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산부(完山府)
거대한 규모의 번화한 도시 / 槃槃一都會
형승 또한 남방의 으뜸이어라 / 形勝冠南方
삼국시대 말기에는 정족(鼎足)의 형세 이루었고 / 割據當三季
신령스러운 분에 의해 길상(吉祥)의 문 열렸나니 / 神靈啓百祥
당 나라 왕가(王家)의 농서군이요 / 唐家隴西郡
한 나라로 말하면 풍패(豐沛)의 고장 / 漢代沛豐鄕
누각이 높이 구름 기운에 통하니 / 樓閣通雲氣
찬연한 오색 광채 길이 우러르리 / 長瞻五色光
-당 나라 …… 농서군이요 : 당(唐) 나라를 세운 고조(高祖) 이연(李淵)이 농서(隴西) 성기(成紀) 출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唐書 卷1》
-풍패(豐沛) :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곳으로서, 후대에 제왕(帝王)의 고향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史記 卷8》
계곡선생집 제28권 / 오언 율시(五言律詩)
장수현에서 수재(守宰) 장중회에게 보여 주다[長水縣示張宰仲會]
호남의 저 바깥 이름난 고을 / 湖外知名縣
산천의 수려함이 성곽을 에워싼 곳 / 溪山擁郭淸
영기(靈氣) 서려 이루어낸 간세(間世)의 기품(氣禀) / 炳靈鍾間氣
태평 시대 보좌한 원로가 나셨어라 / 元老佐昇平
외진 정자 숲 속에선 바람 소리 들려오고 / 亭僻風林近
눈 덮인 산 창가에 밝게 비춰 오는도다 / 牕虛雪嶂明
청안(靑眼)으로 맞이하는 이 고을 어진 수령 / 靑眸有賢宰
내 마음 잘도 알아 담근 술 내어 손 마중하는구나 / 家釀解相迎
-황 익성공(黃翼成公)-조선 초기의 명상(名相)인 황희(黃喜)의 시호-은 바로 이 고장출신이다.
-청안(靑眼) : 반가워하는 눈빛을 의미한다. 진(晉) 나라 완적(阮籍)이 달갑지 않은 사람에게는 백안(白眼)을 보이고 반가운 사람에게는 청안(靑眼)을 보였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阮籍傳》
여산 가는 도중에[礪山途中]
만고토록 장탄식이 나오는 이곳 / 萬古長嗟地
나그네 길 머리 더욱 희어지려 하는구나 / 羇遊鬢欲華
고향 정취 수유회(茱萸會)가 아련히 떠오르고 / 鄕情憶茱菊
산초(山椒) 꽃필 때 맞춰 돌아가는 마음 / 歸興趁椒花
저녁나절 눈 내리는 어둑한 계성 마을 / 暮雪鷄城暗
산에 가로막혀 역참(驛站) 길 더디어져 / 蒼山驛路賖
그래도 별 수 있나 피곤한 말 몰아쳐서 / 惟應策羸馬
까마귀 잠들기 전에 도착해야지 / 莫遣後棲鴉
-수유회(茱萸會) :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 산에 올라가 산수유 열매를 따서 붉은 색 주머니에 담고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며 사기(邪氣)를 물리치는 세시 풍습의 일종이다.
-산초(山椒) …… 마음 : 돌아가서 새해를 맞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표현한 말이다. 산초 꽃은 매화(梅花)보다 일찍 피는데, 진(晉) 나라 유진(劉瑧)의 처(妻) 진씨(陳氏)가 언제나 새해가 되면 초화송(椒花頌)을 지어 한 해를 기원했다고 한다. 《晉書 劉瑧妻陳氏傳》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십이월일일(十二月一日)’에 “未將梅蘂驚愁眼 要取椒花媚遠天”이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14》
고산으로 가는 도중에[高山途中]
산야로 떠돌면서 병들어 혼자 읊조리다 / 原隰風埃病自吟
푸르른 대둔산(大芚山) 들어서니 번뇌가 모두 싹 가시네 / 大芚晴色爽煩襟
청명한 이 시대에 매륜할 일 있으리요 / 明時詎有埋輪事
질어의 마음 간직한 채 험한 고개 넘노매라 / 危坂聊憑叱馭心
만추(晚秋)에도 따뜻한 땅 장기(瘴氣)가 아직 배어 있고 / 地暖窮秋留薄瘴
한낮에 산굽이 돌아서니 그늘이 겹으로 깔렸어라 / 山回亭午匝層陰
앞으로 두루 편력할 청절한 호남 땅 / 湖南淸絶行將遍
가는 곳마다 임금 은혜 분수에 넘치누나 / 隨處君恩分外深
-매륜(埋輪) : 권신(權臣)의 위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임금에게 직언(直言)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동한(東漢) 순제(順帝) 때 대장군 양기(梁冀)가 국권을 전횡하고 있었는데 장강(張綱)을 순안어사(巡按御史)로 임명하자 수레바퀴를 땅에 파묻으면서[埋輪] 말하기를 “豺狼當路 安問狐狸”라고 하고는 마침내 양기를 준열하게 탄핵한 고사가 있다. 《後漢書 張綱傳》
-질어(叱馭)의 마음 : 충신의 마음을 말한다. 국은(國恩)에 보답하기 위해 험한 길도 주저하지 않고 내닫는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왕양(王陽)이 험난한 구절판(九折阪)을 넘으면서 혹시 몸을 상해 어버이에게 누를 끼칠까 염려하여 그냥 돌아왔는데, 뒤에 왕존(王尊)이 이 고개를 넘으면서 마부를 꾸짖어[叱馭] 말하기를 “빨리 몰아라. 왕양은 효자요, 왕존은 충신이니라.”라고 했던 고사가 있다. 《漢書 王尊傳》
계곡선생집 제30권 / 칠언율(七言律)
순창으로 부임하는 임실지를 전송하며[送林實之赴官淳昌]
왕년에 호남 땅 두루 돌아다녔나니 / 昔年行役遍湖中
어딜 가나 대나무 숲 맑은 시냇물 / 脩竹淸川處處同
그중에도 명승으론 적성이 최고 / 最是名區赤城勝
더군다나 송사(訟事) 없는 순박한 풍속 / 況聞淳俗訟庭空
밝은 시대 인끈 찬 몸 어찌 달재(達才) 아니리요 / 明時帶印寧非達
칼 잡는 멋진 솜씨 본래부터 능란해라 / 妙手操刀本自工
백리 땅 고향 마을 안온한 관로 / 百里鄕關官路穩
안여 모시고서 봄바람 좇아가리 / 安輿迎奉趁春風
-적성(赤城) : 순창의 옛 이름이다
-칼 …… 솜씨 : 행정 처리가 능숙하다는 말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31년의 “칼을 잡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자르게 하면 많이 다치게 될 것이다.[未能操刀而使割也 其傷實多]”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안여(安輿) : 모친을 말한다. 당 의종(唐懿宗)이 생일 잔치를 자은사(慈恩寺)에서 벌였을 때 조은(趙隱)이 안여(安輿)에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관람했던 고사에서 연유한 것이다. 《新唐書 趙隱傳》
계곡선생집 제31권 / 칠언 율시(七言律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