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후 7시 부터 30분간씩 창제회 실시와 중요어서말씀들 2
존귀(尊貴)한 교주석존(敎主釋尊)을 일시(一時) 이시(二時)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며, 일겁(一劫)동안 합장(合掌)을 하고 두 눈을 부처의 존안(尊顔)에다 대고 머리를 숙이고 타사(他事)를 버리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하듯이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고, 배고플 때 음식을 생각하듯, 간단(間斷)없이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공덕(功德)보다도 희론(戱論)으로 한 마디 계모(繼母)가 의붓아들을 칭찬하듯 마음에는 없을지라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칭찬하고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저 삼업상응(三業相應)한 신심(信心)으로 일겁(一劫) 동안 생신(生身)의 부처를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것 보다도 백천만억배(百千萬億倍) 더하다고 설(說)하셨느니라. 이것을 묘락대사(妙樂大師)는 복과십호(福過十號)라고 쓰셨느니라. 십호(十號)라고 함은 부처의 열가지 명호(名號)인데 십호(十號)를 공양(供養)함보다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이 뛰어났다고 쓰셨느니라.
(호렌초 1044쪽)
※ 十號(십호) : 부처의 십종의 尊稱(존칭)
如來(여래) 應供(응공) 正偏知(정편지) 明行足(명행족) 善逝(선서) 世間解(세간해) 調御丈夫(조어장부) 天人師(천인사) 부처 世尊(세존)
우리의 석존(釋尊)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해 나타내신 이래(已來) 십나찰녀(十羅刹女)라고 호칭(號稱)하였다. 십나찰(十羅刹)과 천조태신(天照太神)과 석존(釋尊)과 니치렌(日蓮)은 일체(一體)의 이명(異名)이며 본지수적(本地垂迹)의 이익(利益) 광대(廣大)하니라.
(산탕상승사 879쪽)
우리들 중생(衆生)이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를지어다 라는 문(文)이니라.
대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우리들 중생(衆生)의 불성(佛性)과 범왕(梵王)·제석(帝釋) 등(等)의 불성(佛性)과 사리불(舍利弗)·목련(目連) 등(等)의 불성(佛性)과 문수(文殊)·미륵(彌勒) 등(等)의 불성(佛性)과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깨달음의 묘법(妙法)과 일체불이(一體不二)인 이(理)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름하였느니라.
그러므로 한 번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일체(一切)의 불(佛) 일체(一切)의 법(法) 일체(一切)의 보살(菩薩) 일체(一切)의 성문(聲聞) 일체(一切)의 범왕(梵王) 제석(帝釋) 염마(閻魔) 법왕(法王) 일월(日月) 중성(衆星) 천신(天神) 지신(地神) 내지(乃至)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천(人天)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심중(心中)의 불성(佛性)을 오직 한 마디로 불러 나타내시는 공덕(功德)은 무량무변(無量無邊)하니라.
나의 기심(己心)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본존(本尊)으로 숭앙(崇仰)하고, 나의 기심(己心) 중(中)의 불성(佛性)·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불리어서 모이는 것과 같고,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妙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佛性)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梵王)·제석(帝釋)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불보살(佛菩薩)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
그러므로「만약 잠시라도 가지는 자(者)는 내가 즉 환희(歡喜)하며 제불(諸佛)도 또한 그러하니라」고 설(說)하심은 이 심(心)이니라.
그러므로 삼세(三世)의 제불(諸佛)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子)로써 부처가 되셨으니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이고 일체중생(一切衆生)·개성불도(皆成佛道)의 묘법(妙法)이라 함은 이것이로다.
이러한 취지(趣旨)를 깊이 깊이 알아서 부처가 되는 도(道)로는 아만편집(我慢偏執)의 마음 없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여야 하는 것이니라."
