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조와 현대시조의 비교 - 옥동玉勳 장금철
우리 정신의 본향, 우리 정서의 본류인 民族詩歌<時調>다.
다시 말해 3章 6句에 갈무리되어 있는 민족혼의 내재율 3·4·3·4(초장) 3·4·3·4(중장), 3·5·4·3(종장)의 시조인 것이다.
이 3章 6句에는 우리 민족의 온갖 사고(思考), 온갖 행위, 온갖 습속까지가 다 담겨져 있는 것이다.
흐름이 있고, 굽이 있고, 마디가 있고, 풀림이 있는 우리 시조는 그 가형歌形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
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대맥大脈이 절로 흘러들어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우리 문단의 인구가 지금 1만 여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다른 이는 그만두고라도 글을 쓴다는 우리
문인들 중에서 시조의 틀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문인뿐 아니라 전체 국민이 자기 나라 국시國詩인 단가短歌 배구排球, 하이쿠
를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은 교과서에서 시조를 배운다는 학생들도, 이를 가르친다는 선생들도 건성으로 넘기고 있
다.
그나 그뿐인가, 문인들 중에서는 간혹 시조무용론까지를 들고 나오는 몰지각한 사람이 있으니, 심
히 민망하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시 중에서도 시문학사에 남을 만한 작품은 거의가 시
조적인 내재율이 흐르고 있는 사실을 이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맥박 속에는 본
질적으로 시조적인 내재율이 흐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문화재도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더 시급한 일은 온 국민이 우리 국민문학·민족시를 모두 배
우고 익혀 우리 정신의 대종(大宗)을 이어받고, 본류를 밝히어 정서를 순화하고, 인격을 도야하여
흐려지고 거칠어지려는 풍조를 시조 짓기 운동으로 하여 바로 잡아야 하리라 믿는다. 사실 우리 구
국의 성웅 이 순신 장군도
{한산섬 달 밖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자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 시 한 수로 하여 구국 충정이 더욱 빛났고,절세가인 황진이도 {동짓달 기나긴 밤} 한 수로 하여 오늘날까지 그 향기가 전해 내려오지 않았던가. (정완영,『시조창작법』에서)
1. '노래(唱)'에서 '읽는 문학'으로
시조란 '시절단가음조時節短歌音調'에서 유래된 말로 그 시대의 노래라는 뜻이다. 우리말의 기본 마
디인 3·4조나 3·5조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민족의 호흡에 가장 걸맞고 세계 어디에서도 유형을 찾
아볼 수 없는 독특한 리듬을 지닌 시형이다.
고려가요 또는 신라 향가에 뿌리를 두고 고려 말경 그 형태가 어느 정도 확립된 뒤 조선시대 주자
학적 사회 이념을 만나면서 더욱 형태가 정연해지고, 말을 고도로 압축시키는 평시조의 미학을 꽃
피웠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초래된 신분제 붕괴 등 사회 변화에 따라 서술양식에 대한 눈뜸이 생
겨나고 새로운 사회 계층으로 성장한 평민 의식이 반영되어 사설시조 같은 서술이 가미된 형태적
변화가 생겨났다. 그 후 서구의 자유시의 유입과 함께 이러한 사설시조는 현대 자유시의 개성적 리
듬의 미학적 기반이 되었다. 우리 시 문학사를 장식하고 있는 김소월이나 정지용, 박 목월 등도 이
러한 시조의 내재율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30년대를 전후해 시조는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는다. 현대시로의 변모 과정으로 시작법의 혁신
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즉 창唱에 바탕한 청각에서 "읽는 문학인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현대시로서의 변모과정에서 시조는 크게 왜곡되는 아픔을 겪는다. 1900년을 전후의 자아
상실의 서구문화의 수용과 일제 강점기 문화말살 정책의 영향으로 시조는 정상적인 진화과정을
거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시조 내적으로는 일본 시가에 대응해 더욱 자수율 중심의 정형 양식에
집착하는 현상이 강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에서 유입된 자유시에 매몰되어 시조는 고루하
고 진부한 문학 장르로 폄훼 되는 불운을 겪게 된 것이다.
