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외구인조지겸수전송의 아들 : 숙부를 스승으로 모셨다
2021년 12월 16일 07:50 시나 컬렉션 소스: EK 이페어케이
12월 25일 20:00 A홀
문방 청완·근현대 명가 전각 전관
기대해주세요.
인사를 보면 조지겸처럼 그렇게 될 사람은 없을 것이다.상승완백(上承完白)·둔정( 丁丁)·하계 오이제조(吳齐齊趙)는 "인외구인(印外求印)"의 예술적 견해로,인쇄계의 풍조를 개척하고, 전서법을 독촉하다.오창석, 황목보, 제백석, 조숙어린이나 왕복암 등은 모두 그것을 받는다영향, 그의 작품에서풍부한 영감을 얻어그리하여 각자 유파를 널리 펼치다.
조지겸은 평생 우환을 겪다가 처녀가 일찍 죽고 회재불우했다.재간을 믿는 그의 괴팍한 개성을 만들었다.그러나 이렇게 도도한 조지겸에게도 온기가 있다정적인 면. 이번에는 서령.추박은 한쪽 조지겸전송의 아들인 전식소를 위해작명의 인장을 하나 보여주다시간이 길지 않지만 온기를 가득 머금다사랑의 사제간의 정의.
조지겸은 일생 동안 주지복과 다른 두 명의 제자를 받았다위는 바로 전송의 아들 돈형이다.조지겸은 전송에 대해 지극히 인정하였는데, 학인이 처음이었다즉, 절파 학문을 배워 익힌 바 있다.테두리 표현은 돈에 대한 예술이다.감회는 '어디까지 전해지느냐.'수인' 한 컷에"한동인(漢銅印)오묘한 점은 얼룩덜룩한 것이 아니라동지인 항저우 첸개숙과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1861년, 태평군이 항주를 함락하자, 전송은 거의 완벽해졌다.집이 순국하여 겨우 열세 살이다.세 번째 아들 첸식은 혼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판수(凡守)와 첸쑹쉐인(錢松學印)을 따라갔던 화복(華復)에게 구원을 부탁해 원저우(溫州)에 머물게 됐다.1862년 여름, 조지겸은 영가현령(永嘉縣令) 진보선(陳寶善)과 절남(浙南)을 도독하던 총병 진여호(秦如虎)의 편지를 받고 원저우로 돌아갔다.그리고 원저우 범수와 집에서 돈방식을 만나 제자로 삼았다.
조지겸은 '하전수인' 변을 새겼다 赵之谦刻“何传洙印”边款
조지겸은 전식을 엄한 스승으로 자처하지 않고 조카로 대했다.기예를 가르치고 돈벌이로 생계를 도모했다.작년에 조 씨가 상경하여 시험을 보러 갔지만 여전히 돈을 대준다식이 마음에 걸려 늘 글을 쓴다.강식·위석증 등에게 편지를 보냈다사람아, 간곡히 돌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우정이 감동적이다.거기에는 조지겸이 나와 있다."제자돈식은 집이 싫어서"구야, 나로부터 배운다. 이 일은 하루아침에 깨닫고, 삼 일 동안 진군하여, 이미 모든 것을 성취하였다.그 절묘한 말씀을 드린다. 도로는 《복어당시》를 읽고, 큰 깨달음을 되찾았다.문벽에 붙어 한이 된다.두 돌을 지교(至敎)에 올리게 하여 장차 임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생시유고인의 아들, 형시당유후지현(兄視之賢), 그 후 연분(緣緣)이 있으니 대자비(大慈悲)를 바라보며 손을 떨구면 부처를 이기고 낳으면 반드시 10배, 이하를 이기는 것이 어찌 백배뿐이겠는가?이런 말은 재동생이 불우지예(不憂之藝)라 함에도 지형이 완전무결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했다.그 주먹과 권법의 마음은 송아지를 핥는 것과 같이 글씨가 간절하고, 글씨가 자유롭다.슬하의 조카도 이와 같을 수 없다.
