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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김응용 감독이 사장이 됐다. 국내 아마추어와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감독이 구단 사장에 오른 첫 사례다.
그는 지난 1983년 해태 타이거즈 감독을 맡은 이래 22년 동안 그라운드를 지켜온 프로야구의 최장수 감독이었다. 아마추어 경력까지 33년 동안을 감독으로 살아온 셈이다. 해태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선동렬 수석코치에게 감독직을 물려주고 ‘경영인’으로 변신한 김응용 감독이 들려주는 ‘인생과 야구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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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안윤수 사진기자 |
지난 11월12일 오전 대구시 북구 고성동에 있는 대구시민운동 야구장으로 찾아가 만난 김응용(金應龍·63) 감독은 사장으로 승진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김 감독이 아직 정식 취임을 하지 않은 탓에 인터뷰는 감독실에서 이뤄졌다. 감독실 밖 운동장에서는 그가 4년 동안 지도해 온 삼성 라이온즈 구단 선수들이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속에서 시즌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었다.
- 구단 사장으로 승진하신 데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사장 승진을 축하한다는 사람도 있고, 우승 못했다고 감독에서 잘린 것 아니냐며 ‘안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 사모님은 뭐라시던가요?
“남편이 그냥 잘리는 줄 알았는데 사장이 됐으니 좋아하겠죠.”
- 감독 퇴진은 언제 결심하셨습니까?
“아내와 두 딸한테는 1년 전부터 ‘너무 힘들어 이번에는 정말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프로야구 감독은 이겨야 한다는 부담 속에 1년 내내 야구만 생각하며 지내야 하는데, 나이 60이 넘으니 모든 게 힘들게 느껴져요. 다른 팀의 40대 감독들과 싸우는 것도 버겁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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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로 버겁죠.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미국 메이저리그만 해도 경험을 중시하는 전통 덕분에 60대, 70대 감독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가 온통 40대를 중심으로 바뀌고 있잖아요? 조금만 실수를 해도 ‘나이 들어 그렇다’는 얘기나 해대고…. 그런 분위기에서 이 나이까지 감독생활 했으면 됐지, 뭘 더 바라겠습니까?”
-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해도 감독에서 물러나실 생각이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올 시즌을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날 감독 사퇴를 발표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승을 못하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온 거죠. 세상 일이라는 게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 현대와 맞붙은 한국시리즈는 세 차례의 무승부 끝에 9차전까지 이어졌습니다만, 내용상 삼성이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에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솔직히 죽겠더구만요. 하지만 우승을 놓친 감독이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실력이 모자라 졌고, 모든 것은 감독인 내 책임’이라고 했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납디다. 내용을 따져 보면 무승부 세 게임은 우리가 충분히 잡을 수 있었거든요.”
- 투수 교체 시기를 놓친 것을 결정적 패인으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일부에서는 경기 흐름을 읽는 김 감독의 감각이 전보다 무뎌진 것 아니냐는 얘기도 하고요.
“그건 우리 팀의 사정을 잘 몰라 하는 얘기죠. 프로야구 선수들이 대거 연루된 병역비리가 불거지면서 우리 팀의 주전 투수 4명이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전력에 큰 차질이 빚어진 상태로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를 치른 겁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일단 마운드에 올린 투수는 최대한 오래 끌고 갈 수밖에 없었어요. 투수보다 타격에 문제가 있었죠. 타자들의 부진이 정말 심각했잖습니까? 여태까지 치러 본 한국시리즈 가운데 가장 타격이 부진했죠.”
“삼성 선수들은 근성이 없다”
- 타격 부진의 원인은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중심 타선의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진 게 가장 큰 원인이었죠. 거기에 더해 ‘내가 경기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타자들이 너나 없이 욕심을 부린 탓도 컸다고 봐요. 욕심을 내면 힘이 들어가고, 힘이 들어가면 좋은 타격이란 불가능해요. 타자란 자고로 ‘어떻게든 살아나가 다음 타자한테 맡기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옳아요. 단체 경기일수록 그런 자세가 필요한데, 그게 안 돼서 우승을 놓쳤죠.”
