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학경기장, 시민을 품은 희망의 돛
‘후반 24분, 이영표의 코너킥. 양팀 선수의 자리싸움이 치열한 골문 정면으로 연결됩니다. 헤딩! 그러나 골로 연결되지 않고 다시 이영표에게 연결됩니다. 이영표. 그대로 올려줍니다. 박지성이 가슴으로 잡습니다. 그대로 오른발 튕기고 왼발 슛! 골!~’
한국이 월드컵 무대에서 드디어 16강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그 누구도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을 이긴다고 믿고 있지도 않았고, 그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열린 D조 예선에서 폴란드가 미국을 이겨주기만을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인천문학경기장, 박지성의 가슴과 오른발, 왼발이 만들어낸 16강 자력진출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추억이다.
그 화려한 무대의 배경인 인천 문학경기장.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그 축구열기를 이어 인천유나이티드의 둥지로서 여전히 한국축구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문학경기장. 또 시민들의 희망을 품고 밝은 미래를 꿈꾸는 문학경기장을 찾아가 보았다.
■ 문학경기장입니다.
서울. 신도림에서 지하철 1호선, 동인천 급행열차를 기다리다 불현듯 문학경기장의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활기참, 미래에 대한 설렘을 느끼기에는 급행보다 일반 지하철이 더 어울릴 것 같아 일반열차에 발을 올렸다.
신도림역에서 인천1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부평역까지 대략 20여분. 부평에서 다시 동막행 인천 1호선을 타고 10여분 가다보면 문학경기장이라는 역에 지하철이 미끄러지듯 정거한다.
가는 동안 갑자기 떠오르는 한 문장의 생각.
‘이곳 문학경기장은 2002년 한국축구축제의 흥분이 시작된 진앙 그리고 신선한 프로축구의 풋풋함이 꽃피는 곳.’
당시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다음 전국을 수놓던 축제 열기가 저도 모르게 느껴져 당시의 흥분을 추억으로나마 만나보았다.
여기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02 월드컵 조별예선은 세 경기. 그 중 두 경기가 월드컵 역사에 남을만한 이변의 경기들이었다. 그것은 포스트 우승팀인 프랑스가 16강 좌절로 귀향길에 오르게 된 덴마크 대 프랑스전. 그리고 한국축구가 한을 풀고 16강행이 확정한 순간인 한국 대 포르투갈 전이었다.
6월 9일, 준공이후 사상 첫 행사는 2002 한일월드컵 C조 조별예선 코스타리카 대 터키의 경기였다. 경기장을 가득채운 관중들이 월드컵의 감동을 느끼기에 문학경기장은 전혀 무리가 없었다. 흰색 돛을 달고,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긴 항해를 시작하는 선박처럼 문학경기장은 그렇게 돛을 올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첫 승자는 나오지 않은 채 무승부로 경기가 끝이 났다. 터키 수비수 엠레 아시크가 후반 11분 선취골을 뽑아냈고 코스타리카의 윈스톤 팍스가 경기 종료 4분을 남겨두고 동점골을 뽑아 1:1 무승부로 마감됐다. 처녀경기를 무승부로 치른 다음 답답해서였을까. 두 번째, 세 번째 경기는 시원하고도 짜릿했다.
인천 문학경기장에서의 두 번째 경기는 6월 11일. 덴마크와 프랑스 간의 A조 예선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의 이변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경기. 세네갈, 우루과이 전에 불참했던 프랑스의 자존심 지네딘 지단이 허벅지 부상을 참으며 참가하면서 연일 언론에 이슈화 되고 있던 경기였다.
하지만 지단의 필승 투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덴마크에 2:0으로 대파되어 16강 탈락의 좌절을 겪고 말았다. 너무나도 일찍 짐을 싸버린 프랑스의 뒷모습은 당시 월드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축구공은 둥글다’라는 스포츠의 불확실성과 ‘절대강자는 없다’라는 진리를 잘 표현해준 이 경기에 이어, 문학경기장에서는 또 하나의 시대의 사건이 만들어진다. 바로 한국 대 포르투갈전.
