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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 (21일 목요일) 시내산 등정
“시내산 등정을 원하는 사람은 절대로 시간을 어기지 마세요.”
엄포성 명령에 바짝 긴장했는지 모닝콜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일어나 앉는데 어깨 등.... 쑤시지 않는 곳이 없고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온다.
추위에 떨면서 잤더니 여행 출발 전부터 으시닥 거리며 기회를 노리던 감기가 드디어 제 세상을 만나는 것 같다.
“ 시내산 등정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성지순례 시작인데 나머지 일정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자신 없는 분들은 시내산 오르는 것 포기하세요.”
정목사님의 시내산 등정 포기 권유를 많은 분들이 수긍하셨는지 생각보다 적은 분들이 모였다.
어둠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인솔할 것이 걱정되었었는지 가이드는“괜히 걱정했네요.” 안도의 숨을 내 쉰다.
캐더린터수녀원까지는 버스로 10분정도 ...
시내산에 내딛는 첫발을 함지박 보름달이 반기 듯 환히 비춰준다.
담임목사님께서 알뜰히 손전등을 준비해 주셨는데 하나님은 더 큰 전등 보름달을 준비해 두고 계셨다.
발밑은 손전등으로 목자의 사랑 느끼고 보름달 환한 빛 속에서는 하나님 사랑 느끼고.....
보름달이 떠 있지만 조금만 거리가 있어도 어둠 속이다.
어둠이란 그렇다. 어둠은 감추고 자꾸만 숨기고.... 밝히 드러내지 않는다.
조금만 거리가 있어도 이내 분별을 어렵게 만든다.
‘보름 달 빛으로도 바른 판단이 안되는구나... 밝은 빛, 태양 빛이 있어야 하겠다...그래, 태양 빛보다 더 밝은 주님의 빛 속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겠구나...’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영롱하게 빛난다.
하늘에서 부수어지듯 내리는 별 빛이 땅 위의 어둠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찬란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근동지방 해발 1600m 이상 되는 고지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어둠과 빛의 극명한 대조를 나타내며 그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아직도 예수를 알지 못하고 죽음을 매체로 살아가고 있는 이집트인들과
예수를 만나고도 이 달빛 같은 불완전한 빛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우리네의 모습...
그리고 발광체의 참 빛을 시내산 등정에서 그대로 만나고 있다.
별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이리 저리 셔터를 눌러본다.
어느 순간 보석 같은 하얀 점들이 카메라에 잡힌다.
“아-- 하나님....” 가슴 떨리는 전율... 어두워진 내 마음에 빛을 달아주기 위한 하나님 사랑 같아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람이 얼씬거리자 베드인이 “낙타~” 한국말로 외친다.
이 곳 뿐이 아니다. 성지순례에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순례지 주위의 상인들은 몇 마디씩의 한국말을 다 알고 있다.
낙타의 키는 생각보다 많이 크다. 좁은 길에서 낙타와 비켜 설 때는 닿게 될까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낙타 냄새가 싫기도 하지만 내 키보다 훌쩍 넘어서는 낙타가 무섭기도 하다.
“아직 멀었나요? 아직도요?” 몇 번의 물음으로 힘들다는 투정 아닌 투정이 나오고서야 가이드와 약속된 베드인 집이 두 채 붙어 있는 곳에 이르렀다.
라면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던 가이드의 말에 순진한 최집사님은 한 박스의 라면을 숙소에 그냥 두고 왔기에 라면 드시는 울산교회 부목사님들이 너무 부럽다.
“한 젓가락만요... ”구걸하는 우리가 딱했는지 처음 만난 선교사님이 컵라면 하나를 주신다.
행복감에 잠긴 채 잠시 쉬고 있으니 먼 산이 허리에 붉그스름한 띠를 두르려는 것 같다.
정상까지는 아직도 30분 남았다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시내 산 정상에서 아침 태양을 맞이하고픈 마음이 피곤함을 이기고 있다.
언제 다리가 아팠느냐.... 언제 다리를 끌었느냐... 마음보다 다리가 더 빨리 움직이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700 돌층계 위를 나르듯 달리기 시작....
한국 산의 정상들이 그렇듯이 시내산 정상도 가파르고 돌산이라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고 주의 받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숨이 턱에 차고 가슴이 아파온다.