삼성 라이온즈 구단은 지난 11월9일 김응용 감독의 사장 승진을 발표하면서 “김 감독이 한국 프로야구와 삼성 라이온즈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점을 고려해 사장으로 승진시키기로 전격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의 사장 승진은 구단의 발표대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김 감독이 구단의 신필렬(辛弼烈)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의 뜻을 전한 것은 일요일인 11월7일이었다. 이틀 뒤인 11월9일 김재하(金載夏) 구단장과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사장 제의를 받은 김 감독은 “처음에는 막막한 심정이라서 고사했지만 감독 출신으로 구단 사장을 맡아 야구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서 수락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감독의 수락 의사를 확인한 삼성 라이온즈 구단은 곧바로 선동렬(宣銅烈·41) 코치에게 연락을 취했다. 등산중이던 선 코치는 전후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대구역으로 달려와 김 감독과 함께 상경해 강남에 있는 구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야구계에서는 라이온즈 구단의 이 같은 전격적인 결정이 한국시리즈 직후부터 ‘선동렬 감독설’이 나돈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했다.
- 선동렬 코치를 후임 감독으로 적극 추천하신 것으로 아는데, 선 코치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하신 건가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코치로 성공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선수들을 대할 때 ‘그 정도밖에 못 하느냐’ ‘그럴 바에야 운동 때려치우는 게 낫겠다’는 식으로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선동렬 코치는 달라요. 우선 선수를 이끄는 리더십이 있고 성실하기도 합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코치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통솔력도 있거든요. 장점이 많은 지도자죠.”
- 선 감독은 이제 40대 초반인데, 감독을 맡기에는 너무 젊은 것 아닙니까?
“그렇게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40대가 다들 ‘장(長)’ 자를 다는 시대 아닙니까? 자질이 충분하니 나이는 염려할 게 없다고 봅니다.”
삼성과 해태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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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요. 그 친구는 선수로 뛸 때도 감독인 저한테 할 말은 하고 따질 것은 따지는 스타일이었어요. 다른 선수는 그렇게 못 합니다. 선수 때부터 배짱이 있고 당당했는데, 나는 그게 마음에 들어요. 면전에서 당당히 얘기하지 못하고 뒤에서 무슨 불만을 털어놓거나 단체행동을 하면 나는 사람 취급도 안 하거든요.”
- 삼성에는 해태 시절의 선동렬 감독처럼 배짱 있는 선수가 없는 모양이죠?
“없어요.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은 근성이랄까, 뭐 그런 게 없어요.”
- 말씀하시는 근성이란 어떤 것을 뜻합니까?
“쉽게 얘기하면 투수가 던진 공에 맞고서라도 살아 나가겠다는 자세죠. 강속구에 맞아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살아 나가겠다는 자세로 타석에 들어서면 투수가 겁이 나서 공을 제대로 못 던집니다. 야구에서는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몸으로라도 때우겠다는 정신력이 필요해요. 슬로 커브가 날아와도 뒤로 물러서며 몸을 사리는 자세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지요.”
- 그렇다면 현역 선수 가운데 가장 근성 있는 선수로는 누구를 들 수 있습니까?
“해태에 있는 이종범이가 참 근성이 있지요. 실력도 뛰어나지만 정말 근성이 대단한 선수입니다. 삼성에는 박한이 한 사람 정도를 꼽을 수 있겠네요.”
- ‘호랑이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던데, 선수들을 직접 꾸짖기도 하십니까?
“명색이 프로 선수들인데 어떻게 감독이 나무라고 말고 합니까. 훈련이든 사생활이든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게 프로 아닙니까?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화를 낼 일이 있어도 감독이 직접 나서면 곤란해요. 감독이 다 해버리면 코치들의 입장도 난처해지거든요. 코치가 좀 세게 나가고 감독은 말리는 척하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삼성 라이온즈 코치들은 너무 순한 편이죠.”
- 해태 때는 분위기가 달랐던 모양이죠?