조지겸 강식 편지...전생봉 두 사람, 모두 보내요가손함 속...돈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갱기 장려 몇 마디, 도의(道意)를 가지고 있다.(오른쪽 사진)
조지겸은 위가손찰에게...전생차행각정(錢生次行刻正)즉, 이미 상세하게 한 편지를 써서 전달을 요청하였는데,그 행동은 비교적 재치가 있고 귀담아 듣지 않는다.(왼쪽 사진)
조지겸은 일찍이 위석의 "거록위씨"를 새겼는데, 그 변방에 있다'군주에게 보낸 것은 오직 내 제자를 말하며, 행로는 돈과 주나라를 잊지 못한다'고 적었다.돈은 곧 돈이다. 라고 생각했다.이 제자를 시작하자, 바로 그를 위해 새겼다여러 면으로 인쇄하여 그에게 부치고 또 남아 있다변칙에서 제자에게 한자를 부지런히 배우라고 독촉하다비석, 그 '인외구인'의 법을 이어받다.위씨와의 서찰에서또한, "전생에 대한 공적이 매우 예리하고, 필묵외에 이치를 구한다.그 뜻은 제자가 사랑하는 것이고, 그 몸이 너무 약해 동생의 근심도 크다"고 말했다.1865년 과거에 급제하다조지겸은 가을 절강성 고향집으로 돌아와 항저우에 도착해 첸식이 요절했다는 소식을 듣는다.심균의 초서에는 "전차행(전식자순행)이 불행히도 요절했다.재작년에 송금한 돈과 인석은 돌려받을 길이 없다.숙개네 집에는 단 한 명의 부인만 남았는데, 그 후 아무도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조씨 유파도 돈방석에 앉은 뒤 사라졌다.
조지겸 '거록 위씨' 변방 赵之谦“巨鹿魏氏”边款
조지겸이 전식(錢式)을 위하여 이 인을 만들었는데, 백부용(白夫容)의 돌로 새겨 인쇄하였다면은 예서(书書)인 '전식(錢式)'으로 위변방(于邊方中記)에 이르되 '예각인(藝刻印)'은 차행(次行)인 탁한경(汉漢經)경)기. 이 인장을 알 수 있다돈방석에 한경을 탁탁하다인쇄한 인장은 오직 하나뿐이다.센티미터는 네모나고, 두 글자는 위아래이다.배치, 글자세로 가로로 개장하다.선이 둥글고 멋스러우며후, 백 년의 시간을 거쳐서 더욱 허실 상생의 묘를 얻는다.인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선의 미세한 얼룩, 칼자국이 보일 듯 말 듯 교차한다.올이 잘 맞지 않게 잡아주어 라인을 잡아주고희미한 좌충우돌은 '석문송'이라는 뜻인데, 우중충하거나 지나치려 하니 정말 큰 그림이다.
이쪽 인면 1센티미터의 네모난 인장은 조지겸이 제자를 위해 탁장한 것이다한경(漢鏡) 때 전용으로 인면(印面) 크기에 알맞게 골라 거울과 잘 어울리게 했다.
이 인쇄는 언뜻 보기에는 돈놀이용 탁상 전문 인쇄물이다.그러나 '인종서출(印從書出)'의 디자인, '인외구인(印外求印)'의 개념을 직접 가리키고 있다.조지겸의 땔감이 감탄하게 만든다이어받아, 소리 없는 윤물의 양애쓴 보람이 또 날서령 황역 생각나"라는 글을 올렸다.아버지의 이름"이라고 부적을 새기고 승진했다.'견원노인' 인.모두 인심과 관애다.
조지겸이 작품의 진귀한 점을 전각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인보에 들어가면 사백 방면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 중 구십칠 방면에서 그 사람을 위해 쓴 인보는 어느 것 하나 정교하지 못한 것이 없다미. 《이금접당인보》>가 책이 된 후, 조지겸은여전히 마음에 안 들어 장부에녹음한 인장은 다시 새기고,이것 역시 그 작품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적은 원인 중 하나.
▲2021 서령추박
청·조지겸각수산부용석전식자용인
인쇄: 머니스타일
사이드:예각인,차행 탁한경(거울)기.
출판: 1. 《비록인잔》, 서령인사의 도장 탁본.민국 3년(1914).
2. 오조인존 갈창영집, 민국 20년 도장탁본(1931).
3. 권17P11, 딩커우지집, 민국 26년(1937).
4. 오조인존, 갈창영집, 민국32연도에 도장을 다시 편찬하다(1943).
5. 《명청명인각인회존》 권10, 갈창영집민국 34년에 도장을 다시 찍었다(1945).
6. 《조숙인보·이집》, 민국간서관인사의 도장을 탁본하다.
7. 《만청사대가 인보·고겸실 인남》방절암 집탁, 선화인사, 1951년.
8. 조지겸 인보 하권 P26, 마쓰마루 동어편, 일본 백홍사, 1969년.
9. 조지겸 인보 P49, 상하이 서화 출판사, 1979년.
10. 《중국전각총간·조지겸》 권2P59, 일본 다이겐샤, 1981년.
11. '오지겸 인풍' P86,충칭출판사, 1999년.
12. 《전각전집 7》 P83, 일본 이현사출간, 2001년.
13. 《중국역대 전각집수8》P79, 절.강고적출판사, 2003년.
14. 《조숙인보》 P125, 인민미술출판사, 2010년.
15. 《해파 대표 전각가 연작집》 조지겸' P132, 상해서화출판사, 2018년.
16. 《오조인존》, 서령인사출판사, 2.021년.
