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세상 사람 거개가 당연시 하여 하고 있는 일이지만 나는 따르지 않는다.
첫째는 保險(보험)에 加入(가입)하지 않는다.
나의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君子心(군자심)이다.
나는 남이 다 하는 일에는 接近(접근)하지 않는 志操(지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남이 하지 않는 일에 마음을 둔다.
세상이 지금 많이 不安(불안)하다. 아주 危險(위험)하다.
亂世(난세)이다. 모두들 그렇게 인식한다.
그래서 보험회사들이 濫發(남발)하고 보험社員(사원)들이 亂舞(난무)하였다.
여러가지 種類(종류)의 보험회사들이 생겨났다.
나는 不得已(부득이)한 義務的(의무적)인 醫療保險(의료보험)과
自動車保險(자동차보험)외에는 다른 어떤 보험에 가입한 것이 없다.
이에 대해 놀라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은 현대 사회에서 보험들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의미이다..
末世(말세)가 되어 身邊(신변)에 危險要素(위험요소)가 그 만큼 많은 세상이요,
이를 利用(이용)한 營利的(영리적)인 事業(사업)으로
保險會社(보험회사)가 많이 있음이다.
보험은 크게 人保驗(인보험)과 物保驗(물보험)으로 나눈다.
물론 회사가 公營(공영)이냐 事設(사설)이냐에 따라 差異(차이)는 있다.
生命保險(생명보험)이 인보험의 대표적 방편이지만
축구선수는 부분적으로 발 또는 무릎 보험을 든다거나
테니스 선수가 팔 보험을 드는 등 다양한 人保險(인보험)이 생겨났다.
또 財物(재물)의 損失(손실)의 危險(위험)을 對備(대비)하여 보험을 들텐데
물건보험은 더 多樣(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어떤 무엇 한 가지 보험에도 가입한 것이 없다.
둘째 病(병)주고 藥(약)주는 病院(병원)을 가기 싫어한다.
물론 병원 가기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겠지만
나는 아직 병이 나서 병원에 가지 않고 살았다.
醫療界(의료계)의 여러 문제점들을 여러번 指摘(지적)한 바 있다.
手術(수술)할 病(병)이 아님에도
手術(수술)해야 한다는 恐喝(공갈)로 巨金(거금)을 들게 한다.
한번만 가면 될 疾病(질병)을 여러번씩 病院(병원)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못된 짓이 나는 너무 嫌惡(혐오)스럽게 여긴다.
셋째 流行(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유행을 助長(조장)하는 根源(근원)을 나는 詛呪(저주)한다.
商術(상술)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業者(업자)들의 잔꾀인 流行商術(유행상술)을 나는 너무도 不當(부당)하게 여긴다.
勿論(물론) 있는 자들은
消費(소비)가 美德(미덕)이 된다는 사실도 認定(인정)하지만
선천의 이 세상은 그들보다 못 먹고 못 입고 못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違和感(위화감)을 造成(조성)하여 없이 사는 계층을
마음까지 苦痛(고통)스럽게 하는 짓이 큰 罪(죄)가 되기 때문이다.
몇 번을 言及(언급)했지만
세계가 지금 검은 옷으로 流行(유행)하는
作今(작금)의 行態(행태)를 나는 斷然(단연)코 拒否(거부)한다.
冥府使者(명부사자)가 降臨(강림)할 兆朕(조짐)이기 때문이다.
명부사자에 끌려가기 싫거든 흰 옷을 입으라 강력하게 勸(권)한다.
내 講說(강설)을 늘 듣고 따르면서도
俗世(속세)의 유행을 따르는 後學(후학)들 모습을 보면 참으로 딱하게 여겨진다.
따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일 글을 쓰며 衆生濟度(중생제도)에 애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도
어찌 그리 寒心(한심)하게 反骨(반골)인지 그 속내가 疑心(의심)스럽기 까지 하다.
넷째 辱說(욕설)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내가 7살적에 나는 나와의 約條(약조) 3가지를 했었다.
그 중에 첫번째의 약조가 辱說(욕설)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남은 두가지는 누구에게든지 尊稱語(존칭어)를 쓰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누구에게도 惡(악)의 言行(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善行(선행)으로 積善(적선)을 家訓(가)훈으로 삼은 집안에서
적어도 積善(적선)은 못할지언정
積惡(적악)을 犯(범)해서는 絶對(절대)로 안된다 여겼던 것이다.
여덟 자식에게도 나는 욕설 한 번 내뱉은 일이 없다.
말 함부로 하고 怪辯(괴변)으로 利益(이익)을 붙잡으려는 자들을 나는 크게 혐오한다.
이처럼 세상 잘못에 대하여 誹評(비평)하는 것은 욕설과는 전혀 다르다.