한국 축구 100년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D조 예선 폴란드전 승리를 시작으로 상승가도를 탄 태극전사들. 세계 외신들은, 미국과 간신히 비기는 경기를 보여준 한국은 포르투갈 앞에서 무력할 것이며, 미국과 폴란드의 경기에 따라 16강행이 결정된다는 ‘경우의 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 문학경기장에서 포르투갈을 한국인 특유의 근성으로 압박했고, 결국 박지성의 왼발은 ‘자력 16강 진출’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바로 이곳은2002년 한국의 월드컵 4강신화 또 하나의 진앙인 문학경기장이었던 것이다.
세 개의 월드컵 경기를 유치하고 문학경기장은 잠시 축구의 끈을 놓아야 했다. 당초 경기장 건립 목적이었던 전국규모대회 유치만을 남긴 채 아쉽게 저물어가는 월드컵의 석양을 그냥 말없이 바라보아야 했던 것. 하지만, 2003년, 그리고 2004년.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축구단, 그것도 시민구단이 탄생하면서 문학경기장은 다시 축구의 열정을 품게 되었다.
■ 축구, 그리고 인천유나이티드
인천 유나이티드의 밑그림은 문학경기장이었다. 시설관리공단의 관리 하에 있었지만 월드컵 이후 ‘축구’라는 주인을 잃어버린 주경기장은 얼마간의 외로움에 진통을 느꼈을지 모른다.
약 1년이 흘러 드디어 기다리던 ‘축구’란 이름이 다시 여기에 새겨진 것은 2003년. 안상수 인천시장의 문학경기장을 홈으로 한 ‘인천프로시민축구단’ 창단 발표는 당시 대구FC에 이은 국내 두 번째 시민구단 발표임과 동시에 현재 국내 시민구단의 선두 모델격으로 인정받게 될 ‘부흥의 효시’였다.
전국 여느 지역만큼이나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인천시민들과 월드컵 유치 저력, 그리고 이미 검증되고 확보된 홈구장, 또 한국프로축구에 있어 지역민들과 동심성이 강조된 시민구단의 창단. 이 모든 것이 맞물려 인천유나이티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시민구단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자발적인 참여로 인천유나이티드라는 구단 명칭과 엠블렘도 확정지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애초 우려를 무색하게 만든 시민주의 폭발적인 참여도. 1차 공모기간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연장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1월 12일부터 한 달간 추가 공모를 받고 있는 실정...’ (월간 베스트일레븐 발췌)
인천시민들의 시민프로축구단에 대한 갈증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모인 자금과 지역기업들의 컨소시엄 등을 통해 안상수 인천시장을 구단주로 하고 시민이 주인인 인천 연고 시민프로축구단이 세상 밖으로 나와 허전했던 문학경기장의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그것은 2004년 3월의 일이었다.
세 번의 시즌 그리고...
이렇게 4,5년이라는 짧은 세월동안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는 여기 문학경기장의 주요 이야기 보따리였다. 그 보따리를 열어 모든 이야기를 풀어볼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을 무렵, 필자가 탄 인천지하철 1호선은 문학경기장역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고 있었다.
■ 끊이질 않는 시민들의 발걸음
차가운 겨울 날씨 속에서도 문학경기장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지하철역의 출구는 단 하나. 문학경기장을 향해 열린 출구밖에 없다. 그것은 문학경기장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인천시민, 혹은 타지인들에게 큰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한 상징이 아닐까. 필자는 일부러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따뜻하게 계단 하나하나에 베인 월드컵, K리그, 그리고 심지어 프로야구의 기운까지 느낄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자 길게 뻗은 인도 끝으로 웅장한 문학경기장의 모습이 보였다. 항만도시 인천의 상징인 듯 돛을 편 거대한 배가 연상되는 이 경기장은 바로 옆의 문학야구장과 함께 여기를 찾은 시민들의 쉼터(공원조성), 놀이터(인공암벽, 프로축구·야구관람 등), 배움터(문학유스센터, 유소년축구단, 주민생활체육 등)가 되어주고 있었다.
1990년대 초 인천광역시의 종합경기장 건립 계획에 따라 문학경기장의 청사진이 그려졌다.
인천광역시 남구 문학동 482번지, 대지면적 441,628㎡(133,592평), 연면적은 289,971㎡(86,503평). 축구경기장 수용인원은 5만 1237명. 1994년 7월부터 2002년 2월까지 총 7년 7개월이 걸린 이 대공사가 진행되었다.