(법화초심성불초(法華初心成佛抄) 557쪽)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疑心)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弟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疑心)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者)의 버릇이란 약속(約束)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개목초 234쪽)
대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며 불성(佛性)이란 법성(法性)이고 법성(法性)이란 보리(菩提)이니라. 소위(所謂) 석가(釋迦) 다보(多寶) 시방(十方)의 제불(諸佛) 상행(上行) 무변행(無邊行) 등(等) 보현(普賢) 문수(文殊) 사리불(舍利弗) 목련(目連) 등(等), 대범천왕(大梵天王) 석제환인(釋提桓因) 일월(日月) 명성(明星) 북두(北斗) 칠성(七星) 이십팔수(二十八宿) 무량(無量)의 제성(諸星) 천중(天衆) 지류(地類) 용신(龍神) 팔부(八部) 인천(人天) 대회(大會) 염마법왕(閻魔法王) 상(上)은 비상(非想)의 구름 위로부터 하(下)는 나락(那落)의 불길 바닥까지 모든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갖추고 있는 바의 불성(佛性)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름하느니라. 그러므로 한 번 이 수제(首題)를 봉창(奉唱)하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 모두 불리어서 여기에 모일 때 자신(自身)의 법성(法性)의 법보응(法報應)의 삼신(三身)이 함께 이끌려서 현출(顯出)하는 것을 성불(成佛)이라고 하느니라. 예(例)컨대 새장 속에 있는 새가 울 때, 하늘을 나는 많은 새가 동시(同時)에 모이는데 이를 보고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성우문답초 어서 498쪽)
단(但) 성인(聖人)이 부르시는 제목(題目)의 공덕(功德)과 우리들이 부르는 제목(題目)의 공덕(功德)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나이까 라고 운운(云云). 조금도 승렬(勝劣)은 있을 수 없소이다. 그 까닭은 우자(愚者)가 가진 금(金)이나 지자(智者)가 가진 금(金)이나 우자(愚者)가 켜놓은 불이나 지자(智者)가 켜놓은 불이나 그 차별(差別)은 없느니라. 다만 이 경(經)의 뜻에 배반(背反)하여 부르면 그 차별(差別)이 있는 것이로다. 이 경(經)의 수행(修行)에는 겹겹의 차별이 있는데 그 대강(大綱)을 말하면 기(記)의 오(五)에 가로되 「악(惡)의 수(數)를 밝힘에 있어 지금의 문(文)에는 설(說)·불설(不說)이라고 할 뿐」 어떤 사람이 이것을 분별(分別)하여 가로되 「먼저 악인(惡因)을 열기(列記)하고 다음에 악과(惡果)를 열기(列記)하리라. 악(惡)의 인(因)에 십사(十四)가 있으니·일(一)에는 교만(憍慢)·이(二)에는 해태(懈怠)·삼(三)에는 계아(計我)·사(四)에는 천식(淺識)·오(五)에는 착욕(著欲)·육(六)에는 불해(不解)·칠(七)에는 불신(不信)·팔(八)에는 빈축(顰蹙)·구(九)에는 의혹(疑惑)·십(十)에는 비방(誹謗)·십일(十一)은 경선(輕善)·십이(十二)는 증선(憎善)·십삼(十三)은 질선(嫉善)·십사(十四)는 한선(恨善)이니라」 이 십사비방(十四誹謗)은 재가(在家) 출가(出家)에 걸치는지라 두렵도다 두렵도다, 과거(過去)에 불경보살(不輕菩薩)은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불성(佛性)이 있으니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면 반드시 성불(成佛)하리라. 그를 가벼이 하면 부처를 가벼이 하는 것으로 된다고 하여 예배(禮拜)의 행(行)을 세우셨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갖지 않은 사람마저도 만약 갖게 된다면, 불성(佛性)이 있다 하여 그와 같이 예배(禮拜)하시었다. 하물며 수지(受持)한 재가(在家) 출가(出家)의 자(者)에 있어서랴, 이 경(經)의 사(四)의 권(卷)에는 「혹은 재가(在家)이든 출가(出家)이든 법화경(法華經)을 갖고 설(說)하는 자(者)를 일언(一言)이라도 헐뜯는 일이 있으면 그 죄(罪)가 많기를 석가불(釋迦佛)을 일겁(一劫)동안 직접(直接) 헐뜯는 죄(罪)보다도 더하다고 쓰여 있느니라. 혹(或)은 「약실(若實) 약부실(若不實)」이라고도 설해져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를 생각 하건대 어떠한 경우라도 법화경(法華經)을 가진 자(者)를 서로 헐뜯지 말지어다. 그 까닭은 법화경(法華經)을 가진 자(者)는 반드시 모두 부처이며, 부처를 헐뜯는다면 죄(罪)를 받는 것이니라.
