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깻잎 편지
기다리던 비오면 비옷 없이
단발머리 동그란 소녀 닮은 들깨를 심는다
어린 뿌리 다칠까
촉촉이 젖은 흙살 한 줌 가만히 덮는다
어린잎에도 향기가 나서
감꽃 물들인 치마에서 나던 풀잎 냄새가
소풍 날, 소녀의 도시락에 들어있던 들깻잎 주먹밥이
마들렌 과자처럼 살아나는 이순의 나이에
홀로 돌아와 들깨를 심는다.
거칠거나 메마르거나 들깨는 착하다
아쌀하게 고소하거나 맵시 있는 참깨만큼 값나지 않아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
작은 사탕봉지 같은 꼬투리 슬며시 열어
반짝이지 않은 구슬 알갱이 톡톡 꺼내놓는다
참깨처럼 헤프게 쏟아내지 않는다
소녀의 집 뜨락엔 들꽃이 피었다 지고
빨랫줄엔 방패연 꼬리 같은 천들이 하늘거렸다
그 사이를 배시시 웃으며 나타났던 소녀가
중학생이 되러 도시로 떠나는 내 주머니에 넣어 준
들국화 수 놓인 손수건은
참깨를 심은 청년에게 편지가 됐다
40년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됐다
텃밭 가장자리에 뿌려둔 씨앗들이
동전만한 잎들로 새벽이슬을 반짝거리면
비옷 없이 들깨를 심는다
들깨는
알갱이 다 쏟아낸 쭉정이도 향기를 낸다.
소녀 할미도 그럴 것이다
(자작시 2020.6 )
*마들렌 과자 :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비스킷. 어느날 문득 주인공 마르셀은 마들렌 과자의 향기를 맡자 어머니가 마들렌 과자를 만들어 주던 어린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린다. 이 장면으로부터 푸르스트의 '비의도적 기억'이란 용어가 생겨났다.
첫댓글 소녀란말
영원한 환상의 소재군요
그렇지요. 어제 천안 시내에 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정말 하얗고 예쁜 소녀를 보았는데...아주 먼 세월 전에 내가 추억하는 소녀도 그랬습니다. 5월의 나뭇잎처럼 싱그럽고 따스한 봄 날의 꽃처럼 ... 그런데 요즘엔 예쁘다는 말 함부로 못하죠? 참 강퍅한 세상이 되었지요. 순수성을 상실한 시대....그 속에서 나 또한 변하며 잃어버린 시간이었음을 탄식하며 몇 해 전 적어 둔 시를 꺼내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십대때까진
쥐불놀이
널뛰기
대한제과
뉴욕제과
오빠들이
목에타고
목마놀이인지
제비차기
오재미놀이
잔디고운
대머리산 푸대깔고
미끄럼틀
겨울날 썰매타기
가을에 은행가서
잠자기 등등
논에 동네사람들 모여
품앗이 모내기 막걸리 한사발에
웃음소리가
그립습니다.
아날로그가 불편해도
정은 많은 시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