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한국기독교사회봉사연구소 이승열 소장(목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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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선교와 디아코니아
교회와 신앙생활이 건강하고 바람직하려면 사회책임적, 사회참여적, 사회봉사적인 신앙과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이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성취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짧은 선교 역사 속에서 급성장했고, 이제는 세계 선교에 힘쓰는 교회가 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마다 사회선교보다는 교회성장을 위한 선교와 전도에 힘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 재정의 많은 부분을 선교에 쏟아붓지만 사회선교나 사회봉사에는 십일조의 정신에도 미치지 못한다. 구약성서에는 십일조의 근거가 분명히 있다. 그 근본 정신은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레위 지파 사람들과 제사장,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인 고아, 과부, 나그네 등을 위한 사회복지 제도이다.
그렇게 쓰여야 할 십일조가 오늘날 교회 운영을 위한 중심 재정으로 쓰일 뿐 교회 안팎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 소외 계층, 억눌린 사람, 옥에 갇힌 사람,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 환경문제 등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인권운동과 같은 사회적 정의와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는 그다지 쓰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한국 개신교회가 역사적으로 보수적 복음주의 내지 근본주의적 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1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 WEA)을 통해 알려진 복음주의 신학의 중심인 로잔문서2에는 분명히 사회적 책임과 사회정의, 사회봉사가 고백적인 차원에서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사회참여적 신앙을 무시하거나 도외시하며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회선교에 대한 오해와 신학적 훈련의 부족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복음주의 진영과 에큐메니컬 진영 사이의 갈등과 오해로부터 생겨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내년에 한국에서 로잔대회가 오랜만에 개최되는데, 이곳에서 어떠한 신앙고백과 신학적 주제가 심도 있게 다루어질지 기대된다.
다시 사회선교라는 주제로 돌아가서, 사회선교의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서 사회선교와 깊은 연관성이 있는 ‘디아코니아’를 찾아볼 수 있다. 전통적인 선교관과 사회선교의 차이점을 바르게 이해할 때 더욱 통합적인 선교관을 확립할 수 있다. 교회가 점점 다양하게 발생하는 사회문제에 책임감을 가지고 선교적으로 접근한다면 우리 한국교회는 더욱 건강한 교회와 신앙인으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선교의 개념
사회선교란 그동안 사용되어온 전통적인 선교의 개념과는 구별된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선교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선교는 산업사회 혹은 후기산업사회로 세대와 사회 환경 및 조건이 달라지고 사회문제가 다양화함에 따라 전통적 선교의 개념과 방법을 수정하고 보완하고자 발전시킨 개념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선교와 사회선교 개념 사이에는 대립적이면서도 보완적인 관계가 성립한다. 그동안 이 개념들을 사용하는 개신교 교단과 단체에서는 학문적·교리적·실천적 오해와 오용이 있어왔다.
오랫동안 ‘선교’는 비그리스도인이 사는 일정한 지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원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선교를 이렇게 이해하는 관점은 오랫동안 기독교의 선교운동을 지배해왔고, 이는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마찬가지였다. 19세기를 전후한 100년은 기독교가 이러한 선교 개념에 입각해서 ‘외국 선교’로서의 선교운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기간이었다. 이때 선교란 곧 이방 나라에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만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교의 개념, 즉 ‘선교는 비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교회를 세우고 키워가는 기독교의 전체 활동’이라는 생각이 오늘날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선교 개념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52년 7월 독일 빌링엔(Willingen)에서 개최된 제5차 국제선교협의회 총회에서 ‘하나님의 선교’3라는 개념이 제기되면서이다. 이 용어는 선교를 교회 확장의 도구로 본 기존의 이해를 넘어 전통적인 선교 개념을 수정하기 위한 표현으로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선교란 단순히 주님의 말씀을 향해 복종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공동체의 회집에 대한 의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란 구원받은 전 피조물 위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우려는 포괄적인 목표를 가지고 아들을 보내심 곧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한 지체로서 참여하게 되는 선교운동의 원천은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 안에 있다.4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 따르면 선교는 교회의 선교가 아니다. 