(마쓰노전답서 1381~2쪽)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신심(信心)에 퇴전(退轉)이 없고 몸에 사친(詐親) 없이 일체(一切) 법화경(法華經)에 그 몸을 맡기고 금언(金言)과 같이 수행(修行)하면 틀림없이 후생(後生)은 말할 것도 없고, 금생(今生)도 식재연명(息災延命)하여 승묘(勝妙)의 대과보(大果報)를 얻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마저도 성취(成就)할 것이니라.
(기도경송장 1357쪽)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성령(聖靈)을 추선(追善)할 경우, 법화경(法華經)을 독송(讀誦)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奉唱)할 때 제목(題目)의 빛이 무간(無間)에 이르러 즉신성불(卽身成佛)시킴이라. 회향(廻向)의 문(文)은 이로부터 비롯되었느니라. 법화(法華) 불신(不信)의 사람은 타재무간(墮在無間)이지만 제목(題目)의 빛을 가지고 효자(孝子)가 법화(法華)의 행자(行者)로서 추선(追善)하니 어찌 이 의(義)에 어긋남이 있을소냐, 그러므로 하지아비지옥(下至阿鼻地獄)의 문(文)은 부처가 빛을 발하여 제바(提婆)를 성불(成佛)시키기 위(爲)함이라고 니치렌(日蓮)은 삼가 추지(推知)하느니라.
(어의구전 712쪽)
과거(過去)의 숙연(宿緣)이 뒤쫓아와서 이번에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가 되셨음인가. 석가(釋迦) 다보(多寶)만은 알고 계시리라. 「재재제불토(在在諸佛土) 상여사구생(常與師俱生)」이란 설마 허사(虛事)는 아닐 것이로다. 특(特)히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상승(血脈相承)에 대하여 물으심은 선대미문(先代未聞)의 일이니 참으로 존귀(尊貴)하도다, 존귀(尊貴)하도다. 이 문(文)에 자세히 써 놓았으니 깊이 깊이 이해(理解)하시라.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석가(釋迦) 다보(多寶) 상행보살(上行菩薩) 혈맥(血脈) 상승(相承)이라고 수행(修行)하시라. 불은 소조(燒照)로써 행(行)으로 삼고·물은 구예(垢穢)를 정화(淨化)함으로써 행(行)으로 삼으며·바람은 진애(塵埃)를 털어 없앰으로써 행(行)으로 삼고·또 인축초목(人畜草木)을 위(爲)하여 혼(魂)이 되는 것으로써 행(行)으로 삼으며·대지(大地)는 초목(草木)을 생(生)하게 함으로써 행(行)으로 삼고·천(天)은 윤택(潤澤)케 함으로써 행(行)으로 함이라·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도 또한 이와 같도다·본화지용(本化地涌)의 이익(利益)이 이것이니라. 상행보살(上行菩薩)은 말법금시(末法今時)에 이 법문(法門)을 홍통(弘通)하기 위(爲)하여 출현(出現)하신다는 것이 경문(經文)에는 설(說)해져 있는데 어찌된 일일까. 상행보살(上行菩薩)은 출현(出現)할 것인가·출현(出現)하지 않을 것인가. 니치렌(日蓮)이 먼저 대략 홍통(弘通)하느니라.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1338쪽)
지금 말법(末法)에 들어가면 여경(餘經)도 법화경(法華經)도 소용(所用)없으며,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도·사사(私私)로운 재량(裁量)이 아니라,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지용천계(地涌千界)의 재량(裁量)이로다. 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에 여사(餘事)를 섞으면·대단한 벽사(僻事)이니라, 해가 뜨고나면 등(燈)불이 소용(所用)없고, 비가 내리면 이슬이 무슨 소용(所用)이 있겠느뇨, 영아(嬰兒)에게 젖 이외(以外)의 것을 먹일 수가 있겠느뇨, 양약(良藥)에 또 약(藥)을 더하는 일은 없느니라.
(우에노전답서(上野殿答書) 1546쪽)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부처의 어의(御意)는 법화경(法華經)이며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교오전답서 1124쪽)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칠자(七字)만을 수행(修行)하면 좁은 것 같지만 그러나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사범(師範)·시방살타(十方薩埵)의 도사(導師)·일체중생(一切衆生) 개성불도(皆成佛道)의 지남(指南)이시므로 깊으니라.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1116쪽)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도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니라. 그러하므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중략>
과거(過去)의 생사(生死)와 현재(現在)의 생사(生死)와 미래(未來)의 생사(生死)·이 삼세(三世)의 생사(生死)에서 법화경(法華經)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법화(法華)의 혈맥상승(血脈相承)이라고 하느니라. <중략>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중략>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1337~8쪽)
부처가 된다고 함은 별(別)다른 일은 아니로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타사(他事)없이 불러 나아간다면 천연(天然)히 삼십이상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를 갖추게 되느니라. 여아등무이(如我等無異)라 해서 석존(釋尊)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느니라.