주체성을 잃은 서구 문화의 수용과정과 일제 강점기의 민족 문화 말살이라는 슬픈 역사가 없었다
면, 평시조를 바탕으로 사설시조 형태의 산문적 영역으로까지 진화해온 시조가 그 후 어떻게 현대
시로 발전했을까를 생각해볼 때, '자아 회복'이 화두가 되고 있는 21세기에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우리시의 마당을 확장해나가는 일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시조는 한 시대의 고정된 양식에 박제되어 온 것이 아니라 열린 정신으로 시
대변화를 수용하는 양식적 진화를 거듭해 왔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열린 의식으로 시조 창작에
임해야 할 것이다.
2. 시조 기본형에 대한 이해
시조 창작에 있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형식이다. 일반적으로는 '3장 6구 12음보, 45자 내외'라
는 틀 속에 초장 3·4·4(3)·4 중장 3·4·3(4)·4 종장 3·5·4·3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학교 교육도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자수율의 정형에 맞는 고시조는 전체의 4∼5%
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아래의 작품들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春風 니불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의론님 오신날 밤이 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
종장의 '5'의 자수가 '7∼8'로 벗어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동안의 교육과 창작이
자수율에 지나치게 지배돼왔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제약은 시조 창작을 매우 좁은 틀
속에서 이뤄지게 하고 현대시로서의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왔음은 물론이다. 따라
서 그 동안 시조의 기본형으로 인식되어온 이러한 엄격한 '자수 개념'은 이제 수정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자수 개념의 기본형에 대한 문제는 시조에 대한 기본 개념 이해와 창작의 지침을 제공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시조의 기본 틀은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3. 시조의 기초 단위, 음보音譜
'노래(창)'을 전제로 한 고시조와 달리 현대시조는 온전한 '읽는 문학'이라는 점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점은 고시조의 인용이나 현대시조 창작에 있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변별점이요 구분 축이다.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 이우걸의 <팽이>
그렇다면, 위의 황진이의 고시조와 이우걸의 현대시조 이 두 작품을 포괄하는 형식적 장치는 무엇일까. 그 동안 배워온 자수 개념으로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황진이의 시조를 다음과 같이 표시해보자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春風/ 니불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의론님/ 오신날 밤이 여든//구뷔구뷔/ 펴리라///
이 작품을 읽어보면 /에서는 짧은 휴지休止가, //에서는 중간 휴지가, ///에서는 긴 휴지가 있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음보音譜>는 음의 걸음걸이이다.
문제는 한 걸음걸이에 몇 개의 음절이 들어가며, 어느 정도의 시간성으로 제약되느냐 하는 것인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3·4·3(4)·4조로 기계적이지는 않다는 점이다. 우리말의 단어는 대개 2음절('단어' '음절' 등)과 3음절('아버지' '교과서' 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여기에 조사나 어미가 붙어 실제로는 3음절 또는 4음절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절수가 6,7,8음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럴 경우 얼마까지 늘어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다. 여기에 제한이 가해지는 것이 바로 시간적 등가성이다. 윤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시 말해 한 걸음을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이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범주까지 가능한 것이다.
인용시 ①을 적용해보자. '의론님 오신날 밤이 여든'을 윤독할 때 '의론님/ 오신 날/ 밤이 여든//'으로 하지 않고 '오신날 밤이 여든'을 한 보폭으로 읽힘이 자연스럽다. ③의 작품에서도 '쳐라,' '가혹한 매여'와 같이 자수와는 상관없이 한 보폭으로 읽혀지고 있다. 이처럼 시조의 기초 단위는 <음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시조의 창작은 이 음보를 어떻게 잘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겠다.
아무리 여름이 더워도 싫단 말 다신 않을래
이 밤도 또 밤새워 우는 저 가을벌레들 소리
더구나 우수수 잎들이 지면 어이 견딜 까본가.
- 이호우 첫 수
여름은 덥다지만 한증막 따로 없네
삼복중 복 하나를 한 자락 베어다가
설한풍 휘몰아칠 때 덮고 잘까 하노라.
- 장금철 -헛 공상
4. 시조의 형식
앞에서 시조의 초·중·종장이 각각 네 걸음씩 총 열 두 걸음의 형식장치를 가지고 있음은 확인했다. 그러나 평이한 걸음걸이가 계속되는 것은 지루하고 답답하기 마련이다. 시조의 걸음걸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평이한 걸음걸이에 탄력을 주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흘 와 계시다가 말없이 돌아가시는
아버님 모시 두루막 빛바랜 흰 자락이
웬 일로 제 가슴속에 눈물로만 스밉니까.