왜냐하면 선교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교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선교는 전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안팎에서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역사의 사건을 통해서 세상을 주관해가신다. ‘하나님의 선교’ 입장에서 기독교 신앙은 오늘날의 사회적인 문제와 역사적인 여건을 떠나서는 구원을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 따르면 교회의 선교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선 무엇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것인데, 교회는 이 선교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함으로써 세상의 사건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스스로 세계 선교에 힘쓰는 것을 자랑하듯 몇 개의 나라에 몇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지, 몇 개의 교회를 세우고 몇 명에게 세례를 주어 교인으로 만들었는지를 보고하곤 한다. 하나님의 선교 차원에서 이러한 모습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손규태는 전통적인 선교 개념과 사회선교의 개념을 비교했다. 전통적 선교는 영혼 구원을 목표로 하고, 사후 인간의 구원을 목표로 한다. 또한 개인주의적 차원에서 개개인의 인격적 실존을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사회선교는 통전적 구원을 문제삼으며, 현재 살아 있는 인간과 사회의 구원을 목표로 한다. 또한 개인의 구원을 사회적 연계성 속에서 파악하고 있기에 사회적 조건의 변혁을 문제시하며, 윤리적 차원에서도 인간들이 살아가야 할 공동체성에 합치되는 행위를 중요시한다. 전통적 선교론은 미래의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지만, 사회선교론은 지상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둔다.5
한편 이삼열은 기독교의 사회참여적 차원에서 사회선교의 개념, 목표, 과제를 사회구조와 연관 지어 정리하고 있는데, 첫째로 신학적인 반성의 작업이 필요하고, 둘째로 사회학적인 분석과 해석의 작업이 따라야 하고, 셋째, 전략적인 방안과 수단 및 이념적인 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6
서정운은 통전적 선교는 전도와 사회적 책임의 실천이라는 불가분의 두 요소를 포함하며 이 둘은 한쪽이 다른 쪽에 종속되거나 의존하지 않고 각각 독립적이며 동역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선교가 인간 구원과 사회봉사로 이루어진다고 했다.7
그렇다면 사회선교란 무엇인가? 사회선교는 곧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에서 행하시는 선교 활동에 그분의 도구로서 동참하여 하나님의 뜻이 사회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제반 활동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선교의 역사적 고찰
개신교 사회선교의 시작은 독일 개신교회의 디아코니아와 사회선교(Innere Mission)8의 발전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럽의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내 유럽 대륙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독일 역시 19세기 전반부에 급격한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유럽 사회는 대도시의 공장에서 값싼 양질의 물건을 대량 생산하는 체제로 변화되었다. 이로써 농촌을 떠나 공장에 취업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른바 이농 현상과 도시화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이 몰려든 대도시의 공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노동력 착취가 벌어졌다. 자본가들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노동자의 복지를 무시했다. 이는 모두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현상이었다. 빈곤에 처한 프롤레타리아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며 배고픔을 겪는 등 비인간적인 삶의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때에 독일교회는 가난한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사람들을 품고 섬기며 나누지 못했다. 이러한 솔직한 고백이 사회선교백서9에 남아 있다. 1848년에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자 수많은 프롤레타리아는 교회에 실망하여 뛰쳐나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독일 개신교회의 사회선교와 디아코니아의 선구자이며 개척자로 추앙받는 요한 힌리히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rn, 1808-81)은 1848년 9월 21-23일 비텐베르크에서 모인 제1회 교회대회에서 즉흥 연설을 통해 사회선교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사람들이 교회로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사람들에게로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대도시에서 거리의 설교자를 가져야만 합니다. …거리의 코너는 말씀을 전하는 강대상이 되어야만 하고… 복음은 국민에게로 다시 전해지며… 나의 친구들이여, 개혁교회가 여러분의 전체 교회 안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재난입니다. 사회선교의 일은 나의 것입니다. 그것은 이 사역의 전체에 하나의 커다란 직인을 찍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은 마치 믿음과 같이 나에게 속해 있습니다. 구원하는 사랑은 그들에게 믿음의 사실을 증거하는 커다란 도구가 되어야만 합니다.10
비헤른의 연설에 감동받은 500여 명의 독일개신교회 지도자들은 곧 전국 교회 차원의 사회선교중앙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들은 비헤른에게 사회의 전반적인 재난을 조사하고, 교회의 사명 과제를 연구하여 백서로 보고하도록 했다. 이듬해 비헤른이 발표한 백서는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 백서의 영향으로 175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독일개신교회는 사회선교와 디아코니아적 사명을 잘 이어오고 있다.
비헤른이 사회선교백서에서 밝힌 사회선교의 개념과 과제는 무엇인가? “사회선교의 근본은 한편으로는 불행이라고 언급된 곤궁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들의 구세주라는 믿음에 대한 것이다. 죄로부터 그리고 죄의 결과로부터 생겨나는 국민 각자의 긴급한 상태를 그리스도의 말씀과 형제의 사랑의 손길로 향상시키는 것, 숨겨져 있지만 점점 커지는 이러한 기독교적 구원의 노력이 우리에게 사회선교이다.”11 그가 말한 사회선교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통한 사회의 구원과 갱신이었다.