(니이케어서(新池御書) 1443쪽)
속히 속히 이생(利生)을 주십사 하고 강성(强盛)히 기원(祈願)한다면 어찌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으리요.
(기도초(祈禱抄)1352쪽)
신심강성(信心强盛)하여 오직 여념(餘念)없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범신즉불신(凡身卽佛身)이니라.
(본인묘초(本因妙抄) 872쪽)
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어본존(御本尊)을 믿으실지어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신심(信心)을 강성(强盛)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行)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 행학(行學)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공공근언(恐恐謹言).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1361쪽)
사람의 마음이 견고(堅固)하면 신(神)의 가호(加護)도 반드시 강(强)하다 함이라. 이는 당신을 위해서 말하느니라. 옛날의 신심(信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그보다도 지금 한층 강성(强盛)히 신심(信心)을 가지시라 . 그 때는 더욱더 십나찰녀(十羅刹女)의 수호(守護)도 강(强)해지리라고 생각하시라.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 1220쪽)
월월(月月)·일일(日日)·강성(强盛)해지시라, 조금이라도 해이(解弛)한 마음이 있다면 마(魔)가 틈탈 것이니라.
(성인어난사(聖人御難事) 1190쪽)
법화경(法華經)의 공력(功力)을 생각하여 보면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목전(目前)에 있도다.
(가책방법멸죄초(呵責謗法滅罪抄) 1125쪽)
법화경(法華經)의 신심(信心)을 관철(貫徹)하시라·부시를 치는데·중단해 버리면 불을 얻지 못하느니라.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내어서 법화종(法華宗)의 시조깅고(四條金吾)·시조깅고(四條金吾)라고 가마쿠라(鎌倉) 중(中)의 상하만인(上下萬人) 내지(乃至)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입으로 칭송(稱頌)받으시라. 나쁜 이름조차도 떨치는데 하물며 좋은 이름에 있어서랴, 어찌 하물며 법화경(法華經)으로 인(因)한 이름에 있어서랴.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1117~8쪽)
더욱더 면려(勉勵)하여 법화경(法華經)의 공덕(功德)을 득(得)하시라. 사광(師曠)의 귀·이루(離婁)의 눈과 같이 듣고 보시라. 말법(末法)에는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반드시 출래(出來)하리라. 그러나 대난(大難)이 오면 강성(强盛)한 신심(信心)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 . 불에 장작을 더하면 성(盛)해지지 않는 일이 있겠느뇨. 대해(大海)에 중류(衆流)가 들어가나 그래도 대해(大海)는 강(江)물을 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느뇨. 법화대해(法華大海)의 행자(行者)에게 제하(諸河)의 물이 대난(大難)과 같이 들어가도 되돌려 보내거나, 나무라는 일이 없다. 제하(諸河)의 물이 들어가는 일이 없으면 대해(大海)는 있을 수 없으며 대난(大難)이 없으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아니로다.