- 정 완영의 <부자상> 첫째 수
조석으로 마주하며 어린양만 여기다가
지아비, 시부모랑 남의 권솔 되어가니
내 언제 나목이 된 양 팔이 이리 허전하냐.
- 민병찬의 <딸을 보내고> 둘째 수
위의 작품을 윤독하며 걸음걸이를 실제 내딛어 보라. 처음부터 끝까지 평이한 걸음걸이인가. 실제로 한 걸음걸이에서 걸리는 시간이나 보폭이 달라진 것은 아닌데, 그 걸음걸이에 유달리 힘이 주어지는 부분과 그 힘이 풀리는 부분이 있다. <부자상>에서는 '웬 일로 제 가슴속에'가 이에 해당되고 <딸을 보내고>에서는 '내 언제 나목이 된 양'이 이에 해당된다. 자수 개념으로 보더라도 종장의 첫 걸음은 석자로 축약되어 있고 두 번째 걸음은 다섯 자 로되어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똑같은 걸음걸이로 걸어가되 종장 첫걸음은 석자로 줄어든 그 공간을 힘을 주어 그 간극을 메우고, 종장 두 번째 걸음은 다섯 자 이상이 되더라도 그 공간이 충분히 차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평이한 걸음걸이의 계속적인 내딛음에서 오는 따분함과 지루함에 변화를 주어 일시의 조임과 늘어짐. 순간의 긴장과 이완을 주는 시조 종장의 기막힌 형식장치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시조의 맛과 멋을 더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체라 할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이 부분을 등한시 한 시조는 읽기가 따분하고 지루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옛 부터 민족이 있는 곳에 그 민족 특유의 시가 있어 왔다. 멀리 태서泰西의 이야기는 그만두고라도 우리 한문문화권인 동양 3국을 살펴보면 중국에 5언이니 7언이니 하는 한시가 있고, 일본에 단가短歌니 배구排球니 하는 자기네 나름의 고유시가 있는가하면, 우리나라에는 한국 특유의 뛰어난 가형歌形 3章 6句의 시조가 있어 왔다. 그런데 이 제 각기의 시가詩歌들이 하나같이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시가 수천 년 동안 풍우에 씻기어 단단하게 광택이 나는 큰 산 큰 계곡의 반석 같은 것으로서, 중국인이란 대륙의 끈질기고 요지부동한 민족성과 그 역사의 장구 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단가(5, 7, 5, 7, 7)니 俳句(5, 7, 5)는 그 자수의 긴축성으로 보나, 그 노래솜씨의 삽상한 맛으로 보나 일호의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그네들의 성품이며 식성까지 여실히 나타내는 것으로써, 어떻게 보면 그네들의 너무나도 빽빽한 여유롭지 못함까지가 엿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우리 시조는 어떤 노래인가?
우리 민족시인 시조는 초·중·종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초장이 3, 4, 3, 4, 중장도 3, 4, 3, 4, 인데 종장만이 유독 3, 5, 4, 3으로 자수의 변용을 가져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시의 5언이나 7언, 일본의 단가·배구가 모두 자수의 배열에 있어서 한 자의 가감이나 어떠한 변용도 용납이 안 되는데 반해, 우리 시조는 초장, 중장에 있어서도 자수의 가감이 가능할 뿐 아니라, 종장에 와서는 물굽이가 한 바퀴 감았다가 다시 풀어져 흐르는 듯 하는 변용(3, 5, 4, 3)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의 시가가 일행직류一行直流인데 반해 유독 우리 시조만이 직류에다 일곡을 더 보태어 마치 여름날의 합죽선처럼 접었다 펴는 시원함을 가져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5. 시조의 의미 구조
시조의 의미구조에 관해서는 '4단 구조설'과 '3단 구조설' 등으로 나뉘어진다.