다섯째 過飮(과음)으로 言行(언행)의 失手(실수)를 容納(용납)치 않는다.
學校(학교)다니던 시절 과음하고 甚(심)한 술주정으로
한 가정이 공포에 휩싸이게 하면서 살림을 파괴하는 짓이
나는 참으로 마땅치 않게 여겼었기 때문이다.
또 路上(로상)에서 高聲放歌(고성방가)나 하고
아무곳에서나 大小便(대소변)을 보거나
저와 무관한 아무사람에게 是非(시비)하여 주먹질 폭력을 행하며 비틀대는 꼴,
路上(로상)의 아무곳에서나
넋빠진 모습으로 널부러져 잠 자는 꼴을 용납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자는 인간의 格(격)이 아니고 개 돼지나 다름없다고 여긴다.
나는 平生 過飮(평생 과음)은 커녕
제사후 飮服(음복)조차도 입맛만 보는 정도일 뿐 술 한 잔도 마시지 않는다.
사람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信用(신용)이 人望(인망)의 先決條件(선결조건)이 된다.
술주정이 아니어도 聖人(성인)께서 깨닫고 시국이 滅亡(멸망)할 것을 알기에
중생들에게 정신차리고 살길을 찾으라 외치고 다닌다 해도
술주정뱅이로 치부하는 세상인데 어찌 술 먹고 주정을 부릴 수가 있겠는가?
여섯째 殺生(살생)을 하지 않고 살았다.
시골출신으로 닭을 키워보기도 하고 돼지를 키워 보았지만 닭 한 마리 잡은 일이 없다.
南美(남미)의 高山地帶(고산지대)에서는
작은 햄스터인 설치류 동물을 가축으로 키워 쉽게 잡아먹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에도 나는 마음이 不便(불편)해 짐을 느낀다.
뒷산에 山(산)토끼가 있었지만 토끼 덫이나 토끼 잡이를 하지 않았다.
천지개벽은 인간의 殺生(살생)을 主觀(주관)하는 일이니
天下(천하)에서 가장 殘忍(잔인)하고 冷情(냉정)하며 慘酷(참혹)한 決行(결행)이라
증산께서도 종종 痛哭(통곡)하셨고
迎新堂主 天地父母(영신당주 천지부모)께서는
'설운가'로 당신의 심경을 노래하셨다. 아~
일곱째 나는 一班 職場(일반 직장)을 다닌 經曆(경력)이 없다.
惟一(유일)하게 軍生活(군생활) 10년이 전부일 뿐이다.
進級(진급)때 手段方法(수단방법)을 모두 動員(동원)하는 모습에
나는 中尉(중위)때
이미 軍生活(군생활)로 昇進(승진)하여 출세 할 것을 포기 했었고
군에서 나와 어떤 직장도 다닌 일이 없다.
俗世(속세)의 競爭社會(경쟁사회)에서 부딪히며 汚染(오염)되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 進出(진출)하여 맞는 일이 사실 없다.
할 일이 있지 않다.
어려서부터 傳受(전수)된 祖上(조상)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세상 사람은 다하지만 하지 않은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이트 클럽에 드나들지 않았다.
노래방에도 마찬가지로 드나들지 않았고
술집에도, 카페도 私的(사적)으로 다닌 일이 없다.
위스키잔 들어본 일도, 맥주 컵도 든 일이 없다고 해도 過言(과언)이 아니다.
모양 이쁜 위스키잔 들고 폼 잡는 꼴
내 눈엔 可笑(가소)로운 헛 폼으로 보일 따름이다.
그 헛 멋은 諸仙 諸佛 諸聖(제선 제불 제성)님들
神明(신명)들의 눈을 감게 하는 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헛 폼을 미워한다. 싫어한다.
평생 快樂(쾌락)에 젖는 行爲(행위)에 젖지 않았다.
大衆沐浴湯(대중목욕탕)에 가본지가 20 여년이 넘었다.
나홀로 찜질방도 간적이 없고 나홀로 맛사지 집에 든 일도 없다.
理容院(이용원)에 가서 이발 한지도 수십년이 되었고
洋福(양복) 입었던 것도 수십년이 되었다.
西洋文物(서양문물)에 젖어 그들을 우러러 본 일이 없었다.
亂世(난세)에 올 곧은 옛 朝鮮精神(조선정신)이 다시 나와
세상을 올바르게 거둘 시절이 다가왔기에
主體性(주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志操(지조)의 생활을 言及(언급)하다.
稀少(희소)한 價値(가치)가 金玉(금옥)과 같은 것임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흔한 것은 賤(천)하다.
이제는 貴(귀)한 것을 따를 時局(시국)이 되었다.
[출처] #2728 나는 누구인가? - 稀少價値(희소가치)|작성자 금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