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의 자세/김성신-
단지, 멀리 바라다볼 뿐입니다
마중 가듯
돌아 나갔던 발자국 소리
어깨 너머의 불빛을 보고
다시금 고갤 돌아다봅니다
우루과이 콜로니아, 알래스카 코디악 섬은
안녕하겠지요? 영영, 출렁이겠지요?
고개를 들어 서치라이트를 켭니다
가까운 곳에서 먼 곳이 아니라
당신이 가고자 하는 그쪽으로 말입니다
한 손엔 풀피리를 들고
다른 한 손엔 팔레트를 들고
잠 못 드는 큰 파랑을 자장자장 재우고
칠흑의 바다 위에 달맞이꽃을 스케치합니다
더 이상 빛은 어둠을 밝힐 수 없습니다
어둠은 더욱 깊은 어둠 속에서 환해집니다
보고 싶나요, 정말로 보고 싶은 사람을요
수십 년, 등대질로 오십견에 걸린 나는
생각해 보니 단 한 번도 누구를 비춘 적이 없네요
파도를 손목에 묶고서
휜 다리로 절벽만 치며 살았군요
내가 불빛이 아니라 불빛만 좇은 거지요
섬이 된 당신의 허리를 뉘어놓고
파도소릴 옆구리에 끼고
천칭자리 마침맞게
시소를 탑니다
죽은 날을 세운 빛의 살갗
어두워지니 비로소, 길이 열리네요
깊고 환하게, 아슴아슴 손을 흔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