그런 까닭에 사회선교에 관련된 세 가지 재단은 인간 공동체 형성의 기본 형태와 연결되어 있는데, 신적이고 생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이 재단들은 바로 가정, 국가 그리고 교회이다. 첫째, 가정은 사회적 질문이 제기되는 진정한 출발점이기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사회선교의 중심 과제가 되고 있다. 가정과 세대를 기독교적으로 다시 세우는 것, 그 모두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교육, 재산, 노동, 그리고 이것들을 통한 관계성 갱신 및 거듭남 등이다. 둘째, 국가와의 관계에서 사회선교는 스스로의 과제를 정치와 국가 경제의 특수한 과제로부터 구별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교회와의 관계에서도 사회선교는 교회 밖으로 나타나는 생활 표현이 아니라, 교회 생활의 하나의 단면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내려고 했다. 즉 잃어버린 자, 떠나간 자, 방치된 다수를 발견할 때까지 끝까지 찾는 신앙적인 사랑의 정신이었다. 당시 사회선교의 본질은 시대정신 속의 반기독교적 요소와 그에 속하는 사탄주의와의 싸움에 있었다.12
그 외에도 이 백서에서 비헤른은 사회선교의 과제를 직접적인 교회 영역뿐 아니라 일반적인 도덕 영역에 속하는 각종 사회악과 타락된 탈선적 삶(동물 학대, 매춘, 음주, 오락, 사치 등)까지 관련지어 다루고 있으며, 유럽 전역과 미주 대륙까지 이민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독일인 문제까지도 언급한다.
한국 개신교회의 사회선교
김용복은 한국의 기독교 역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 의미, 즉 민중의 사회적 권리에 대한 의식을 나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았다. 그것은 주로 진보적 사회사상가들이 기독교를 비판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 증거 중 대표적인 것이 1932년에 통과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제9회 회의록에 수록된 ‘사회신조’이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류를 형제로 믿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사회의 기초적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일절의 유물교육, 유물사상, 계급적 투쟁, 혁명 수단에 의한 사회개조와 반동적 탄압에 반대하고, 더 나아가 기독교 전도와 교육 내지 사회사업을 확장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사를 받고 갱생된 인격자로 사회의 중견이 되어 사회조직체 중에 기독정신이 활약케 하고, 모든 재산은 신께로부터의 수탁물로 알아 신과 사람을 위하여 공헌할 것으로 믿는 자이다. 위의 이상에 기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인류의 권리와 기회 평등, 2) 인류와 민족의 차별 없는 대우, 3) 혼인 신성, 정조에 대한 남녀 동등 책임, 4) 아동의 인격 존중, 소년 노동의 금지, 5) 여성의 교육과 지위 향상, 6) 공창 폐지, 금주 촉진, 7) 노동자 교육, 노동 시간 축소, 8) 생산과 소비에 관한 협동조합의 설치, 9)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에 협동조합 기관의 설치, 10) 소득세와 상속세의 고율적 누진법의 제정, 11) 최저임금법, 소작법, 사회보험법의 제정, 12) 일요일 공휴법의 제정, 보건에 관한 입법과 시설.13
그 이듬해인 1933년에는 미국에서 귀국한 한경직 목사가 미국교회협의회의 ‘사회신조’14를 「신학지남」에 소개했다. 이 사회신조는 17개에 이르는 좀 더 구체적인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 조항은 사회적 복리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원리를 언급하면서 시작하고, 뒤이어 전 인류의 생존 권리, 노동자의 권리, 사회적 보험, 아동의 보호와 교육, 농민에게도 도시와 같이 문화적․사회적 사업을 통한 기회를 제공할 것, 사회정의, 전쟁 방지를 통한 평화 도모, 언론 및 집회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 등 인권 옹호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기독교의 사회선교적 성격을 완전히 규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으나, 이렇게 사회신조가 소개된 점과 당시의 농촌운동 등을 볼 때 한국 기독교가 민중의 사회적 권리에 대하여 완전히 무관심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2024년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15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관심도, 신학적 연구도, 갱신이나 개혁의 노력도 부족했던 사회적 문제에 대해 NCCK는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사회정의, 인권운동, 사회 평화와 환경운동, 평화통일운동을 추구하며 사회봉사적 차원에서 선언문, 성명서, 토론회, 기도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교회의 입장을 표현해왔다. 이 때문에 보수적인 신앙인과 교회는 NCCK와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고, 에큐메니컬 운동을 오해하며 비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선교적 운동과 사역을 통해서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인권이 향상되어온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사회선교를 신학적·신앙적 차원에서 올바르게 이해하고 복음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과제는 한국 개신교에 너무나도 중요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사회선교에 대한 신학적 연구와 신학생 및 일반 목회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왔으며, 사회선교와 연관된 지침서를 정책문서로 개발하여 공식 채택했다. 