당초 전국규모의 체육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착공되었지만 1996년 6월 30일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됨에 따라 월드컵 개최를 위하여 설계를 변경하였고 2002년 6월 9일 드디어 문학경기장의 첫걸음이 세계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으로 시작되었다.
그 주위를 둘러가며 우거진 숲들과 인공조형물, 그리고 돛을 편 채 항해하듯 자리를 트고 있는 노출콘크리트 공법으로 설계되어 마치 암석의 은은한 멋과 맛이 베인 듯한 경기장은 웅장하면서도 은근한 부드러움을 느끼게 했다.
■ 4면 개방 - 시민들과의 선을 없앤...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으로써 문학경기장이 시민들과 호흡하게 된 것은 햇수로 불과 4년. 타 구단에 비해 아직 걸음마 수준의 연혁이지만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모습과 열정은 남 못지않다. 그런 노력은 인천 구단의 운영시스템 뿐만 아니라 경기장의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부터 지역기업체, 인천 각 기관과 단체, 그리고 시민주 공모로 출범한 진정한 의미의 시민구단이었다. 처음부터 구단의 주인이 인천시민이었기에 그들의 높이에 맞춘 구단 경영은 당연한 것이었다.
국내 프로구단 중 파격적인 구단 운영을 보여준 인천은 단기적인 순익만을 쫓는 것을 떠나 원시안적인 시야를 가지고 한국축구의 튼튼한 뿌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상당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18경기 시즌권’ 과 ‘특정구(區)무료초청행사’ 등인데, 18경기 시즌권의 경우 응원용 유니폼과 18경기 시즌권을 묶어 파격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런 패키지가 단순히 관중동원을 위한 도구만이 아닌, 시민들이 인천유나이티드의 레플리카를 입게 되는 순간부터는 진정한 인천 프로축구단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이들이 한국축구의 잠재적인 미래 고객이 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천의 홈경기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경기장 4면이 모두 개방된다는 것이다. 경기장 내에서 관중들을 특정 구역으로 나누어 유치하지 않고, 모든 구역을 개방하는 것은 축구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시민이 똑같은 하나의 주인이라는 인천의 이념과 일맥상통 하는 것이다.
이런 인천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던 것일까. 인천 유나이티드는 2006년 시즌 종료 후 국내 프로축구단에서 보기 힘든 흑자경영의 쾌거를 이루어 냈다. 시민들의 공모로 만들어진 구단의 운영금을 절대 헛되이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이루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인천의 항해에 순풍이 분다.
문학경기장의 형상처럼 인천 유나이티드는 지금까지 순항을 하고 있다. 창단해인 2004년 정규리그 12위(6승8무10패), 컵대회 8위(3승6무3패) 의 성적을 올리며 정식으로 K-리그 데뷔를 알렸다.
하지만 다소 부진했던 2004년을 뒤로하고 인천은 창단 2년만인 2005년, 정규리그에서 1위(15승6무6패)로 등극하게 된다. 시민구단으로 출범해 뚜렷한 스타플레이어 없이 조직력과 지휘력에 온 힘을 쏟았고 팀내 영구결번인 12번의 주인공들, 즉 인천 유나이티드를 아끼고 사랑하는 홈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루어진 결과이었다.
이 같은 믿기 어려운 사실은 최근 ‘비상’(감독 임유철) 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팬들의 가슴과 눈을 적시기도 했으며 인천은 창단 3년 만에 ‘만년적자’라는 프로구단 운영의 낡은 딱지를 떼며 흑자경영의 쾌거를 이루기도 했고, 현재 인천시민이 주인인 이 구단은 코스닥 상장을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 한바퀴 돌아보다.
휴지기인 지금. 항상 경기장을 울리던 인천의 응원구호와 함성소리는 잠시 기억속의 메아리로만 들리는 듯 했다. 다만 경기장 안팎에서 생활체육을 즐기는 사람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그리고 심지어 배움의 열정을 피우는 꼬마들까지. 축구는 잠시 잠들었지만 여전히 시민들을 위해 넓게 드리운 팔은 문학경기장 본연의 모습이었다.
현재 문학경기장은 흑자경영의 인천유나이티드처럼 국내에서 모범적인 경기장 운용으로 인정받고 있다. 공개입찰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으로 선정된 축구전문몰과 스포츠 종합센터는 연중 내내 시민들이 문학경기장을 찾게 하는 하나의 서비스이다. 또한 인천어린이박물관을 통해 인천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어린이들에게 축구 못지않은 즐거움과 흥미를 나누어 주고 있다.