1) 4단 구조
시조 3장의 형식 속에 기승전결起承轉結의 4단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견해로, 초장은 起句, 중장은 承句가 되며, 종장이 轉과 結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2) 3단 구조
초·중장의 두 전제에 대한 결론이 종장이라는 논법이다. 시정신이 지향한 바가 대상(사물)과의 합일화이든 관념적 객관화를 통한 세계화이든 간에 종장에 이르러서는 동화나 조화로써 결구되고, 의미나 이미저리의 내적 형성력에 의해 통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6. 형식의 운용
① 시조는 초·중·종장의 3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② 각 장은 걸리는 시간이 비슷한 걸음걸이 넷이 모여 이루어지며,
③ 종장의 첫 걸음은 긴장과 조임의 석자, 둘째 걸음은 이완과 풀림의 다섯 자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독특한 형식장치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근간으로 보면 시조에서의 행 구분은 어떻게 하라는 철칙이 없는 셈이다.
내가 친 電報와 그녀가 친 電報가 각각 상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다 아득한 저 天空에서 딱 ! 맞닥뜨렸죠.
- 이종문의 <번개> 전문
한번은 막달라가 되어 예수와 간음하고
한번은 유다가 되어 십자가도 팔아먹고
다시 또 천수관음이 되어 거웃 하나에 눈을 뜨네!
- 류 제하의 <천수관음이 되어> 셋째 수
버둥대며 강 건너던 선잠 여울목
꽃다지 가시내의 거친 숨도 뚝, 그치고
누우런 닥종이 위에 눈곱낀 햇살 빼꼼.
- 김 윤철의 <여인숙> 전문
현대인의 사고와 시적 대상은 매우 복잡 미묘하다. 이를 심층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3행이나 6행에 고정될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작은 틀에 최대한의 사유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에 있어서 연 가름과 행 가름은 자기 멋대로의 임의적인 것이거나 사치스런 것이어서는 안된다. 마땅히 한 행으로 잡아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며 연 가름을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외형상으로만 볼 때 시행이 십 수행까지 늘어나 언뜻 자유시와 구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일부 자유시와의 변별력을 문제 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 시적 관점의 문제 제기일 뿐, 우리시를 주체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될 사항이 아니다. 자유시와의 차이점은 시조 특유의 율격구조와 종장에서의 긴장과 풀림의 특수한 미학적 장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6. 시조의 다양한 형태
시조는 형태상으로는 단형시조(평시조), 중형시조(엇시조), 장형시조(사설시조), 단장시조, 양장시조(2장시조), 연시조, 옴니버스시조(혼합시조) 등으로 나눌 수 있고, 내용면에서는 서정시조, 서사시조, 동시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가. 평시조
3장 6구 12음보로 구성된 시조의 기본형에 해당하는 형태다.
쩌응 터질 듯 팽창한 대낮 고비의 정적
읽던 책을 덮고 무거운 눈을 드니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디선가 낮 닭소리.
- 이호우 <오午> 전문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
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겠네.
- 김상옥 <어느 날> 전문
나. 엇시조
평시조의 기본 틀에서 어느 한 장의 1구가 2음보 정도 길어진 형태다. 이 또한 마땅히 길어져야할 필연성과 타당성을 갖고 있어야 하겠다.
달무리 해조음 자갈 자갈 속삭이다
십년 가뭄 목마름의 피막 가르는 소리 삼천년에 한 번 피는 우담화 꽃이 울 듯
여자의 속 깊은 궁문 날개 터는 소릴 냈다.
- 윤금초-
「땅끝」넷째 수
청산靑山도 절로 절로 녹수綠水라도 절로 절로
산山절로 절로 수水절로 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 절로
그중中에 절로 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 절로 하리라.
-김인후-
군천자일북문唐天子 一北門으로 도망하여 달아날 제
앞에는 장강長江이오 뒤에 딸 호느니 遼東 蓋蘇文이라
어찌타 白袍小將 薛仁貴는 어대 가고 날못찾노.
-지은이 미상 -
다. 사설시조
사설시조는 초·중·종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8음보 이상 길어지거나 각장 모두 길어진 산문시 형식의 시조다. 조동일 교수는 "엇시조는 2음보가 세 번 중첩되어 6음보가 나타난 곳이 한 군데만 있는 시조라고 규정할 수 있고, 2음보가 세 번 중첩되어 6음보가 나타난 곳이 두 군데 이상 있거나 2음보가 네 번 중첩되어 8음보가 나타난 곳이 한 군데 이상 있는 시조를 사설시조"로 규정하고 있다.