“그럼요. 해태는 팀의 기강이 확실히 잡혀 있었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선배한테는 꼼짝 못하는 분위기였죠. 삼성은 좀 달라요. 야구 잘하는 놈이 최고이고, 선배도 그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 말씀하신 해태식 분위기가 반드시 옳은 건 아닐 것 같은데요?
“그건 옳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정신과 분위기라야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어요. 단체 경기는 혼자서 아무리 잘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뭉쳐야 이길 수 있는 게 야구입니다.”
- 말씀을 들어보면 삼성의 팀 분위기를 바꿔놓는 게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전통이란 게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거든요. 하지만 내가 팀을 맡고 나서부터는 많이 좋아졌다고 봐요. 그전 같으면 3점만 뒤져도 경기를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최근에는 그보다 많은 점수로 리드당하다가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역전승을 많이 했잖습니까?”
실업야구 한일은행팀을 지도하던 김응용 감독은 프로야구 출범 이듬해인 1983년 김동엽 감독의 후임으로 해태 타이거즈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이후 해태에서만 18년 동안 감독생활을 하면서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은 그가 삼성 라이온즈로 옮긴 것은 2001년이었다.
계약금 3억 원, 연봉 2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의 새 사령탑에 오른 김 감독은 취임 이듬해인 지난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영원한 우승후보’로만 머물러온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제패였다.
“이승엽이 없어도 되니까 그냥 잊어버립시다”
그해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동점홈런과 역전홈럼을 연이어 터뜨린 두 주역이 있었다. 이승엽과 마해영이었다. 삼성 타선의 핵을 이루던 두 선수는 올 시즌 시작 전 각각 일본과 기아 타이거즈로 떠나 버렸다.
삼성은 올해 주포(主砲) 둘을 한꺼번에 내보내고도 리그 2위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셈이었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끝내 ‘한방’을 터뜨리지 못해 잇따른 무승부를 기록한 점을 지적하면서 두 선수의 빈 자리가 컸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 이승엽·마해영 두 선수가 있었더라면 우승이 가능했을까요?
“이제 와서 그런 얘기를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죽은 자식 불알 잡기지…. 둘이 한꺼번에 빠지고 나서 아무래도 타격은 약해졌지요.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단체경기에서는 한두 명 빠진다고 해서 팀 전력에 그렇게 큰 변화가 오지는 않거든요. 지난해 두 선수가 다 있었어도 4위밖에 못했지만, 올해는 둘 다 빼고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잖아요?”
- 이승엽 선수가 일본으로 떠나버리자 상당히 유감스러워 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만.
“승엽이는 거취 관련 기자회견을 하기 10분 전까지만 해도 구단 사장과 단장한테 삼성에 남겠다고 했어요. 기자회견을 하는 날 사장과 단장이 저한테 전화를 해와서 ‘일본 안 간답니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불과 20분이 안 돼서 ‘이거 큰일 났습니다. 일본 간다고 발표해 버렸습니다’라는 전화가 오더라고요. 승엽이가 회견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음을 바꾼 거죠. 그 전화를 받고 나는 ‘요즈음 젊은애들은 신의고 뭐고 없지 않습니까. 세상이 그런데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승엽이 없어도 되니 그냥 잊어버립시다’라는 얘기도 했죠.”
- 많이 서운하셨던 모양입니다?
“서운하고 말고가 아니죠. 그건 신의와 의리 문제 아닙니까. 자기가 한 말은 끝까지 책임지고 의리가 있어야 남자 아닌가요?”
- 일본 진출 첫해 이승엽 선수의 성적이 매우 부진했는데, 원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일본 투수들은 투구 패턴이 우리나라 선수들과 확연히 다릅니다. 좋은 타격을 하려면 투수가 언제 어떤 구질의 공을 어떻게 던질지 수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수를 읽는 능력이 떨어지니 성적이 좋을 수 없지요.”
- 내년에는 잘할 것 같습니까?
