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딱정벌레한테 넘어가지 말라
나에게는 일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극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뉴저어지의 로버트 무어씨로부터 들은 실화이다.
"1945년 3월, 나는 내 일생에서 가장 큰 교훈을 배웠다.
그것은 인도네시아의 앞바다 276피트인 해저에서의 일이었다.
나는 잠수함 베이어호에 타고 있던 88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레이다로 몇몇의 일본군 호위 선단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먼동이 틀 무렵이 되자 우리는 공격하기 위해 잠행했다.
잠망경을 통해보니 일본의 구축함이며 유조선,기뢰부
설함 등이 보였다. 그러자 우리는 구축함을 겨누어 세 개의 어뢰
를 쏘았으나 명중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뢰 장치에 고장이 난
때문이었다. 그런데 적의 구축함은 공격받은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
고 항해를 계속했다. 그래서 이때 별안간 기뢰 부설함은 방향을
바꾸어 곧바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이것은 일
본군 비행기가 해면 깊숙이 60피트 밑에 있던 우리를 발견하여
무선으로 우리의 위치를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우리는 적에게 발
견되지 않도록 150피트까지 잠수하였다.그리고 수중폭뢰 준비를
내지 않도록 선풍기며 냉방 장치,그밖의 온갖 전기 장치를
멈추게 했다.
3분 뒤 이 세상의 지공이 출현하였다.6개의 폭뢰가 우리
주위에서 터졌고,우리는 276피트의 바다 밑에 가라앉고 말았다
.타고있던 사람들은 모 두려움에 떨었다.잠수함은 천 피트
이내에서 공격을 당하면 위험했으며 5백 피트 안에서라면 우선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수심 5백 피트의 절반 남짓한 깊이
에서 공격을 받았던 것이다. 안전도로 말하자면 겨우 무릎이 잠길
만한 깊이에서 공격당한 것이다. 이때부터 15시간 동안 일본의
기뢰 부설함은 폭뢰를 쏘아댔다. 폭뢰가 잠수함과 15피트 안의
거리에서 터지면, 그 진동으로 배에 구멍이 나고 만다. 그런데
대부분의 폭뢰는 우리들로부터 50피트 이내의 지점에서 터졌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꼼짝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나는 무서움에
질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다!이제는 최
후다!라고 되풀이 하여 나 자신에게 말했다. 선풍기며 냉방 장치
가 모조리 끊어져 있었기 때문에 함내의 기온은 100도를 넘었다
. 그렇지만 나는 무서움에 떨려 털옷에다 가죽자켓까지 입고
있었으나, 그래도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를 악물어도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으며 식은 땀이 몸에 흘러내렸다. 적의 공격은 15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딱 멎었다. 확실히 일본의 기뢰
부설함은 폭뢰를 모조리 쏘아 버리고 간 모양이었다.
우리가 공격을 받은 15시간은 그야말로 천 5백만 년이나 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의과거 생활이 눈 앞에 펼
쳐지는 것이었다. 내가 저질렀던 온갖 나쁜 짓을 비롯하여 공연히
속을 태웠던 어리석은 일들까지도. 나는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은행의 사무원이었는데 일하는 시간은 길고 급료는 박한데다가,
진급될 가망성도 없었기 때문에 몹시 고민하고 있었다. 자기 집
하나 제대로 지니지 못하고 새 차도 살 수 없으며, 아버지에게는
멋있는 옷 한 벌 사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또 언제나 잔소
리만 늘어놓고 야단만치는 늙은 너구리 같은 계장에게도 화가 났다
. 그러다가 밤늦게 언짢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아내와 곧잘 다투던기억 등이 생생하게 생각났던 것이다.
또한 자동차 사로로 다친 얼굴의 상처에 대해서도 고민했었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것들이 아주 큰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폭뢰에 날려 가지나 않을까 하며 떨고 있을 때는 그런 일
들이 정말 어리석게만 생각되었다.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맹세했다.만일 또다시 햇빛이나 별을 볼 수 있다면, 다시는 고
민 같은 것을 하지 않겠다고……나는 그 잠수함 안에서 두려움에
떨던 15시간 동안 대학에서 4년간 배운 것보다 훨씬 많이 인간
의 사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커다란 재액에는 용감이 맞서지만, 작고 하찮은
일에는 넘어지고 마는 경우가 곧잘 있다. 이를테면 사무엘 핍스
의 일기 가운데 할리 벤경의 목을 잘리는 것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할리경은 쳐형대에 올라갔을 때, 형리에게 목숨을 살려 달라고
는 하지 않았으나, 목에 난 종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하라고 말했
다는 것이다.
바아드 제독이 극지의 암흑과 추위가 지독한 밤에 발견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부하 대원들은 중대한 사항에 대해서보다도
실로 대단치 않을 일에 야단법석이었다. 그들은 위험과 곤란, 때
로는 영하 80도에 달하는 극한도 태연하게 견디어 냈다.
그러나 바아드 제독은 말하고 있다.
