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 백서
김상미
웃는다. 마취된 이빨을 세 개나 뽑히고도 웃는다. 전화기 너머 누군가가 주도면밀하고 고집스럽게 나를 비하하고 평가해도 詩는 인간 의 마음이 천박해지는 것에 대비해 드는 유일한 보험이라는 브로드 스키의 말을 두 손으로 구기며 하늘 가득한 적란운과 눈 맞추며 웃는다. 곧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지겠지. 그래도 안에선 불통이 고 밖에선 꼴통인 호밀밭의 허수아비들은 안개 자욱한 시커먼 습지 위에서 계속해서 도태의, 도태의 막춤을 추고 또 추겠지. 너무나 막 막하고 참으로 막막해서 웃는다. 이제 내 안에 있는 나는 누구와 즐 겁게 소통하고 말끔하게 지워진 이 시대의 칠판엔 무엇을 쓰고 무엇 을 그려야 하나. 웃는다. 어딜 가도 거대하고 공허한 자유와 정의뿐 작디작고 소박한 자유와 정의는 이제 누가 지켜주나. 웃는다. 나비도 줄어줄어들고 꿀벌도 줄어 줄어드는 위험하고 위태위태한 지구. 갈수 록 비열해지는 세속적 성공과 가치, 공정과 상식. 그 모퉁이에서 쏟아지는 채찍비를 맞으며 웃는다. 무언가를 변화시키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참으로 막막하고 힘든 일. 삶에서도 예술에서도 끝없이 반복되고 반복하는 투쟁. 그 막막함 속에서도 이빨 빠진 입 크 게 벌리고 피 철철 흘리면서도 웃는다. 웃고 또 웃는다. 웃음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저항 예술, 내 사랑 최고의 조커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