거의 꼭대기에 다다랐는가 싶은데 갑자기 사방이 밝아지는 것 같다.
분명 어느 곳에선가 태양이 지평선을 넘어선 것 일게다. 아직 내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사방을 둘러 보는데‘아--저기다...’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먼 산 능선에 붉은 빛깔이 나타났다.
하늘이 맑은 것이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천사들이 밤새 짠 천을 잡고 춤사위를 시작하는 것 같다.
붉은색 주홍색 주황색 노란색...... 조금씩 다른 붉은 빛깔들이 하늘과 땅, 산과 공중 사이에서 너풀거리기 시작한다.
카메라 셔터들이 쉼 없이 터진다.
마치 동녘 하늘 빛깔을 다 흡수하고 싶다는 듯이 셔터 누르고 포즈 취하고... 우리는 일출에 취하고 카메라 셔터 소리에 취한다.
빛의 춤사위는 점점 넓어지더니 속에 감추어 두었던 불덩이를 하나 낳고 있다.
그 불덩이가 점점 커지면서 세상을 밝히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 갇혀 검게 보이던 세상이 태양의 빛 속에 자기 색깔을 찾고 있다.
주변 바위의 색깔이 어슴프레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먼 산 능선에 떠 오른 태양을 시내산 바위에 숨기고 돌 틈에 넣어 보기도 하고.... 사람 발아래, 어깨 위에.....
세상을 비추는 밝은 빛의 발광채 태양을 내가 떠오르게도 하고 숨기기도 하고.....
그러나 태양의 위치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내가 움직여야 했다.
태양을 내가 갖고 싶은 위치에 둘 수 있기 위해서는 나를 낮추고 움직이고.....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정복하고 다스려 충만케 하라 하셨다.
나에게 주신 모든 것에 뜻을 두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정복하고 다스리고 충만하게 하는 방법이 내 중심이 아니고
나를 낮추고 움직여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깨닫게 된다.
‘그래 잊지말자..... 충만케 하는 방법은 내 유익함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맞추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시내산은 듣던 대로 바위산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다.
여기 바위가 많이 있는 그런 산이 아니고 시내산 전체가 그냥 커다란 돌 둥치이다.
하나로 연결된 것 같은 큰 바위에 누군가 옆줄 긋기를 해 두었다.
세월이다. 세월이 퇴적되어 바위 층층에 색상도 모양도 다르게 옆줄 긋기로 박혀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두 번씩이나 올랐다는 시내 산이 옆줄 긋기 숙제장 인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시내산 정상 주위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좋은 자리는 이미 모두 차지되었고 우리는 기다렸다가 주위에 있는 베드인 가게에 들어갔다.
우리 양목사님 인도로 예배를 드렸다.
“ 혹시 부서진 돌비 조각 못 보았나요?” 서로 장난어린 말들도 하게 된다.
함께 어둠을 뚫고 왔기 때문인지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다.
내려가는 길은 4000계단으로 된 층계 길을 피하여 낙타들이 다니는 길, 즉 우리가 새벽에 올라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걸을 때 더풀 날리는 먼지는 흙먼지가 아니고 돌먼지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잘게 부숴진 돌가루가 먼지처럼 날린다.
새벽에 시내산을 오르는 이유를 알겠다.
이 메마르고 건조한 햇볕아래서 3-4시간 산을 오르는 일이 당하기나 하겠나.
성지순례 여행객은 연세 드신 분들도 많은 편이데.....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시는 박목사님도 낙타를 타셨는데 키 큰 낙타가 불안정해 보여서 신경이 쓰인다.
기도하는 사람의 무릎은 낙타 무릎 닮아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낙타 무릎을 유심히 보게 된다.
낙타는 걸을 때가 아니면 거의 무릎 꿇고 앉아 있다.
그래서 낙타 무릎은 굵은 살 위에 굵은 살이 생겨서 광야의 바위들처럼 층이 생겨있다.
낙타 무릎 같은 기도 무릎은 평생에 못 가질 것 같아 죄송스러움이 생긴다.
시내산이 정말 돌산이라 발밑은 흙 모양새 돌 가루들 지천이다.
그렇기에 길이 미끄럽다.
몇 번 미끌리고 발목이 접혔지만 걷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 천만다행...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앞서 가시던 일행 몇 분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박목사님께서 발목을 다치셨단다. 허리가 편치 않으시니 걸음도 불편하셨을 테고 ... 발목이 접혔는데 인대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단다.
