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의 균형 잡기 1
빛을 밝히는 것은 곧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바른쪽에 치우친 행위를 했다면 그 반대 행위로 시소의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
시소를 연상하면 심리의 기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신에게서 부여받은 개별적인 특징 중 사회가 수용하는 면은 시소의 오른편에, 그렇지 않은 면은 시소의 왼편에 올려놓는다. 이 시소게임에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신이 부여한 온전한 특질은 하나도 버릴 수 없다는 점이다. 오직 시소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는 것만 가능하다. 소위 문명화된 사람이란 바른쪽이라고 부르는 우측에 원하는 특질을 가시화하고, 왼편에는 금지된 부분을 숨겨두는 사람을 말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우리가 지닌 특질은 모두 진열되어야 한다. 단 하나라도 뒤로 숨겨서는 안 된다.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한 가지 법칙이 있다. 그것은 우리 문화가 무시하고 있는 끔찍한 진리로서, 사람이 평상심을 유지하려면 시소가 균형을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쪽에 드러나는 특질을 선호한다면 그 반대쪽에도 무게를 지니는 뭔가로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 역으로도 마찬가지다. 만일 이 법칙이 깨어지면 시소가 뒤집혀 균형을 잃게 된다.
이 법칙은 사람들이 어떻게 180도 돌변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사람은 늘 해오던 행동을 그만두고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해 반대 극에 잇는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너느 날 금주 맹신자로 변하고, 주류의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던 보수주의자가 어느 날 그 반대 극으로 돌아선다. 이런 사람들은 단지 한 극에서 다른극으로 돌아서기만 했을 뿐 이 경우 내면에 쌓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또 시소 위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놓아서 지렛대가 부러질 수도 있다. 이 상태를 정신이상이나 신경쇠약이라 부를 수 있다. 무너져 내린다breakdown라는 표현이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해 준다. 따라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긴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좌우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고, 산과 알칼리의 비율을 조절하고, 그 밖에 수많은 평형을 유지하듯이 심리도 이와 같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적 균형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심리적 균형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이런 면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중세 그림이 있다(28쪽 그림 참조).
그림1 삶과 죽음이 나무Tree of Life and Death
아담의 배꼽 위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황금과실이 달려 있는 지식의 나무이다. 아담은 자기가 기른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듯 잠에 취한 표정이다. 나무 양쪽에는 여자 둘이 서 있다. 좌측에는 성모마리아가 수녀복을 입고 있다.성모마리아는 지식의 나무에서 과일을 따서 길게 늘어서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건네준다. 오른편에는 나체인 이브가 서 있다. 이브는 같은 나무의 과일을 따서 파멸의 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는 한 나무에서 자라는 두 가지 과실의 의미를 생생하게 설명한다. 이 얼마나 이상한 나무인가! 황금의 나무에서 창조의 과실을 딸 때 다른 손으로는 파괴의 과실을 따다니. 우리는 이런 통찰에 대해 지나친 저항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는 파괴 없는 창조를 바라지만 그것은 가능한 바람이 아니다.