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마 5:16, 요 17:18, 20:21
제목 : 선교적 삶을 향한 보내심(1) 우리는 모두 선교사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요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요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이 귀한 날 복된 날 주의 전을 향하게 하시고 주의 전에 함께 모여 찬양하며 경배하며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또 말씀 듣습니다. 성령 하나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히 말씀하시고,
우리가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내가 누구인지, 주의 음성을 통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들어가는 말 : 선교적 삶
인도의 유명한 정치적 리더였던 마하트마 간디를 아시죠.
그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천국을 말하지만, 천국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 간디 -
뼈 아픈 지적이죠. 이런 지적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마태복음 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는 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선교적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적 삶이 무엇입니까?
"선교적 삶"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선교적 삶이란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이든지, 내가 그곳에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헌신하는 삶을 말합니다.
* 만약에 내가 가정주부라면, 나는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명을 가진 선교사다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섬기고, 믿지 않는 친지나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도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희생과 사랑과 섬김으로 우리 집안의 아이들과 시부모님들을 전도하는 선교삽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 내가 만약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나는 우리 교실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을 가진 선교사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학생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안아 주고, 성실한 마음으로 교과목을 가르치고,
동료 교사들을 섬기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 내가 만약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요 간호사라면, 나는 우리 병원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섬기는 의료선교사다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환자들의 병든 육체만을 위해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상처받은 영혼까지 위하여 돌보고 기도해주는 그런 일터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 또, 내가 만일 사업가라면,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 사업을 허락하셨을까 물으면서 나만의 만족과 편함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내가 받은 복 나누어 주고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업을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지난 번에 다녀왔던 오럴 로버츠 대학의 이사장인 마트 그린 회장은
10의 5조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드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직장에서는 사원들이 투잡을 뛰게 해서는 안된다 하는 원칙을 가지고 해마다 월급을 올려준다고 합니다.
그는 미국 내에서 하비러비라고 하는, 한국의 이마트와 같은 매장을 아홉 개나 갖고 있는데,
수백 조원을 가진 재산가가 그렇게 수수하고 겸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매 해 오럴 로버츠 대학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 수백 억을 기부해 왔는데,
이번에도 그의 기부로 오럴 로버츠 대학에 네 개의 건물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네 개의 건물을 짓고 있는데, 마트 그린 회장이 75%의 재정을 대 줬어요.
나머지 25%는 학교가 노력해서 매칭펀드를 해라, 그렇게 돕는 거예요.
그는 그 기업의 세 가지 경영 원칙을, 이번에 그와 함께 식사를 하는 시간에 소개를 했습니다.
"Generosity(관대함), Humility(겸손), 그리고 Integrity(성실성, 진실성)"
이것이 그가 기업을 운영하는 원칙입니다.
저는 이번에 한 진실된 크리스천 기업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는 현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선교적 삶,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 편함을 내려놓고 내 이익을 포기하고, 내가 좀 더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가 좀 더 희생하고, 더 많이 내 것을 나누고, 주고, 수고하고 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선교적 삶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선교적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선교사로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선교적 삶을 살라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우리가 보냄 받은 사명자로서 선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 깨닫고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2. 『담장을 넘는 크리스천』
최근에 제가 읽었던 책 가운데 저에게 많은 통찰력과 감등을 준 책이 있는데,
그 책은 미국 로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써밋교회의 담임목사인 J.D.그리어 목사가 쓴『담장을 넘는 크리스천』이란 책입니다.
이 담장은, 교회의 담장을 넘는 크리스천이다 그런 말입니다.
그리어 목사는 이 책에서 제가 그동안 생각해 오던
교회와 크리스천들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서 아주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한 마디로 표현하기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보내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가장 소중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분이다라는 거죠.
우리기 성경을 읽어 보면, 진실로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아주 대표적인 예가 하나님께서 좁게는 야곱 일가 칠십 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넓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에 먼저 보내신 사건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요셉의 생애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보냄을 받은 삶이었다라고 할 수 있어요.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 열일곱 살 때 억울하게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서
십삼 년 동안 노예살이와 심지어는 감옥살이까지 했던 요셉은 비록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마침내 자기를 팔았던 형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창세기 45:7-8절 보면 이렇게 고백했지요.