가령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1970-80년대에 사회선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1978년에 사회봉사부를 설치했으며, 최초의 총회 정책문서가 된 〈사회선교지침서〉를 1984년에 채택하기도 했다. 이 지침서에서는 사회선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사회선교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노력이며, 하나님의 구원이 부분적, 단편적으로가 아니라 전체적, 통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단순히 정치, 사회적 이상향의 건설이나 단순한 역사 변혁을 위한 활동과는 구별되며, 그 목적은 처음부터 역사 전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실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하, 전 인류에게 드러내는 데에 있다.16
이 지침서에는 한국교회 사회선교의 궁극적 지표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민주주의 발전과 참여의 증진, 둘째는 정의 구현과 약한 자에 대한 관심, 셋째는 통일의 모색과 세계 평화에의 기여, 넷째는 창조적 민족문화 발전에의 기여이다. 예장 통합 총회 사회봉사부는 이 문서가 발표된 지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더욱 복잡해진 사회문제와 국제관계와 분단된 한반도 상황에서 이 〈사회선교지침서〉를 더욱 세밀하게 연구하여 〈디아코니아·사회선교지침서〉로 만들었다. 그리고 2016년 9월 29일 제101회 총회는 이 문서를 공식 채택했다. 사회선교와 디아코니아를 전공한 신학자들이 참여하여 전문성 있는 연구를 통해 42쪽의 정책문서가 완성된 것이다.
예장 통합에서는 사회선교에 관한 문서를 집대성하여 2016년 『디아코니아·사회선교정책 문서자료집』17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주로 다양한 차원의 복지선교 지침서와 인권·사회정의·사회평화·기독교환경운동 등 각종 사회문제의 대책에 관한 지침서(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의 신앙각서, 실직노숙자선교지침서, 기독교사회운동지침서, 비정규노동선교지침서, 자살에 대한 목회지침서, 사회문제대책지침서 등)가 수록되어 있다.
나가는 말
한국 개신교는 여전히 복음 전도와 전통적 선교관에 매여 있고, 교회성장 중심의 개교회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오늘날 인구 감소와 함께 교인 수도 감소하며 교회의 위기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과 과제로서 사회봉사(디아코니아)를 사회선교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할 필요성과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사회 속에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구체적으로 사회선교적 차원에서 인권운동과 사회정의, 사회평화, 기독교환경운동, 사회봉사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명용은 교회의 사명으로서 디아코니아적 책임과 사명을, 세상의 평화를 위한 교회의 책임으로서 정의·이웃사랑을, 창조 세계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18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와의 에큐메니컬적 교류와 소통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전쟁·지진·기근·홍수·화산폭발 등 재난·재해가 크게 일어나 큰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생명의 풍성함을 나누며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사회선교적 차원의 복음 이해와 신앙적 성숙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때이다. 사회선교 신학의 차원에서 수많은 사회적 갈등의 극복과 치유적 섬김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발전시킬 것이다. 사회봉사(디아코니아)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자 과제이기 때문에 이를 소홀히해서는 안 되며, 이에 무관심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구제기관이나 자선단체가 아니라는 부정적이고 단순한 생각에 치우친 잘못된 교회관은 하루속히 고쳐야 할 것이며,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종말론적인 신앙의 표현으로서 디아코니아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새로운 각성과 회개와 갱신이 우리 교회에 일어나야 할 것이다.
주(註)
1 홍상태,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 신앙운동과 내한선교사와의 관계 고찰-세대주의 종말론을 중심으로,” 생명신학협의회 편, 『오늘의 생명신학 제2집』(신앙과지성사, 2015), 18-36. 홍상태에 따르면 1906-1909년에 내한한 미국 선교사들은 총 135명인데, 그중 무디의 성경학교(Moody Bible Institute)를 졸업하고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가 81명으로 60%를 차지하고 있다. 새뮤얼 모펫 선교사는 1890년에 한국에 와서 1901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였고, 1936년까지 교수, 교장, 명예교장을 역임하면서 제자들을 길러내었는데 그 수는 400명이 넘었다.