(시지시로전어서(椎地四郞殿御書) 1448쪽)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1338쪽)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부처의 어의(御意)는 법화경(法華經)이며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교오전답서(經王殿答書) 1124쪽)
암경(闇鏡)도 닦으면 옥(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只今)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일생성불초(一生成佛抄) 384쪽)
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 십계구족(十界具足)이라 함은 십계(十界)가 일계(一界)도 빠짐없이 일계(一界)에 있음이라, 이에 의(依)해서 만다라(曼陀羅)라고 하며 만다라(曼陀羅)라고 함은 천축(天竺)의 이름으로서 여기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공덕취(功德聚)라고도 이름하느니라. 이 어본존(御本尊)도 다만 신심(信心)의 이자(二字)에 들어 있으니 이신득입(以信得入)이란 이것이니라.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등(弟子檀那等)·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불수여경일게(不受余經一偈)라고 무이(無二)로 믿음으로써·이 어본존(御本尊)의 보탑(寶塔) 안에 들어 갈 수 있느니라·미덥고 미덥도다. 어떻게든 후생(後生)을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라, 결단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신심(信心)의 후박(厚薄)에 달려 있으며, 불법(佛法)의 근본(根本)은 신(信)으로써 근원(根源)으로 하느니라.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1244쪽)
지금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또한 이와 같다.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는 남녀(男女)의 모습 이외(以外)에 보탑(寶塔)은 없느니라. 만약 그렇다면 귀천상하(貴賤上下)를 가리지 않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자신(自身)이 보탑(寶塔)이고 자신(自身)이 또한 다보여래(多寶如來)이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외(以外)에 보탑(寶塔)은 없으며,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이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또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아부쓰상인(阿佛上人) 의 일신(一身)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오대(五大)이며, 이 오대(五大)는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이니라. 그러므로 아부쓰보(阿佛房)가 바로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바로 아부쓰보(阿佛房)이며 이것 이외(以外)의 재각(才覺)은 무익(無益)하니라. 문(聞)·신(信)·계(戒)·정(定)·진(進)·사(捨)·참(慚)의 칠보(七寶)로써 장식한 보탑(寶塔)이니라. 다보여래(多寶如來)의 보탑(寶塔)을 공양(供養)하신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신(自身)을 공양(供養)하시는 것이며 자신(自身)이 또한 삼신즉일(三身卽一)의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니라. 이렇게 믿으시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奉唱)하시라. 이곳이 바로 보탑(寶塔)의 주처(住處)이니라. 경(經)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는 일이 있는 곳에는 나의 이 보탑(寶塔)이 그 앞에 용현(涌現)함」이란 이것이니라. 너무나 존귀(尊貴)하시므로 보탑(寶塔)을 써서 나타내어 드리느니라, 자식이 아니면 물려 주지 말것이며 신심(信心) 강성(强盛)한 자(者)가 아니면 보이지 말지어다.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란 이것이니라.
(아부쓰보어서 1304쪽)
공덕(功德)은 전(前)의 공덕(功德)에 비(比)하면, 전(前)의 공덕(功德)은 조상(爪上)의 흙과 같고,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시방(十方)의 흙과 같으니라. 전(前)의 공덕(功德)은 한방울의 물과 같고,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대해(大海)와 같다. 전(前)의 공덕(功德)은 와력(瓦礫)과 같고,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금은(金銀)과 같으며, 전(前)의 공덕(功德)은 형화(螢火)와 같고,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일월(日月)과 같다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제목공덕어서(題目功德御書) 1300쪽)
단(但) 성인(聖人)이 부르시는 제목(題目)의 공덕(功德)과 우리들이 부르는 제목(題目)의 공덕(功德)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나이까 라고 운운(云云). 조금도 승렬(勝劣)은 있을 수 없소이다 . 그 까닭은 우자(愚者)가 가진 금(金)이나 지자(智者)가 가진 금(金)이나 우자(愚者)가 켜놓은 불이나 지자(智者)가 켜놓은 불이나 그 차별(差別)은 없느니라. 다만 이 경(經)의 뜻에 배반(背反)하여 부르면 그 차별(差別)이 있는 것이로다. <중략>
어떠한 경우라도 법화경(法華經)을 가진 자(者)를 서로 헐뜯지 말지어다. 그 까닭은 법화경(法華經)을 가진 자(者)는 반드시 모두 부처이며, 부처를 헐뜯는다면 죄(罪)를 받는 것이니라.
이렇게 알고서 부르는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석존(釋尊)의 공덕(功德)과 동등(同等)하니라.
(마쓰노전답서(松野殿答書) 1381~2쪽)
오행(五行)이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이며 오대종(五大種)이라고도 오온(五蘊)이라고도 오계(五戒)라고도 오상(五常)이라고도 오방(五方)이라고도 오지(五智)라고도 오시(五時)라고도 하는데, 오직 일물(一物)·경경(經經)의 이설(異說)이며, 내전(內典)·외전(外典)·명목(名目)의 이명(異名)이니라. 금경(今經)에 이를 개회(開會)하여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심중(心中)의 오불성(五佛性)·오지(五智)의 여래(如來)의 종자(種子)라 설(說)했으니 이는 즉(卽)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이니라. 이 오자(五字)로써 인신(人身)의 체(體)를 만드느니라, 본유상주(本有常住)이고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며, 이를 십여시(十如是)라 하고 이를 유불여불(唯佛與佛)·내능구진(乃能究盡)이라 함이라, 불퇴(不退)의 보살(菩薩)과 극과(極果)의 이승(二乘)은 조금도 모르는 법문(法門)인데 원돈(圓頓)의 범부(凡夫)는 초심(初心)부터 이를 아는고(故)로 즉신성불(卽身成佛)하니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체(體)니라. <중략>
석가여래(釋迦如來)·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의 당초(當初)· 범부(凡夫)로 계셨을 때에 자신(自身)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이라 아시고서 즉좌(卽座)에 깨달음을 여셨느니라.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 568쪽)
첫댓글 네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여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신심(信心)에 퇴전(退轉)이 없고 몸에 사친(詐親) 없이 일체(一切) 법화경(法華經)에 그 몸을 맡기고 금언(金言)과 같이 수행(修行)하면 틀림없이 후생(後生)은 말할 것도 없고, 금생(今生)도 식재연명(息災延命)하여 승묘(勝妙)의 대과보(大果報)를 얻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마저도 성취(成就)할 것이니라.
