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의 가을
내가 설악을 찾은 것은 잊혀져가는 가을의 진수를 맛보기 위함도 있지만 지나간 세월의 추억을 더듬고자함도 있다.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는 마음은 내 인생이 가을로 보내지고 있다는 깨달음 일지도 모른다. 가는 날 설악을 꿈꾸었지만 수많은 차량과 인파가 밀려오는 바람에 마음을 바꿔 고즈넉한 산사 백담사의 절경을 감상키로 했다. 지인의 덕분에 델피노 콘도에 숙소를 정하고 미시령 터널을 넘어 내설악 가을 풍광의 진수인 주전골과 백담사를 관전 포인트로 정하고 우선 10월18일 오전 일찍 백담사입구를 찾았다. 이곳도 만만치 않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7대의 셔틀버스가 용대리 주차장에서 백담사로 37명씩 태워 들이고 보내기를 반복한다. 인생의 추억을 담으려 몰려온 다 같은 동포들이 수 만 명이다.
그렇다.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세월이 흐르면 없어지는 법.
단지 길 위에 먼지처럼 날리고 바람처럼 날아다니는 것이요.
미풍에도 흩어져 굴러다니는 이것은 인생의 무상한 몸이라,
이 땅에 태어나면 모두가 동포이러니
어찌 반드시 골육지친만을 따지려 하는가.
만나는 이 마다 모두가 형제요 지친인 것을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몸에 익숙한 인파들은
너무도 다정한 백담사의 부모형제들이다.
좋은 일 생기면 나누어 즐기고 서로 사랑해야지
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이 두 번 있기는 어려운법
때를 알맞게 맞이하여 인생의 풍요를 즐겨야만 하는 것이니
어찌 세월이 사람을 기다리겠는가.
동포여 오늘의 즐거움과 풍족함이 이 땅에 태어난 복일진대
영시천 호박돌로 돌탑을 쌓지 않을 텐가
가을에 몸을 담그려고 몰려든 남녀노소 인파가 이곳이 명산임을 말해준다. 백담사 입구 영시천 수심교(修心橋)돌다리를 걸어가면 좌우로 하천에 즐비한 수 수 백 개의 돌탑들을 바라볼 수 있다. 이 아기자기한 돌탑들은 오가는 이의 절절한 기도를 적고 있다. 바닥은 호박돌 꼭대기는 밤 돌로 정성스럽게 인생을 쌓아 놓았다. 이 기도의 주요 내용은 이 흙에서 태어난 나에게서 부디 행복을 빼앗지 말아달라는 절실한 기원문이다.
백담사의 경내에는 유명소가 2곳이 있다. 하나는 극락보전 앞 좌측건물 두 번째 방 전두환 대통령이 기거하던 곳이고 다른 하나는 만해 한용운 선사의 기념관이다. 내가 들른 곳은 만해 한용운 선사의 기념관이다. 이 분의 이력은 이미 전 동포가 알고 있는 터라 피상적으로 눈요기만 하는 코스다.
님의 침묵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나의님은 갓슴니다 푸른산빗을깨치고 단풍나무숩을향하야난 적은길을 거러서 참어떨치고 갓슴니다 黃金의꽃가티 굿고빗나든 옛盟誓는 차듸찬띠끌이되야서 한숨의 微風에 나러갓슴니다 -중략-우리는 맛날때에 떠날것을염녀하는 것과가티 떠날때에 다시맛날것을 믿슴니다 아아 님은갓지마는 나는 님을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 제곡조를못이기는 사랑의노래는 님의沈默을 휩싸고돔니다
기념관 입구 우측에 시 님의 침묵이 커다란 액자 속에 있었다.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 울부짖는 어린아이(2천만 민족)가 어머니를 향에 고사리 손을 내밀며 먹을 것을 달라고 애원합니다. 쳐다보는 어머니(조국)는 말이 없습니다. 애처로운 광경이 백의민족의 감성으로 녹아내립니다. 젊은 피가 억압당하고 청춘이 불살라지는 시대의 통증이 통열 합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조국이 언젠가 다시 해방을 맞이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임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천만 동포가 조국을 버리지는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힘에 부친 해방의 절규는 희미한 불빛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울부짖는 아이를 말없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해방의 절규는 어머니의 침묵을 피 눈물로 휩싸고 돕니다. 흐느끼며 울부짖는 어린아이를 그냥 두고 어머니는 떠나갔습니다. 울부짖다 지쳐 죽은 아이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 곡조를 이기지 못하는 설음에 침묵만이 흐릅니다. 무려 36년간을....
