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내포지방 찾아가기(1)
장마가 겉히더니 무더위가 극성을 부린다. 8월 휴가가
절정인데 모처럼 시간을 내서 내포지방을 찾아가기로 했다.
내포지방은 일년에 서너번을 찾곤 하지만 매번 이른 봄이나
늦가을, 또는 겨울에 주로 찾았는데 이렇듯 8월의 한여름에
찾기는 처음이다.
항상 가는 곳이지만 매번 갈 때 마다 분위가 다르고 느낌이
다른데 이번엔 나뭇잎이 무성한 꽉찬듯한 풍경 속에 숨은듯
앉아있는 문화재를 찾아나서는 길이니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자못 크다.
서해대교
서해대교를 지나면서 행담도에 들르니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이 흰천에 빨간 글씨로 각종 구호가 어지럽게 널려있고
대부분의 상가가 문을 닫아걸고 시위에 동참해 이 더위에
절망 짜증나게 하고 있다.
행담도가 역사에 등장한 때는 오페르니 일파가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를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 때이다.
행담도라는 지명은 갈행(行) 담수담(淡)자를 쓰는데 어쩌면
운명처럼 그곳에 서해대교가 놓여지고 평택항이 들어서
정말 지명대로 된 몇 안되는 곳 중의 하나다.
수덕여관...낡아서 보수가 시급하다
물 한모금 마시고 행담도를 떠나 수덕사로 향한다.
덕숭산 자락에 평온하게 자리잡은 수덕사는 여승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덕사 주차장 한켠에 잘 보이지도 않은
곳에 송춘희의 수덕사의 종 노래비가 서 있다.
고암 이응로 화백의 문자화
입구에 있는 수덕여관을 지나자니 여인들이 떠오른다.
일엽스님과 나혜석과 박귀희여사...그리고 고암 이응로
화백 등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새삼스레 그네들의 삶이
조영된다. 수덕여관은 아직도 보수가 되지 않은체 방치되어
있고 오히려 바깥쪽 입구를 막고 수덕사 경내로 입구를 열어
놓아 수덕사 입장료를 내지 않고는 수덕여관을 구경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고암의 문자화조각은 여전히 한모퉁이에 선명하게
보이고 몇 년 전에 점심식사를 하던 방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들여다 볼 수 조차 없다. 언제쯤 보수가 될런지......
환희대 안의 원통보전...앞에 보이는 파초와 사과나무가 인상적이다
수덕사 환희대는 일엽스님의 견성암이 있던 자리라 한다.
환희대에는 원통보전이 새로 근사하게 놓여 있고 그 앞에
파초 두 그루가 남국의 풍경을 자아내는데 파초 앞의 공간에
사과나무를 심어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걸 보니 공간배치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듯한데 내 작은 가슴으로는 알 길이 없다.
환희대 안의 자연스러운 정자...버섯모양이라고 하는 분도...
환희대 앞 마당에는 작은 정자 두개가 놓여있는데 그 모양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개심사의 범종각을 보는듯 하다. 일행께서
버섯모양이라고 말씀하시길래 자세히보니 그런것도 같다.
이런 모양은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수덕사 대웅전(국보49호)...700년된 목조건축
환희대를 나와 어느 때고 찾아와 보고 싶은 건축물...
수덕사 대웅전(국보49호)을 향해 가파른 석축을 힘겹게 올라간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아한 맛이 있고 장중한 느낌의 맛배지붕...
수려한 면분할의 황토빛 옆모습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대웅전 옆 자리에서 그 멋을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번에
가서보니 그곳에 무슨 건물을 지으려는지 터다듬기를 하고 있다.
이곳도 오래지 않아 이 공간마저 사라질 운명이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풍광
수덕사는 올라갈 때는 가파른 계단으로 가면서 고행을 느끼고
내려올 때는 옆으로 나있는 도로를 타고 내려오면서 감로수를
한 잔 맛 봐야만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곳에 근자에 세운
탑이나 기념비 등은 논하지 않으련다. 이 글을 쓰는 나만 괴로우니......
남연군묘...바위투성이인 묘역과 뒤로 가야산 줄기가 보인다
수덕사를 나와 천하의 명당이라 일컫는 남연군묘를 향해 간다.
남연군묘는 가야산 줄기에 있는데 그 생성과정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렵다. 남연군묘가 있던 자리는 가야사라는 절의 금탑
자리인데 대원군은 이곳이 2대에 걸쳐 황제가 나는 명당이라는
소리를 듣고 가야사를 불태우고 자신의 아버지의 묘를 썼다.
후에 고종이 황제가 되고나서야 미안했던지 인근에 보덕사라는
절을 세웠으니 사람의 욕심이야말로 어디까지 미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극명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남연군묘 뒤에서 바라본 모습
이곳은 구룡쟁주형 명당이라고들 한다. 아홉마리의 용이 여의주
하나를 두고 서로 싸우는 형태라고들 한다. 남연군묘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큰 산에 둘러싸여 있고 입구만 아스라이 트여있는
형국인데 한 눈에도 명당으로 비쳐진다.
인간의 욕심을 한 껏 머리로 느끼면서 남연군묘를 빠져나왔다.
어찌나 심한 욕심이었던지 점심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배가
부르고 밥 생각이 별로 없다. 내 몸을 아는 분들은 고소를 금할
노릇이지만....ㅎㅎㅎ
남연군묘비...아들 흥선 대원군이 쓴 비문
덕산에서 서산으로 향하는 길은 항상 헷갈린다. 덕산쪽에서 서산
방향으로 표지판을 설치하지 않아서다. 지자체가 되면서 이런
것들이 조금은 아쉬움을 남는다. 지자체 이기주의라고나 할까...?
몇개의 저수지를 지나 아름답게 펼쳐진 구릉을 바라보노라니
우리나라 산천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간신히 방향을 잡고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는 용현골로 향한다.
(계속)
첫댓글 십수년전에 수덕여관앞 나무그늘아래 평상에서 산채정식을 먹던 생각을 떠올려보는 시간이네요.대웅전 측면 벽이 아름답기로, 그때에도 그 측면이 보이는 쪽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던 기억도 아스라이 나고요...
나홀로의 자문위원님께서 여름휴가 다녀 오셨군요. 수덕사, 남연군묘는 작년에 이맘때 다녀 왔는데... 수덕사에서 저녁 7시에 하는 북과 목어, 운판, 종 치는 행사가 너무 좋더군요.
좋은 여행하셨네요. 수덕사도 가보고 싶은 곳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