(창 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애굽으로 먼저 보내심을 받았던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선교사라고 하셨던 겁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족장들과 선지자들과 사사들과 왕들과 그리고 천사를 보내신 기록으로 가득 차 있어요.
하나님께서 때로는 광야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내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그리고 물을 보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3. 보내시는 하나님
그렇습니다. 그리어 목사의 말대로 우리 하나님은 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내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일상에서도 매우 보편적인 모습이죠.
부모는 매일 우리의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때로는 자녀를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장성한 아들은 군대에 보내기도 하고, 또 딸은 시집을 보내지요.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국내나 혹은 외국으로 출장을 보내기도 하고,
국가는 외교관들을 다른 나라에 보냅니다. 파송하는 거지요.
또, 나라에서 자국의 군대를 해외에 전쟁터와 같은 곳에 보내는 파병하는 것도 있지요.
또, 우리 교회에서는 선교사들을 세계 각처에 파송합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삶에 보편적으로 나타나 있는 이 보냄의 모습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하는 것을 아십니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보냄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 먼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지요.
옛적에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성부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모든 날 마지막이 되어서
성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아들을 통하여 친히 말씀하셨다고 히브리 기자는 말씀하지요.
히브리서 1장 1-2절 보면, 분명히 그렇게 말씀합니다.
이에 대해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시기 전, 성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요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부활하신 이후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동일하게
(요 20:21)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하셨어요.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성자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고,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보면, 에수님은 무려 44번이나 보냄받은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보냄을 받은 분이다]
- 이렇게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보내셨어요.
그런데,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요 14: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오는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 16:7)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아멘!
* "보혜사"라는 말은, '도우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세요.
그런데,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통해서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내심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고,
"보내심"(missio)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내심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무의미한 행위가 아니었어요.
이것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주안대학원 대학교 정승연 교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내심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 인생들이 죄악에 빠졌을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분의 선교적 행동이라고 지적을 합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불순종의 죄악으로 인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떨어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선지자들과 사사들과 왕들과 같은 당신의 종들을 끊임없이 보내시고
마침내 마지막 때에 성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분의 선교를 하셨다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런 맥락에서 라틴 말 미시오(Missio)라는 말은, 보낸다라는 단어입니다.
미시오(Missio)라는 말이 샌딩sending(보낸다)라는 단어인데,
이 미시오라는 말은 단순히 보낸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선교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없어요. 그것의 동의어로 보내심, 오늘 본문에 보내심이라는 단어가 사용됐어요.
그러므로 그리어 목사가 이 책에서 올바로 지적한대로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보내시는 하나님(Missio Dei)이세요. 즉, 선교적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본성예요.
4.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심
그런데 사랑하는 주안의 성도 여러분,
사도 요한은 기록하기를, 이렇게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저와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두 번,(오늘 본문 읽었지요) 이렇게 강조하셨어요.
(요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그들(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요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받기 이전이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 대해서 주신 교훈이 있다 하는 걸 알게 되지요.
그것은, 성자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에 의해 세상 가운데로 보내심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선교의 수행자가 되셨던 것처럼,
주님은 또한 우리를, 교회(그리스도인들을)를 세상에 보내신다라는 사실입니다.
주안교회 성도 여러분,
바로 여기에 교회의 본질이 무언가를 우리가 알 수 있어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 보내신 하나님의 선교적 도구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있고,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데 있습니다.
선교는 교회가 감당해야 될 여러가지 의무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예요. 선교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보내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선교하는 하나님이시기에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선교 공동체인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있는 것이지, 교회가 있기 때문에 선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냄받은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철저하게 선교의 주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 언제나 자발적으로 동참해야 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가 바로 선교적 교회입니다.
5.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다 보냄을 받은 선교사들이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은 보내시는 하나님이시고, 또 교회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선교적 공동체라면
의심할 여지없이 선교공동체의 지체들인 우리 모든 성도들은 다 그분의 보내심에 감사함으로 응답하고 선교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셔서 선교적 삶을 살았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라면,
우리들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우리의 세상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무실에서 시장에서 현장에서, 가게에서, 일터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분명하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기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며 따르기로 결단한 우리는 모두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자들, 즉 선교사들입니다.