(기도경송장 1357쪽)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항상 여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와 더불어 나의 弟子는 諸難이 있을지라도 疑心이 없으면 自然히 佛界에 이르리라.
天의 加護가 없음을 疑心하지 말 것이며 現世가 安穩하지 않음을 恨歎하지 말지어다.
나의 弟子에게 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疑心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者의 버릇이란 約束한 일을 必要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開目抄(234쪽)
期必코 期必코 南無妙法蓮華經ㆍ臨終正念이라고 記念하시라.
生死一大事의 血脈은 이 外에 絶對로 求하지 말지니라,
煩惱卽菩提ㆍ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信心의 血脈이 없이는 法華經을 가질지라도 無益하니라.
生死一大事血脈抄(1338쪽)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감사합니다!!
항상 여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말대의 법화경의 행자를 칭찬하고 공양하는 공덕은
저 삼업상응한 신심으로
일겁 동안 생신의 부처를 공양하여 받드는 것 보다도
백천만억배 더하다고 설하셨느니라.
이것을 묘락대사는 복과십호
나의 기심의 묘호렌게쿄를
본존으로 숭앙하고,
나의 기심 중의 불성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 함
삼세의 제불도 묘호렌게쿄의 오자로써 부처가 되셨으니
삼세제불의 출세의 본회이고 일체중생, 개성불도의 묘법은 이것이다.
이러한 취지를 깊이 깊이 알아서
부처가 되는 도로는 아만편집의 마음 없이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
나의 제자에게 조석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을 일으켜 모두 버렸다.
어리석은 자의 버릇은 약속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린다
대저 묘호렌게쿄란
일체중생의 불성
불성이란 법성
법성이란 보리
일체중생의 불성이 모두 불리어서 여기에 모일 때
자신의 법성의 법보응의 삼신이 함께 이끌려서 현출하는 것
성불
단 성인이 부르시는 제목의 공덕과
우리들이 부르는 제목의 공덕과는 차이가 있나
조금도 승렬은 없다
다만 이 뜻에 배반하여 부르면 차별이 있다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
항상 여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법화경을 가진 자를 서로 헐뜯지 마라.
그 까닭은 법화경을 가진 자는 반드시 모두 부처이다,
부처를 헐뜯으면 죄를 받는 것.
법화경의 행자는
신심에 퇴전이 없고
몸에 사친없이
일체 법화경에 그 몸을 맡기고 금언과 같이 수행하면
틀림없이 후생은 말할 것도 없고
금생도 식재연명하여
승묘의 대과보를 얻어
광선유포의 대원마저도 성취한다
지금 니치렌 등의 동류가
성령을 추선할 경우
법화경을 독송하고 남묘호렌게쿄라 봉창할 때
제목의 빛이 무간에 이르러 즉신성불
이번에 니치렌의 제자가 되셨음인가.
석가 다보만은 알고 계시리라.
「재재제불토, 상여사구생」이란
설마 허사는 아닐 것.
특히 생사일대사의
혈맥상승에 대하여 물으심은 선대미문의 일이니 참으로
존귀하도다
존귀하도다
오직 남묘호렌게쿄
석가 다보, 상행보살 혈맥 상승이라고 수행하시라
강성한 대신력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 임종정념이라고 기념하시라
생사일대사의 혈맥은 이 외에 절대로 구하지 마라
번뇌즉보리, 생사즉열반이란 이것이다
신심의 혈맥이 없이는
법화경을 가질지라도 무익하다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
항상 여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말법에 들어가면
여경도 법화경도 소용없으며
오직 남묘호렌게쿄이니라
니치렌의 혼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부처의 어의는
법화경이며
니치렌의 혼은 바로
남묘호렌게쿄.