가슴이 콱 막히는 심경을 마지막 후렴은 눈물을 핑 돌게 하는 문장이 기가 막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 란 글에 눈물이 맺히고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돈다.’는 구절에서는 어깨가 들먹이는 울음을 느껴야 했다. 살아보려고 애걸하는 아이(힘없는 민족)의 절규 같은 함성을 침묵하는 어머니 주위에 메아리 쳐지는...
이 상황이 김소월의 초혼과 맥이 같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대답) 없는 이름이여’ 어머니라는 이름과 조국이라는 이름이 작자에게는 없어진 이름이다. 절절한 아픔을 느껴보는 순간이다.
한 줄이 시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을 움직인다. 한용운의 4자성어 風霜歲月 流水人生이란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여러 가지 문장들이 즐비하지만 모두 감상하기에는 시간이 허락지 않았다. 용대리로 점심식사를 하기위해서는 백담사 체류시간을 12시로 한정하고 자유 관광을 했다. 나는 3.8키로의 영시암(永矢庵:영원히 맹서하고 서약한다는 이들이 기거한 암자로 명명)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수심교 우측의 오솔길을 따라 낙엽 밟으며 산행을 시작했다.
올해는 단풍이 그리 곱지 못하다. 올 늦여름 가뭄 탓이라고도 하고 지구 온난화 영향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영시암에 이르는 길은 평온한 길이고 안전한 길이며 편안한 길이라 남녀노소 모두가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초입에는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소나무 등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었고 명경수는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같은 곡조로 노래한다.
영시천변에 간간이 짙은 빨강의 단풍이 가을의 진수를 비춘다. 하천은 하얀 돌들이 널부러저 있고 모래마저 흰 빛을 발하며 50여 미터의 폭에 두 갈래로 명경수가 흐른다. 가을 진수의 서정을 제대로 느끼려면 백담사 영시암 코스를 밟는 것도 좋다.
가을 여행은 이 나이에 산책하듯 천천히 걷는 게 제격이다. 두 발로 떨어진 낙엽을 누루며 걸어갈 때 사색은 깊어지고 눈은 즐겁고 마음엔 풍요가 깃든다. 아담한 동네 숲길 같은 느낌으로 시간 반을 걸으면 영시암이 나타난다. 자고로 이 길은 수많은 이들이 오고간 길이다. 길가의 산천은 그대로되 오가는 이는 옛사람들이 아니니 오늘 오가는 사람도 후일에는 이곳에 오지는 못할 것이다. 바람은 단풍잎가에 살랑거리고 물소리 곡조가 평안한데 주위의 아름다운 단풍도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인가. 나이가 60이 넘었음을 씁쓸히 눈가에 미소 짓는다. 어제 밤 마신 안동곡주가 오늘의 심정을 대변하지는 못하지만 젊은 날의 기상은 간곳이 없고 묵묵히 다리아픔을 속으로 삭이고 스러진 고목을 다정스레 응시하며 청명한 하늘가의 산봉우리에 다시는 만날 수 없음을 전했다네.
영시암 산사는 그 옛적에 자연과 벗하며 운명을 지탱하기로 맹서했던 이들이 숨 쉬었던 곳으로 고단한 이력을 지닌 암자다. 지금은 호화스런 인간들이 풍광과 눈요기로 둘러보는 장소로 전락했지만 돌아보면 세상사와 인연이 맞지 않아 천명을 어기지 않으려 이곳에 몸을 의지한 이들의 뜻과 같이 영시암이라 명명 했으리라. 젊음의 마음 같아선 오세암 까지 진군할 수 있으련만 시간이 촉박한 일정으로 회군하는 군사의 심정이 그리 넉넉하지는 못하다. 사랑하는 부인이 옆에서 잘 잘못을 채근 거린다. 당신도 무릎 관절로 성치 않은 몸인데 여기까지 동행해준 지성이 감사하다.
단풍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물가의 단풍이 제격이다. 수분을 머금은 이파리가 기온차로 물들어갈 때 그 아름다움이란 형언하기 어렵다. 올해 백담사는 아쉽게도 가뭄의 여파로 그 진수를 맛보지 못했다.
남아 60년에 수명을 즐길 것이니
무엇 때문에 부귀명예를 추구할 건가
나이에 걸맞게 육골이 건강해야할지니
무엇 때문에 절개를 고수하여 풍진을 달게 받겠는가
2014년 10월 20일
이 율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