양 옆에 부축을 받고서 겨우 걸음을 옮기신다. 얼마나 아프고 불편하실까.....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반가운 소식도 있다.
세 분의 가방을 찾았단다. 열심히 기도하시던 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감사함이다.
성 캐서린 수녀원
시내산 등정을 하지 않으신 분들과 합류하여 시내산 기슭에 위치한 성 캐서린 수녀원으로....
길게 늘어선 줄.... 성지순례는 어디를 가나 줄서기다.
성 캐서린 수녀원은 A.D 330년에 헬레나 모후가 불붙던 떨기나무 자리에 교회를 지어 성모 마리아에게 헌납함으로 3세기 중엽부터 수도사들이 찾기 시작했단다.
4세기 초 이집트의 막시미누스 황제가 심하게 기독교를 박해했었는데 그 때 귀족 가문에 용모와 학식이 출중한 캐서린이라는 소녀가 있었단다.
캐서린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세례를 받고 황제의 우상 숭배를 비난했단다.
황제는 여러 학자들을 보내 그녀를 회유하려 했으나 그들마저 캐서린에 의해 예수를 믿게 되자 결국 캐서린을 고문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캐서린은 순교하게 되었는데 천사들이 그녀의 시신을 시나이 반도 제일 높은 곳으로 옮겨 왔단다.
이 사건 이후 시내산 수도원 이름이‘성 캐서린 수도원’으로 바뀌게 되었고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단다.
성캐더린 수도원 뒤뜰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사용하셨던 것과 같다는 “떨기나무”가 있었다.
떨기나무는 넝쿨식물처럼 생겼다. 이 나무에 불이 붙는다면 금새 다 타 버릴 것이다.
그런데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덤불 같은 이 나무가 타지 않고 있었으니 모세가 이상하고 궁금하지 않았겠나.
모세
시내산을 떠나면서 모세에 대하여 생각이 집중된다.
태어나서 이집트 왕궁의 문화 속에서 40년을 살고 다시 이집트 땅 미디안에서 40년을 살고...
어릴 때 유모인 어머니에게 하나님을 배우고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날 뜬금없이, 정말 뜬금없이 하나님이 떨기나무에서 자신을 부르셔서 “ 나는 네 하나님이다. 너는 네 민
<< 떨기나무
족을 이끌고 나와라” 는 말을 하셨을 때 모세의 놀람과 당혹감은 얼마나 컸을까..... 자신이나 그의 가족 친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200만이 넘는 민족을 이끌라는 명을 받았으니.... 두려움에 거부하기 위한 이런 저런 이유들을 열거함이 당연하지 않았겠나.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증명하여 나타내시며 모세를 당신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워가셨던 하나님......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한 아이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 아이가 갈대 상자에 들어갈 때부터 이 모양 저 모양 간섭하셨다.
자신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손길 아래서 생을 살았던 모세와 불러 세우실 그 날을 위하여 80년 세월을 모세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던 하나님.....
하나님과 모세....모세와 하나님....
광야
시내산에서 돌아온 우리는 점심 식사도 거른 채 호텔에서 짐만 챙겨서 이집트국경을 향해 달린다. 순례 객들이 너무 많기에 5분 늦어짐으로 5시간 기다리는 일 종종 생기기도 한단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광야 길을 달린다. 광야 주변의 산은 어느 곳이든지 하나 같이 흙 한 줌 없는 돌산들뿐이다.
거대한 협곡들 사이로 큰 바위 산들을 보면서 그랜드캐년을 연상하고 있는데 이 곳은 그랜드캐년과 비교하여 칼라캐년이라고 불린다는 설명이다. 칼라캐년이라고 불릴만큼 바위들의 색상이 진하고 아름답다.
광야는 그저 광야...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아니 광야로 보고서야 ‘광야’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알게된다.
<< 광야
바위. 협곡 돌평원들이 줄지어 이어진 그 땅이 그 땅 같아 밤하늘의 별이 아니면 동서남북 방향도 모를 것 같은 미로의 땅 광야.....
3500여 년 전에는 지금보다 바위도 가파르고 협곡도 깊고 평원도 거칠지 않았겠는가...
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제할지언정 이 백성들을....” 200 여 만명의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의 절박한 기도가 마음을 때리고 있다.