“잘해야죠. 승엽이가 지난번 한국시리즈 때 여기(감독실)로 찾아왔기에 ‘너 임마, 한국 돌아와서 야구 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왕 일본 무대에 선 이상 어떻게든 성공하라는 뜻에서 웃으면서 한 얘기였죠. 그날 승엽이도 ‘내년에는 자신 있다’고 하더군요.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는 얘기이니, 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완패해도 내일 완승 가능한 ‘야구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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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돌아오고 싶어한다면야 못 받아줄 이유가 없지요. 그만한 선수가 어디 있습니까.”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열 살 때인 1·4후퇴 때 아버지와 단 둘이 월남했다. 며칠만 피해 있으면 된다는 얘기에 어머니와 형제들을 남겨두고 떠난 피난길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고, 헤어진 가족과의 재회도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김 감독은 부산에 정착하게 됐다.
김 감독은 개성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동급생보다 체격이 컸던데다 타고난 운동감각이 있었던 그는 부산상고와 한일은행을 거치면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실업야구 리그전에서 두 차례 홈런왕을 차지했고, 아마추어 선수의 금메달격인 ‘국가대표팀 4번 타자’ 자리에도 올랐다. 선수와 감독을 통틀어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명성을 날린 야구인도 드물다. 그러한 김 감독이 스스로의 야구 인생은 어떻게 돌아보는지 궁금했다.
- 야구가 어떤 매력이 있다고 느끼십니까?
“오늘 10대 0으로 이겨도 내일 1대 0으로 질 수 있는 게 야구입니다. 오늘 완패당해도 내일 압승할 수 있는 게 또 야구죠. 일종의 ‘도깨비 운동’인데, 이게 야구의 매력이죠. 세상 사는 것도 그렇잖아요? 오늘 비록 어려워도 내일의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 매력이 있기 때문에 팬들도 야구장을 찾는 것이고요.”
- 감독생활을 하면서 ‘우승 제조기’라는 별명까지 얻으셨는데, 특별한 승리의 비법이라도 있습니까?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죠. 평범하기 그지없는 얘기지만, 운동경기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승리의 비법은 없어요.”
- 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상대와 싸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럴 때는 근성으로 뭉쳐야죠. 근성으로 똘똘 뭉쳐 덤비면 우승을 못할 이유가 없지요. 그런 점에서 나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8개 구단이 모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봐요. 언제든지 이길 수 있어야 프로이고요.”
- 한 해 100회가 넘는 경기를 치르려면 반드시 이겨야 할 경기와 그렇지 않은 경기를 구분하는 판단력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에이스급이 아닌 투수를 선발로 내세우면 ‘이건 버리는 경기인가보다’ 하고 생각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는 감독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투수라고 해서 날이면 날마다 두들겨 맞는 것은 아닙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투수인데 그날따라 기막히게 잘 던질 수 있죠. 안타를 많이 내줘서 10점 차로 지고 있더라도 찬스만 오면 한 회에 10점을 낼 수도 있고요. 그게 야구입니다. 때문에 어떤 게임이든 9회가 끝날 때까지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감독입니다.”
- 당연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한 순간도 야구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에 이겨도 걱정, 지면 더 걱정인 신세가 바로 감독입니다. 그렇다 보니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감독생활 2∼3년만 하면 다들 위장약이다 뭐다 해서 약을 한 주먹씩 먹어 가면서 버티죠.”
-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십니까?
“젊었을 때는 술로 풀 때가 많았습니다. 꼭 이겨야 하는 경기를 놓친 날은 맥주와 소주를 비벼 마시고 골아 떨어지면 분이 조금은 사그러들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 술을 자제하면서부터는 등산을 주로 했습니다. 대구로 옮겨와서는 시합이 있는 날은 앞산, 시합이 없으면 팔공산에 주로 갔죠. 야간경기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마무리까지 끝내면 새벽 1시 가까이 되는데, 그 시간에 플래시 들고 숙소 뒷산에 오를 때도 많았죠.”
- 화가 나면 더그아웃에 있는 의자를 집어던질 정도로 다혈질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감독 하면서 의자 집어던진 것은 40대 때, 그것도 딱 두 번밖에 없습니다. 젊었을 때의 얘기죠.(웃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성질을 못 이겨 그랬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어떤 반응이 나타나리라는 것을 미리 다 계산한다는 얘기입니다.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지 않는 기미가 보이면 ‘이거 분위기 한번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 거죠. 감독생활을 하면서 경기와 관련해 아무런 계산 없이 무슨 행동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도 그런 전략에서 하는 것인가요?