* 우리는 그동안 선교사라고 하면, 신학교에서 선교훈련 받고 안수받고 파송되는 선교사들만 선교사라고 생각해 왔어요.
맞아요. 맞습니다. 그들은 전문적인 선교사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선교사라는 말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아요.
대신 우리가 방금 설명했던 "보냄"이라는 단어만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보냄"
그리고, 성자 예수님이 바로 그 단어를 우리를 향해 사용하셨어요. 우리를 향해 사용하셨다구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따르기로 결단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예수님이 이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 - 뭡니까? 선교사로 파송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보냄받은 자들 즉, 선교사들이라는 말씀이죠.
목사들이나, 혹은 안수 받고 해외로 파송된 선교사들만이 선교사가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보냄을 받는 이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예요,
그래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 아니면, 그리스도인인 체 하는 사기꾼이다"
- 찰스 스펄전 목사 -
* 내가 선교사라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이 다 선교사라는 겁니다.
앞서 소개한 『담장을 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서 그리어 목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요번 여름에 더운데 여러분 선풍기 틀어놓고 이 책 꼭 한번 읽으시면 좋겠어요)
" '사역에로의 부르심'이 소수의 특별한 그리스도인에게만 일어나는 2차적인 경험이라는 오해가 교회에 팽배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적 엘리트에게만 사역을 맡기고, 나머지 사람의 역할은
사역자가 준비한 행사에 열심히 참여해서 돈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선교 사명을 방해하는 거짓말은 없다."
- J.D. 그리어 『담장을 넘는 그리스도인』 -
그렇습니다. 소위 말해서 성직자, 목사, 신부, 수녀들만 선교사역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은 오해라는 거예요.
심지어 과격한 표현을 했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일찌기, 16세기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한 겁니다. 그것이 옳습니다.
16세기 로마 천주교회는 '소위 성직자, 즉 신부 수도사 주교 수녀 등 성직자들은 신령한 직분을 맡은 자들이다,
일반 신도들은 세상적인 일을 하는 세속적 신분을 가진 자들이다' 부르면서
철저하게 성직자와 일반 신도를 구분했어요. 자기들만 특권을 받은 것처럼, 지금도 비슷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아요.
그런데, 마틴 루터가 그렇게 구분하는 것을 로마 교회의 철저한 위선이고 기만이다라고 지적하면서
몇 가지 논문을 써서 배포를 했어요. 그 중의 하나가, 『독일 귀족에게 주는 글』이라는 책인데, 아주 소책자입니다.
거기에 이렇게 얘기해요.
"복음을 통하여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고 세례 받은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동등한 신분을 가졌다"
- 마틴 루터 『독일 귀족에게 주는 글』 -
그 다음에, 『기독자의 자유』라는 소 논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죄와 죽음의 노예로부터 해방된 모든 평신도는 사제 계층의 중재 없이도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고 지성소인 하나님 앞에 홀로 나아가 이웃을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올릴 수 있다"
- 마틴 루터 『기독자의 자유』 -
* 바로 지적했어요. 성경은 뭐라 그럽니까?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아멘!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아멘!
※ 모두가 다, 언제라도,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왕같은 제사장이란 말씀이죠.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받아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은 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처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세요.
우리 모두는 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영역 속에서 선포하라는 명령(벧전 2:9)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자들, 즉 선교사들입니다. 아멘!
6. 선교적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라
그렇다면, 우리는 보냄받은 선교사로서 이 사명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습니까?
제가 일전에 우리 교단에 세계선교부장을 할 때에 만났던 한 선교사님이 저한테 이런 의미있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크리스찬들은 성경을 읽지만, 세상 사람들은 우리 크리스찬들을 읽습니다."
* 여러분, 이것은 참 중요한 얘깁니다.
저는 이 말이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참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성경을 읽지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읽는다는 거예요.
우리를 보고 있다는 거지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후서 3장 3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그리스도의 편지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읽지만, 세상 사람들은(안 믿는 사람들은) 우리를 일고 있어요.