“그래 맞아 그런 마음이었겠지...” 이 광야에서 노하신 하나님과 목이 곧은 백성 사이에서 지도자로써 생명 건 절박함이 어찌 없었겠나....
말씀을 통해서 느꼈던 로뎀나무와 실제 광야에서 마주친 로뎀나무와는 차이가 많다. 키가 2~3m까지 자라는 식물이라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으나 실제 광야에서 마주친 로뎀나무는 전혀 아니다. 엘리야가 그늘에서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그런 로뎀나무는 광야에는 없다.
로뎀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할 만큼의 큰 나무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저 싸리나무처럼 생긴 작은 식물이다.
<< 로뎀나무
로뎀나무와 엘리야..... 마실 물도 햇볕가릴 나무도 없이 사막 하루 길에 지친 도망자 엘리야.....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하루길 걸어서 겨우 발견한 것은 풀더미 같은 나무, 그나마 의지하고 그늘에 앉았으나 제대로 뙤약볕을 가리지도 못하고.... 이렇게 지내다가는 사막에서 지쳐 죽거나 이사벨의 손에 죽게 될 것 같다는 두려움.... 차라리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죽기를 하나님께 청하고는 지쳐서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아니면 로뎀 나무 그늘 속에 들어가려니 머리를 다리 사이에 넣게되고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 차라리 저를 데려가소서.....”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을까.
광야의 또 다른 한 나무는 법궤를 만든 싯딤나무이다. 가지 줄기에 가시가 많이 돋아 있다는 싯딤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아카시아나무(조각목)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카시아 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멀리서 보아도 우리나라 아카시아나무 보다 작고 마른 듯하다. 광야생활에서 법궤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같다. 광야에 있는 나무는 오직 하나 싯딤나무 뿐이었을 테니...
그러나 싯딤나무의 의미가‘그건 바로 너’란다.
<< 싯딤나무
하나님께서는 임재의 상징 법궤를 만드는 목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광야의 척박한 환경을 견디어 생명을 보존하는 싯딤나무를‘ 바로 너 ’로 그 곳에 두신 것은 아닐까....
누에바에서 한식당에서 오랜만에 비빕밥으로 식사.... 참기름 냄새가 반가웠다.
타바국경
이스라엘로 가는 이집트 국경 검색과 이스라엘 입국절차가 까다롭다고 주의를 받았지만 예상외로 검문검색이 허술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 조약이 그 효능을 발휘함인가? 어쨌든지 여행객들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드디어 그 바위들의 도열 같은 황량한 광야를 지나고 "타바국경"에 도착했다.
<< 홍 해
홍해를 따라 이스라엘 쪽으로 뻗어 있는 도로 폭은 불과 10여 미터 정도. 그 길 오른쪽에는 이집트의 마지막 검문소 겸 세관이 있고, 검문소 밖으로는 철조망을 엮어 만든 철제문이 차량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열려 있다.
이집트 검문소에서 출국하는 수속은 아주 간단하다. 여권에 출국 도장을 찍는 것으로 수속이 끝났다. 수속을 마친 우리는 전방 10미터 앞에 다윗의 별을 상징하는 이스라엘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 이스라엘 검문소를 향해 걸어갔다. 적대적 국가들의 국경을 걸어서 넘는 느낌. 금방이라도 어느 영화에선가 보았던 국경의 긴장감이 현실로 다가올 것 같다.
이스라엘 입국장 역시 한국인들로 가득하다.
이집트, 이스라엘 국경을 넘는 일이 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아니지만 순례객들이 많고 일처리 하는 손들이 느려서 역시나 기다림의 연속이다. 우리 시각으로 본다면 세계는 느림보들의 집합장 같다. 반하여 외국인들의 눈에는 늘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한국인일 것이다.
이스라엘 입국심사는 ‘표본조사’였다. 많은 일행 중 찍히는 몇 사람에 대하여 까탈을 부린다. 반목사님 구목사님이 아랍계(?)처럼 이목구비라 뚜렷하여 까다로움을 당할 것이라 농담들 했었는데 뜻밖에 양목사님의 카메라 가방이 어려움을 당하였다.
10m 후방의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공기부터 다른 것 같다.
