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18. 1. 7. 일요일.
일흔 살, 달포 뒤에는 칠순잔치를 앞 둔 내가 자꾸만 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한 뒤 10년째. 10년 동안 무엇을 했나 싶다.
문득 길 떠나고 싶어서 책 한 권을 뽑았다.
사진작가 백용해 '살아있는 갯벌 이야기'. 1999년판.
내가 이 책을 산 지도 벌써 18년이 더 넘었다.
이 책 127 ~128쪽을 무단 인용한다. 지적소유권인데...
숙직하는데 경찰서에서 전화왔다.
노숙자 관련 업무로...
'할아버지 집이 어디세요?'
... ...
'집 모르세요? 자녀분은 없나요?'
'으으아... 업어으... 모으으으으아...'
'백형, 이 할아버지 벙어리인가 봐. 아까부터 계속 물어봤는데 말도 못하고 까막눈이야.'
밤 10시 되어서야 모든 수속 끝마치고, 할아버지를 태워 시립양로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무의탁 ... 노인을 위탁, 보호하는 곳....
차로 구청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담배 한 개피만 줘유.'
'어. 할아버지 말씀하실 줄 아세요?'
... ...
충청도 대천에서 올라왔다는 할아버지.
젊어서 부인 잃었지만 재혼하지 않고 아들 하나 키워서 결혼했고, 손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혼자 남은 며느리는 양식장에서 잡일을 하며... 양식장이 폐장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할아버지는 중풍 걸려 식사수발, 대소변을 며느리가 해야 할 정도.
며느리와 손주의 짐이 되지 말자고 가출.
'병들고 늙은 것이 무슨 소용 있겠슈우!'
그날 나는 차안에서 아무 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벙어리 할아버지 한 분을 시림양로원까지 모셔다 드렸을 뿐이다.
요지이다.
위 배경이 된 대천은 내 시골집에서 차 타면 12 ~13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대천 어느 갯바다인지는 몰라도 며느리와 손주의 짐이 안 되려고 벙어리 흉내를 내고는 가출한 할아버지.
무의탁 시설에서 살아가려면 훗날 얼마나 며느리와 손주가 보고 싶을까.
짐이 안 되려고 스스로 도망쳐 간 노인네의 결심과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민 울리는 간사지 사업이라는 사진작가의 글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알 것 같다. 나는...
이 글 쓴 사진작가이며 공무원인 백용해씨.
무엇이 살아 있는 진짜 글인지를 보여 주었다.
2.
지난해 11월 말에는 서천군 비인해수욕장 부근으로 이사 온 옛 직장 동료네를 방문했다.
그는 갯바다 부근의 전원주택을 사서 막 이사왔다.
1,000평의 잘 가꾼 정원수. 바로 코앞에서 불어오는 갯바람.
나도 2018년에는 숨 한 번 길게 내뿜고는 다시 등산화 끈을 졸라매야겠다.
바람의 아들이 되어 산과 바다, 갯마을과 섬, 들판으로 쏴질러 다녀야겠다.
자꾸만 아파가는 아내와 함께.
나도 갯벌 이야기, 산야초 이야기를 풀어야겠다.
아내와 함께 다시 한 번 더 들러야겠다.
홍원항에도 들러서 옛 직장동료네와 함께 바지락칼국수도 먹어야겠다.
2018. 1. 7. 일요일.
첫댓글 추억의 글 올려 주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추억 꺼내기는 이미 늦었어요.
생각이 떠오르지 않네요. 많이도 사라졌다는 뜻이지요.
글은 50대에 써야 필력이 가장 살아 있느 때라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
50대 초인 조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그냥 아무 거나 마구 다다닥 자판기 눌러두셨다가... 나중에 꺼내서 다듬으면...
추억거리가 혹시 남았는지 한 번 제 주변을 둘러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