"베개를 나란히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동료가 갑자기 입
을 다무는 때가 있다. 그것은 서로 상대방이 자기의 잠자리를 침
입한 것으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음식을 28번이
나 씹기로한 완전 저작 주의가가 보는 앞에서는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지의 캠프에서는 이와 같은 자질구
레한 일이 잘 훈련된 사람까지도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 가는 것이
다."
그러나 바아드 제독이여, 당신은 결혼 생활의 사소한 일들이
많은 사람들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 가며,그것이 이 세상 고민
절반의 원인이라는 것을 거기에다 덧붙여야 했다.
어쨌든 이에 대해서는 많은 권위자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를테면 시카고의 조셉 사바스 판사는 4만건 이상이나 되는 불행
한 결혼의 조정을 처리한 사람인제,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결혼 생활에 있어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아주
사소한 일이다."
또한 뉴욕의 지방 검사 프랭크 S.호오간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형사 재판 사건의 과반수는 사소한 원인 때문이다. 술집에서
부터 공연한 허세, 가정에서의 말다툼, 모욕적인 말투, 욕설,
버릇없는 행동―이런 사소한 일이 목행, 살인을 일으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몹시 부당하게 혼이 나는 일은 별로 없다. 자존심이나
허영심을 다치게 했다든지, 멸시를 받았다는 따위의 사소한 일들
이 이 세상 고민의 절반의 원인인 것이다."
엘리너 루우즈벨트는 결혼 초에 몹시 번민을 했다. 왜냐하면
새로운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깨를 한 번 들썩일 뿐, 그다지 신경을 쓰
지 않아요."
그래야만 감정적으로 어른다운 행동이라고 할 만하다.
한때 포악하기로 이름난 캐더린 대제마저도 요리사가 요리에 실
패했을 때에는 껄껄 웃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시카고에 있는 친구 집으로 만판에 초대되어 갔을
때의 일인데, 내 친구가 고기를 자르다가 실수를 했다. 나는
거것을 눈체채지 못했었지만, 비록 알았다 해도 잠자코 있었을 것
이다. 그런데 그의 부인을 이것을 보자 대뜸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
"여보, 그게 뭐예요! 언제나 그걸 배울 거예요? 그만한 일
을?"
그리고 그녀는 우리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분은 언제나 실수를 한답니다. 주의를 하려들지 않는다니까
요"
그건 그럴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부인과 20년 이상을 함
께 살아온 내 친구에게 나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잔소리를 늘어 놓는 여자와 함께 북경의
오리고기며 상어 지느러미와 같은 기막힌 요리를 먹기보다는, 평화
로운 분위기에서 핫도그를 먹는 편이 훨씬 기분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있은 얼마 뒤 우리는 몇몇 친구를 저녁 식사에 초
대했었다. 그런데 손님이 닿기 조금 전에야 아내는 준비된 냅킨
가운데 세 장이 테이블 클로오드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나중에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요리사에세 물어 보니 그 세 장은 세탁소에 보냈다는 군요.
손님들은 벌써 문 앞에 오셨고 해서 바꿔 깔 시간도 없었어요.
저는 울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런 실수로 밤새도록 언짢게 있
어서야 되겠는가?"하고 생각했지요. 저는 생각을 고쳤어요. 아무
튼 될 대로 되라구요. 그랬더니 다행히도 마음먹은 대로 즐겁게
지낼 수 있었어요.저는 신경질적이고 무뚝뚝한 여자라는 인상을 받
기보다는 차라리 주책없는 주부로 보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무도 냅킨에 대해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어요"
<법률은 사소한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법률상의 유명한 금
언도 있다. 고민으로부터 헤어나서 마음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하찮은 일에 얽매이지 않도록 하려면, 그 마음 속에
새롭고도 유쾌한 인생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저술가인 나의
친구 호머 그로이는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훌륭한 실
례를 들고 있다.
그가 뉴욕의 아파트에서 저술에 종사하고 있을 때, 그는 난방
장치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시달려 미칠 것 같았다는 것이다.
스팀에서 픽쉬-하는 소리가 날때마다 그는 마음이 산란해졌다. 그
로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럭저럭하다가 나는 친구들과 함께 캠핑을 떠났다. 그리고
모닥불을 쬐다 보니까 나뭇가지 타는 소리가 난방 장치인 스팀 소
리와 똑같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편에서는 유쾌
한데,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게도 불쾌한 것일까?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말했다."모닥불 타는 소리는 듣기에 즐거웠다. 난방 장
치의 소리도 이와 흡사하지 않는가-잠자리에 들거는 이 소리에 신
경을 쓰지 않도록 하자"고. 나는 그대로 실행했다. 그런데 2,
3일 동안은 난방 장치에 신경이 쓰였지만, 그 뒤부터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소한 고민도 이러한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마음에 두고 고민하는 것도 말하자면,
사물을 침소봉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디즈레일리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너무나 짧다. 그것을 작게 할 수는 없다."