이집트와 함께 떠오르는 단어 바위, 산, 메마름, 터벅거림, 각박함, 지친어깨, 무덤과는 다르게 이스라엘에서는 푸름, 안도의 숨, 풍요, 활동감, 생명력이라는 단어들을 만나게 된다. 국경에서는 가이드도 바뀌고 버스도 바뀐다. 이집트 가이드의 며칠 간 섬김을 박수로 보답했다.
달리는 창밖이 제법 초록으로 덮여온다. 인공 조림으로 줄 맞춘 종려나무들이 싱그롭다. 그 나무들 아래는 구멍 뚫린 호스들이 깔려 있어 필요 때마다 물을 공급한단다.
푸른 홍해와 군데군데 만나는 기브츠에 눈길을 주었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 깜박하였나보다. 어느 새 창밖이 어둑하고 하늘에 떠오른 둥근 달이 우리를 따라 오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땅, 롯과 롯의 아내..... 잠시 후면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 되었다는 사해 소금 산이란다.
어두운 소금 산을 가로등 하나가 비추는 곳이 있다. 그 곳에는 작은 돌기둥 하나가 서있다. 그 기둥이 롯의 아내가 변한 소금 기둥이란다. 롯의 아내라 하여 사람모양의 소금 돌기둥이려니 막연한 추측은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롯의 아내 소금 기둥은 사람 형상이 아니고 그저 네모기둥 형태의 소금기둥이었다.
그렇다고 기념 촬영이 없겠는가, 여기저기서 후레쉬가 계속 터진다.
잠시 곁길로 나가 사진 찍기 이야기를 하고 싶다.
“ 목사님 이 사진은 어떤가요?”
“ 사진은 뺄셈입니다. 여기를 빼고 찍었으면 좋을 뻔 했네요.”
아마추어 중에서도 아마추어 사진사인 나는 사진 사각 틀 안에 많은 것을 담고 싶어 한다.
어느 날 사진을 열어 보았을 때 사진 찍을 때의 감동과 광경을 더 많이 만나고 싶은 욕심에 사진에 여백 두는 것을 곧잘 잊어버린다.
그런 나에게 우리 목사님은 좋은 사진 찍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가끔 말씀해 주셨다.
그렇기에“사진은 뺄셈입니다.”라는 설명이 처음 듣는 말은 아닌데 이번 성지순례에서는 은혜로 다가왔다.
찍고 싶은 대상을 더욱 돋보이고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서 여백이 있어야 하는데 여백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위의 사물들을 빼내고 찍어야 한다는 설명이 은혜가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을 온전히 비워내지 못하는 내 믿음의 자세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목사님 설명 뒤에 사진 찍기는 나를 비워내는 훈련장이 되었다.
‘그래 저 나무를 버리면서 대 심지 같은 내 욕심을 버리자.
저 돌을 잘라 내면서 잔 돌같이 굴러다니는 머리 속 생각들을 끊어내자....’ 수 없이 누르는 셔터 소리가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되기 위한 뺄셈 훈련의 구령 같다.
넷째 날의 여장은 여리고 땅에서 풀었다.
‘누가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는가?’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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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성스런 글에 감사 드립니다
호연님 고맙습니다. 올리고 나니 부끄럽기도 하지만 글솜씨 없음이 유감이기도 하지만 화랑골에는 아는 분들이 많아서 뻔--스럽게 올립니다. ㅎ-- ,
인주님, 시간이 좀 그래서 미루어 두었던 사진 올리기를 시도해 보았는데 좀 그렇 죠 ?사진이 본문 옆으로 오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수 부탁드립니다.
글솜씨예? 글 쓰는거로 먹고사는 사람들 촛불들고 나오게 생겼는디유? ㅎㅎ. 사진찍는 솜씨도 글솜씨에 뒤지지 않습니다. 대단합니다. 본문옆에 그림 올리는것 제가 어디가서 좀 배워 와야겠습니다. 좀 기다리십시오. 그림이 큰것은 우선 싸이즈 부터 줄여야 되겠지요.
지리공부에 성경공부, 수학여행 다녀온 보고서,,등등으로 잘 구경, 배우고 갑니다,, 일출이며 돌산 사진들, 멋집니다,, 로뎀 나무까지,,,,,^*^
언제 다리가 아팠느냐.... 언제 다리를 끌었느냐... 마음보다 다리가 더 빨리 움직이는 기현상이..ㅋㅋ 정말 감동입니다. 읽는데도 한참 걸리는데 쓰시는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