“물론이죠. 감독이 항의한다고 판정이 번복되는 일은 없거든요. 하지만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가 심판과 언쟁하는 모습을 보이면 선수들한테서 바로 반응이 옵니다. ‘감독이 저렇게 열을 내서 하는데 우리도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다들 하거든요. 그게 계기가 돼서 경기 흐름이 바뀔 때도 많아요.”
“후회를 달고 사는 게 야구 감독의 숙명”
- 야구를 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시합에서 지면 후회하고, 성적 나쁘면 또 후회하는 게 감독의 숙명이죠. ‘내가 뭐 하러 야구를 했나’ 하는 생각을 늘 달고 살지요. 야구 감독은 다 그런 고민을 합니다.”
- 지난번 한국시리즈 때는 현대의 김재박 감독과의 신경전이 언론에 보도돼 얘깃거리가 됐는데요?
“그건 언론이 부풀려 보도한 것입니다. 나는 김 감독과 신경전을 벌일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기사를 재미있게 쓴다고 해도 사람을 싸움 붙이는 식으로 쓰면 안 되지요.”
- 평소에도 언론과의 관계가 썩 좋지 않은 것으로 소문이 나 있던데요?
“언론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게 아니라, 일부 젊은 기자들과 마찰이 가끔 있다는 게 옳은 표현입니다. 열심히 하는 기자들한테는 참 미안한 얘기지만, 기자들의 취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일본만 해도 야구 담당 기자를 따로 뽑아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꺼번에 기자를 뽑아 야구·축구·연예부 등으로 순환근무를 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야구를 알 만하면 다른 부서로 가 버리는 경우가 많죠.
내가 그래도 30년 넘게 감독생활을 해온 사람인데, 야구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이 없는 20대의 젊은 기자가 자꾸 엉뚱한 질문을 하면 혈압이 올라 마찰이 일어날 때가 가끔은 있지요. 언론계의 현실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우리도 전문기자들을 따로 뽑거나 붙박이 기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합니다. 최소한 5년 정도는 현장을 지켜봐야 어느 정도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프런트 ‘간섭’과 싸워 이긴 덕분에 長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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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공사장의 노무자가 됐겠죠. 덩치 하나는 좋으니까요.”(웃음)
- 감독생활을 하면서 연봉 등에서 충분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실정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태 시절에는 구단 사정이 별로 안 좋았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예우해 준 셈이었고, 삼성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를 해주었고요.”
- 삼성에서 받은 연봉이 2억 원이었는데, 감독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를 보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프로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게 프로죠. 야구 선수들이 외제차 타고 다니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프로의 세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실력만큼 받고, 받은 만큼 뛰는 게 프로거든요.”
- 프로야구가 좀더 일찍 출범했더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현역 때 프로야구가 생겼더라면 감독은 하지 않았을 걸요? 주변 사람들한테 우스갯소리로 ‘나는 아마추어 때 돈을 못 벌었기 때문에 처자식 먹여살리려고 프로야구 감독 한다’는 얘기를 자주합니다.”(웃음)
-해태에서 삼성으로 옮긴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원래는 감독생활을 해태에서 끝내려고 했습니다. ‘자리 옮겨 돈 몇푼 더 받아봐야 뭐 하나’ 하는 생각에서 다른 팀의 영입 제의를 몇 차례 거절한 적도 있고요. 그렇게 18년을 지냈으니 해태 구단도 내가 할 만큼 해주었다고 생각했겠지요. 삼성에서 감독 제의가 왔을 때는 해태 측에서도 ‘한번 가서 해 보시라’며 기분좋게 보내줬죠. 구단이나 저나 모두 웃으면서 자리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 삼성에서는 목표를 달성하고 물러나시는 건가요?