아래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사설시조도 기본형은 12음보로 파악된다. 다만 평시조에서는 한마디가 한 걸음이지만, 사설시조에서는 한마디가 두 걸음도 되고 네 걸음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즉 아래 5)와 같이 한 마디에 네 걸음인 경우도 있다.
1)두터비 / 2)파리를 물고 / 3)두험우희 / 4)치달아 안자//
5)건넌山 바라보니 白松骨이 떠 잇거늘 / 6)가슴이 금즉하여 / 7)풀덕뛰여 내eke다가 / 8)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9)무쳐라 / 10)날낸 낼싀망졍 / 11)에헐질뻔 / 12)하게라.//
사람이 몇 생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
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루 수렴水簾 진주담眞珠譚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八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조운의 <구룡폭포>
임이 오마하거늘 저녁밥 일찍 먹고/
중문中門나서 대문 大門나가 지방 우히 치다라 앉아 이수以手로 가액加額하고/
오는가 가는가 건넌 산 바라보니 거머위돌서 있거늘 저야 임이로다!
보선 벗어 품에 품고 신 벗어 손에 쥐고 곁 벼 곰븨님븨 천방지방 지방천방 진듸 마른듸 갈히지 말고 위령 충창 건너가서 정(情)옛말 하려하고 곁눈을 흘겨보니 상년(上年)칠월 사흗날 갈까 벗긴 주추리 삼대 살뜰이도 날 소겼다/
모쳐라. 밤일시 망정 행여 낮이련들 남우일번 하괘라.
그러나 사설시조 약 300수를 분석한 결과 초·종장이 단독으로 길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며, 중장만
이 단독으로 길어진(6음보 이상)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사설시조의 본령인 서사
적 요소와 해학성, 현실비판과 풍자 등을 오늘의 감각에 맞게 창조해내는 것이라 하겠다.
라. 단장, 양장시조
시조의 종장만을 살린 경우가 단장시조이고, 중장을 생략한 형식이 양장시조이다.
단 한 줄긋는 것으로 세상을 다 안는….
- 문무학 <수평선> 전문
말로 다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
- 이정환의 <서시> 전문
뵈오려 안 뵈는 님 눈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 지이다.
- 이은상의 <소경 되어 지이다> 전문
산골을 거닐다가 문득 깨쳐들고 보니
어데서 꺾어 왔는지 꽃이 손에 쥐었네.
-장 하보의 <춘조> 넷째 수
4장 시조
샛별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매고 사립 나니
긴 수풀 찬이슬에 베잠뱅이 다 젖는다
소치는 아이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긴 밭을 언제 가려 하느냐
(샛별지자 종다리 떴다) - 김천택 -
마. 옴니버스 시조
한 편의 연작시조 속에 평시조·사설시조·단장시조·양장시조 등 다양한 시조 형식을 모두 아우르는 혼합 형태의 시조를 말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형태의 시조가 다양하게 창작되고 있다.
그리움도 한 시름도 발흑發墨으로 번지는 시간
닷 되들이 동이만한 알을 열고 나온 주몽
자다가 소스라친다, 서슬 푸른 殺意를 본다.
하늘도 저 바다도 붉게 물든 저녁답
비루먹은 말 한 필, 비늘 돋은 강물 곤두세워 동부여 치욕의 마을 우발수를 떠난다. 영산강이나 압록 강가 궁벽한 어촌에 핀 버들 꽃 같은 여인, 천제의 아들인가 웅신산 해모수와 아득한 세월만큼 깊고 농밀하게 사통한, 늙은 어부 하백河佰의 딸 버들 꽃 아씨 유화여, 유화여. 태백산 앞발치 물살 급한 우발수의, 문이란 문짝마다 빗장 걸린 희 디 흰 謫所에서 대숲 바람소리 우렁우렁 들리는 밤 발 오그리고 홀로 앉으면 잃어버린 족문 같은 별이 뜨는 곳, 어머니 유화가 갇힌 모략의 땅 우발수를 탈출한다.
말갈기 가쁜 숨 돌려 멀리 남으로 내달린다.
아, 아, 앞을 가로막는 저 검푸른 강물.