저자 소개: 조지겸(趙之謙, 1829~1884),자는 스스로, 후자는 익보·주숙, 호는 냉군·무갑, 실명은 이금접당, 저장성이다소흥인. 서화 전서에 정통하다.각, 금석고거학.그림 겸 인물, 화훼산수. 인물은 고염하고 냉준하다., 게근라 두 봉우리, 진홍인수, 화훼는 여덟 가지 큰 것을 취한다.석도, 등나무, 백양제가.근대 육십 명가의 한 사람이다.
인면주인소개 : 머니스타일(1847~?)자는 순행(順行), 호는 소개(少蓋), 저장(浙江)성 첸탕(錢堂)인, 절파전각가 첸쑹쯔(錢松子)다.집안의 학문을 계승하고, 숙직과 전서를 받들다.새기다
▲2021西泠秋拍
清·赵之谦刻寿山芙蓉石钱式自用印
印文:钱式
边款:以隶刻印,为次行拓汉竟(镜)记。
出版:1。 《悲盫印剩》,西泠印社钤拓本,民国三年(1914)。
2。 《吴赵印存》葛昌楹辑,民国二十年钤拓本(1931)。
3。 《丁丑劫余印存》卷十七P11,丁辅之辑,民国二十六年(1937)。
4。 《吴赵印存》,葛昌楹辑,民国三十二年重辑钤拓本(1943)。
5。 《明清名人刻印汇存》卷十,葛昌楹辑,民国三十四年重辑钤拓本(1945)。
6。 《赵撝叔印谱 · 二集》,民国间西泠印社钤拓本。
7。 《晚清四大家印谱 · 苦兼室印剩》,方节盦辑拓,宣和印社,1951年。
8。 《赵之谦印谱》下册P26,松丸东鱼编,日本白红社,1969年。
9。 《赵之谦印谱》P49,上海书画出版社,1979年。
10。 《中国篆刻丛刊 · 赵之谦》卷二P59,日本二玄社,1981年。
11。 《赵之谦印风(附胡镢)》P86,重庆出版社,1999年。
12。 《篆刻全集7》P83,日本二玄社出版,2001年。
13。 《中国历代篆刻集粹8》P79,浙江古籍出版社,2003年。
14。 《赵撝叔印谱》P125,人民美术出版社,2010年。
15。 《海派代表篆刻家系列作品集 · 赵之谦》P132,上海书画出版社, 2018年。
16。 《吴赵印存》,西泠印社出版社,2021年。
作者简介:赵之谦(1829~1884),字支自,后字益甫、撝叔,号冷君、无闷,室名二金蝶堂,浙江绍兴人。精于书画篆刻、金石考据学。绘画兼人物、花卉、山水。人物古艳冷隽,格近罗两峰、陈洪绶,花卉取八大、石涛、青藤、白阳诸家。为近代六十名家之一。
印面主人简介:钱式(1847~?)字次行,号少盖,浙江钱塘人,浙派篆刻家钱松子。秉承家学,夙工篆刻。
서령인사20021년 가을경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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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젠테이션 -
12월 23일부터 12월 25일까지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박매-
12월 25일부터 12월 27일까지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전시장소-
항저우 국제 컨벤션 센터 인터컨티넨탈 호텔 1층
(저장성 항저우시 해방동로 2)
-연락처-
0571-87896778 / 87812580
매회 안배하다
12월 25일
C홀
09:30 중국역대 화폐 특별 공연
13:00 고적 선본·금석비첩 전시장
16:00 중국과 외국의 해묵은 명주 및 보양품 전용장
19:00 기흥금석·명가한장집수 및 인려장인 특별 공연.
20:00 문방 청완·근현대 명가전각전시장
12월 26일
A홀
09:30 중국서화 근현대 동일작품전마당
11:00 서령인사 일부 사원 작품 전용관
13:00 중국서화 고작품 및 명청신찰수행적 특별 공연
20:00 현대 유화조각 특별전
B홀
09:30 중국역대 도자기 전용관
14:00 화장보상·역대 불교예술 특별전
15:30 예관신치·명가 만화 일러스트 특집
19:00 중국역대 자사기물 및 차문화전시장
21:00 문방 청완·역대 명연 및 고묵전장
12월 27일
A홀
09:30 중국 서화 근현대 명가 작품 전용회
13:00 중국 서화 부채질 작품 전문관
14:00 국내외 유명인의 필적 및 영상예술 전용관
19:00 오리엔탈 루이 주얼리 에메랄드 및 클래식 럭셔리품행 특별 공연
B홀
09:30 응집진·중요장가정선역대 고옥전
10:00. 고희금·문방 골동품 세트
13:00 문방청완·골동품 전용장
16:00 중국 고대 옥기 및 당대 명가 옥조전마당
19:00 서양 고물 전용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