우리를 읽어서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선교적 삶으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일터 선교사로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어야 돼요.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낼 수 있어야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제는 더이상 '예수천당 불신지옥' 외친다고 전도가 되는 시대는 지났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당신이 믿는 예수가 누군지 궁금해서 나도 교회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이 나타날 때,
그게 우리가 선교적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예화 : 김진수 장로의 '선교적 삶과 비즈니스 선교' 『선한 영향력』
여기 선교적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있는 한 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진수 장로님, 캐나가 인디언들의 자립을 돕는 기업인 긱섬(GIXTM)이라는 회사의 대표입니다.
김진수 장로님은 원래 미국 시민권자인데, 우연히 방문했던 캐나다에서 만난 캐나다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 그에 순종하기 위해서 BAM -비즈니스 에스 미션이라는 선교단체에서 파송받아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쓴 책이 선교적 삶과 비즈니스 선교라는 내용을 갖고 있는 『선한 영향력』이란 책입니다.
김진수 장로님은 캐나다 인디언들의 자립을 위해서 자연산 송이버섯을 채취하고 유통하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판로가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수출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데,
미국 세관이 워낙 깐깐하게 검수를 하니까 이 자연산 송이버섯이 자꾸 부패하는 거예요.
아마도 보통 사람들 같으면 다 포기하고, '아, 이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가 보다' 하고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김진수 장로님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세관의 깐깐한 검수과정에서 송이버섯이 부패하게 하지 않으려고 고민하다 보니까
송이버섯을 건조하고 가공하는 창고를 겸한 공장을 짓게 됐어요.
단순히 송이버섯을 자연산으로 채취해서 판매하는 것보다 더 많은 캐나다 인디언들을 고용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송이버섯 만이 아니라 차가버섯, 고사리 등 다른 임산물도 이 공장에서 건조하게 되면서
부가가치가 더 증대하게 되고, 더 많은 캐나다 인디언들을 고용할 수 있게 됐어요.
김진수 장로님이 긱섬(GIXTM) 이 회사를 세우면서 내 건 회사의 가치는 세 가지입니다.
[정직, 나눔, 자립] - 말이 쉽지만, 이것을 실천하는 게
더더군다나 이익을 내야 하는 회사가 이것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럼에도 김 장로님과 긱섬은 캐나다 인디언들의 자립과, 또 기업의 성장을 꾸준이 이뤄가고 있어요.
그의 고백입니다.
"선교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시간이 날 때마다 이웃에게 전도하면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일까?
단기선교에 열심을 낸다는 말일까? 선교사가 된다는 말일까? 아니다.
선교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삶 자체가 선교가 되는 삶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삶을 보고 '저런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
'나도 저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삶이 선교적 삶이다.
그러므로 선교적 삶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성공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삶을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선교적 삶이다."
- 긱섬(GIXTM)의 대표, 김진수 장로 -
7. 나가는 말 : "선교적 삶으로 복음의 빛을 비추는 교회"
사랑하는 주안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선교적 삶으로 복음의 빛을 비추는 교회"입니다.
우리 한 번 다같이 외쳐 볼까요?
선교적 삶은 "선교적 삶으로 복음의 빛을 비추는 교회다!"
기억합시다. 우리 모두 삶의 현장으로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 내가 하나님의 빛을 이 어두운 세상에 밝히기 위하여 파송받은 일터 선교사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삽시다.
그래서 때로는 손해본다 할지라도,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맙시다.
손해보며 삽시다. 양보하며 삽시다. 용서하며 삽시다. 사랑하며 삽시다. 세상 사람들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삽시다.
그래서, 당신은 왜 그런 바보같은 삶을 사느냐고 묻거든, 예수님 때문이라고 대답합시다. 예수님 때문이라고...
바라기는, 우리 모두 이런 선교적인 삶을 통해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므로
내가 선 곳이 그곳이 어디든,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그곳이 거룩한 땅이 되게 하고,
그래서 그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데 쓰임받는
귀한 일터 선교사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주안의 모든 성도들이 우리 각자가 주님으로부터
우리의 삶의 현장에 보냄을 받은 일터 선교사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어둔 세상에 밝히기 위해서 보냄받은 일터 선교사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살게 하시고
선교적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왕같은 제사장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