금개구리 얼굴의 금와옹 무리들 와와와 뒤쫓아 오고 막다른 벼랑에선 천리준총 발 구르는데, 말채찍 활 등으로 검푸른 물을 치자 꿈인가 생시인가, 수천 년 적막을 가른 마른 천둥소리 천둥소리… 문득 물결 위로 떠오른 무수한 물고기, 자라들, 손에 손을 깍지 끼고 어별다리 놓는다. 소용돌이 물굽이의 엄수를 건 듯 건너 졸 본촌 비류수 언저리에 초막 짓고 도읍하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사신도四神圖 포치布置하는, 광활한 북만北滿대륙에 펼치는가 고구려의 새벽을…
둥 둥 둥 그 큰북소리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
- 윤금초 <주몽의 하늘> 전문
7. 동시조
시조 형식 속에 동심을 담아내는 양식으로 어린이가 쓴 시조 또는 어린이를 위해 어른들이 쓴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 독자를 염두에 두고 창작된 것인 만큼, 무엇보다도 어린이의 사고나 정서에 잘 부합되어야 한다. 즉 아이들의 눈과 아이들의 가슴과 아이들의 목소리여야 진정한 동시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용과 형식이 단순 명료해야 할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의미와 아름다움을 가져야 한다. 경계해야 할 사항은 어른들의 유년 회상의 퇴행적 감상이나 주관적 동심주의에 의해 피상적으로 형상화된 작품들이라 하겠다.
이 지엽 시인은 "동 시조 창작을 하는데 있어서도 고전적이고 자연적인 소재보다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내는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첨단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동시조만이 초가집과 둥근 달을 그려내고 있다면 문제이다. 사이버 공간과 컴퓨터 게임과 채팅 방에 길들여진 우리의 어린이들이 과연 얼마만큼 그러한 세계에 공감할 수 있을까. 이제 이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마음이 되고 그들의 사고를 가져와야 한다. 동시조가 사랑 받을 수 있는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민족 고유의 숨결이 흐르는 그릇 안에 오늘의 생각과 역사를 살아 숨 쉬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는 나는 게으름뱅이 미루면서 살아왔다
한숨 자고 나중에 하지 좀 놀다 내일 하지 뭐
그 숙제 산더미 같아 허둥대며 사는 오늘.
- 김호길- <숙제> 전문
에이 또 틀렸다 숟가락이 왼손이네
바른 손 바른 손 엄마를 쳐다보다
손으로 계란 부침을 움켜 먹어 버렸다
에이 또 틀렸다 신발이 짝짝이네
오른 발 오른 발 고개를 갸웃대다
맨발로 재롱이 따라 달려 나가 버렸다
-박 권숙- <어려운 일> 전문
동네서 젤 작은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 정 완영- <분이네 살구나무> 전문
나. 제목 달기
작품의 제목은 사람의 이름 같고 여자의 얼굴 이상으로 중요하다. 제목 여하에 따라 작품이 눈길을 끌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제목 달기의 몇 가지 요령을 들면,
1)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제목이 좋다. (김춘수의 <꽃>, 강 현덕의<길>)
2) 의미전달을 쉽게 해야 한다. 내용을 한 마디로 상징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3) 이색적인 제목을 붙여 기억하기 쉽게 뽑아야 한다. 충격 효과(쇼킹한 제목)를 노릴 수 있는 제목이면 더욱 좋다. (홍 성란의 <악!>, 이 달균의 <불륜>)
4) 최근에는 제목을 길게 다는 경우도 많다.(이근배의 <내가 왜 산을 노래하는가에 대하여>, 서연정의 <상처를 뒤적이면 길이 보인다> 등)
5)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독자를 유혹해야 한다.
9. 무엇을 담을 것인가.
형식의 다양한 운용과 함께 중요한 문제는 작품 속에 담을 내용물이다. 아무리 그릇이 다양하다 해도 그기에 담은 내용물이 시로서 가치를 지
니지 못하거나 현대성이 떨어지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시조는 형식과 내용이 고시조풍이거나 천편일률적인 경우가 많다. 시조는 말 그대로 그 시대의 노래다. 따라서 그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의 복잡 미묘한 사고와 생활의 다양한 단면에 시조의 뿌리를 두어야 한다.
욕이 조상에 이르러도 깨달을 줄 모르는 무리
차라리 남이었다면, 피를 이은 겨레여
오히려 돌아앉지 않은 강산이 눈물겹다.