2 로잔운동, 최형근 옮김, 『케이프타운 서약』(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 2014). 1974년 제1차 로잔언약, 1989년 제2차 마닐라선언, 2010년 제3차 케이프타운서약은 놀랍게도 디아코니아, 사회정의, 사회평화, 장애인 돌봄, 인권운동 등 다양한 사회적 선교에 관한 과제와 책임을 언급하며 고백하고 있다.
3 게오르크 휘체돔, 박근원 옮김, 『하나님의 선교』(대한기독교출판사, 1993), 16.
4 위의 책.
5 손규태, 『개신교윤리사상사』(대한기독교서회, 1998), 555-585.
6 이삼열, 『기독교와 사회이념』(한국신학연구소, 1986), 13-49.
7 서정운, “선교신학에서 본 사회봉사,” 이삼열 엮음, 『사회봉사의 신학과 실천』(한울사, 1992), 41.
8 독일교회의 ‘Innere Mission’은 국내에서 문자적으로 해석되어 ‘내적 선교’ 혹은 ‘내지 선교’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필자는 종합적으로 ‘사회선교’로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은 독일의 디아코니아 학자들에게 검증받은 바 있다. 이 개념은 지리적으로 국내선교와 해외선교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중엽 미국 대륙으로 이민을 떠난 독일어권 사람들에게 목회자를 선교사로 파송한 것도 ‘Innere Mission’이었고, 비헤른의 백서에서 이 용어가 사용된 의미를 고려할 때 ‘사회선교’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9 J. H. Wichern, Die Innere Mission der deutschen evangelischen Kirche. Eine Denkschrift an die deutsche Nation(1849), in: Peter Meinhold(Hg.), Sämtliche Werke Bd.I. Lutherisches Verlagshaus Berlin, Hamburg 1969, 175-366. 1848년 9월 21-23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교회대회(Kirchentag)에서 비헤른은 사회선교에 대해 즉흥 연설을 했고, 이에 영향을 받아 독일개신교회의 사회선교중앙위원회가 1848년에 조직되었다. 위원회는 위원 중 하나였던 비헤른에게 1년 동안 시대적 상황과 독일교회의 문제점과 과제를 연구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했는데, 이 책이 바로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중요한 백서이다. 이 백서를 통하여 사회선교사상이 독일의 전국교회로 확산되었고, 그가 개척자, 선구자와 같이 모범을 보여온 디아코니아적 섬김의 삶은 교회의 중요한 과제로 수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10 위의 책, 164; Seung-Youl Lee, Die Grundgedanken der Diakonie bei Jo-hann Hinrich Wichern und sein Gutachten über die Diakonie und den Diakonat, Diplomarbeit am Diakoniewissenschaftlichen Institut Heidelberg, Wintersemester 1993/94, 14.
11 J. H. Wichern, Denkschrift, 180.
12 위의 책, 182-183.
13 김용복, “전통·변혁·기독교,” 전대련·노종호 엮음, 『한국기독교사회운동』(로출판, 1986), 15-16. 한자로 표기된 부분을 현대 한국어로 필자가 번역하여 표기하였다.
14 위의 책, 16-17.
15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이 땅에 사랑과 정의에 기초한 평화, 곧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을 선교 사명으로 삼고 있고, 이 일을 위해 대립과 차별을 해소하며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힘쓰고 인권을 증진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되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 소외당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의 입장에 서는 예언자적 전통을 계승하고자 한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세계를 보전하고 모든 생명이 위협받지 않고 번성하도록 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그 정체성과 사명 과제를 홈페이지에 밝히고 있다. 조직 구성에는 정의평화위원회, 화해통일위원회, 국제위원회, 일치대화위원회, 신학교육위원회, 여성청년위원회, 사회봉사위원회 등이 있다.
16 총회사회봉사부 엮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회선교지침”(1984. 9. 5. 제69회 총회 채택), 『총회사회선교정책문서집』(한국장로교출판사, 2005), 9-22.
17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사회봉사부 엮어옮김, 『디아코니아·사회선교정책 문서자료집』(동연, 2016).
18 김명용, 『열린 신학 바른 교회론』(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5), 31-53.
이승열|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디아코니아학으로 박사학위(Dr.Theol.)를 취득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부산장신대, 숭실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고, 대치동교회 위임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사회봉사부 총무, 한국기독교사회봉사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기독교사회봉사연구소장, 한국교회디아코니아아카데미 원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