특히 경기장에서 직접 운영하는 시민 생활체육 프로그램 등은 이 지역에서도 아주 인기가 높다고 경기장 관계자는 말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유소년 축구클럽이고 다른 하나는 자전거 교실이죠.
유소년 축구클럽은 축구의 저변확대와 경기장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고 성과위주의 프로그램이기 보다 초등학생들의 축구에 대한 흥미가 주요 목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인 자전거 교실은요. 인천에 거주하시는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데 대부분 주부님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자전거가 건강 유지에 정말 좋은 운동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요. 그런 좋은 운동을 가장 필요로 하는 주부님들이 오히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자전거 교실을 운영하게 된 것이죠. 경기장 내 트랙과 외부 아스팔트를 이용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면 기공체조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김재형, 문학경기장관리사업소 운영팀)
또 미래를 위한 투자인 교육에 있어서도 문학경기장은 축구에게 만큼이나 열정을 기울였다.
경기장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초등학생 두 명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은 문학경기장내에 위치하고 있는 문학유스센터(인천광역시 청소년단체협의회 산하)로 가는 길이었다.
‘지금 학교 마치고 오늘 길이에요. 이 안에(경기장 시설에) 공부방이 있는데 거기서 수학도 배우고 영어, 한자나 플롯 오카리나 같은 악기도 배워요. 그리고 미술도 배우고요. 이 모든 것들이 무료에요. 거기에 가면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재미있는 것도 많이 배워서 너무 신나요.’
인천문학경기장, 인천유나이티드는 특히 어린이, 유소년 관련사업이 많은 눈길을 끈다. 유소년 축구팀을 비롯해, 문학유스센터의 청소년 무료강좌, 인천유나이티드의 미들스타리그 등 미래의 꿈인 어린이들에게 관심과 정성을 베푸는 것이 어쩌면 진정으로 시민들을 위하고 시민들과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한다.
■ 시민을 품은 희망의 돛
문학경기장을 방문하기 위해 살펴본 여러 장의 사진들. 그 사진들은 하나같이 이 경기장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을 그려놓고 있었다. 찬란한 조명, 관중석을 가득 메운 붉은 옷차림의 사람들, 그리고 푸르디 푸른 그라운드의 스타플레이어들. 이런 것들로 자칫 필자는 문학경기장이 시민들과는 동떨어진, 화려한 환상의 섬이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을 시작으로 첫발을 내딛어 16강 진출의 꿈을 이뤄낸 한때의 위용과 화려함은 추억상자에 곱게 접어 넣어두고, 정작 문학경기장은 시민들을 향해 숨을 쉬고 있었다.
경기장 전체, 공원 구석구석에 시민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을 만큼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으며, K-리그의 흥분아래 인천유나이티드 12번째 선수들을 위한 ‘꿈의 나무’였다. 또, 시민축구단으로써 구단운영의 선두격인 모범생의 터전이었다.
문학경기장의 화려함과 위용에 놀라던 필자의 짧은 그림자는 어느덧 시민들을 향해 팔 벌린 경기장의 모습에 따뜻해진, 석양아래 긴 그림자가 되어있었다. 축구뿐만 아니라 생활체육, 유소년클럽, 유스센터 무료교육 등 미래를 향한 이들의 항해는 끝이 없을 것이다.
시민들을 품은 희망의 돛 문학경기장. 그곳에 미래가 있다.
K-리그 명예기자 윤진식
첫댓글 명예기자보고 깜짝 ㅋ 내이름인줄 아랐녜 ㅋ
인유에뼈를묻겠다 가 누군지 알것같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흠... 나도 신도림에서 지하철타고 문학오는데 ㅋㅋ 기자가 나랑 같은동네 사는건가??
2002월드컵때 진짜 감동먹었는데 인유도 많이 감동주시길 ㅋㅋㅋ
와~인유팬으로써 자랑스럽습니다.^^
전 초등학교5학년때(지금은 17살이구요^ ^) 풍물학원 다녔는데 문학경기장 다 지어지고 나서 축하공연 나갔었어요ㅋㅋ 근데 지금은 이렇게 인유 경기를 보러 다닌다니 참~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