석가 다보의 이불도 생사의 이법.
그러하므로
구원실성의 석존과
개성불도의 법화경과
우리들 중생의 셋은
전혀 차별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는 바를
생사일대사의 혈맥이라 함
이 일은 다만 니치렌의 제자 단나 등의 간요이며
법화경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
이 삼세의 생사에서 법화경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법화의 혈맥상승이라 한다
신심의 혈맥이 없이는 법화경을 가질지라도 무익
부처가 된다고 함은
별다른 일은 아니로다
남묘호렌게쿄라고 타사없이 불러 나아간다면
천연히 삼십이상팔십종호를 갖추게 되느니라.
여아등무이라 해서
석존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느니라.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느니라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라도 설할지니라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
항상 여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법화경의 신심을 관철하여
강성한 대신력을 내시라
더욱더 면려하여 법화경의 공덕을 득하시라
지금도 일념무명의 미심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의 명경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을 일으켜 일야조모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이 어본존을
결코 타처에서 구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이 법화경을 수지하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는
흉중의 육단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의 도라고 하느니라
묘호렌게쿄 이외에 보탑은 없으며,
법화경의 제목이 보탑이고
보탑이 또한 남묘호렌게쿄이니라.
어떠한 경우라도
법화경을 가진 자를 서로 헐뜯지 말지어다.
그 까닭은 법화경을 가진 자는 반드시 모두 부처이며,
부처를 헐뜯는다면 죄를 받는 것이니라
오행이란 지수화풍공
이는 즉 묘호렌게쿄의 오자
즉신성불하니 금강불괴의 체
석가여래
오백진점겁의 당초 범부로 계셨을 때에
자신은 지수화풍공이라 아시고서
즉좌에 깨달음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
남묘호렌게쿄 !
항상 여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존귀(尊貴)한 교주석존(敎主釋尊)을 일시(一時) 이시(二時)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며, 일겁(一劫)동안 합장(合掌)을 하고 두 눈을 부처의 존안(尊顔)에다 대고 머리를 숙이고 타사(他事)를 버리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하듯이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고, 배고플 때 음식을 생각하듯, 간단(間斷)없이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공덕(功德)보다도 희론(戱論)으로 한 마디 계모(繼母)가 의붓아들을 칭찬하듯 마음에는 없을지라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칭찬하고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저 삼업상응(三業相應)한 신심(信心)으로 일겁(一劫) 동안 생신(生身)의 부처를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것 보다도 백천만억배(百千萬億倍) 더하다고 설(說)하셨느니라. 이것을 묘락대사(妙樂大師)는 복과십호(福過十號)라고 쓰셨느니라. 십호(十號)라고 함은 부처의 열가지 명호(名號)인데 십호(十號)를 공양(供養)함보다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이 뛰어났다고 쓰셨느니라.
(호렌초 1044쪽)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항상 여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1337~8쪽)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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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어본존(御本尊)을 믿으실지어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신심(信心)을 강성(强盛)히 하여 삼불(三佛)의 수호(守護)를 받도록 하시라 .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힘쓸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없느니라. 나도 행(行)하고 남도 교화(敎化)하시라. 행학(行學)은 신심(信心)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一文一句)라도 설(說)할지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공공근언(恐恐謹言).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1361쪽)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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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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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信心)에 퇴전(退轉)이 없고
❤️몸에 사친(詐親) 없이
❤️일체(一切) 법화경(法華經)에 ➡️그 몸을 맡기고
❤️금언(金言)과 같이
➡️수행(修行)하면
틀림없이
후생(後生)은 말할 것도 없고,금생(今生)도
❤️식재연명(息災延命)하여
❤️승묘(勝妙)의 대과보(大果報)를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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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마저도
⭕️성취(成就)⭕️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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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경송장 1357쪽)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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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강성(信心强盛)⭕️하여
➡️오직 ⭕️여념(餘念)없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라고 봉창(奉唱)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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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신즉불신(凡身卽佛身)❤️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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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묘초(本因妙抄) 872쪽)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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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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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어의(御意)💚는
💚법화경(法華經)💚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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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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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오전답서 1124쪽)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항상 여러가지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