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금척리는 황남대총과 천마총으로 유명한 황남동 대릉원에서 서쪽으로 8㎞가량 떨어진 들판에 자리 잡고 있다. 6일 오전 이곳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오랜 풍화와 침식을 견뎌온 50기가 넘는 옛 무덤들이었다. 신라가 3국을 통일하기 전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들은 묘실이 붕괴되며 봉분이 주저앉고 비바람에 봉분토가 깎여나가 원형을 유지한 것들이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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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척리 고분군은 대대적인 발굴조사를 앞두고 있다. 다음달 21일에는 고유제를 지낸다. 고유제는 본격적인 발굴에 앞서 신령에게 앞으로 할 일을 고하는 일종의 ‘신고식’이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고분군 한가운데를 도로가 관통하게 되면서 일부가 파헤쳐졌고, 몇몇은 도굴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문화재 당국의 정식 발굴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가 된 금척리 고분군은 경주 외곽의 고분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13만3400㎡ 평지에 5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고분이 모여 있다. 규모로는 경주 중심지인 대릉원 일대 고분군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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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가 금척리 고분군을 주목하는 건 신라 건국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경주 일대 정치체인 ‘모량부’와의 관련성 때문이다. 금척리 고분군의 위치는 신라 초기 모량부의 통치 영역에 속해 있는데, 무덤의 형태가 대릉원 일대 신라 왕실의 무덤과 동일한 적석목곽묘(무덤 주인과 부장품을 넣는 목곽을 설치하고 그 주변에 돌무더기를 쌓은 다음 그 위를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든 신라 고유의 무덤 양식)다. 무덤의 위치가 평지인 금척리에서 산지인 방내리 방향으로 점차 옮겨간 것도 신라 왕실의 무덤이 대릉원 일대에서 고지대인 서악동으로 옮겨간 것과 같다.
김재홍 국민대 교수(한국역사학)는 “금척리에서 발견된 적석목곽묘 무덤 구조가 대릉원 일대와 거의 유사해 신라 왕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이번 발굴은 모량부와 신라 왕실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첫댓글 많은것들이 발굴(?)되면 좋겠긔
관련학과 대학원생들은 미리....힘내시긔...
발굴하는 분들 애 많이 쓰실텐데 유뮬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긔!
오 두근두근 유물 많이 나왔으면 좋겠긔
고고학자들 설레겠긔
읽으면서도 설레긔 ♡
오~저사는 곳 근처라서 어렸을때부터 늘 봐왔던곳인데 드뎌발굴 하는거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