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알아오신 선조님들과 한국인의 저력을 수원화성을 통해서 다시금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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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은 어떻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수 있었나?
소야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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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8
24.06.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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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끄럽습니다
수원이 고향이고
화성행궁 근처 살아도
그런깊은 뜻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그 유명한 수원갈비 유래는 공사에 인부들도 참여했지마 소들도 짐을
싫어 나르는데
너무더워 소 한마리가
쓰러져 죽었는데
냉장이 안되는 관계로
소를 분해해서 간장에 절여 먹은것이 유례가
되었다고 합니다~
수원이 고향이고
완전한 수원시민인 지기님
자랑 스러우시죠.ㅎ
@소야소야 약수터 가는길에
마을버스를 타고 왔는데
도저히 걸을수가 없어서
카페 들어와 아아,를 마시고 있습니다
컨디션이 바닥입니다
수원 시민으로 역활을
앞으로 제대로 해야겠습니다~
@소야소야
@유화 수원갈비 드시고
원기회복 하시죠.ㅎ
@소야소야 더워서 갈비도 싫구요
집에서 상추 딴거랑 풋고추 딴거랑
오이지 시원하게 물에
얼음 둥둥 띄워
점심먹었답니다
옆에 언니랑요 ㅎㅎ
아아 마시러 약수터가는 지기..ㅎㅎ
집을 나설때부터 컨디션이 영 ㅎ
마을버스에서 내려
케빈,으로 들어갔지요
약수터에서 만나는 언니보고 내려오라하고
아아,마시고 집에 들어와
큰 대자로 등에 엑스레이
찍고 있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