“삼성으로 이적해 올 때 얘기를 나눈 인사가 구단 사장을 지낸 전수신 씨였습니다. 그분이 ‘우리가 김 감독을 모시려는 것은 김 감독의 스타일이 좋아서 그런다’며 ‘그 스타일을 삼성에 한번 심어 달라’고 합디다. 그 얘기를 듣고 ‘한번쯤 자리를 옮겨보고 감독생활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나중에 5년이 됐지만 처음 얘기가 오간 계약 기간은 3년이었습니다. 3년 안에 한국시리즈 우승 한번 못하겠느냐는 믿음을 갖고 자리를 옮겼죠. 이적해 온 이듬해 우승했으니 그 목표는 달성한 셈이죠.”
- 계약 기간이 1년 더 남아 있었는데, 임기를 채우면서 한번 더 우승에 도전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욕심도 없지 않았지만, 세상 일이 욕심대로 됩니까. 마침 좋은 감독 후보감도 있고 해서 물려주기로 결심한 것이죠.”
- 감독 출신 사장이다 보니 팀 운영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는 야구계 인사들이 많던데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나는 감독으로 있을 때도 사장이나 단장이 팀 운영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했어요. 감독을 맡아 팀을 운영하다 보면 구단 프런트의 이런저런 간섭을 막는 게 참 힘듭니다. 그것을 못 이겨내기 때문에 프로야구 감독들이 수시로 바뀌는 측면도 있어요. 나는 싸워 이겼기 때문에 30년 넘도록 감독생활을 할 수 있었죠. 내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해태 때는 물론 삼성에서도 사장이나 단장이 팀 운영에 무슨 주문을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감독생활을 해온 사람이 사장이 됐다고 팀 운영에 간섭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메이저리그 경기가 국내에 생중계되면서부터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재미없다”는 야구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선수들도 실력이 뛰어나고 좋은 경기 합니다. 미국은 좋은 시설을 갖춘 화려한 분위기의 야구장에서 경기를 하니 좋게 보이는 것이죠.”
- 병역비리로 적잖은 선수가 사법처리되거나 입대하는 바람에 내년도 프로야구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일부에서는 경기 수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지 않습니까?
“게임 수는 줄이면 안 됩니다. 선수가 부족하다면 외국인 선수 정원을 늘리면 됩니다. 외국의 실력 있는 선수를 불러다 놓고 재미있고 수준 있는 야구를 해보이면 팬들도 좋아할 걸요?”
- 외국인 선수가 늘어나면 국내 선수들의 설 땅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 아닙니까?
“입으로는 국제화를 얘기하면서 생각은 왜 그런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국내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아니, 프로야구가 무슨 실업자 구제소입니까. 외국의 우수한 선수를 데려와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주면 팬들이 경기장으로 몰릴 것이고, 그렇게 해서 시장을 키워나가야 야구시장도 커지는 것 아닙니까. 시장이 커지면 선수들의 연봉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고요. 왜 그런 식으로는 생각을 못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 하지만 국내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실력이 썩 뛰어난 것 같지는 않던데요?
“외국인 선수의 연봉이 20만 달러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규정에 걸려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사회주의 국가의 공무원도 아닌데, 연봉 상한선을 둔다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얘기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정은 하루라도 빨리 뜯어고쳐 좋은 선수를 데려와야 해요. 그래야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발전할 수 있어요.”
“넥타이 매일 매야 하는 게 가장 큰 고민”
점심 약속이 있다며 거듭 시계를 쳐다보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사장 취임 후 감독생활이 그리워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의 답변은 이러했다.
“시원섭섭하다는 얘기를 그래서 하는 것 아닙니까. 워낙 오래 했으니…. 하지만 감독을 다시 맡으라고 하면 정말이지 못할 것 같아요. 워낙 힘든 직업이니까요.”
오는 12월1일 정식으로 취임하면서 ‘사장’ 직함을 쓰게 될 김 감독은 “야구인들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구단 경영도 열심히, 그리고 멋들어지게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목이 갑갑해 넥타이를 매는 것은 질색”이라면서 “사장 취임하면 매일 아침 넥타이 매고 출근해야 할 텐데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월간중앙 2004년 11월 19일 0호 / 2004.12.03 15:32 입력 / 2004.12.03 16:02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