- 이 호우- <바람벌>둘째 수
10.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시의 세계는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하나의 새로운 세계(상태)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20세기 초엽, 재래의 시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이미지즘 운동은 음악적 율동과 회화적 영상을 융합한 새로운 운율을 창조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1) 일상어를 사용하되, 정확한 말을 고르며 모호한 말이나 장식적인 말을 배척한다.
2) 새로운 기분의 표현으로서 새로운 리듬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
3) 제재의 선택은 자유로워야 한다.
4) 명확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5) 모호하고 부정확한 것이 아니라 견고하고 명확한 시를 쓴다.
6) 긴축(집중)된 것만이 시의 본질이다.
대체로 서정시는 이 원리를 갖추고 있다. 초·중장에서 경치(서경)를 묘사하고, 종장에 이르러 그에 촉발된 시인의 정서를 노래하는 구조다. 다시 말해 초·중장에서는 시인의 눈에 포착된 가시적 이미지를, 종장은 마음속에 포착된 심상 풍경(시인의 내면의식)을 토로하는 절차를 밟는 방식이다. 시조는 이처럼 자연과 자아의 일체감을 종장에 제시함으로써 정서적 균형을 획득하는 장치에 입각하고 있다. 어쩌면 이 장치야말로 시적 공감 획득과 생명의 지속성을 가져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좋은 시조는 경(자연 묘사)과 정(지적 자아의 내면 풍경, 사상, 철학)의 조화로운 만남을 이끌어내는데 있다 하겠다.
과수원 옆, 길게 휜 가을의 시간 끝에
천수경 몇 구절이 산자락을 돌아나가고
처연히 세상을 건너는 꽃집 한 채 보인다
그 오랜 징역의 견고한 결박을 풀면
신의 제단에도 시나브로 잎은 지고
수척한 목숨의 길섶에 저문 강이 놓인다.
- 박 기섭- <저문강> 전문
나. 생략과 상징
생략은 문장을 간결하게 하여 행간의 숨은 뜻을 독자가 파악하게 하는 수법이며, 상징은 '평화=비둘기'처럼 추상적 사물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리 강룡의 <자리>는 과감하게 서술을 생략한 작품이고, 박 영교의 <창>은 '창'이 갖고 있는 공격성과 날카로움을 통해 언어(혀)의 폭력성을 상징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권갑하, 『현대시조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생대 같은 목숨 하나를 공원묘지에 부리던 날
젖은 눈에 굴절되는 겨울나무 저 편으로
빈자리 세평 반쯤이 다가서는 것 보았다.
- 리 강룡- <자리5-이별> 전문
다. 다양한 비유법
1) 직유법
-같다, -처럼, -하는 양 등과 같이 사물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나타내는 표현법이다.
내 것도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 인 양 차려 진 밥상이라 손쉽게 치부하니
눈 흘겨 책망하여도 뉘우칠 줄 모르네.
-장금철- 칼자루 쥔손
2) 은유법
'내 마음은 호수''죽음은 영원한 잠'과 같이 원관념은 숨기고 보조 관념만 드러내는 표현법이다.
즉 "A(원관념)는 B(보조관념)이다"와 같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설명하거나 그 특질을 묘사
하는 표현 방법이다.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
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 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 조 식 -(삼동에 베옷 입고)
앞산에 물오르면 여심女心은 나빌레라,
쑥 캐는 뒷모습이 한 송이 꽃이려니
규중閨中에 묻어둔 연정戀情 영산홍이 되거니.
- 장금철 -영산홍
3) 풍유법
본뜻은 뒤에 숨겨 놓고 비유하는 말만으로 숨겨진 뜻을 넌지시 표현하는 방법이다. "단맛 쓴맛
다 보았다"- 세상 물정 다 보았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 다 지나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 이정보 -국화
4) 의인법
'꽃이 웃는다''한강은 말이 없다''가을은 마차를 타고'와 같이 사물을 사람에 견주어 나타내는
표현법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가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지은이가 정몽주의 어머니라고 하나, 연산군 때 김정구라는 설이 확실함.
5) 제유법
사물의 한 부분으로 전체를, 또는 말 한마디로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나타내는 표현 방법. '빵-식량', '감투-벼슬' 등
라. 강조법
1) 과장법
'눈물의 홍수', '쥐꼬리만한 월급'등과 같이 어떤 사물을 실제보다 크거나 혹은 작게 형용하는
표현법 내 오늘 서울에 와 만평 적막을 산다.