또 앙드레 모로아는 <<디스 위크>>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말은 내가 많은 쓰라린 경험을 겪는 동안 아주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가끔 가볍게 받아 넘겨 잊어버려도 좋은, 하찮은
일로 곧잘 고민하게 된다――우리가 이땅 위에 머무르는 것은 겨
우 몇십년에 지나지 않는다.그런데도 우리 1년 뒤에는 모든 사람
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말 불평과 불만에 대해 고민함으로써 많은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생을
가치있는 행동과 감정, 또는 위대한 사상과 진실한 애정 등 영
구적인 사업에 바쳐야만 한다. 인생을 작게 살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다."
루드야드 키플링 같은 유명한 인물마저도 때로는 <인생을 작게
살기에는 너무도 짧다>는 것을 잊었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
가? 그는 그의 처남과 버몬트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소송으로 다
투었다. 이에 대해서는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이다.
그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키플링은 버몬트의 처녀 캐롤
린 발레스티어와 결혼하여 버문트의 브래틀보로에 훌륭한 저택을 짓
고 여생을 그곳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그의 처남 비티발레스티어는
키플링의 친구가 되었고, 두 사람은 함께 일하며 같이 즐겼다.
그러다가 키플링은 철마다 건초를 베게 하겠다는 조건으로 발레스
티어로부터 땅을 샀다.그런데 어느 날 발레스티어는 키플링이 목초
장에 화원을 만드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본 발레스티어는 피가
끓어올랐다. 그는 몹시 화가 났던 것이다. 그러나 키플링도 양
보하지 않았다. 일이 이쯤되다 버몬트의 그린 마운틴의 공기는 험
악해졌다.
4,5일 뒤, 키플링이 자전거를 달리고 있을 때 그의 처남이
난데없이 마차를 몰고 여러 마리의 말을 끌고 나와 키플링의 앞
길을 가로질렀기 때문에, 그는 자전거에서 굴러 떨어졌다.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자제심을 잃고 당신에게 비난을 퍼부을지
라도, 당신은 되도록 자제심을 지녀라>고까지 기술하였던 키플링이
바로 발레스티어의 체포 명령을 청구했던 것이다. 그러자 센세이
셔널한 공판이 시작되었다. 큰 도시에서 보도진이 밀어닥쳤고, 이
소식은 눈깜짝할 사이에 온 시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싸움으로 말미암아 키플링 부부는
그들의 여생을 미국에서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
켜 보면, 온갖 이러한 고민과 비통도 따지고 보면 극히 사소한
일-건초 한 다발이 원인이었다.
페리클레스는 벌써 24세기 전에 이러한 말을 했다.
"우리는 사소한 일로 너무 오래 입씨름하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
여기에 하리 에머슨 포스딕 박사가 말한, 실로 재미있는 이야
기가 있다. 그것은 숲 속 거인의 승패담이다.
콜로라도주 롱피이크의 경사지에 거목의 잔해가 있다.박물 학자
는 그 나무가 4백 년이 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일찍이
컬럼버스가 산살바도르에 정주했을 때에는 반쯤 자라 있었다. 그 나무는
긴 생애 동안에 열 네번이나 낙뢰를 맞았었다. 눈사태와 폭풍우는 4세기에
걸쳐 수없이 맞아 왔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겨 왔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딱정벌레 떼가 몰려와 그 나무를 넘어뜨리고 말았다. 벌레들은
나무 껍질을 파먹어 가,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끊임없는 공격으로 수목
내부의 활력을 파괴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숲의 거인, 오랜 세월에도 시들지 않고, 뇌화에도 굽히지 않고,
폭풍에도 굴하지 않았던 거목이 끝내 작은 벌레- 사람이 손 끝으로 짓이길
수 있는 작은 벌레 때문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우리 인간도 이 숲의 거인과 흡사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사나운 폭풍과 눈사태라든가 인생의 뇌화에 견디어 살아
나가지만, 고민이라는 작은 벌레- 손끝으로 짓눌러 버릴 수 있을 만큼
작은 벌레 때문에 마음을 먹혀 버리지나 않았을까?
4,5년 전 나는 와이오밍의 도로 관리관 차알즈 사이프렛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과 함께 티톤 국립공원으로 여행한 일이 있다. 이때 우리는 공원
안에 있는 존 D.록펠러의 소유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내 차가
마침 길을 잘못 들어사, 다른 차들보다 한 시간이나 늦어서야 그곳에
도착했다. 문의 열쇠를 맡아 가지고 있던 시이프렛씨는 우리가 도책할
때까지 한 시간이나 모기가 많은 숲속에서 기다려 주었다. 그곳의 모기는
성자라도 내게 만들 만큼 대단했다. 그러나 극성스러운 모기 떼들도
시이프렛씨만은 굴복시킬 수 없었다. 그는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버드나무 가지를 꺽어 피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당도했을 때 모기에 대한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고 유쾌하게 피리를 불고
있었다. 나는 사소한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 훌륭한 사람의 기념품으로서,
그 피리를 받아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고민하는 습관에 당하기 전에 그것을 해치우는 법칙 제2-
*우리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잊어야 할 사소한 일에 대해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인생을 작게 살기에는 너무나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