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의 역사) 50. 인구 폭발 –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1766~1834년)
영국의 계몽사상은 프랑스처럼 혁명으로 발전하지 않고, 점점 늘어나는 빈민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인류의 완전성을 옹호한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과 콩도르세 후작의 낙관론은 성직자 생활을 그만둔 토머스 맬서스의 저작에 발목을 잡혔다. 그가 1798년에 쓴 『인구론(인류의 원리에 관한 논고)』은 아귀다툼이 인류를 포함한 모든 동식물의 숙명이라고 보았다. 본질적으로 사회 과학과 정치 과학을 다룬 맬서스의 저작은 인간 사회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시도였다.
맬서스는 두 가지 중심적인 가정(식량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고, 성적 욕구는 항상 일정하다)을 가지고 몇 가지 으스스한 결론에 도달했다. 인구 증가는 식량 증산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인구를 조절하지 않는 한 결국 대규모 기근이 올 것이다. 그가 생각해 낸 인구 조절 수단은 영아 사망, 전염병, 기근, 매춘이었다. 그의 비관론을 놓고 볼 때 이런 유쾌하지 못한 발상도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
맬서스의 책은 처음에 익명으로 출판되어 열광적인 지지와 가혹한 비판을 함께 받았다. 그 다음 판에서는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이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더 많은 증거를 제시했다. 그 동안 맬서스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논의를 더 확장하여 윤리적 제한(만혼과 금욕)이 인구 증가를 막는 더 좋은 대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1805년에 그는 새로 생긴 인도 하일리베리의 동인도 대학교에서 영국 최초의 정치경제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정치가들은 그의 사상을 받아들여 1834년에 실업자, 노인, 병자들에게 공적 자금으로 구호금을 지급하는 구빈법 수정 조항을 만들었다. 그의 논고는 찰스 다윈과 앨프레드 러셀 윌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두 사람은 맬서스의 생존 경쟁에서 자연 선택이라는 진화의 메커니즘을 본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외(지음), 피터 탤랙(엮음), 김희봉(옮김). 사이언스 북. 사이언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