안개처럼 가랑비처럼 흩고 막 뿌릴까보다
바닥난 호주머니엔 주고 간 벗의 명함.
-서벌 <서울1>
2) 반복법
같거나 비슷한 어구를 되풀이하여 문장의 의미를 강조하는 수사법
3) 영탄법
감탄사나 감탄조사, 강조 어미 등을 사용하여 기쁨, 슬픔, 놀라움 등의 감정을 고조 강화하는 기법
마. 변화법(도치법, 인용법, 경구법, 대구법 등)
1)도치법
어떠한 뜻을 강조하기 위해 말의 차례를 뒤바꾸어 놓음으로써 중심 내용을 더욱 두르러지게 표현하는 방법. '꼭 목화송이 같아, 함박눈이...'
2)인용법
남의 말이나
글 또는 고사나 격언 등을 인용하는 수사법. 주의할 것은 인용부분에 ' ', " "표나 『 』, *, 주 등을 꼭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난 한 촉 벌고 있는 소액환 창구에서
얼어 터져 피가 나는 투박한 손을 본다
"이것 좀 대신 써 주소, 글을 씰 수 없어 예."
- 하 순희- <비, 우체국> 첫째 수
11. 推敲하기
시를 다듬는다는 것에 대하여
퇴고推敲라는 고사 성어를 새겨보면 글을 다듬는 것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퇴推는
밀다라는 뜻이고, 고鼓는 두드린다는 뜻의 한자다. 퇴고推敲란 시문詩文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字는 낭선(浪仙),777∼841〕가 어느 날, 말을 타고 가면서 <이응의
유거에 부침 제이응유거題李凝幽居이라는 오언율시五言律詩로 시를 짓기 시작했다.
한거소린병閑居少隣竝 고요한 집 주위엔 함께할 이웃 드물고
초경입황원草徑入荒園 무성한 풀 오솔길, 잡초 우거진 뜰로 들어간다.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잠들고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스님은 달빛 어린 대문을 두드린다.
과교분야색過橋分野色 다리를 지나니 들 풍경 분명하고
이석동운근移石動雲根 구름이 움직이니 돌도 따라 움직이는 듯.
잠거환래차暫去還來此 잠시 갔다가 다시 돌아오리니
유기불부언幽期不負言 은거의 약속 어기지 않으리라.
그런데 네번째 구절의 '스님은 달 아래 문을‥‥‥'에서 '민다〔推〕'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두드
린다〔鼓〕로 해야 좋을 지, 여기서 그만 딱 멈추어 버렸다. 그래서 가도는 '推'와 '鼓'의 두 글자만
정신없이 되뇌며
가던 중, 타고 있던 말이 고관의 행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무례한 놈 무엇 하는 놈이냐? "
"당장 말에서 내려오지 못할까!"
"이 행차가 뉘 행찬 줄 알기나 하느냐?"
네댓 명의 병졸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으며 가도를 말에서 끌어내려 행차의 주인공인 고관 앞으로 끌고 갔다. 그 고관은 당대唐代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로, 당시 그의 벼슬은 경조윤(京兆尹:도읍을 다스리는 으뜸 벼슬)이었다.
한유 앞에 끌려온 가도는 먼저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솔직히 말하고 사죄했다. 그러자 한유는 노여워하는 기색도 없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퇴推'보다는 '고鼓'가 좋겠네."
이 사건을 계기로 가도와 한유는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고, 스님이었던 가도는 환속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퇴고란 좁게는 맞춤법에 맞게 어휘와 어구를 고치고 적절하게 문장을 가다듬는 것이지만, 크게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독자에게 바르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즉 시원한 소통을 지나, 출렁이는 감흥까지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대의 최고의 문장가 한유는, 왜 '퇴推'보다 '고鼓'로 바꾸는 것이 낫겠다고 했을까?
퇴推는 ‘추’로 읽는 경우가 더 많으며, 추천推薦처럼 밀어 올리거나 천거하다의 뜻, 추측推測추측이나 추리推理처럼 미루어 헤아리다의 뜻, 그리고 추앙推仰(추앙)처럼 높이 받들다의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